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계속되는 장마 사이로 햇살이 비추자 서둘러 집을 나왔습니다. 가봐야 할 곳들이 있었는데 비 때문에 발목이 잡혔거든요. 종각역에 내려서 버스 정류장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1020번 버스를 탔다가 내린 곳은 바로 자하문 고개입니다. 정류장에 내리면 청계천 발원지라는 표지석과 함께 1.21 사태때 순직한 경찰관들의 동상과 표지석이 보입니다. 실제 총격전이 벌어진 장소는 여기가 아니라 조금 더 남쪽인 청운실버센터라고 합니다. 이곳이 그렇게 오랫동안 금단의 땅이 된 이유이기도 하죠. 제가 이 길을 택한 이유중 하나는 바로 코스 중간에 있는 청와대 때문이었다. 과거의 권력인 경복궁과 현재의 권력인 청와대가 길 하나를 두고 마주보고 있다는 사실은 묘한 흥미를 끌게 만들었습니다. 무더운 여름이었지만 고지대에 위치한 탓에 바람이 열기를 식혀줬습다. 정류장에 내리면 맞은편에 수도 가압장을 바꾼 윤동주 문학관이 보입니다. 근처에 대원군의 별장인 석파정과 안평대군의 별장인 무계정사를 비롯해서 사대부의 집과 별장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지금이야 강남이 대세지만 조선시대에는 북촌과 이 일대가 노른자위 땅이었습니다. 인왕상의 매끈한 절벽은 둘째치고 빌라의 붉은 지붕과 멀리 도심지가 어우러지는 경치는 너무나 아름다웠고, 내리막길이라 걷기도 편했습니다. 자하문 고개 정류장 건너편에는 윤동주 문학관이 있습니다. 고개길을 내려와서 경복궁의 뒷길이자 청와대 앞길로 갔습니다. 제가 이 길에 흥미를 느낀 건 과거와 현재의 권력이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사이좋게 자리잡고 있다는 겁니다. 경호원과 경찰관들이 많지만 다들 친절하니까 너무 염려 마세요. 조금 걷다보면 경복궁의 북문인 신무문과 청와대가 만나는 지점이 보입니다. 비서실장의 공관을 전시관으로 꾸민 청와대 사랑채가 있어서 궁금하신 분들은 들려봐도 좋을 듯 합니다. 청와대의 프레스 센터 격인 춘추관을 지나면 삼청동으로 접어듭니다. 구불구불한 골목길이 이어지지만 웬지 길을 잃을 것 같지 않은 예감이 드는건 왜일까요? 내친 김에 창덕궁에 들려서 둘러보고 인사동에서 배를 채웠습니다. 자하문에서 시작해서 청와대를 거쳐서 삼청동과 인사동까지 거닐었던 시간은 총 2시간 반 정도 됩니다. 지인이나 연인과 함께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걷기 편합니다. 특히 내리막길이라서 걷기에 자신이 없는 분들도 큰 무리가 없습니다. 특히 청와대와 삼청동으로 이어지는 코스라서 역사에 관심이 없는 분들에게도 좋습니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긴 하지만 사람들이 별로 없는 편이라서 한적하게 다니실 수 있습니다.
데이트 코스 추천 - 별 넷 (삼청동이나 인사동의 맛집 혹은 예쁜 카페와 연계시킬 수 있다면 별 반개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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