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봄, 바를 열었다. 여러 이유가 있었고 별다른 생각은 없었다. 미용실을 거쳐 소줏집으로 운영되던 작은 상가를 임대하여 공사를 시작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돈이 별로 없었기에, 최소한의 돈으로 어떻게 잘 꾸며 볼 수 없을까 고민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언제나 그렇듯 잘못된 생각이다. 미용실을 인수받아 소줏집을 운영하던 아주머니는 미용실 인테리어를 거의 그대로 사용해서 장사를 했고, 그렇게 다섯 달 만에 망했다. 나는 그 자리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매끈하게 빛나는 빨간 벽면에 미용실 거울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소줏집에서 야채전을 먹는 걸 즐기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가게의 이름도 제법 별로였는데, 지금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정말 꽤나 별로인 이름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틸트’라는 이름도 그렇게 좋은 이름은 아니겠지만.
차라리 미용실의 인테리어에 아예 전혀 손을 대지 않은 상황이라면 좀 더 나았을 텐데. 쓸데없는 것들을 쓸데없는 곳에 붙여둔 건 뭐랄까 화룡점정이었다. 이를테면 시장에서 파는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 세트에 들어 있는 스티커나 조명 같은 걸 여기저기 붙여두었다거나. 그것들을 떼어내느라 손톱이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빨갛게 빛나는 매끈한 벽면마다 붙어 있는 미용실용 커다란 전신거울을 어떻게 하지. 떼어나고 싶었으나 돈이 없었다. 그렇다고 손톱으로 떼어낼 수도 없다.
역시 어떻게든 없애버리는 게 좋을 것이다. 바 테이블에 앉아 거울에 비치는 자신을 보며 한 잔의 술을 마신다는 건 드라마 속에서야 낭만적인 일일 테지만 직접 하기엔 그다지 유쾌한 일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냥 커튼으로 가려버릴까 싶었지만, 그때만 해도 술집에서 담배를 피울 수 있던 시절이었다. 담배 냄새가 밴 커튼이 있는 가게에서 위스키나 칵테일을 마시는 걸 즐기는 사람은 미용실 거울이 붙어 있는 가게에서 야채전을 먹는 걸 즐기는 사람만큼이나 별로 없을 것이다. 어쩌지.
그런데 또 그냥 가리자니 아깝고 놔두자니 우습고. 하여 나는 새까만 전공 테이프를 여기저기 덧대 거울을 반쯤 가려버렸다. 그러고 나니 왠지 어딘가 좀 약간 제법 괜찮아 보인다는 자기최면에 이를 수 있었다. 그래, 이 정도면 나쁘지 않군. 어차피 벽면에는 백바를 달 거니까, 백바 사이사이에 검은 장식이 여기저기가 붙은 거울이 있는 건 그런대로 OK. 흑색과 적색. 촌스러운 애들이 덜 촌스러운 티를 내고 싶을 때 선호하는 전형적인 촌스러운 조합이지만 그것도 그럭저럭 오케이.
그렇게 나는 거울과 거울 사이에 장을 짜고 그 앞에 바 테이블을 짜고 영업을 시작했다. 그렇게 많은 일들이 시작되었다. 몇 년 동안 나는 이편에 서서 거울을 등지고 술을 내고, 손님들은 저편에 앉아 반쯤 가려진 거울을 바라보며 술을 마셨다. 좋은 일도 있었고 나쁜 일도 많았고 그렇게 시간은 잘도 흘러갔다. 몇 년이 지나자 늘어난 술을 보관할 자리가 없어서 결국 거울 앞에도 장을 짜게 되었고, 몇 년이 또 지나자 그마저도 모자란 상황이 되었다. 제빙기 한 대 냉장고 한 대로 시작한 가전 설비는 무슨 IS마냥 확장 전쟁을 시작해 가게 여기저기서 자기의 영토를 마음껏 주장하고 있었다. 한계다. 언젠가 한번 다 부수고 새로 장을 짜야 할 것 같은데. 동선은 점점 꼬이고 일은 점점 지쳐가고. 이래서는 안 돼. 뭐라도 해야 되는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어느 날 그가 왔다, 또. 하긴, 그는 이곳의 태초부터 언제나 여기에 왔고, 나는 태초부터 자주 가게를 한번 뒤집어엎어야 할 텐데 하고 생각했으니.
가게에 들어오면 일단은 좋은 손님이고 마음에서 나가면 더 이상 그는 내 손님이 아니다. 그리고 가게의 문턱과 마음의 경계에 걸쳐진 사람이 몇 있었다. 그는 그런 손님이었다. 그는 시끄럽고 조잡한 대학가의 싸구려 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형으로 분류 가능한 손님이었다. 가장 싼 술로 시작하여 결국 여러 잔을 마시고, 쉴 새 없이 근무자와 옆 사람에게 말을 건다. 별로 자랑할 만하지 않기에 이런 곳에서 자랑스레 떠들만한 가정사와 연애사가 그의 주된 대화 소재다. 마음에 드는 상대를 만나면 상대를 놔주지 않고, 불쾌한 상대를 만나면 면전에서 어깃장을 놓기 시작한다. 그러다 결국 근무자의 제지를 받고 쫓겨난다. 손님, 많이 취하셨네요.
이런 사람들 중 어떤 사람들은 의외로 괜찮은 사람인데, 다만 그저 지금 당장 조금 아픈 시절과 시련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 중 어떤 사람들은 정말로 도저히 참아줄 수 없는 인간들이다. 그 친구는 어느 쪽이었을까. 지금 다시 생각해보려 하니 뒷골이 시큰해지고 분노가 치밀어 오를 것 같으니 구체적으로 기억하지는 않기로 하자.
내 가게를 열기 전에 다른 술집들에서 일을 하며, 그리고 다른 술집들에서 손님으로 즐기며, 나는 그런 종류의 사람을 수도 없이 마주쳤다. 그리고 어린 시절의 거울 속에서도 수도 없이 마주쳤다. 그가 보통의 머저리들과 비슷한 꼬라지였더라면 나는 그에게 그렇게까지 이상한 짜증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그에게 굉장한 짜증을 느낀 핵심적인 이유는, 그가 보여준 꼬라지들 하나하나가 내 옛 시절을 생각나게 했기 때문이다. 없는 돈 쪼개 술 마시고 며칠 굶고. 지독하게 담배를 피우고. 무례함을 솔직함이라 여기는 경지를 넘어 무례함이야말로 궁극의 예의라 생각하는 듯 하고. 목 늘어난 티셔츠에 헤진 츄리닝에. 총체적으로 인간이 아닌 존재였다. 그나마 그가 가진 유일한 인간 수준의 기능이 작문 기능 정도였다는 사실과, 그의 친구들이 그를 상당히 아낀다는 사실과, 전체적으로 유치하고 엉망진창인 취향을 가졌지만 적어도 술에 있어서는 나쁘지 않은 취향을 가졌다는 나름 긍정적인 요소들도 나를 화나게 만들었다. 내 눈에 그는, 누군가가 내 어린 시절을 놀리려고 어린 시절의 나를 바탕으로 여기저기를 상당히 나쁜 방식으로 왜곡해서 만들어낸 풍자적인, 거울상적인 인물 같았다. 아, 물론 이는 모두 내 눈에 비친 이야기일 뿐이다. 누군가의 눈에는 그야말로 지상 최고의 사람이며 나는 최악의 놈새끼일 것이다.
그가 학생이던 시절 대략 스무 번 정도 그를 가게에서 쫓아냈고 두어 번 정도 ‘다시는 여기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때마다 그는 깊고 공손하게 사과하고 한 보름 정도가 지나면 보름하고 며칠 전의 그로 돌아갔다. 와 나 씨 진짜 어떻게 이거까지 나랑 이렇게 똑같을 수가 있냐. 어이없는 웃음이 화를 눌렀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현재일 것이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 '글을 다루는 유사 전문직(이것은 그의 표현이다)'이 된 그는 이제 꽤 좋은 손님이 되었다. 옛 시절 무례를 저지른 옆자리 다른 손님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하고, 그 손님이 사과를 받아 주었으니. 그리고 그는 적어도 가게에서는 더 이상 사과한 일들을 반복적으로 잘못하지 않으니(아쉽게도 나는 아직도 같은 잘못을 잘 저지른다. 멍청하고 한심하게도). 그는 더 이상 재미없는, 그리고 오십 번 정도는 들은 기억이 있는 그의 옛 이야기를 하지도 않는다. 이제 그는 자기 현장의 새로운 이야기를 건전한 성인 직장인처럼 늘어놓는다. 물론 여전히 꽤 재미없는 이야기들이고, 여전히 술을 마시면 헛소리를 한다는 문제가 있으나 그건 그의 잘못이 아니다. 대부분의 인간은 꽤 재미없고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인간은 술을 마시면 헛짓을 하니까.
깔끔한 드레스 셔츠에 타이를 차고 앉아 더 이상 제일 싼 술을 만취할 때 까지 주문하지도 않고 더 이상 헛소리를 하지 않는 그를 바라보며 정말로 시간이 많이 흘렀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내가 삶에 눌려 으깨지고 가게가 추가된 물건들의 하중에 눌려 무너지는 그 오랜 시간동안 저 금수만도 못한 새끼가 사람이 되었구나. 나는 그의 얼굴을 거울삼아 시간이 쌓아내린 절망을 보는데 그는 내 얼굴에서 내 뒤의 거울에서 무엇을 보고 있을까. 우울하군. 대학가에서 바를 하다보면, 그런 우울을 자주 느낀다. 대학생 손님들은 보통 대학생보다 좋은 사람이 되고, 나는 그 시간만큼 늙어가고. 그런 우울한 느낌은 그들이 내고 가는 돈으로 치료되고는 한다. 자식, 돈 많이 버네. 성공했네.
아. 정말로 시간이 많이 흘러버렸어. 한심하군. 나는 좀 더 한심한 늙은이가 되었고, 충분히 나쁘고 너저분하게 시작한 가게는 더 나쁘고 너저분한데다 불편했다. 이렇게는 안 되겠어. 손을 봐야지. 그렇게 가게의 리모델링을 결심했다. 전적으로 그 손님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그의 존재가 꽤 큰 역할을 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게 이런저런 계획을 세웠다. 저 거울도 이제는 안녕이다. 그나저나 거울이 붙어 있는 벽 뒤에는 뭐가 있을까. 말라붙은 쥐의 시체라거나, 이상한 가벽 같은 게 없었으면 좋겠는데.
그러니 이제 다 부숴버리고, 바와 백바만 간결하게 새로 짜는 짧은 공사를 시작하자. 이삼일 내로 완수할 수 있도록. 두어 번의 바 공사 경험이 있는 나다. 나는 작업자를 물색하고, 타임라인을 짰다. 일요일 영업일을 마지막으로 밤새 짐을 모두 빼내고,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작업한다. 철거를 하루에 끝내고, 이틀간 새 기물을 배치하자. 충분히 가능하다. 해 봤다고. 그걸 위해 미리 자재와 도면까지 다 물색해뒀으니. 작업자도 구했다. 원래 알고 지내던 업자에게 의뢰하려 했으나, 건너건너 소개받은 사람이 거의 반값을 불렀다. 조금 수상했으나, 평생 이쪽 일을 한 노련한 사람이었다는 이야기에 나는 그만 혹해버렸다. 그리고 리모델링을 준비하는 마지막 영업일에도 그가 왔다.
형, 내일부터 리모델링 한다면서? 해야지. 좀 제대로 된 바 처럼 만들고 싶다. 그래. 그래야 내가 여기서 데이트도 하고 친구도 데려오고 그러지. 어이구. 친구가 있기는 하냐?
우리는 가게 앞에서 담배를 피우며 이런 시시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어 달 전, 리모델링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우던 시기에도 비슷한 대화를 나눈 기억이 있다. 그리고 이런 무의미한 대화는 내게 꽤 의미 있는 목표를 제시하게 되었다. 그래, 내 눈 앞의 그가 편하게 친구를 데려올 만한 장소를 만들어보도록 하자. 하지만 어딘가 좀 불공평한 느낌이군. 이 녀석이 바보짓을 하던 시절, 여기는 바보짓을 하기 적절한 펍이었는데, 이 녀석이 멀쩡한 사회인이 되니, 이 곳이 멀쩡한 바가 된다니. 그는 돈을 내고 나는 술을 주니, 그럭저럭 공평한 거래가 되려나.
그렇게 일요일 영업을 끝내고 짐들을 빼냈다. 일은 아침이 되어서야 끝났고 술병들에 가려져 있던 거울은 오랜만에 영롱한, 그리고 꼬질꼬질한 맨살을 드러냈다. 나는 탈진한 채로 바 테이블에 쓰러져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바 테이블에 키스했다. 싸구려 합판으로 만들어진 바 테이블의 여기저기에는 6년간 흘러 떨어진 수많은 유체들이 남긴 얼룩이 피고 진 자국이 남아있었다.
그동안 수고가 많았어. 바 테이블의 이쪽 편에서 흘린 눈물과 웃음과 술이 많을까, 저쪽 편에서 흘린 눈물과 웃음과 술이 많을까. 어쨌거나, 오랫동안 수고했어. 이제 안녕. 곧 작업자가 왔고, 나는 바를 철거하는 모습을 구경하고 싶었으나 그럴 상황이 되지 않았다.
작업자는 정말로 일처리를 못했다. 그는 연장도 자재도 제대로 챙겨오지 않았고, 공사를 감독하고 관리해야 할 내게 자꾸 이게 없고 저게 없으니 사오라고 시켰으며, 내가 나가 이거저거를 구해오고 나면 공사는 엉망진창이 되어있었다. 이내 나는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가 붕괴한 이유 알게 되었다. 저런 사람이 평생 건설 현장에서 책임자로 일을 해왔다는 건가. 첫 이틀 정도는 웃으며 인사하고 함께 작업했지만, 삼일 되는 날부터 고성이 오갔고 일정은 늘어났고 목요일이 조금 더 더웠다면 나나 그 사람 둘 중 하나의 몸에 톱날이나 못이나 아무튼 사람 몸에 쑤셔 넣을 수 있는 물건이 깊게 박히게 되었을 것이다.
안 좋은 일들은 계속 일어났다. 인테리어 리모델링 중에 건물주를 만나는 건 자영업자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경우 중 하나다. 보통의 상황에서 합리적인 건물주에게는 두 개의 옵션이 있을 것이다. ‘이 친구, 장사 좀 잘 되나보네?’혹은 ‘이제 매몰비용 묻었으니 못 나가겠네?’ 그리고 보통 두 옵션은 하나의 길로 수렴한다. 그리고 더 안 좋은 경우도 물론 존재한다. 이를테면 제정신이 아닌 세입자가 여러 사정으로 건물주에게 대드는 상황 말이다. 그날 나는 또 작업자가 망쳐둔 작업 몇 가지를 지적했고, 작업자는 몇 가지 물건들을 패대기치며 왜 이리 깐깐하게 작업을 하냐고 상당히 무례한 태도로 불만을 토로했고, 나는 ‘아니 그래 알겠으니까 이 따위로 계속 일할 거면 돈 토해내고 당장 꺼져’라고-물론 대부분의 음절 사이에 부적절한 비속어가 끼어 있었다-무례를 무례로 받아친 한 상태였다. 하필 그 때 건물주가 무슨 일인지 건물에 왔고, 나는 그와 기분 좋게 인사했으나 곧 기분 나쁜 말이 오가게 되고 나는 건물주에게 무의미하고 맥락 없는 무례를 저질렀다.
그날을 그날의 분노로 보내고 다음 날이 되자 정말 끝장이지 싶었다. 생각 없는 새끼야. 대체 어제 무슨 짓을 한 거냐. 우울의 나락에 잠시 몸을 맡기고 일을 수습하고 싶었지만 그럴 여유가 없었다. 작업자가 쉴 새 없이 꼼꼼하게 또 일을 망쳐놨기 때문이다. 주말이 되어서야 공사를 겨우 정리하고 정신줄을 붙잡고 건물주에게 사과하고, 또 사과하고, 또 사과했다. 그리고 사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별로 마음이 편하지 않다. 훈련소 시절이 떠오른다. 첫 반공교육 시간에 나는 졸고 있었다. 교관은 ‘힘든 훈련 중에 이런 좀 편한 시간도 필요하니, 졸아도 봐 준다’라고 말하는 착한 사람이었다. 그는 ‘사실 주한미군이 한 나쁜 짓은 없다. 전부 선동이다. 몇 년 전의 장갑차 사건은 잘 일어나지 않는, 정말 우연한 사고일 뿐이다. 혹시 주한미군의 범죄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고 있는 훈련병 있어? 없지?’라고 말했고, 꿈과 생의 경계에서 나는 손을 들고 ‘92년 윤금이씨 사건부터 해서 당장 장갑차 사건이 났던 해에도 미군기지 작업자 감전 사건이 있었고 많은데요’라고 쏘아붙였다. 쏘아붙이고 나서야 여기가 꿈속이 아니라 현실이구나, 여기는 훈련소고 나는 훈련병이고 하는 많은 정보량이 쇄도했다. 분위기가 싸해졌고 나는 일주일 정도 악몽에 시달렸다. 다행히 실제로 별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이번에도 부디 별 일이 일어나질 않기를. 하지만 돈과 기분은 국가안보와 정신무장 따위보다 훨씬 중요하고 실체적인 물건이고, 왠지 반드시 중요하고 실체적인 나쁜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 재계약까지 몇 달 동안 나는 계속 악몽에 시달릴 것이다. 하지만 악몽은 사실 별 문제가 아닐 것이다. 훈련병이나 자영업자나, 별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해도 낮에는 악몽을 거닐며 밤에는 악몽을 꾸는 직업이니까.
그렇게 어찌저찌 공사가 끝났다. 나는 공사를 사실상 두 번 한 상황이 되었다. 비용의 측면에서도 시간의 측면에서도. 그러고도 모자라서 내가 직접 근처의 목공소에서 목재를 켜 망치와 톱을 들고 여기저기를 덧댔다. 그렇게, 어떻게든, 아무튼, 결국은, 공사는 끝났다. 이제 더 이상 거울은 없다. 이제 더 이상 싸구려 합판도 없다. 더 이상 빛을 반사하며 번쩍이는 벽면도 없다. 아. 나는 철거를 하면서야 빨갛게 번쩍이던 내벽의 정체가 아크릴이나 플라스틱이 아니라, 사실 유리였다는 사실을 알았다. 6년 동안 꿈에도 몰랐네. 유리란 생각보다 대단하군. 내 체중과 소주집의 하중과 미용실의 역사를 대체 몇 년 동안 버틴 걸까 저 유리벽은.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은 러시아 혁명을 완수하고, ‘제법 건강한 아이가 태어났다’는 말을 남겼다.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혁명은 항구적이고 연쇄적이여야 하며, 한 국가 안에서의 사회주의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한 레닌은 땅덩이만 큰, 유럽 주류와 자본주의에서 꽤 멀리 있던 추운 농업 국가에서 일국의 혁명을 완수하고 저렇게 말했다. 어쨌거나 제법 건강한 아이가 태어났고, 이제부터 시작이다. 글을 쓰는 중에 리퍼런스를 다시 찾아보려고 했으나, 찾지 못했다. 기억에 의존한 리퍼런스는 대체로 부정확하다. 이를테면 친구 중 하나는 항상 아리스토텔레스를 인용하며 '취향은 논쟁의 영역이 아니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는데, 아리스토텔레스가 취향과 덕과 정치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기는 했지만 정확하게 저 문장을 내뱉은 사람은 경제학자 게리 베커다.
공사도 업무도 인생도 이를테면 인용과 반사 같은 것이다. 보통은 항상 이상하게 엇나가고 왜곡된다. 과정도 결과도 썩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일이 끝나고 나니 레닌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럭저럭 건강한 아기가 태어났다. 출산의 과정은 전혀 행복한 것이 아니었으며 우량아가 태어난 것도 아니지만, 새로운 탄생은 새로운 시작일 뿐이고 더 가야지. 소련은 생각보다 그럭저럭 오래 갔으니 나도 꽤 오래 갈 것이고 그렇게 만들 것이다. 거울과 함께 오랜 시간을 보냈고, 이제 더 이상 거울은 없다. 나는 내 바는 더 이상 무엇도 비추지 않을 것이며, 이제 맨살을 드러낸 돌벽처럼 단단하게 그저 여기서 삶을 버틸 것이다. 오래.
공사가 끝나고 잠시 휴가를 내고 오랜 팬이었던 아티스트의 공연에 다녀왔다. 투어 마지막 라이브의 마지막 앵콜곡으로 그녀는 <거울>이라는 노래를 불렀다. ‘너를 이 눈에 새겨둘 거야. 그래, 너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어. 오늘은 어쩔 수 없잖아. 네가 나를 떠나는 날이니. 너를 사랑하는데. 너는 내 거울인데...’ 거울. 거울이라. 막 거울을 벗어나고서 또 거울이라. ‘허세를 부려 산 굉장히 비싼 라이더 자켓, 기침이 멈추지 않는 밤에도 필사적으로 일했지’라는 가사를 들으며 내 상황에서 허세를 부려 굉장히 비싸게 구한 휴가와, 작업자가 엉망진창으로 칠한 락카를 나 홀로 밤새 신나로 벗겨내고 덧칠하다가 호흡곤란으로 콜록거렸던 며칠 전의 일이 떠오르고 그랬다. 인간이란 참, 어디서나 의미를 찾고 결국 자기 스스로를 바라보는구나. 거울 같은 거 없어도 여기서 또 많은 사람들은 자기 삶을 바라보겠지. 아마 나도 그럴 것이고. 그렇게 앞으로도 많은 우연과 일들이 일어나겠지.
아, 중요한 이야기를 빼먹었다. 나는 간단하고 짧은 글의 소재로 당신을 다뤄도 되겠냐고 이 글에 등장하는 <그>에게 물었고, 그는 쾌히 승락하며 본인 신체의 특정 부분에 대한 멋진 묘사를 넣어달라고 했으나 나는 상큼하게 무시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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