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겹살은 맛있다. 소주랑 같이 먹으면 더 맛있다. 그래서 소주를 한 병 더 시켰다. 그러다 보면 술만 먹게 된다.
소주만 먹으면 괜찮다. 섞어먹지만 않으면 괜찮다. 중간에 물도 마셔주면 더 좋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지하철에서 깜박 잠이 들었다. 일어나보니 내려야 할 정거장에서 두 정거장 더 온 역이었다. 취한 김에 반대로 탈 생각을 못하고 지하철 역을 나가 버스정류장에 섰다. 이윽고 버스가 도착했다. 환승 메시지가 채 끝나기도 전에 내 이름이 들렸다. 맨 뒷자석에 친구놈들이 있다. 오랜만이다. 반갑다.
집까지는 15분 정도 걸렸다. 어머니와 동생은 함께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나는 가방을 내려놓고 노트북을 꺼내어 켰다. 목이 말랐다. 귤이 먹고 싶었다. 베란다 문을 열었다. 지금 날씨와 잘 어울리는 색의 캔. 맥주 5개가 있었다. 차가웠다. 섞어먹지만 않으면 괜찮다. 섞어먹지만 않으면 괜찮다...
집 안이 부산하다. 동생의 다녀오겠단 인사 소리, 드라이기 소리.
핸드폰 화면을 켜 보았다. 배터리가 7%다. 8시다. 숙취가 올라온다. 눈을 감았다.
전화기 소리가 들린다. 핸드폰은 아니다. 집 전화는 사용을 잘 안하는데. 아무도 없나, 왜 전화를 안받지. 전화기 소리가 멈췄다. 눈을 감았다.
전화기 소리가 들린다. 아까랑 같은 소리다. 몸을 일으키는데 끄응 소리가 났다. 아버지였다.
‘어... 집에 있었냐’
‘핸드폰을 잊어서 말이지’
‘혹시 가져다 줄 수 있냐 아빠가 좀 바쁜데’
아버지는 사업이 어려워질 수록 나를 어려워 하신다.
예전 ‘지식e’ 에서 아버지에 관한 주제로 된 프로그램에서 보았던 글귀가 생각난다.
‘아버지들의 슬픈 착각’.. 마음이 뭉클했지만 아버지의 얼굴을 보면 난 또 쌀쌀 맞아진다.
자주 가는 유머게시판이 두 군데가 있다. 눈을 끄는 제목이 있었다.
‘보고만 있어도 준내 행복하다’
서글픈 피아노 소리와 함께 나타난 것은 한 아이와, 그 아버지가 담긴 사진이었다. 사진의 귀퉁이에 적힌 숫자들로 언제 찍은 사진인지 알 수 있었다. 아이는 빵을 먹고 있었다. 그 탱탱한 볼안에 가득채우고도 모자랐는지 빵이 입 밖으로 한껏 삐져나와 있었다. 그리고 그걸 바라보는 주름 가득한 아버지. 굳게 닫힌 입술의 끝에는 희미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누웠던 몸을 일으켜 컴퓨터를 켰다. 아버지 회사의 이름을 검색해 보았다. 전화번호는 대부분 나와있지 않았고, 나와도 이전 번호였다. 아버지 핸드폰을 열어 회사번호를 찾아보았다.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를 않았다. 다시 구글링을 하였지만 역시 실패하였고, 아까 그 번호로 다시 전화를 걸어 보았다. 어느 여직원이 받았다.
‘네. 안녕하세요. 여기 사장님 집인데, 혹시 사장님 계신가요?’
‘아.. 핸드폰 가지러 가셨는데.’
아빠가 좀 바쁜데.. 아빠가 좀 바쁜데..
아버지 핸드폰 속 문자는 온통 돈 얘기 뿐이었다.
머리를 감는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궁색맞은 변명을 늘어놓았다.
‘미안해. 다음에는 가져다 줄게.’
나는 사랑한단 말도, 전화도 못할 것이다.
그러나 조금 따뜻해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