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간략히 중부내륙순환열차와 백두대간협곡열차를 소개하고픈 마음에 글을 썼는데 생각치도 못하게 반응이 좋아서 매우 기분이 좋습니다. 두번째 글을 올리고 바로 여행을 정리해서 세번째 글을 올려야지 하고 있었는데, 개학 후 바쁜 생활에 미처 세번째 글은 올리지 못했네요. 역시 세번은 힘든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중부내륙순환열차와 백두대간협곡열차를 이용해서 제가 어떻게 여행을 했는지를 본격적인 여행기를 통해서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개인적인 여행기이지만 항상 어디든지 떠나고 싶어하는 PGR21 회원분들에게 최대한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글을 쓰려고 노력하겠습니다. 부족하지만 많은 성원주셔서 감사합니다.
3. 분천역에서 내려서 걷다
사진은 분천역입니다. 복잡한 일상, 지루한 일상을 벗어나 어디든지 떠나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조금씩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뻔하게 반복되는 걸 알면서도 여름 휴가를 기다리는 것이겠지요. 대단한 여행은 아니었지만 하루 일정으로 O-트레인과 V-트레인을 타보며 주변 일대의 가벼운 트레킹을 즐기고 왔습니다. 개인적인 여행기이지만 혹시 코딱지만큼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여행의 즐거움과 정보를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서울역
저는 아직도 서울역이 이렇게 생긴 줄 압니다. 중부내륙순환열차는 서울역에서 07시 45분에 출발합니다. 제천까지는 약 2시간, 태백 이후 구간까지는 약 5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편성을 조금 이르게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아침부터 조금 서둘러야 합니다. 특히 다른 지역에서 올라와 열차를 타야 하는 경우라면 아침부터 헐레벌떡 정신이 없을 수 있기 때문에 오트레인 패스 같은 경우 출발 전날 미리 발권을 받아놓고 준비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사용 개시일 12일 전부터 발권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루 전까지 발권 취소를 할 수 있으며, 수수료도 400원밖에 들지 않습니다. 여행 못하겠으면 얼른 취소해서 다른 사람 배려해주라는 코레일의 배려일까요. 아무튼, 서울역에서 출발한 O-트레인은 08시 05분 청량리를 들려 바로 제천으로 쏜살같이 내달립니다.
가락국수가 그리운 제천역
청량리역을 거쳐 내달린 O-트레인은 쉬는 역 하나 없이 내달려 09시 44분에 제천역에 도착합니다. 이곳 제천역은 영동선과 태백선이 분리되는 역이라 열차를 갈아타는 사람들로 북적북적했다고 합니다. 또 과거에는 역간 정차 시간도 길었기 때문에 이러한 사람등른 제천역 타는 곳에 있는 가락국수집에서 그 시간에 가락국수를 먹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저 역시 국민학생 어린 시절 중앙선 열차를 타며 엄마를 졸라 가락국수를 먹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 기억을 떠올리며 제천역에서 무려 10분 간 정차 후 09시 55분에 출발하길래, 저는 그 때 그 가락국수를 먹을 수 있을 것이란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게 벌써 옛날이라니…
하지만 제천역 타는 곳에 있던 가락국수집은 없어졌습니다. 언제 없어졌는지는 모르겠는데…. 1박 2일 초창기 김종민이 이곳에서 가락국수 먹다가 낙오하여 큰웃음을 줬던 기억이 나는데 그게 그렇게 옛날이었나 싶습니다. 아마 비교적 최근에 없어진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자꾸 김종민을 따라 해서 없어진 건 아니리라 생각하며 역 앞 괜히 박달을 원망하며 다시 O-트레인에 탑승합니다. 대신 스토리웨이에서 바나나우유를 사먹습니다. 이곳에서 10분간 정차하는 까닭은 중간 지점으로서 여행객들을 위해 배려가 아닌가 싶습니다. 또는 다른 열차편을 타고 제천역에 오는 승객들을 기다려주는 효과도 있습니다.
멋진 풍경을 바라보며 도시락을 먹는 사치
제천역에서 가락국수를 못 먹어 배가고파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합니다. 아마 아침을 서울역에서 맥모닝 같은 걸로 떼우니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 같습니다. 밥이 먹고 싶습니다. O-트레인의 2호차 카페객실차에 가서 도시락을 주문합니다. 메뉴는 계속 바뀌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8월 중 두번 탔을 때는 두번 다 두가지 종류였습니다. 7천원짜리 두부스테이크 도시락과 만원짜리 떡갈비 도시락이었습니다. 가난한 여행이었다면 7천원짜리 도시락도 아까웠겠지만 뜨거운 여름내 고생한 몸과 마음을 위해 작은 사치를 해봤습니다. 만원짜리 떡갈비 도시락을 시킵니다. 아리따운 승무원 아가씨가 데워드릴까요?라고 묻습니다. 따뜻한 밥 먹어서 손해볼 건 없으니 데워서 먹습니다. 전자레인지로 도시락을 데워서 먹을 수 있습니다. 오오. 다시 4호차의 전망석에 도시락을 가지고 와서 한가로이 도시락을 먹었습니다. 기대했던 것보다 도시락이 맛있고 실해서 놀랐고, 창밖 풍경이 아름다워서 또 놀랐습니다. 여자친구가 싸준 도시락이 아니었지만 이렇게 감동을 받을 수 있구나… 라는 생각에 잠깁니다.
분천역 도착
우리 열차는 12시 48분 분천역에 도착하였습니다. V-트레인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먼저 나오는 철암역에 내릴 수도 있지만, 이번에는 이를 지나쳐 분천역에서 내렸습니다. O-트레인과 V-트레인은 모두 환승이 가능하게끔 철암, 승부, 분천역에서 정차합니다. 단, 패스를 끊지 않았다면 당연히 따로 승차권을 구입해야 합니다. 특히 서울/수원에서 내려오는 O-트레인을 타고 위 세 역 중 하나에 내리면 1시간도 기다리지 않고 다음 V-트레인을 탑승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왜 분천역에서 내렸느냐? 아이유와 조정석이 여기에서 내렸기 때문에! 바로 분천역에서 비동역까지 낙동강변 길을 걷고 싶었고, 비동역에서 양원역까지 가는 체르마트길을 걷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하면 요즘 유행하는 트레킹이라는 것이죠. 하지만 제가 걷는 게 그렇게 거창하게 트레킹이라는 이름을 붙일만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냥 걷는 것이죠. 뭐 다른 설명이 필요한가요. 걸으면서 생각도 하고, 풍경도 보고 그런 거 아닐까요.
1차 코스. 분천역-비동역 구간
분천역에서 비동역까지 걸어갈 예정입니다. 지형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산과 산과 사이를 낙동강이 구비구비 흐릅니다. 이 낙동강을 따라 약 4.2km 정도밖에 안 되는 가벼운 산책길 수준입니다. 언덕도 없습니다. 그저 다리를 몇 개 건너고 강을 따라 가면 됩니다. 어쩌면 이 마을 주변 사람들에게는 평소에 생활하는 공간 정도밖에 안 되는 길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름다운 경치를 보며 한적한 길을 걸으며 오늘까지의 삶을 되돌아 볼 수 있기에는 과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말한 적은 없지만 생활 속의 공간으로 들어가보고 싶어하는 것이 제 여행의 목표이기도 합니다.
분천역 앞을 내려다보고
분천역에서 분천리 마을을 바라본 모습입니다. 여기에서 우측으로 가면 먹거리 장터가 있습니다. 장터 식당에서 파는 음식들도 맛있으니 한 번 드셔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미 만원짜리 떡갈비 도시락을 먹었기 때문에 장터는 뒤로 하고 언덕을 내려와 장터와는 반대쪽 왼쪽 골목길로 들어갑니다. 사진이 따로 없지만, 그냥 골목길 따라 쭉- 가면 됩니다. 분천길이라고 써있는 도로명주소 간판을 따라가도 좋습니다. 왔던 철길을 따라 다시 돌아간다보 보시면 되겠습니다.
낙동강이다!
길을 따라 가다보면 바로 옆으로 우리가 타고 왔던 철로가 보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무들 사이로 시원한 낙동강 물줄기가 보입니다. 비가 온 뒤었는지 콸콸콸 흐르는 물소리가 귀를 살살 파고듭니다. 소리가 시원하다는 느낌이 전해집니다. 부산에서 낙동강을 본다면 분명 이런 느낌은 아닐 겁니다. 상류에서 구비구비 흐르는 낙동강의 모습을 살펴봅니다. 사소한 것이지만 하나하나 감동입니다.
에구구 추락주의!
그렇다면 이 길이 뽀송뽀송한 흙길이냐? 아닙니다. 이 길은 마을 주변을 두르는 이면도로입니다. 포장이 잘 되어있습니다. 자연을 걷는다는 느낌이 없을 수도 있지만, 오히려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고 들리는 소리는 오직 물 흐르는 소리와 가끔 철길를 지나가는 열차의 소리뿐이라 도로의 포장 따위는 곧 상관이 없어집니다. 비동역까지 갈 때까지 꼼꼼하게 포장이 되어있고, 비동역에 올라갈 때만 살짝 비포장 길이 나올 뿐이니, 산길을 걸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없어도 좋습니다. 단 바로 옆에 강이 흐르기 때문에 카쉐어링이나 자전거 등을 이용하실 때는 주의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도로 폭이 좁기 때문에 자동차끼리 서로 키스하지 않게 주의해야 합니다.
다리 위에서
분천역을 떠나 처음 만나는 다리입니다. 오래된 시멘트 다리 같은데, 신기하게도 철제 난간이 휘어져있습니다. 자동차로 들이박았다기에는 일부분만 휘어있고, 그렇다고 누가 구부린 것 같지는 않고 의문이 막 생깁니다. 어쨌든 이런 다리를 앞으로 몇 개 더 건너가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길을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걷는 게 위험할 수 있다고 열차에서 안내를 해주기도 합니다. 제 생각에도 비가 많이 온다면 이 다리보다 낮은 다리가 몇 개 있기 때문에 꽤 위험할 것 같습니다.
계속 강변을 따라 걷습니다. 작은 다리도 몇 개 건너고. 무심하게 흐르는 강물도 바라보고, 때로는 격하게 흐르는 강물도 바라봅니다. 이곳은 춘양목의 고장이기 때문에 멋진 소나무들도 많습니다. 분천역에서 더 열차를 타고 가면 정말 춘양목으로 유명했던 춘양면과 춘양역이 있습니다. 지금은 함부로 벌목하지 못하도록, 산에 들어가지 못하게 곳곳에 안내판도 붙어있습니다. 한 때는 이 춘양목 때문에 이 부근의 역과 지역들이 호황을 누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무분별한 벌목을 막아 지역은 한적한 시골이 되었지만, 이렇게 우리에게 아름다운 자연을 보여주고 있으니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요. 그냥 웃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꿈속에 있는 듯한 풍경이라든가, 어마어마한 비경이 숨겨져 있는 곳은 아닙니다. 그저 쉽게 말해 시골 할머니댁에 온 것 같은 느낌. 그러나 늘 그리워하던 것이 바로 그 시골 할머니댁과 같은 풍경과 여유 왠지 익숙하고 어디에서인가 본 듯한 풍경이지만, 결국 사람들은 지금은 찾기 힘들어진 익숙했던 풍경을 그리워하는 게 아닌가 합니다. 딱 사람들이 생각하는 시골이라는 이미지가 그대로 남아있는 곳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이 길은 사람이 거의 안 다녀서 좋았습니다. 새로이 정비를 하고 있는 중이라서 그런 것이기도 하고 아직 유명세가 없어서유명해질 건덕지가 없어서인지도 그럴 수 도 있을 것입니다. 8월의 주말에 이렇게 멋진 계곡을 혼자서 볼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는 것만으로도 호강했습니다.
철교를 지나가는 V-트레인
영동선은 산과 계곡을 이어주기 때문에 터널뿐만 아니라 철교도 많습니다. 가끔 지나가는 열차를 바라보며 손을 흔들어봅니다. 무궁화호를 탄 사람들은 커튼을 가리고 가느라 관심도 없지만 커튼이 없는, V-트레인의 여행객들은 반갑게 손을 흔들어 화답해줍니다. 저는 그분들을 위해 현란한 콩댄스손짓을 보여줬습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손 흔들어 인사하는 것이 이렇게 즐거운 일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칩니다. 왜 그렇게 평소에 웃으며 인사를 안 하고 살았을까 반성도 해봅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철교를 지나가는 열차를 바라보니 그것도 역시 멋진 풍경이었습니다.
소와 백구, 주인아저씨
철교 밑을 지나다가 한무리의 소 떼를 만났습니다. 주인아저씨가 커다란 어미소와 작은 송아지들을 풀어놓고 있었는데, 소들이 풀도 먹고, 물도 마시고 한가로이 있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평소 보지 못했던 모습이라 신기하게 저도 옆에서 같이 멀뚱멀뚱 소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디에서인가 백구 한마리가 헐레벌떡 뛰어왔습니다. 이 백구도 이 주인아저씨의 개였는데 멀리서 주인아저씨를 보고 반가워서 뛰어가는 모양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백구에 놀라 송아지들이 화들짝 이리저리 도망가자, 어미소가 백구에게 무서운 기세로 돌진하려던 찰나, 주인아저씨가 "상구, 너 이 자식!"을 외치니 갑자기 깨갱하며 죄송합니다 자세로 죄를 사죄하기 시작했습니다. 상구라는 이름의 백구는 결국 그렇게 굽신굽신 거리면서 주인아저씨에게 송아지들을 놀라게 한 죄값을 치렀습니다. 평소에 쉽게 볼 수 없는 재미있는, 마치 인간극장의 한 장면 같은 광경이었습니다.
강을 따라 걷는 길
비동역 가는 길에 중간중간 갈림길이 나옵니다. 그런데 승부역 방면으로 가게 되면 950m의 배바위산을 넘어 승부역으로 가는 길입니다. 전혀 편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이 아니기 때문에 지나온 역 이름 중 승부역이 있다고 해서 그 쪽으로 들어서면 안 됩니다. 비동역으로 가기 위해서는 그저 묵묵히 강을 따라 가야 합니다. 길을 찾는 재미는 없겠지만, 강변을 따라 있는 시멘트길을 따라 갑시다.
비동임시승강장으로 가는 길
비동역이라고 표현은 했지만, 정확하게는 역이 아니라 임시승강장입니다. 그저 트레킹 목적으로 다니는 사람들의 V-트레인 승하차를 위한 곳입니다. V-트레인의 2호차에서만 타고 내릴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임시승강장입니다. 이제 터널과 철교가 보이는 지점까지 왔으니 1차 목표는 거의 다 온 셈입니다. 길을 따라 올라가면 바로 위 비동승강장에 올라가볼 수가 있습니다.
비동임시승강장
위의 철교 있는 곳을 가면 비동-양원간 체르마트길 현수막이 걸려있는 데 오히려 현수막을 따라 가면 체르마트길 코스로는 못 가는 이상한 사태가 벌어집니다. 제대로 안내가 안 되어 있는데 이상하고 신기하겠지만 인삼밭 옆을 지나 승강장이 있는 철교쪽으로 올라와야 합니다. 그것이 정식 코스입니다. 그리고 반대쪽 터널쪽을 바라봅니다. 시작부터 흥미진진한 트레킹 코스인 체르마트길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냥 비동역에서 내린다면 바로 트레킹 코스를 찾을 수 있으나, 다른 곳에서 비동역으로 오면 잠깐 헛갈리게 만드는 부분입니다.
2차 코스. 비동역 - 양원역
잠깐 코스 소개를 하자면, 비동역에서 출발하여 지난 번 소개드렸던 양원역까지 가는 체르마트길입니다. 지도를 좀 확대해서 위 코스와 길이가 비슷하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2.2km 정도의 짧은 코스입니다. 약간의 고개를 넘어가기는 하지만 역시 그 이후에는 강과 철길을 따라 걷는 상큼상큼한 길입니다.
그런데 왜 뜬금없이 경상북도 봉화군의 작은 산골 동네에 체르마트라는 이름이 붙은 길이 생겼는지 궁금해집니다. 지난 2013년 5월 23일, 한국과 스위스가 수교를 맺은지 50주년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를 기념하여 한국과 스위스의 청정 지역오지의 분천역과 체르마트역이 우리나라 최초로 역과 역이 자매결연을 맺었습니다. 그리하여 이를 기념하여 스위스 체르마트 지역의 트레킹 코스처럼 비동역과 양원역 사이의 깨끗한 산과 강을 지나는 트레킹 코스를 개발했다고 합니다. 중간에 사람들이 다니던 길도 있지만 새로이 개발을 한 길이기 때문에 아직 어수선한 곳도 종종 있지만, 그만큼 다니는 사람이 적어 아직은 한가로움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봉화군의 분천역이 스위스의 체르마트처럼 관광의 명소가 되기를 바랍니다.
어디로 가야하죠 아저씨
비동역에서 철교쪽을 바라봅니다. 체르마트길의 출발점을 알려주고 있고, 양원역까지는 2.2km 남았습니다. 그런데 어디로 가라는 건지? 화살표가 수상합니다. 그렇습니다. 철교를 건너가야 합니다. 두근두근 정말 가는 것 맞나?라는 생각이 머리속에서 계속 맴돌지만 정말 철교를 건너가야 합니다. 서울의 잠실철교가 철교 옆에 사람과 자전거가 다닐 수 있을만한 길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바로 바로 철길의 침목이 보일 정도로 옆에서 노골적으로 철교를 건너야 합니다. 철교 옆에 추가로 길을 내고 안내선을 만들어놨지만 왠지 모르게 두근두근합니다. 꿋꿋하게 앞에 보이는 터널까지 걸어가면 되겠습니다. 그렇지만 철길 위에 올라가면 정말 위험합니다! 올라가지 마세요!
철교 위에서 내려다보는 색다른 풍경
사진으로야 여기가 철교 위인지 열차 안인지 티가 잘 나지 않지만광각 렌즈 사주세요, 흔치 않게 철교 위에서 강을 내려다볼 수 있습니다. 간혹 여자 분들이 철교 위, 그리고 꽤 높은 높이이기 때문에 무서워서 떠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경우는 이리와, 내 품에 태워줄게 훨씬 훨씬 무거운 열차도 다니는 다리이기 때문에 무너질 일이 없다고 안심시키고 함께 가면 되겠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풍경이 참 멋지네요.
터널 안으로 들어가면 안됩니다
그래서 터널을 통과하는 짜릿함을 보여줄 것 같았지만, 터널 입구에는 터널은 트레킹 코스가 아닙니다. 오른쪽으로 가세요!라는 경고문이 있습니다. 오른쪽으로 바로 고개를 돌려주면 사진과 같은 산 속 오솔길이 바로 보입니다. 여기를 따라 가주시면 됩니다. 안내가 조금 부실한 점이 살짝 당황스러웠습니다. 안내마저 청정이었던 것인가. 괜히, 터널과 철교 앞이라고 "나 다시 돌아갈래!를 외치다가는 영원히 못 돌아가는 수가 있으니 주의하고 또 주의합시다. 영동선이 열차가 자주 다니는 노선은 아니지만, 여객열차 말고 화물열차, 그것도 20량씩 되는 것들이 언제 어디에서 나타날지 모릅니다. 코레일 쪽에서는 안내를 조금 확실히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Tie a red and white ribbon round old fine tree
앞으로의 길 안내를 책임질 리본입니다. 스위스의 국기 색인 하얀색과 빨간색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조금 알쏭달쏭한 갈림길에서 나무에 묶여 있는데, 작아서 잘 안 보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환경을 파괴하지 않는 것도 좋지만 길 안내는 조금 자세히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아직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아서 길인지 아닌지 티가 잘 안 나는 곳도 있으니 주의해야 합니다. 이 리본과 더불어 코레일의 청색 리본도 같이 달려있으니 확인하면서 잘 따라가면 길을 잃지는 않습니다.
산길을 걷습니다
비가 많이 왔었는지, 바람이 많이 불었는지 나무 하나가 쓰러져있습니다. 깜짝 놀라만한 장면이지만 산길의 바닥이 낙엽과 흙, 나뭇가지가 푹신푹신해서 한발 한발 내딛을때마다 기분이 산뜻합니다.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햇볕과 매미 소리, 물결 소리. 눈과 귀가 즐거운 길입니다. 쭉 굴곡이 없는 길이었는데 여기에서 갑자기 급경사가 나타납니다. 지도에서 보듯이 최단거리로 고개 하나를 넘어가기 위해서 갑자기 높은 경사가 나오는데, 직선거리로는 약 2-300m 정도 밖에 안 되기 때문에 숨 좀 고르고 천천히 올라가도 여유가 있습니다.
병풍에 나올 듯한 소나무
잠깐 높은 경사를 오르고 나면 다시 이후부터는 잠시 완만한 길이 계속됩니다. 그리고 길을 따라 바깥쪽을 보면 유유히 낙동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중간에 한 멋진 소나무가 사람들이 맞이합니다. 마치 병풍, 동양화에 나올 듯한 유유자적한 모습입니다. 홀로 강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나무에게 인사를 해준뒤 계속 길을 갑니다.
1.5km 남은 운명의 갈림길
1.5km를 남겨놓은 상황에서 갈림길이 나옵니다. 전방에 보이는 길이 더 좋아보이지만, 사실 전방에 있는 길은 아직 미개발 상태라 출입 금지입니다. 아래로 내려가야 하는데 길 상태가 아직 계단이라든지, 돌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제대로 정비가 안 되어있습니다. 자칫하면 미끄러져서 엉덩방아를 찧거나 넘어질 수 있기 때문에 조심조심 내려갑시다. 다니는 사람이 적어서 그런 것인지, 아직 홍보를 덜 해서 그런 것이지 이런 것은 얼른 고쳐주기를 바랍니다. 아마 가을이 되어 산행객들이 많아지기 전에는 손을 봐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저는 이 길을 가면서 여행객을 딱 두 분 봤습니다.
색다른 풍경들
정비 불량이었던 내리막을 내려오면 수풀이 쭉쭉 뻗은 길이 나오고 곧 지나지 않아 터널과 철길이 옆으로 지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평소에는 보지 못했던 철길 가까이의 수풀들의 모습이 색다릅니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멋진 주인공이 고독한 모습으로 철길 옆을 걸어가는 장면을 많이 나오길래, 저도 그런 주인공의 모습처럼 핸드폰을 들고 셀카를 찍으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왠 오징어가 철길을 걸어가고 있었네요. 슬픕니다.
좋아요!
자꾸 위에서 길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였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여행객이 다니는 길에 대한 걱정이었지, 길 자체에 대한 불만은 아닙니다. 체르마트길은 오지 트레킹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낙동강변에 비경을 유유히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특별한 준비나 장비가 없어도, 오래오래 걷지 않아도 간단히 열차에서 내려서 걸어가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러한 아름다운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매력이 아닐까싶습니다. V-트레인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시끌벅적하게 떠들며 지나치는 풍경들에 대하여 탄성도 지르며 함께 바라보는 것도 즐거움이었지만, 혼자 배낭 메고 조용히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것도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볼에 바람 넣고 귀여운 척
철교 위로 열차가 지나가는 장면은 카메라에 꼭 담고 싶은 멋진 장면입니다. 특히 O-트레인이나 V-트레인처럼 겉모습이 알록달록 예쁜 기차라면 찍어놓는 것 자체만으로도 그림이 되니 말입니다. 그래서 열차 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는 것 같다 싶으면 귀가 쫑긋해지면서 집중이 됩니다. 하지만 칙칙한 무궁화호라든지, 화물 열차라면 괜시리 실망을 하곤 합니다. 그러나 기관차 두대가 협심해서 어마어마한 화물을 끌고 가는 모습을 본다면 그 장면 역시 장관입니다.
곡선의 아름다움
이제 양원역에 거의 다 왔습니다. 철길이 한층 더 제가 가는 길 옆으로 다가왔네요. 깊은 계곡 사이를 지나가느라 어쩔 수 없이 휘어진 철길이었고, 이곳을 지나가던 주민들에게는 열차 속도를 하염없이 깎아먹는 구비였겠으나, 무심한 여행객에는 그저 아름다운 곡선입니다.
양원역 도착
총 6.6km 정도를 걸어서 분천역에서 양원역까지 걸어서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지난 번 V-트레인을 타고 이곳에 내렸을 때는 바로 바로 장터의 시끌벅적한 분위기였지만 열차 시간과 다르게 역에 도착하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한적한 모습입니다. 할머니들은 다음 번 올 손님들을 대비해서 감자를 삶고 나물들을 다듬고 있었습니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물을 부탁드려 목을 적셨습니다.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습니다. 16시 34분에 분천역으로 돌아가는 V-트레인을 타려고 목표로 해서 왔는데, 한 시간이나 일찍 도착했습니다. 사진도 찍고 발도 적시며 쉬엄쉬엄와도 2시간 정도면 충분히 오는 거리였습니다. 초행이라 넉넉히 시간을 잡았는데 말이죠.
시원한 잔치국수!
원래 먹기 전에 알록달록 색깔이 이뻐서 사진을 찍으려고 했는데, 이미 휘젓고 난 뒤 생각이 났습니다.시간이 남을 때는 그저 먹는 게 최고입니다. 잔치국수를 하나 주문해서 먹었습니다. 더워죽겠는데 무슨 잔치국수야 했는데, 국물이 아주 시원한 국수였습니다. 그러니까 얼큰하다는 시원한 게 아니라 차갑다는 시원함 말이죠. 아삭아삭 씹히는 김치의 맛이 예술이었습니다. 하정우도 부럽지 않은 먹방을 연출했지만 보는 사람이 없어서 안타까웠습니다. 이렇게 국수를 시원하게 먹고 소화를 시키니 다시 분천으로 돌아갈 열차가 왔습니다.
분천역으로 돌아갑니다
왜
스토리웨이에서 바나나우유 사먹을 수 있는철암역 쪽이 아닌 분천역으로 돌아가냐면, 서울역으로 돌아가는 O-트레인은 영주쪽에서 돌아오는 노선으로 영주-봉화-춘양-분천으로 향해서 옵니다. 기왕이면 출발 지점과 가까운 쪽에서 미리 자리를 맡아놓고 가려는 안타까운 몸부림일 수도 있는데, 철암역은 여행사 단체 관광을 온 사람들이 많이 붐빕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한적한 분천역으로 돌아가서 서울로 돌아가는 제4852 O-트레인 열차를 16시 57분에 탑승하여줍니다. 반대로 수원쪽으로 돌아가는 제4854 O-트레인 같은 경우에는 태백쪽에서 철암-승부-분천을 거쳐 영주로 해서 제천-
오송으로 빠져나갑니다.
이렇게 해서 짧으면 짧고 길면 긴, 간단한 여행이 끝났습니다. O-트레인 덕분에 서울과 경상북도 봉화군을 쉽게 오고갈 수 있었고, V-트레인 덕분에 비경을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강변을 따라 걷는 건 어디에서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굳이 멀리 찾아가서 한 명의 낯선 여행객이 되어 걷는 일은 언제, 어디라도 색다른 기분을 안겨줘 행복했습니다. 특히 낙동강변의 풍경은 일품이었습니다. 인적이 드문 한적한 마을들에 사람이 붐비는 모습을 보며 어쩌면 새로운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잠겨 보기도 했고, 무작정 이동 수단으로만 생각했던 열차들이 이제는 하나의 여행 자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직장에 남겨두고 온 일들 생각도 돌아올 때쯤 되면 무럭무럭 자라납니다. 하지만 다시 돌아올 날을 꿈꾸면서 기운을 내야하지 않을까요!
다음 예고 - O-트레인 패스 소개
이렇게 색다른 여행을 하게 해주는 O-트레인 패스에 대한 소개를 하고자 합니다! 원래 1부에 있던 내용이었지만 조금 더 자세하게 수정을 해서 글을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개인적인 여행기이면서도 부족한 글이지만 많은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기대에 조금이라도 부응했으면 좋겠습니다ㅠㅠ 잘못된 점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부록. O-트레인과 V-트레인의 노선도 및 시간표입니다.
역시! 시간표는 꼭 코레일 홈페이지에서 여행 전, 계획 수립 시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