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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0/04 20:20
그래서 일본 식민지시대가 참 안타까우면서도, 중국이나 러시아에 먹힌 What If 에 비하면 그나마 낫다는 소리가 종종 나오는 것이겠지요.
18/10/04 20:20
김정일이나 김정은이나 일본보다는 중국을 더 경계하는것은 맞는 것 같더군요.
역사적으로 봐도 일본보다는 중국으로 인해 겪은 괴로움이 더 크긴 했던 것 같고요
18/10/04 20:39
괴작이긴 하지만 드라마 명성황후에서 저떄 모습을 재연을 잘했죠
어릴때 그거보면서 열받았는데 더 놀라운건 그 모습이 실제보다 더 축소해서 보여준..(..)
18/10/04 20:43
이건 민자영을 까야죠 진압 할 군대가 없으니까 청나라 군대 불러와놓구 저런 행동까지 당한 민자영을 100000000배 까야 합니다 아직도 민자영을 옹호하는 세력이 있습니까????? 저런 짓을 당한 이유도 다 민자영 때문인데
18/10/04 20:58
결국 일제시대는 구한말로부터, 구한말은 세도정치부터 비롯된 것으로 봐야겠죠.
임란과 호란으로 시작된 힘든 17세기가 지나고 18세기는 숙종-영조-정조 등이 그래도 무엇이라도 해보려고 몸부림치는 시기라는 것 까지는 알겠습니다. 그런데 세도정치로 점철된 19세기 초중반은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요? 세도정치 하던 사람들이 그 전세대 사람들과 완전히 다른 사람인 것도 아니고, 서구야 역동의 시기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직 제국주의의 물결이 동아시아에까지 온 때도 아닌데요.
18/10/04 21:04
굳이 또 거슬러 올라가자면 정조가 구축한 정치체제 자체가 정조 본인이니깐 가능했던거라고 하죠..(..) 저도 자세한건 모르니깐 그냥 그런 말이 있더라 정도 외엔 할 말이 없긴 한데
여튼 그렇다하더라고요 그리고 순조가 당시 기준으론 정통성 꿀릴 거 없었고 (애초에 이때는 적장자고 나발이고 적자 자체가 없던 시기라) 본인이 의욕만 있으면 다 쳐내고 할 수 있는데 의욕이 없는...
18/10/04 21:14
인조반정으로 인해 서인이 이미 득세해 버린 상황에서 숙종이 환국을 통해 정국 주도권을 쥐려고 했다는 것이 정설이잖아요.
영조와 정조는 거기에 더해서 서인, 더 나아가 노론 시파까지 가는 일당 독재(?)를 막기 위해 탕평을 해 보거나, 시파에 대항할 수 있는 척신을 중히 썼다는 것 까지는 이해가 갑니다. 그러다가 정조가 죽고나서 더 이상 시파를 견제할 세력이 없다 보니까 와장창~ 이라는 건데... 아무리 그래도 거의 50년을 그렇게 그대로 멍하니 있었다는게 참 이해가 안되요. 물론 그 안에서는 이런저런 대책을 세웠겠지만요. 진짜 왜란/호란 이후 나라가 망하고 새 나라가 세워졌어야 했어요.
18/10/04 21:21
음 추정을 하자면
일단 전제왕조를 기본으로 하는 국가에서 왕인 순조 본인부터가 의욕이 없었던 게 치명적이었고 삼정의 문란과 함께 국가재정이 파탄나고 이후 개혁에 필요한 돈이 없고 이런 악순환이 연달아 일어난게 아닐까 싶습니다. 중간에 왜 아무것도 안했냐면 당시 집권세력들부터가 자기들 가문의 안위만 생각했지 나라를 생각한 건 아니었을 테고 (원래 나라 망조 들떄 다 이러니깐요) 그 와중에 왕은 의욕이 없거나 능력있는 세자가 일찍 요절하거나 너무 어리거나 농사만 짓고 정치적 배경도 능력도 없는 왕이 되는 악순환이 거듭되었고 이게 악성종양처럼 온나라를 병들게 했고 뒤늦게 뭘 해보려고 해도 돈도 없고 악성종양은 그대로인 상황까지 간게 아닐까 싶네요
18/10/04 21:16
조선 후기 이르러서 세금이 제대로 안걷히기 시작하면서 국가재정이 바닥나던 것이 구한말 즈음에 터진거라는 얘기가 있더군요. 뭘하려고 해도 나라에 아예 힘이 없었다는.. 이거 메꾸려고 하다가 각종 민란이 일어난 것도 이 즈음이고..
18/10/04 21:23
그래서 인조 때는 대동제도 해보고, 영조 때는 균역법도 해보고, 정조 때는 신해통공도 해보고 이것저것 해보려고 했는데, 세도정치 때는 뭘했는지를 모르겠어서요.
교과서에도 그냥 두리뭉실하게 넘어가고 진짜 한 50년의 시대가 붕 떠버린거 같아요.
18/10/04 21:05
이걸 보면 재밌는 게 동북아 3국이 모두 열강의 교훈을 받아들이고 써먹으려고 했던 흔적이 보이는 것 같아요. 조선의 경우에는 오히려 철저하게 방어만 하다가 끝난 느낌이긴 하지만..
18/10/04 21:15
일본에 먹힌게 좋다는 소리는 안하는게 좋지만
청에 먹혔으면 1912년 이후 장쭤린(장작림)같은 군벌에게 통치당하다 1930년대 초에 일본에 먹히고 이후엔 만주국과 비슷하게 되었을 것이고(물론 그때까지 근대화는 안됨) 러시아에 먹혔으면 1900년대에 러일전쟁이 총력전으로 펼쳐졌을 것이고 혁명과 적백내전을 겪으며 혼란스럽다가 일본의 팽창을 견제한다고 다시 전쟁이 나거나 스탈린에 의해 수천만명이 중앙 아시아로 다 끌려가고 백인들의 땅이 되었겠죠. 그나마 일본이 미리 먹어놔서 중일전쟁 시기의 피비린내나는 전쟁을 안겪었던게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한국인을 끝까지 못믿어서 강제 징병한 것도 1944년으로 전쟁이 거의 끝나갈때 실시되었구요. 아무튼 조선이 안망하고 그대로 유지되는 것보단 일본에 먹혔던게 나았다고 봅니다. 조선은 무능 그 자체라 답이 없었어요.
18/10/04 21:22
요즘 그냥 일반인 교양 수준에서 중국역사를 조금씩 보고 있는데
사실 국사, 세계사, 근현대사, 그리고 기타 쉽게 설명한 역사책 같은거만 읽어본 입장에서는 주나라의 봉건제도 이후 한나라부터는 중앙집권체제가 확실한 줄 알았는데(군현제니 뭐 이런거 말이죠) 살짝 자세히 보니 OO왕 이라는게 엄청 많더라구요. 물론 중앙에서 지방관(?)같은걸 파견하긴 하지만 OO지역에 OO왕으로 삼아서 그 지방을 통치(?)하게 하는?? 그래서 OO왕들이 만약 핏줄 정통성 명분 있으면 반란 일으키기도 하고 그러더라구요 왠지 중국에서 조선이나 고려의 왕들을 그런 OO왕 처럼 생각하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18/10/04 21:25
왕들에게 여러 분류가 있는 거죠. 다 같은 왕은 아니고. 황제의 친족들도 왕이라 불렸으니까요.
예를들면 판타지 소설에서의 공작과 공왕의 차이라 할 수 있겠죠.
18/10/04 21:34
왕권이 강하냐 안강하냐에 따라서
동생아 널 파촉지역 OO왕으로 임명할께 잘가~ 했을때 그게 진짜 거길 다스리는 왕이 아니라 명분만 왕이고 사실상 귀향살이+통치는 그냥 지방관이 다함 이런 경우도 있는데 이 지역 좋은말로 할때 내놓으면 얌전히 있을께 해서 지방관 씹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경우도 있고 그러다가 신하들이 황제폐하 OO왕 그냥 두면 반란 일으킵니다. 뺏던가 뭐 해야함 이래서 박탈당하기도 하고 힘이 쎄면 아 못해 함 뜰래? 하면서 반란 일으키기도 하고 그러더라구요.... 제 뇌피셜로는 한반도 쪽은 멀기도 하고 별거 없는 땅이고 문화도 많이 다르니 약간 특이하게 자율로 맡겨놓고 공물만 받는....무슨무슨 왕이랑은 비슷한 지위 정도로 생각한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자치구 같은 느낌처럼요...아 물론 중국 입장에서요
18/10/04 22:07
정확하게 말하면, 먹을만하면 먹었을 겁니다. 실제로 먹은 역사도 종종 있었고요.
라라랜드님의 표현을 빌리자면요. 중국내의 왕들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경우도 있고 반란을 일으키기도 하는데요. 고려와 조선의 왕은 황제의 권력이 강하든 아니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반란은 성공한 상태나 마찬가지였던 거죠. 말하자면 '무슨무슨왕'하고 비슷한데 좀 쎈 애들이란 접근보다, 실질적으로 건드리기 어려운 다른 나라를 '형식적으로 우리나라의 무슨무슨왕과 같은 지위'로 하는 걸로 서로 퉁쳤다고 보는게 맞겠죠. '같은 급인데 좀 더 쎈거 아냐?'가 아니라, 다른 급인데 억지로 같은 급으로 만들었다가 맞다고 봅니다.
18/10/04 21:32
왕이면 그냥 황제의 지방 정권이라는 인식이 강합니다.
그래서 한국 사극들이 중국에서 방영되면 조선의 왕을 황제로 번역한다고 하네요.
18/10/04 21:35
오 그렇군요. 그렇다면 위에 열심히 적은 제 댓글은 뻘댓글이군요
형님의 나라, 동생의 나라, 황제의 나라, 신하의 나라라고 생각은 했지만(힘의 크기상) 독립국으로 인정은 했다는 말이니까......
18/10/04 21:37
아 그리고 왕도 왕 나름입니다.
1글자 왕(O왕)이 힘이 센 국가의 왕이고 2글자 왕은 걍 지방 정권의 왕이죠. 그래서 삼국지의 위왕 조조와 한중왕 유비는 칭호의 격이 다릅니다.
18/10/04 21:34
청나라만 아니라 거의 모든 열강들이 속국이나 식민지를 다룰때보면 뻔뻔하고 잔인하게 처리하죠.
청나라도 영국한테 진짜 잔인하게 뜯기면서 배우고, 일본은 겁이 많았는지 대포한방에 문을 열었지만 나쁜 것이라곤 다 배워서 조선한데 써먹으니깐요. 선교사들 죽었다고 선전포고 박고 쳐들어온 프랑스나,왕의 할아버지 묘를 털어간 독일애들이나 열강들 하는 짓은 다 비슷비슷했습니다. 그래서 늘 생각하는게 조선은 병자년에 망했어야 했어요. 새 나라가 나와 세제개편, 상업,광업진흥했으면 호옥시나 몰랐는데 역으로 성리학의 교조화가 나타나서 퇴보되어버렸으니..
18/10/04 21:53
그놈의 성리학의 교조화.. 정작 조선에서 조선 초기 제외 시스템적 개혁이 가장 많이 이루어진 시기는 병자호란 직후부터입니다. 기반이야 선조대 다져졌지만 임란 때문에 미뤄지다 인조대 들어서서 점차 시행되죠. 또 조선사 유례없는 경제적 호황기가 숙종 때인 건 잘 모르더군요. 괜히 태종 세종이 그렇게 유통하려 했는데 실패했던 화폐가 아무 이유없이 숙종 때 통용된 게 아닙니다.
애당초 병자년에 망하고 새나라가 나왔어도 님이 생각하는 그런 나라는 안 나왔어요. 나라가 망하고 새나라만 들어선다고 모든 게 다 해결될 거였음 청나라는 그런식으로 안 망했겠죠. 현실은 조선보다도 더 비참하게 멸망한 게 병자년 이후 중원을 차지해 나라를 만든 청의 현실이었습니다.
18/10/04 22:32
네 숙종 때 인삼무역 등으로 은 많이 벌어들인거 알고 있습니다.
두번 완전 망할뻔해서 대동법 등 시스템적으로 큰 변화가 일어난 것도 잘 압니다. 반면 향토서원의 세력과 영향력이 더더욱 비대해지고 상위계층에서 풍습적으로 주지할만한 큰 변화의 바람이 없었다고도 저는 생각하구요. 만약 숙종 이후 권력에서 퇴출된 남인들이 실사학적 마인드를 챙기고 후에 입궐됬다면 모르지만 그러지 못했기에 더더욱 변화가 힘들었다고도 느낍니다. 제가 무슨 대체역사빠도 아니고 새 나라가 들어선다고 치트키처럼 달라질 확률 적다는 걸 알지만, 17세기 동아시아 권력교체기에 사회적으로 정말로 큰 변화가 있었으면 어땠을까하는 상상에서 말해봤습니다.
18/10/04 23:16
상공업에 대해 친화적이고 대외교역에 적극적인 이들이 권력을 잡고 교역을 해나가면서 유럽쪽의 변화에 기민하게 대처하는 이들이 권력을 잡으면야 모르겠는데 병자년에 망했다고 그럴 수 있었을꺼 같지가 않네요. 조선이 친상업적인 식자층은 아예 없어서...
18/10/05 09:17
임진왜란때 명나라가 조선에 와서 은으로 살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다니! 하고 놀랐었는데
흥선대원군 시절에 조차도 경제인식이 너무 후져서 당백전을 발행해서 나라를 망치고 결국 청나라돈을 가져다 썼죠. 달러나 비트코인쓰는 잠바브웨마냥...
18/10/05 13:43
근래 와서 주육(酒肉)·두포(豆泡)·염장(鹽醬)·시초(柴草) 등의 소소한 값들은 모두 은자(銀子)를 사용하고 있는데, 중외의 백성들이 오히려 그 덕으로 생계를 꾸려 간다고 합니다. 그것을 처음에는 중국군을 상대로 매매할 때 시도해 보았는데, 오래 시행하고 나자 이미 습속(習俗)이 되어 술 팔고 땔감 파는 사람들이 살 사람을 만나면 반드시 먼저 은자가 있는 지 물어본다고 합니다. (선조 31년 기사)
흔히 알려진 것과는 사실이 다르고요. 은으로 물건을 사는 게 익숙해지자 임진왜란 기간 동안은 잘 유통 되었습니다. 그리고 조정이 멍청해서 화폐를 발행 안 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고려시대 하도 악화가 많아 백성들이 화폐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그로인해 조정이 화폐를 유통하려 해도 백성들이 안 받아들인 것에 가깝죠. 악화로 인해 화폐에 대한 불신 문제는 비단 고려와 조선뿐 아니라 모든 나라의 골치거리였고요. 그리고 현대 이전에 화폐에 대한 인식은 모든 나라가 비슷했습니다. 그 선진국이었던 독일조차 무려 20세기에 하이퍼 인플레에 고생했었죠. 오히려 조선의 경우 숙종이후 화폐가 시중에 유통되자 당오나 당십같은 화폐를 발행해 국가에서 이득을 취하자는 의견이 꾸준히 나왔음에도 오랜기간 그 유혹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실제 이런 당오 당십등은 명나라등 중국에서도 조정의 재정 축적을 위해 오랜기간 유통됐던 돈이었고요. 당백을 발행하면 시장이 박살난다는 정도의 경제 지식은 조선에도 있었어요. 흥선군이 경복궁 중건이후 화재로 날라가자 그냥 이 유혹을 못 이겨냈다고 생각하는 게 맞습니다.
18/10/05 11:42
당대 지배층들은 큰 사회개혁으로 부담질 필요 없이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생각한 모양이지요.
오늘날의 우리도 따지고 보면 마찬가지거든요.
18/10/05 13:39
남에 나라도 망하는데 일조 하는 것이 내 조국에 도움되고 또 내가 빼앗은 남에 나라 재물로 조국에서 돈 좀 쓴다면 낙수효과가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18/10/05 14:05
뭐 일부러 이러시는거야 알겠는데
위안스카이는 청황조를 배신해서 황제를 하야시키고 중화민국을 배신해서 스스로 황제자리에 오른 인물입니다 충신과 정반대편에 있는 사람이예요
18/10/23 11:58
이거 찾아보니까 임오군란 때 구식 군대 봉급을 일년한달치를 안줬다는 소리가 있더군요. 월급준다고 부르더니 한달치 지급 그것도 민씨 세도가가 횡령 겨와 모래를 섞어주고…. 왕에게 보고했는데 와 엄청 심하네 그래도 반란안일으켜서 다행 이러고 있고. 이거보니 군대도 유지 못하는 나라가 나라인가 싶으면서 이후 벌어진 일들이 이미 망한 나라 누가 언제 먹을것인가 확인하는 일이었다고 느꼈습니다. 고등학생때 충격먹고 근대사 일부러 안보는데 왜 인지 오늘 다시 되새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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