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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2/02/09 14:34:25
Name nickyo
Subject [일반] 동쪽의 아름다운 왕국이야기 [본격 happyend님 따라하기]

1.

먼 옛날, 동쪽 바다에는 Kingdom of Goah 라는 국가가 있었습니다. 귀족 왕정체제의 이 국가는 여타 중세국가처럼 신분제가 뚜렷한 나라였지요. 특히 이 나라의 신분체제는 '영토'를 기준으로 신분에 따른 주거권을 구별해 놓았습니다. 왕성에서부터 가까운 마을을 '높은도시'라고 하여 귀족들만이 살게 하였고, 그 아래를 '낮은도시'라고 하여 평민이 살게 하였지요. 또한 그 '낮은도시'의 변두리를 일컬어 '변두리의 마을'이라고 칭했습니다. 왕성과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그들의 주권은 땅으로 떨어지고 삶의 수준이 하락했지요. 이런 엄격한 신분제를 유지함과 동시에 이 왕국은 '미'를 중시하였는데요. 그 당시의 미적 가치란 곧 품격이며 신분의 명시였지요. 따라서 이 왕국의 왕은 높은도시에 가까워 질 수록 완벽한 치안과 깨끗한 거리를 조성하려 했습니다. 단 하나의 오점도 없고, 필요없는 것따위 남아있지 않은 곳. 그곳이 바로 왕이 꿈꾸는 높은도시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사회는 아무리 '더러움'을 지우려 해도 그것을 없앨수는 없었지요. 왕 또한 똥을 싸야했고, 쓰레기를 버려야 했으니까요. 그래서 그 국가에는 변두리 마을 바깥에 '빈민촌'이 생기고 맙니다. 도시의 모든 더러움을 바깥으로 배출하면서, 오물들의 매립지가 생겼고 사회에서 도태된 자들은 그 곳에 삶을 꾸릴 수 밖에 없게 된 것이지요. 그렇기에 이 왕국은 아주 보기드문 모습을 갖추게 됩니다. 국가의 한 쪽이 쓰레기로 가득차 버린것이죠. 악취와, 매캐한 연기와, 회색빛 땅덩이가 이어져있는 쓰레기산. 그것을 귀족들은 언젠가부터 [회색빛 종착지]라고 불렀습니다. 삶의 끝자락에서 떨어지는 지옥이라는 의미를 담아.







2.

그 당시 Kingdom of Goah 는 동쪽 바다 연맹국 소속이었습니다. 이 연맹국들은 매년 각 나라를 왕들이 방문하는 행사가 있었는데, 그때의 국가의 모습이 곧 연맹에서의 위상이었습니다. 마치 지금의 올림픽이나 국제행사처럼요. 그런면에서 이제까지 Goah왕국은 바닷길과 육로를 건너 멀리서 찾아오는 왕들에게 '깨끗하고 품격있는 국가'로 여겨지고 있었습니다. 하나의 오점도 남기지 않았으니까요. 그러나 멀리서 보면 그저 불타는 산 같은 '쓰레기 산'을 만일 다른 국가의 왕들이 보게된다면, 그들은 Goah왕국에 대해 더 이상 어떠한 환상도 갖지 못하겠지요. 왕은 골칫덩이인 쓰레기 산을 없앨 고민을 하였습니다. 그때 한 귀족이 건의를 하죠. "싹 다 불태워 버리면 되지 않겠습니까?"




Goah왕은 그 의견을 몹시 기뻐하며 반겼다고 합니다. 처음부터 '필요없는 것'에 대해 이상하리만치 엄격한 그 국가는, 쓰레기 산에 사는 사람들이 전혀 신경쓰이지 않았던 것이죠. 추후에 겨우 그 쓰레기 산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때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3일 밤과 낮 해가 지지않은 것처럼 영원히 타오르는 쓰레기 산은 그야말로 불 지옥이었다고. 많은 사람들이 타 죽고 울부짖으며 변두리 마을로 연결된 성문을 두드렸지만 단단한 철로 된 성문은 그 앞에 불타 죽은 시체가 산이 되어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고. 그러나 귀족들은 그렇게 사람들이 불타죽으며 비명을 지르고 피를 토하는 그 순간에도 웃으며 술을 마시고, 밤하늘이 밝은 것을 커텐으로 가리며 잠을 청했다고. 그렇게 Goah는 깨끗함을 유지합니다. 세계의 모든 귀족들과 왕은 Goah의 완벽하리만치 아름다운 모습에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하네요.






3.


이렇게 Goah왕국은 '격리사회'의 성공적인 모델로 각광받았습니다. 동쪽 바다에서 가장 아름다운 국가란 칭호를 얻었지요. 그러나 이런 Goah왕국에도 시대를 바꿀 인재는 있었습니다. 귀족으로 태어나 평민과 쓰레기 산을 오가던 그 소년은, 지금의 왕국이 쓰레기산보다 더 심한 악취를 풍기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는 쓰레기산이 타오르는 모습을 보며 피가 터지는 줄도 모른 채 입을 악물었다고 합니다. 새어나오는 비명을 막기 위해서. 그저 지도위에 쓰레기 산이라고 적혀있는 것을 지우개로 지우듯 하는 왕국의 모습을 보며, 지도위에 사람은 없다고 오열했습니다. 결국 그는 이 세상을 바꾸고 말겠다는 자유의 결심을 합니다. 그가 성인이 되었을 때 더 이상 이러한 행태를 참을수가 없었고 혁명가가 되어 이 나라를 바꾸겠다고 일어선 것이지요. 엄격한 신분제의 철폐와, 주거구역의 자유, 평등한 인간을 외치면서요.



"불필요한 것을 도태시킨 세상에 행복따윈 다가오지 않아!" "이 곳에 자유는 없다!"



그의 캐치프레이즈는 쓰레기 산에서부터 점점 빠르게, 그리고 넓게 번져갔습니다. 귀족들은 그러한 모습에 여전히 '귀족으로 태어나지 못한 저들이 잘못'이라며 와인을 머금었으나, 변두리 마을과 쓰레기 산의 사람들은 이러한 귀족사회에 심한 염증과 고통을 겪고 있었죠. 결국 그들은 스스로 성문을 열어 혁명을 맞이했습니다. 낮은마을과 높은도시, 그리고 왕성까지 귀족과 같은 붉은 피를 흘리며 혁명은 번져나갔고, 그 피는 온 도시에 흐르는 하천을 붉게 만들 만큼이나 치열하고 끔찍했다고 합니다. 혁명의 끝트머리에서 왕은 살려달라며 온갖 오물을 쏟아내었지만, 혁명군에 의해 베인 목에서는 똑같은 붉은 피가 나왔다고 합니다. 이렇게 많은 생명의 희생 끝에 혁명은 성공했고 Goah왕국은 무너지게 됩니다. 우리사회에 나타나는 모든 오점과, 조금 운이없었을수도, 능력이 없었을수도, 태어날 때 가진게 없었을수도 있었던 많은 사람들을 불태우라고 지시했던 Goah는 결국 그러한 오점에 의해 무너지게 된 것이죠.






4.


대한민국은 '격리사회'의 표본입니다. 1950부터 2010년대까지 우리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격리해가며 성장해왔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살아올 수 있는 방법이었어요. 선택지가 없었지요. 세계는 이미 자본의 사회였기에. 그래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못 사는 사람을 배제하고, 이기지 못한 사람을 도태시키고, 사람들에게 멈추지 않기위한 채찍질을 반복하고. 성장에 필요없다고 생각되는, 이득에 의미가 없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전부 배제하였습니다. 그렇게 50년이 지난 지금, 절대적 빈곤의 해소를 이뤄내었으나 경제적으로는 대기업을 국가에서 지원하고 커넥션을 만들며 거대경제부흥을 일궈내었으나, 근 10년간 가계소득 증가율은 1.6%인데 반해 물가성장율은 매년 2~5%를 찍고, 기업수익률은 19.6%를 찍는 요상한 국가가 되었습니다. 기업은 부자가되고 시민은 거지가 된 나라. 양극화의 극단을 달리는 나라. 무한 경쟁의 나라. 겉이 번드르르 한 동남아시아라는 별명이 잘 어울리겠네요.



이는 비단 경제뿐만이 아닙니다. 학생들또한 이 '규칙'을 피해갈 수 없었어요. 그들에게 '여유'나 '놀이'는 일종의 죄악인 것처럼 여겨집니다. 1980,90년대에는 소설과 만화를, 지금은 게임을 모든 문제의 원인이며 학생의 놀이문화에도 오로지 생산성과 효율의 의미를 부여하려 합니다. 그리고 규제가 들어가고, 무언가를 격리시키려 하지요. 오로지 발전을 위해 필요없는 것을 죄로 여기게 하는 것, 어쩌면 우리는 이미 이러한 가치관에 세뇌가 되어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자주적으로 경쟁하고, 자주적으로 상대를 도태시키고, 그것을 당연한 룰로 생각하는지도 모르지요. 절대적 빈곤을 해결하면서 더 이상 예전처럼 모든것을 버리고, 지우고, 격리하며 살 필요가 없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우린 조금 더 많은 것을 위해, 조금 더 큰 욕심을 위해 주저없이 달립니다. 그렇게 배웠지요.





물론 이러한 시스템의 긍정적효과는 굉장합니다. 한강의 기적이라 흔히 불리는 성과와, 그 동안 피땀흘린 어른들의 세월이 그것을 증명해주지요. 그러나 그 엄청난 효율은 마약처럼 사회를 잠식했고, 결국 우리는 계속 극단만을 위해 스스로를 깎고, 또 깎아 날카롭게 만듭니다. 그것이 쉽게 부러질 수도 있음을 모르는 채. 칼 날의 끝은 점점 좁아져감에도 불구하고. 최근 게임규제의 행태만을 보아도 그렇습니다. 지금 이 도시가 쓸모없는 것들에 대해 얼마나 잔인해 질 수 있는지. 도태하는 자가 나올 수 밖에 없는 사회의 룰 안에서 얼마나 그들을 잔인하게 몰아낼 수 있는지.




그러나 쓸모없는 것을 배제한 곳에 행복은 없습니다. 격리를 통한, 차별을 통한 효율에 자유는 없습니다. 그저 자유처럼 보이는 강제된 객관식 선택지만이 보일 뿐이지요. 왕정체제가 흥했던 시대완 다르게 지금은 지배체제와 사회구조가 혁명이란 것 자체를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결국 Goah왕국처럼 쓰레기들의 반란과 혁명을 기대하기는 어렵겠지요. 우리는 의식적으로라도,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이제까지 지녀온 선택과 집중, 차별과 격리에 대한 방향성을 재고해야 하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점점 낙오자가 늘고 스스로 생명을 끊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여유를 상실한 이 시대를 끝내야하는것이 아닐까 하고요. 우리는 신분제도, 쓰레기산도 없는 곳에 살지만 그것만큼이나 여러가지에 붙들려 쫒기고 있으니까요. 우리는 정말, 우리가 선택할 자유를 갖고, 행동한 만큼에 가까운 정당한 권리를 누리고 살고있을까요?





5.



이런 시대에도 아이는 태어납니다.
내가 태어난 이 국가를 사랑하냐는 말에 당당히 웃으며 '그럼, 내가 자란 곳인걸'하고 말할 수 있도록.
이 끝없는 추격을 우리가 끝내야하지 않을까하고 생각해 봅니다.
누군가가 오점이 될 수 밖에 없는 시대에 종말을 고하는 것은, 아마도 오점으로 여겨진 '아마추어같은' 사람들이 아닐까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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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티레브
12/02/09 14:41
수정 아이콘
10년뒤 몸이 참 잘 늘어나는 한 밀짚모자 소년이 돛단배를 타고 그곳을 떠나는데 ...
12/02/09 14:46
수정 아이콘
어디서 많이 본 내용이다 했는데 크크크크
Monde Grano
12/02/09 14:48
수정 아이콘
국적이라는 신분제도와 후진국이라는 쓰레기산을 만들어 놓고는 '내 나라 밖의 일'로 신경을 끊어버리는 것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모든 선진국의 공통점이지요.
12/02/09 15:00
수정 아이콘
쓰고나니 happyend님의 위엄만 깨닫고갑니다..
몽키.D.루피
12/02/09 16:30
수정 아이콘
원피스가 정신없는 소년만화지만 자세히 보면 다분히 정치색이 강하죠. 보수, 진보 같은 같은 이념적 정치색이라기보단 인권, 반전, 자유.. 뭐 이런 쪽 입니다. 고아 왕국 뿐만아니라 최근 에피인 어인섬도 질질 끌면서 최악의 에피라는 오명을 둘러썼지만 메시지라는 측면에서는 원피스 최고의 에피입니다.
PoeticWolf
12/02/09 18:20
수정 아이콘
억;; 원피스 한 20권까지 읽고 못 읽었는데;; 전혀 감을 못잡았어요; 럴수럴쑤 난 영감이 되어가나.. ㅜㅜ
자극받고 갑니다~여러모로 흐흐
happyend
12/02/09 19:11
수정 아이콘
게시판에 제 아이디뜬거보고 깜짝놀랐습니다....오늘 이래저래 놀랠일이 많았던터라 ...ㅠ.ㅠ
글 잘 봤습니다.과연, 일본만화는 세계관이....
저도 한때 만화를 많이 보고,집에도 잔뜩 쌓아놨는데요(창고에서 썩어갑니다.ㅠ.ㅠ별의별 희귀본들.아까비.)만화 안본지가 너무 오래되어서...이글을 보니 원피스 보고싶네요.영원한 자유인 루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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