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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04/17 17:54:31
Name 구밀복검
Subject [일반] 시간의 벽에 이름을 새기는 법?
"사람들은 종종 결과만 중요하다고 하면서, 미래에 남는 건 성적 뿐이라고 말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사람의 기억에 남는 것은, 축구의 위대함을 찾아 나설 때 얻어지는 느낌이다. 가령, 비록 파비오 카펠로의 AC 밀란이 더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우리는 아리고 사키의 AC 밀란을 더 생생하게 기억한다. 마찬가지로 1970년대의 토탈 풋볼을 상징하는 네덜란드는, 1974년 월드컵 결승에서 서독에게, 1978년 월드컵 결승에서 아르헨티나에게 졌지만, 그들과는 비교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로 전설적인 팀이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완벽함을 찾아 나서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완벽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지만, 그렇게 나아가는 것이 축구에 대한, 아마도 인간에 대한 우리의 의무이다. 그리고 그것만이 유일하게 우리가 기억하게 될 것이고 유일하게 특별한 것이다."
- 호르헤 발다노(1986년 멕시코 월드컵 당시 우승팀인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주전 퍼스트탑)

"중요한 것은 오로지 우승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어차피 우승하게 되는 팀은 한 팀 밖에 없다고 말해두고 싶다. 그러므로 30개 팀이 참가하는 대회에서, 나머지 29개 팀은 꼭 스스로에게 반문해야 한다. 나는 클럽에 무엇을 남겼는가? 선수들에게 무엇을 안겨주었나? 선수들에게 어떤 성장 가능성을 열어주었는가?"
- 루이스 세사르 메노티(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 당시 우승팀인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감독)


물론, 보통은 성적이라고 불리우는 객관적인 결과물은 잊혀지지 않고 훗날까지 남으므로 당연히 가장 유효한 지표긴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기억에 각인 되는 방법이 Only 성적만은 아니죠.

가령 위에 언급된 사키 밀란에 대해 좀 더 부언해 보자면... 사실 사키 밀란이 독보적으로 대단하진 않을 겁니다. 물론 탁월한 성과긴 하지만, 역대 비길 바 없는, 유일의 <제네레이션>을 운운할 정도인가 하면 그렇진 않죠. 그 전 세대인 7~80년대의 리버풀이나 70년대 전반의 아약스가 이룬 성취에 비하면 손색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4강에서 독수리 5형제의 레알을 5-0으로 박살내고 결승에서 게오르그 하지의 슈테아우아 4-0으로 압살하던 그 일련의 과정이라든가, 다른 팀들과는 너무나도 이질적인 밀란만의 스타일 - 오프사이드 트랩 걸기 위해 우루루 뛰어나오는 장면이나 전원이 하프라인 위에서 가패삼기 하고 있는 건 누가 봐도 선명한 장면들이니까 - 과 같은 것들이 있었기에, 사람들의 시선을 확실하게 붙잡을 수 있었고, 기억에 각인될 수 있었죠.

마찬가지로 1974년 월드컵의 준우승팀인 네덜란드가 왜 우승팀인 서독보다 더 평가가 좋은지도 생각해볼 법한 사례죠. 1974년 월드컵 내내 네덜란드가 보여준 압도적인 모습이라든가, 서독이 개최국 어드밴티지를 악용하여 자신들의 조를 꿀조 만들고 네덜란드 조를 죽음의 조로 만든 것, 그리고 이 조에서 네덜란드가 아르헨이고 브라질이고 몽둥이 들고 신나게 강아지 개고기 만들듯 두들겨 팬 것 등을 고려하지 않으면, 왜 네덜란드를 서독보다 높게 평가하는지를 이해하기가 어렵죠.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서독이 더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여튼 중론 - 그 평가가 잘못된 평가이든 잘된 평가이든 간에 - 을 성적이 오롯이 지배하지는 않는다는 예가 되겠습니다.

1982년 월드컵의 브라질 대표팀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 그야 어떤 사람들은 끽해야 월드컵 5위 팀이라며 깔지도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보편적으로는 1982년 월드컵의 브라질을 역대최강팀 중 하나로 꼽고, 지금까지 길이길이 회자합니다. 이 역시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방법이 성적에만 있진 않다는 예시죠.

이렇듯, 이런저런 지표니 수치니 업적이니, 다시 말해 대체로 객관적인 형태의 성적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는 가치가 없고, 결국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기 위한 수단일 따름입니다. 즉, 성적이 좋으면 기억에 남을 공산이 크기에 성적이 중요한 것이며, 바꾸어 말하면 성적이 얼마나 좋건 간에 후대에 기억되지 못한다면 아무 의미가 없겠지요. 흑묘백묘라고, 어떻게든 사람들의 기억에 각인되는 것이 본질적인 가치를 지닙니다. 굳이 호랑이가 가죽 남기듯 인간이 이름 남겨야 된다는 클리셰를 동원하지 않더라도 뭐.. 결국 기억이 가치라면, 망각은 무가치겠지요.

여튼 성적이고 뭐고 아름다우면 된다..는 식의 극단론은 공허하지만, 모든 분야가 그렇듯이 성적만 가지고 모든 게 다 설명되는 것 역시 아니긴 하다고 보네요. 그렇다면 무엇이 설명되지 않는 나머지를 차지하는지, 시간의 벽에 이름을 새기는 조건은 무엇인지...를 따져보는 것도 재미겠죠.

밑의 vs 글에 코멘트로 달려다가 너무 삼천포로 - 논지 자체는 이질적이지 않지만 예시가 너무 이질적인 터라. 음악과 축구는 거의 공통 분모가 없죠. 컴필레이션 영상 감상 시에 브금의 영향 정도가 연구 과제이려나 - 빠질 듯 하여, 그리고 한 번 썰 풀어볼만한 독립성이 있는 듯 하여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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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름발이이리
13/04/17 17:56
수정 아이콘
이런 걸 따지는 게 무의미하단 건.. 해당 분야에 대한 지나친 기계적 해석이거나.. 극단적 허무주의거나.. 둘중 하나죠.
구밀복검
13/04/17 18:04
수정 아이콘
혹은 해당 분야에 대한 몰이해일 수도 있고요.
잘 모를 때는 <취존>이나 <우리 마음속>과 같은 것이 으뜸패라고 오인할 때가 많잖나 싶네요.
사티레브
13/04/17 18:01
수정 아이콘
책은 쓰고계십니까?

로 뻘플을 시작해서,
더치와 게르만이 호대조를 이루었던 1974년 월드컵은 총 세경기봤나 싶은데
그럼에도 왜 그래도 그 때 크루이프가 그 시즌의 벽에 이름을 남겼나 '느껴'지더라구요

사람인 이상, 그리고 무언가를 의미있게 쓰려는 이상 비교는 불가결인데 어차피 다 좋아 하면서 하지말자 의미없어 하는건
지적호기심을 부정하고 지적발전의 욕구를 억누르자는 거라 생각해요
구밀복검
13/04/17 18:04
수정 아이콘
네 다 썼습니다! 퇴고만 하면 됩니다. 흐흐.
13/04/17 18:17
수정 아이콘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여자들이 축구를 보면서 평하는 영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대화 내용은 대충 이렇습니다.
"
(감독을 보고) '오, 제 잘생겼네.'
'스타일 괜찮다.'
'아, ~잡지에서 본 적 있는 것 같아.'
등등
"
아마 요아힘 뢰브였던 걸로...
구밀복검
13/04/17 18:18
수정 아이콘
외관은 꽤 괜찮죠. 미중년...
코만 안 판다면야.
사티레브
13/04/17 18:21
수정 아이콘
국부에 땀도 조금
jjohny=Kuma
13/04/17 18:23
수정 아이콘
땀이야 날 수도 있는 거지만 맡는 건...
13/04/17 18:28
수정 아이콘
크크.
하여튼 그것을 보면서 느낀 게 축구에 관심없는 여성분한테는 성적이고 뭐고 어떤 사람에게는 겉모습이 아름다우면 어느정도는 통하는 것 같습니다. 누구에게는 펠레, 마라도나가 여전히 최고일테고요. 누구는 국대 축구를 보면서 내가 뛰어도 제 보단 잘 뛰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직접 보지 않은 세대가 만들어내는 평이 다루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스타에서 예를 들어본다면, 임요환은 '당대 최강 미남 테란게이머'라는 심리가 분명히 있었는데, 후 세대는 '그냥 머리가 조금 큰 조루 물량에 말빨만 좋은 전략가'정도로 기억할 수 있습니다. 그런 게 섞이면서 만들어내는 이미지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것 같습니다.
구밀복검
13/04/17 18:35
수정 아이콘
그리고 의견의 교환이 그런 갈라파고스적 견해를 깨게 되죠. 그 과정에서 적잖은 충돌도 거치고 하겠지만..
그래도 많은 경우 얄팍하게 형성된 이미지는 쉽게 밑천이 드러나고, 남는 것들은 단단하게 짜여진 몇몇이더군요. 중론에서 주도권을 쥐는 것들이 그런 것이고..
13/04/17 18:59
수정 아이콘
예, 말씀하신 것처럼 보통은 매니아들의 합의에 의해 상당 부분이 결정된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본문에서 나온 그 밖의 가치인데, 그 중 대중에게 기억되는 이미지는 딱히 뭐라고 말하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어떤 테란은 삼 하나로 기억이 됐고, 매니아가 그런 것을 대세로 만드는 건 아니라 생각해서요.
sprezzatura
13/04/17 18:27
수정 아이콘
취존하자는 말은 쓸데없는 싸움 관두자는 말로도 들립니다.

어중띤 매치업의 vs 놀이에서 한 번이라도 생산적인 토론의 장으로 흘러가는 꼴을 본 적이 없어서 말이죠.
500플이 달리도록 온갖 진지를 빨며 갑론을박 했는데, 거기서 뭔가 뽑아먹을 열매가 있었는가?
거진 일방통행 주장의 나열중에 비아냥들이 치고 빠지는 그림이고, 키배 내공에 따라 상대의 입을 막은 자와 입이 막혀 빡친 자와
마지막 댓글 타이밍으로 정신승리의 고지를 취하려는 광경들만 기억에 남습니다. 뭐라도 배우거나 설득당한 기억이 없어요.

매번 이러니, 어차피 벽 보고 얘기하다 끝날 거 관두자는 말을 '취향존중'으로 돌려 말하려는 것인지도요.
그럼에도 이것이 재차 한 판 겨뤄볼 만한 메리트가 있는 것인지는, 아직까진 모르겠습니다.

사실 발끈할 구석 없이 무난하게 설정한 vs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지요. 허나 그런 글들은 관심을 못 끌어요. 댓글이 안 달리죠.
때문에 대체로 자극적인 vs글들이 흥하는데, 레알 그 의도가 지적 소통인지, 관심과 키배인지는.. 이것도 vs로 갈까요 헐헐.
절름발이이리
13/04/17 18:37
수정 아이콘
사실 그건 참여자들의 능력, 혹은 토론의 분위기에 달린 문제지요. 반대쪽으로 접근해보면, 애초에 과연 인터넷에서 토론이 생산적인게 가능하냐는 시각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어떤 주제건 간에 말이죠.
구밀복검
13/04/17 18:48
수정 아이콘
그래도 일정 수준 이상의 합리성을 기반으로 한 키배들 - 보다 평화적이라면 좋겠지만 - 의 경우, 의견들의 우승열패와 적자생존 속에서 점진적으로 공통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일련의 준거와 논의선상들이 도출된다고 보네요.
물론 굉장히 우회적이고 소모적인 루트를 거쳐가야 될 때가 많지만..
적어도 취존이란 이름 하에 선/악, 미/추, 상/저, 고/하를 모조리 밀크쉐이크로 만들어버리는 것보다는 낫다고 봅니다. 각자의 영역이야 <취존>이지만 같이 놀려면 <룰>을 만들어야하니까요.
개인적으로는 취존을 강조하는 최근의 온/오프의 트렌드가 결국 같이 놀기 싫음을 의미한다고 보네요. 혼자놀기의 진수..뭐 이런 거죠.
sprezzatura
13/04/17 19:11
수정 아이콘
도찐개찐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포스로서의 최연성vs이영호'로 묻기보단 '포스라는 것의 재료가 무엇인지'를 묻는 편이
본래의 의도에 가까이 가고, 보다 이완된 분위기에서의 공감대 형성을 가능케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대놓고 다이다이는 삐딱선을 너무 타요. 그 학습효과 탓에 질려하는 거죠.

vs 자체를 통으로 외면하는 것은 옳지 않다 생각합니다만, 적어도 pgr에선 그렇게 다 덮어버리는 분위기가 형성되진 않았다 보구요.
너무 케케묵거나 쌩뚱맞은 담론에서의 취존 주장이, 정승 취급당할 뻘짓도 아니지 싶습니다.
13/04/17 18:37
수정 아이콘
전 그래서 딩요가 기억에 많이 남더군요.. 지금은 잊혀진 이름이지만 ㅠㅠ
구밀복검
13/04/17 18:49
수정 아이콘
뭐 그래도 비교적 많이 기억에 남은 선수죠. 사실 전체적인 경력에서 퀄리티를 유지한 기간이 짧을 따름이지, 축구판에서 헤게모니를 쥐었던 기간 자체가 짧은 건 아니라(03-04/04-05/05-06 세 시즌이면 제법 길죠.)

오히려 비슷한 정도 성과를 거둔 바 있는 이런저런 선수들에 비해서는 호평을 많이 받잖나 싶습니다.
13/04/17 20:26
수정 아이콘
콩까지마요 ㅠ.ㅠ
Go_TheMarine
13/04/17 20:35
수정 아이콘
94년-02년까지의 월드컵 2회우승, 1회준우승, 코파 2연속우승을 한 브라질이지만
그 이전 브라질 대표팀들에 비해 전력이 떨어지는게 사실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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