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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27 16:11
비슷한 의문을 가지고 있던 제게는 반가운 글입니다.
아래 댓글에서처럼 당연히 그렇다고 말씀하시지 말고, 경제학 지식이 없는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차근차근 설명을 해 주셨으면 합니다.
10/10/27 16:23
공정하고 합리적인 거래라면 그 거래는 후생의 증가를 부릅니다. 거래가 이루어지려면 양자 모두 그 거래에 만족해야 하고 만족한다는 것은 곧 후생이 증가한다는 말과 같으니까요.
10/10/27 16:31
분명히 파이를 나눠갖는 도중에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거짓말쟁이가 되지 맙시다.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최소한의 도덕입니다.
10/10/27 16:34
이런 얘기를 할 때는 기본적으로 개인의 후생은 측정할 수 있고 이 것의 총합이 사회의 후생이다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시작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류경제학과는 대화 자체를 못해요. 본문에 있는 '혹시 증가한다고 믿는건 거래자의 주관적 판단이고 실제로는 착각이지 않을까' 이 부분은 주류 경제학에서는 논쟁꺼리가 안됩니다.
경제학에서 분석의 대상으로 삼는 합리적인 경제인은 위와 같은 착각을 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불완전하고 믿을 수 없는 존재'라면 경제학은 학문으로 존재할 수 없겠지요. 이 부분은 경제학이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을 때마다 나오는 얘기지만 충분히 의미있는 가정입니다. 개인으로서 인간은 얼마든지 불합리한 선택을 하지만, 종으로서 인간은 아니지요. 덧붙여 경제학은 만능이 아닙니다. 우리가 좀 더 부유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지만(실제로 그 방법들이 잘 작동하는지는 둘째치고;;) 행복하게 사는 방법은 경제학도 모릅니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생활을 한다고 더 행복해진 않잖습니까. 개인의 행복은 다른 곳에서 찾아야죠. 아마 본문에 쓰신 의문들에 대해서 주류 경제학의 답을 들으셔도 만족스럽진 않을거예요.
10/10/27 16:39
사과가 시장에서 500원에 거래된다는 것은
판매자(생산자)는 500원에 파는 것이 그냥 가지고 있는 것보다 낫다는 것이고 소비자는 그 사과에 최소한 500원 이상의 가치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에 500원을 지불하고 사는 것이죠. 즉 자발적 거래에 의하여 양자가 서로 500원과 사과를 교환하는 것이 적어도 그 교환을 하기 전보다 더 나은(최소한 같거나) 상황이라는 겁니다. 자발적 거래가 후생을 증가시킨다는 것은 딱 이 이상의 의미도 이하의 의미도 아닙니다. 여기서는 생산자와 소비자중 누가 더 많이 가져가느냐라든가, 최초에 각자가 보유하고 있는 부존자원이 얼마냐라든가 이런 문제는 전혀 고려되지않는 것이죠. 그런 문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다시 그런 요소들을 고려해서 답을 다시 찾아야 하는 것이죠. 사실 게시판에서 이런 논쟁이 벌어지는 것이... 경제학에 대한 몰이해 때문인지 경제학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커서 그런건진 모르겠는데요. 이건 경제학에 대해 비판적인 분들이나 또 경제학적 논리를 강조하는 분들이나 양자에게 다 문제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경제학은 단지 정해진 틀 안에서 사회를 이해하는 하나의 측면을 보여주고 있을 뿐인데요. 한쪽은 그걸 강조해서 마치 이게 최종적인 답이라는 듯이 이야기 하고 또 한쪽은 전혀 다른 논리구조로 그 답이 틀렸다고 이야기하니까(사실 다른 측면을 말하고 있을 뿐인데 말이죠) 이런 논쟁에 답이 안 나오는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여튼 자발적 거래가 후생을 증가시킨다는 말은 저런 간단한 논리에 불과하고 이것이 공정이라든가 공평이라든가 하는 가치의 문제에 대한 답이 되는 것은 아니다(그리고 경제학자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정도로 이해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0/10/27 16:43
경제학에 대한 지식이라고는 대학교때 교양으로 한학기 들었던 경제학개론밖에 없지만...
경제학에 따르면 독점 상황에서도 시장 가격이 결정되는 합리적인 원칙은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절대 그렇지 않죠. 그런데 이런 불합리한 상황까지 다 경제학적으로 풀어달라고 하면 곤란할겁니다.
10/10/27 17:02
물리학자, 화학자, 경제학자가 무인도에 표류하게 되었다.
몇시간 동안 먹을것을 찾던 그들 앞에 통조림이 하나 떠내려 왔는데, 안타깝게도 통조림 따개가 없었다. 물리학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돌로 내리쳐서 깡통을 땁시다." 그러자 곁에 있던 화학자가 황급히 물리학자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그러면 내용물이 망가질지도 모르니 불로 가열합시다. 그러면 뚜껑이 열릴겁니다." 이때 조용히 있던 경제학자는 이런 제안을 했다. "여러분, 자! 우리 지금 여기에 통조림 따개가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게 바로 경제학이죠. 경제학 이론은 '가정' 안에서는 옳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가정'과 다르죠.
10/10/27 16:58
저도 "사회후생"에 대한 정의를 어떻게 내려야 하나 고민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여러 가치 판단이 개입되기 때문이죠. 거래 당사자끼리의 자유 거래를 통해 양자가 모두 만족하면 사회후생이 증가하느냐의 문제가 있죠. 자유거래 이론의 토대를 마련해준 리카도의 "비교우위"이론에 의하면 자유거래는 양자 모두를 만족시킵니다. 하지만 몇 가지 사례를 통해 문제 제기를 할 수 있죠. 신체 장기를 사고 파는 것은 사회후생을 증가시키니 제재해서는 안 된다? 혹은 매매춘에 있어서도 양자의 자유거래를 통해 사회후생이 증가한다? 이 사안에 대해 각자의 경제적 관점+도덕,윤리적 관점이 개입된 가부 논쟁이 일어납니다. 양자가 자유 의사에 따라 모두 OK했으니 이것은 자유거래로 보아야 한다? 사회안전망 밖에 있는 약자 입장에 놓은 사람이 어쩔 수 없이 승낙 의사를 밝힘으로서 이루어진 거래도 과연 자유거래로 봐야 하느냐에 문제도 있죠. 약자 입장에 놓인 사람들은 선택이 자유롭지 않은 여건 속에서 하게 된 자유거래일테니까요. 개개인의 문제를 넘어서 국가로 그 범위가 확대되면 문제는 더 커집니다. FTA로 인한 자유거래로 국가 전체의 후생이 증가하니 체결하자? 축산업자, 농민 등은 피해를 입게 되니 이들에 대한 보상책이 없이는 반대한다? 대기업의 후생이 더 증가하여 가치를 창출하면 고용도 늘고 국가 발전에도 이바지하면서 얻게 될 후생의 크기가 축산업자, 농민들의 후생 감소분보다 크니 결국 사회 후생은 증가되는 것이다? 이야기를 더 이어가려고 했는데, 시간 관계상 적당히 마무리하겠습니다. 자유거래가 사회후생을 증가시킵니다. 하지만 자유거래가 "언제나" 사회후생을 증가시키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어쩔 수 없이 이루어지는 갑-을, 강자-약자간의 자유거래도 이루어지기 때문이죠. 대개 을,약자의 조건하에 놓이면 "공정함"을 기대하기는 힘듭니다. 우리 주변에도 이러한 경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자유거래가 사회후생 증가에 이바지하지만 "언제나" 사회후생을 증가시키지는 않습니다.
10/10/27 18:29
경제학에 대한 정의와 개념을 굳이 pgr에서 사용하기가 약간 꺼려졌지만 밑에 글에서도 그렇고 기왕 이렇게 된거 책을 참고하면서 적겠습니다.
후생에 대한 정의를 간단히 적어주셨는데요 후생경제학 이론은 어떤 경제의 상태가 사회적 관점으로 볼 때 얼마나 바람직한 것이지에 대해 논의합니다. 여기서 문제가 규범적, 가치판단이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럼 객관적 이론이 될려면 가치 판단이 많은 공감을 얻어야 하는데 이에 대해 공리주의, 평등주의, 롤즈적 가치판단을 사용합니다. 후생은 이러한 가치판단이 전제되어야만 후생증가에 대해 판단 가능합니다. 그럼 이러한 방식말고 가장 바람직한 배분을 이론적으로 나타낼수 있느냐, 다시 말하면 사회후생함수가 실제로 존재하느냐에 대한 의문이 존재할 수 있는데, 이는 애로우의 불가능성정리에 의해 부정당하고 맙니다. 뭐 애로우의 공리구조가 요구하는 바가 지나치게 강한점은 있습니다. 그리고 진정으로 문제되는 것은 차선의 이론입니다. 차선의 이론은 하나 이상의 효율성 조건이 위배되어 있다면 충족되는 효율성 조건의 수가 늘어난다고 해서 사회후생이 더 커진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겁니다. 때문에 저같은 경우 가장 간단하다고 생각한 시장실패에 대해서 강력하게 주장했습니다. 경제학적 관점은 우리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길을 제시하기 위해 많은 변수를 제거하고, 가정을 도입합니다. 앞에 많은 분들이 언급했듯이 이러한 가정위에 서 있는 경제학적 시선속에서만 바라보는 것은 당연히 한계가 존재합니다. 현실의 상황은 이론과 다릅니다.
10/10/27 19:42
자유거래는 언제나 사회 전체의 후생을 증가시킨다는 내용은 맞습니다.
좀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nickyo님이 말씀하신 사회 전체의 후생이나 경제학에서 의미하는 사회적 후생은 ' 복지부문 (본문의 후생에 대한 정의 1번) 의 경제적 총량' 을 의미합니다. 즉 계량적인 이야기라는 것이지. 자유 거래로 모두가 잘먹고 잘산다는 질적인 측면은 아니라는 겁니다. 만약 ' 자유거래로 인하여 경제적 후생이 증가된다' 에서 경제적 후생이 양적인 측면이 아닌 질적인 측면이라면 자본주의가 우리 모두를 이롭게 했다라는 명제조차 앞뒤가 맞지 않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그리고 나아가면 nickyo님이 말씀하신 요점은 자유거래를 통하여 모두를 이롭게 하여 경제적 후생이 증가하였지만 지금의 자유거래는 자본주의에서 일어나는 부의 빈부격차에서 보듯 소수 만이 그 이득의 대부분을 가져가는 이 세태를 비판하시는 내용이 아닌가 합니다. legend님이나 nickyo님의 글의 서주현님이 경제적 용어에서 nickyo님과 다르게 정의해서 생긴 오해인거 같은데 저만 그렇게 생각하나요?
10/10/27 23:40
자유거래를 통해 달성한 균형이 사회 전체의 후생을 증가시키기 위해서는 세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합니다. 이 중에서 지금 토론에 유의미한것은 완전경쟁시장과 시장의 보편성이란 제약요인이 있겠네요. 먼저 완전경쟁시장은 정보의 완전성을 조건으로하고 있구요. 이 조건이 맞아떨어진다면 실수로 거래를 통해 손해를 입는 일은 없겠지요. 두번째 시장의 보편성이란 개념은 외부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조건이 함축되어있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죠. 외부성도 존재하고 정보 역시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자유거래가 사회적 후생을 증가시킨다는 명제를 옳게 만들기 위한 전제조건을 무엇으로 충족시킬 것이냐가 논의 대상이 되어야하는거지, 전제조건을 언급하지 않은 채 자유거래는 언제나 사회적 후생으르 증가시킨다는 현실의 동떨어진 이야기를 반복하거나, 경제학은 무의미하다는 논의를 반복하는 건 어떠한 생산적인 것도 만들지 못할겁니다. 복잡한 모든 제약을 계산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자유거래를 확대함으로써 생긴 효용의 증가 - 외부성을 상쇄시키기 위해서 발생하는 경제적 순손실] 을 비교하여 전자가 더 크기 때문에 fta에 찬성한다, 후자가 크기 때문에 반대한다 정도로 논의하는 것이 외부성을 전혀 이야기 하지 않고 효용의 증가만을 이야기하는 것보다 훨씬 생산적일 것 같습니다. 경제학이 신선놀음이나 하는 학문이 아닙니다. 이런 논쟁은 19세기말부터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고, 심지어 가장 최근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사람은 행동경제학자 아닙니까.
10/10/28 09:22
자유거래가 언제나 사회 전체의 후생을 늘린다고요?
뭐 너무 광범위한 의미가 들어 있어 딱 잘라 말할 순 없지만, 언제나라는 말은 상당히 위험한 발언일 것입니다. 자유거래는 말 그대로 굉장히 이상적인 발언입니다. 수 많은 변수들이 있고, 단순히 사회 전체의 후생 증가로만 판단하기는 요즘 사회에서는 씨도 안 먹히는 말이라 감히 드릴 수 있습니다. 바로 복지문제가 걸리기 때문입니다. 다시 복지문제는 재정과 맞물려있고, 재정 이야기 하면 정부개입, 그러면 결국 자유거래는 무덤 속에 계시는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주창했던 자유거래의 의미가 퇴색되는 것이죠. 이미 공급과 수요의 법칙에 의한 자유시장체제는 많은 모순이 있음이 밝혀졌습니다. 이거 하나 만으로도 지금의 주요 경제 이슈는 정부 개입의 정도와, 적절한 규제, 그리고 완화 정책을 타이밍에 맞춰 구사하는 것이 현명한 것임이 (이 시기에서 만큼은) 증명된 것입니다.
10/10/28 14:26
경제학을 경제학이 말하는 기본적인 가정 및 전제를 배제한 상태에서,
다른 학문의 시각으로 바라보면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학문이 경제학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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