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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2/04/17 06:21:29
Name No.42
Subject [일반] 북한이 뭐라 지껄이든 4월 15일은 No.42의 날.
  메이저리그 총 서비스 10시즌. 통산 기록 .311, 1518 H, 137 HR, 734 RBI, 197 SB.

  특출나지 않은 이 기록의 주인공은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을 뿐 아니라 메이저리그 최초로 전 구단 명예결번의 영광도
받았습니다. 그는 20세기 최초의 흑인 메이저리거로서, 병맛에 절여진 인종차별주의자들의 갖은 차별과 거지같은 짓거리들을 죄다
꾹꾹 참아내고 10년간 활약한 잭 루즈벨트 로빈슨, a.k.a. 재키 로빈슨입니다.

  그가 태어난 1919년은 링컨이 지하에서 돌아누어야 할 정도로 미국의 흑인 차별의 팽배가 넘치던 시기였습니다. 스포츠계도 당연히
그런 문화가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메이저리그는 출범 당시만 해도 흑인선수들의 참여가 가능했지만, 현 시카고 컵스의 전신인 시카고
화이트삭스(지금의 화삭스와는 다른 팀입니다.)의 구단주(겸 선수)였던 캡 앤슨이 1887년 흑인선수를 죄다 축출해버리고 맙니다. 이후
1920년 역대급 돌+아이인 케네소 랜디스라는 작자가 메이저리그 커미셔너 자리에 앉으면서 흑인의 참여 움직임을 죄다 원천봉쇄,
메이저리그는 그야말로 '금색(禁色)'의 지대가 되고 말았죠.

  이런 시대에 엄청난 운동신경을 가지고 태어난 로빈슨과 그 형은 실로 불행했습니다. 재키의 형 매튜는 육상 선수로서 올림픽에 출전해
은메달까지 딴 좋은 선수였으나 진로를 더 열지 못하고 거리의 청소부가 되었습니다. 재키도 야구, 육상, 풋볼, 농구, 수영, 테니스에서
모두 나라에서 손꼽힐 좋은 실력을 갖춘 슈퍼 애슬릿이었죠. UCLA를 졸업한 그는 육군에 입대하지만, 거기서도 수많은 차별과 부당한
대우를 받고 좌절을 거듭합니다. 재키는 제대 이후에 흑인들만의 리그, 니그로리그에서 선수로 활약합니다. 그러다 메이저리그의 많은
선구자 중 한명인 브랜치 리키의 도움으로 마이너리그 몬트리올 로열스에 입단하였습니다. 비교적 차별이 덜했던 몬트리올의 팬들은
떨떠름했던 이 흑인선수가 팀의 우승을 이끌자 그의 이름을 열광적으로 연호했다 합니다. 로열스에서의 활약을 발판으로 다저스에서
역사적인 20세기 최초의 흑인 메이저리거로서 데뷔를 하였습니다. 데뷔를 했어도 그의 고난은 계속됐습니다. 팀메이트 중 하나는
그를 추방해야 한다는 탄원서를 쓰고, 원정경기에서는 따로 흑인숙소를 사용해야 했습니다. 경기 중에도 스포츠맨십은 물에 말아
먹었는지, 겨울에 얼어죽었는지 모를 작자들이 수비수로, 주자로 나서 거친 플레이로 재키를 헤치고자 했습니다. 한 일화가 있습니다.
  47년 봄, 신시내티 원정경기에서 홈팀인 신시내티의 관중들이 일제히 '검둥이'를 연호하며 재키에게 야유를 보냈습니다. 심지어
신시내티의 덕아웃에서 선수들도 그 짓거리를 해댔습니다. 이때 다저스의 숏스탑 피 위 리즈가 1루의 재키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는
재키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웃으며 잠시 대화를 하다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켄터키 주 루이빌, 인종차별의 수도라고 할 수 있는
곳에서 태어난 슈퍼스타 피 위 리즈의 행동에 놀란 신시내티의 관중은 야유를 멈추었습니다. 리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 이유로 사람을 미워할 수 있지만, 피부색은 그 중 하나가 아니다."

  이 일로 리즈는 고향에 방문했을 때 사람들에게 항의를 받기도 했답니다. 하지만 이 일은 리키 단장에게 어떠한 일이 있어도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참겠다는 약속을 하고 데뷔했던 재키를 지지해준 큰 사건이 됩니다. 재키가 당한 일은 이에 그치지 않습니다.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감독은 선수들에게 재키 로빈슨에게 부상을 입히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했습니다. 물론 아무리 더러운 풍토가 판친 시대였지만
이딴 짓까지 참아주진 않았습니다. 나중에 야구계에서 퇴출당했죠. 하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재키는 적어도 다저스 팀메이트들에게는
더 이상 심한 차별을 받지 않게 됐습니다. 재키는 정말 무수하게 많은 협박편지를 받았습니다. '너 또 그라운드에 나오면 총으로 쏴버린다'
는 내용이 많았다 합니다. 이에 한 동료가 '우리 전부 42번을 달고 나가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습니다. 재키는 웃으며 '우리가 모두
42번을 달고 나가도 날 알아볼 것'이라고 대꾸했다죠. 진 허마스키 선수가 낸 이 의견은 재키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이후에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지켜지는 가장 아름다운 전통 중 하나를 낳았습니다. 바로 재키가 데뷔한 4월 15일을 기념하며 메이저의 모든 선수가
42번을 달고 그라운드에 나서게 된 것이죠.

  차별을 이겨내느라 28세에야 데뷔할 수 있었던 재키는 브루클린 다저스에서 10시즌을 보낸 뒤 뉴욕 자이언츠로의 트레이드가 추진되자
은퇴를 선택합니다. 이후 더 이상 스포츠에서의 진로를 찾지 못하고 인권운동에 전념했습니다. 그를 기리기 위해 몬트리올 엑스포스와
다저스는 42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했습니다. 그리고 1997년에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재키의 데뷔 50주년을 기념하여 그의 번호를 메이저
전 구단에서 영구결번으로 지정합니다.

  브랜치 리키에 의해 데뷔할 수 있었지만, 수많은 차별과 억압을 꿋꿋하게 견뎌낸 것은 바로 재키 자신의 의지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늘 좋은 플레이를 보여주었던 것은 동료 선수들과 팬들의 차가운 마음도 녹일 수 있었던 뜨거운 열정이 바탕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강인한 의지와 정신을 기려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베이브 루스가 야구를 바꿨지만, 재키 로빈슨은 미국을 바꿨다.' 한 때 뉴욕
타임스 지는 그를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는 결코 외롭지 않습니다. 메이저리그의 수많은
유색인종 선수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훌륭한 플레이로 세계 베이스볼 팬의 환호를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바로 그의 뒤를 이었던 윌리
메이스, 로베르토 클레멘테 등의 선수는 위인전을 펼쳐내도 모자랄 선수가 되어 명예의 전당에 들었습니다. 4월 15일, 모든 야구팬과
관계자들은 그에게 존경의 인사를 보냅니다.

  초록빛 자연과 푸른 하늘과 하나뿐인 인간의 것 지구 안에서 아직 인종차별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멀리 태평양 건너갈 것도 없이 당장
우리 주변에서도 심심찮게 이런 소리가 들립니다. KBL의 귀화 혼혈선수 차별을 보면서 지금이 어느 시대인지 황급히 폰을 꺼내보기도
합니다. 21세기 민주주의 국가에서 아직도 이해가 안가는 행동들이 보이고 있습니다. 저는 군시절에 가깝게 어울린 흑인 친구와
히스패닉 친구가 있었습니다. 전역 후 그 친구들과 함께 찾아간 감자탕집에서 저는 검둥이 운운하는 작자들과 액션을 벌여야 했습니다.
주둥이로는 피부가 검은 이들을 검둥이라 매도하지만 정작 자신의 머리와 마음 속이 새까만 것을 모르는 이들이 있습니다. 박멸해야
합니다. 지구와 세상이 아름답게 남아있어야 그랜다이저도 지켜줄 겁니다. 지구인들 하는 짓거리가 UFO군단 하는 짓이랑 별 차이
없으면 안됩니다. 필리핀에서 온 사람이 한국인이 되었는데 국회의원 되면 안되는 이유가 인종이어선 안되죠.
한국계 미국인이 상원의원 되었을 때는 뉴스에 다큐에 위인전까지 내 줄 기세더니 이제와서 뭔 짓인가 싶습니다. 주변에 그런 작자들
있으면 최선을 다해 때려줍시다.

  재키 로빈슨 데이를 기리며 적어봅니다.


P.S. - 현역 메이저리거로서 42번을 달고 있는 마리아노 리베라는 97년 영구결번이 결정되기 이전에 42번을 달았습니다. 때문에 리베라는
       유일한 42번이자, 마지막 42번 선수가 됩니다. 양키스의 영구결번 42번은 로빈슨과 리베라가 공유하게 되겠지요.

P.S. 2 - 메이저 최강 2루수!! 로빈슨 카노는 그 아버지가 재키 로빈슨을 존경하여 이름을 로빈슨으로 지었습니다. 42번이 영구결번이 되어
       그는 번호를 뒤집은 24번을 달고 있습니다. 재키 로빈슨 데이 경기전 기념행사에서 환하게 웃으며 재키의 미망인과 포옹한 카노의
       모습이 보기가 좋습니다.

P.S. 3 - 로빈슨 데이를 만든 데에는 홈런왕 켄 그리피 주니어의 공도 컸습니다. 그가 재키 로빈슨 데이에 42번을 달고 싶다고 버드
            셀릭 커미셔너에게 요청한 것을 시작으로 각 구단에서 흑인 선수 1명이 42번을 달다가, 이후 모든 선수가 42번을 달도록 확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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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4/17 06:43
수정 아이콘
좋은글 잘봤습니다

사람을 싫어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피부색은 그중 하나가 아니다. .

참으로 가슴깊이 새길말입니다

언제부터인가 대한민국에 알게 모르게 유색인종 특히 동남아시아인 차별이
극심해지는걸보면서... .

향후 10년안에 농촌의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

참...걱정이 많네요.....
po불곰wer
12/04/17 07:12
수정 아이콘
역시 우주의 진리는 42..... 뽀틔투... 였군요.

피 위 리즈라는 분도 참 멋진 분입니다. [m]
12/04/17 07:54
수정 아이콘
감동적인 글입니다.

도서관에서 공부하다 눈물흘리며 읽었어요.(부끄러...)


비록 우리가 사는 세상이 완벽하지 않다해도, 유토피아는 진정 꿈속에서나 있는 개념이라 해도
역사는 나아가고 보다 '깨끗한' 사회를 이룰 수 있다 믿고 그를 위한 한걸음이 되고 싶습니다.

킹목사의 연설이 떠오르네요.
하야로비
12/04/17 10:42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몇가지만 첨부하자면...

1. 선구자 브랜치 리키, 그가 메이저리그에서 뛸 흑인선수를 찾을때, '가장 잘하는 선수'가 아니라 가장 '심지가 곧고 어떠한 모욕도 참아낼 수 있는 선수'를 찾아달라고 했습니다.
2. 자신의 사무실로 재키 로빈슨을 데려온 그는, 갑자기 야구 방망이를 들고 로빈슨의 머리를 툭툭 때립니다. 그리고 재키 로빈슨에게 말했습니다. "이것이 지금부터 자네가 겪을 일이네. 야구선수로 뛰는 동안 어떠한 문제도 일으키지 않겠다고 약속할 수 있겠는가?" 잠시 고민했던 로빈슨은 말했습니다. "네" 그리고 재키 로빈슨은 마지막까지 그 약속을 지켰습니다.
3. 재키 로빈슨은 만능스포츠맨이었으며, 베이스볼, 육상, 풋볼, 농구, 수영, 테니스를 모두 잘 했고 그 중 가장 못한 게 야구였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결국 야구를 택한 것은, '에브리데이 스포츠'에서 유색인종이 뛰는 것이야말로 인종차별에 대한 가장 강한 도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4. 선수로서 은퇴한 후 재키 로빈슨은 지도자가 되기를 원했지만, 어느 구단도 그에게 길을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아직 야구계는 '흑인선수'까지는 허용했지만 백인들을 가르치고 이끄는 '흑인지도자'는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5. 그는 말년에 병으로 많이 고생하다 세상을 떠났는데, 선수시절 받은 극심한 스트레스가 그 원인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6. 586홈런을 때리고 이후 최초의 흑인 감독이 된 프랭크 로빈슨, 최초의 히스패닉 선수인 로베르트 클레멘테, 이 둘은 재키 로빈슨과는 달리 싸움꾼이었고 인종적인 이유로 가해지는 어떠한 부당한 대우에도 결코 참지 않고 맞서 싸웠습니다. 그러나 이 역시 로빈슨이 열어놓은 새로운 시대가 왔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죠. 로베르트 클레멘테는 정확히 3000안타를 친 후 중남미 대지진 구호물품을 실은 비행기를 타고 니카라과로 떠났고 (부패한 관리들이 자신이 보낸 물품들을 빼돌린다는 소식에 격분해 직접 가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비행기가 추락하며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루크레티아
12/04/17 13:09
수정 아이콘
오늘자 네이버의 김형준 기자 칼럼에 보면 '클레멘테가 재키 로빈슨을 밀어내나?' 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물론 히스패닉 선수들의 최고의 우상이자 메이저리그의 완전체인 클레멘테도 기릴만한 선수이긴 하지만, 메이저리그 사무국의 답변에 더 무게가 실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더군요.

'그 클레멘테도 결국엔 로빈슨이 열어놓은 문을 통해 들어왔다.'
ReadyMade
12/04/17 13:38
수정 아이콘
PGR처럼 다방면에서 이렇게 좋은 글이 쏟아지는 커뮤니티는 없을 것 같아요. 정말 잘 봤고 추천날리고 갑니다.

p.s 아내분도 야구 좋아하시나보네요. 미래의 제 아내도 그런 사람이기를.. 크크
양정인
12/04/17 15:05
수정 아이콘
우연히 추신수 선수의 경기를 보다가 모든 선수들이 백넘버 42번을 달고있길래 뭔 의미가 있는 것인가 했는데...
야구에 대해서 몰랐던 새로운 것을 알게되서 기분이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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