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는 참 흥겨운데 말이죠.
다음 얘기 쓰기엔 시간이 좀 그렇고, 그냥 넘어가자니 손은 근질거리고... pc방 와서 씁니다.
1. 이래저래 얘기를 길게 늘여놓으면 참 도움이 됩니다. 간단히, 그러니까 대충 -_-; 알고 있던 전개들을 하나하나 확인해 가면서 뭔가 이상하다 싶었던 것들도 어느 정도 알 수 있게 되거든요. 물론 파면 팔수록 궁금증만 더 생기지만요 (...) 대몽항쟁 과연 몇 편이나 갈 지... 2부는 최소 5편은 잡아뒀는데요.
2. 초원의 듣보잡, 그 출신조차도 이래저래 말이 많은 이들이 신대륙을 모르는 상황에서 어마어마한 영토를 가졌고, 가족들 끼니 걱정하던 젊은이가 세계의 지배자가 되었습니다. 참 대단하긴 해요. 기본적으로 유목민은 정주민족에 비해 전투력이 높을 수밖에 없고, 그들을 하나로 묶을 지도자가 생기면 어마어마한 힘을 가지게 되죠. 그런 이들 가운데서도 칭기즈 칸과 몽고 제국은 더 두드러집니다. 뭐 자세히 분석할 능력은 없습니다. '-')a 이에 대해 분석한 책들도 많고 지금도 계속 나오고 있죠.
3. 이래저래 찾아보면 그들은 적의 것을 받아들이는 데도 정말 열심이었습니다. 거란과 여진은 그들이 그냥 파괴만 일삼는 학살자에서 제국을 세우는 창조자로 바꾸는 데 큰 역할을 했죠. 아예 소멸됐다고 하지만 서하도 많이 흡수된 것 같고, 서하, 거란, 여진의 노하우들이 몽고 내에서 축적됐구요. 남송과 고려를 상대할 때는 이들이 단순 유목에서 정주민족으로 바뀌는, 제국을 만들어가는 도중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약탈보단 기존 중화 질서의 방식을 빌려 뜯어가는 쪽으로 가고, (...) 전략전술도 이래저래 바뀌었구요. 거대한 제국을 다스리기 위한 여러 제도가 도입됐고, 해상 교역로, 그러니까 대항해시대를 열려고 했죠. 어느 정도는 성공한 것으로 보이구요. 북중국에 비해 남송은 큰 피해를 입지 않았고, 그것들을 받아들여 이후에는 또 다른 모습이 나타납니다. 일본을 칠 때도 그랬고, 동남아시아를 칠 때도 고려와 남송 등을 적극 착취... 아니 이용해서 해군이라는, 이전이라면 예상하지 못 한 것들을 동원했죠. 뭐 실패했습니다만 -_-;
4. 그런 의미에서 참 머엉한 일이 벌어진 지역이 있었습니다.
자바를 중심으로 현 인도네시아에서 한창 커 가던 싱하사리는 어느 날 몽고의 사신을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사신의 얼굴에 철을(진짜) 바르면서 강하게 대응했죠. 이에 쿠빌라이 칸은 1293년 자바로 원정을 보냅니다. 고려의 저고여 암살이 그랬듯, 몽고의 전형적인 패턴이었죠. 사신 보내고 거기서 강경 대응하고 그 대가로 공격, 멸망.
헌데 그들이 도착했을 때 싱하사리의 왕은 원정 중이라 없었습니다. 어찌해야 되나 싶어 그냥 머물러 있던 그들은 왕자 중 한 명인 위자야에게 이용당하죠. 싱하사리의 왕은 쿠테타로 죽고, 위자야는 자기 일을 이루고는 몽고군을 내다 버립니다. (...) 낙동강 오리알이 된 몽고군은 철수하죠. 하도 상황이 막장이라 지휘관이 처벌도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위자야 왕자는 인도네시아 최후의 제국이라는 마자파히트 왕국을 세우죠.
~('=' )~ 참 여기저기 들쑤신 몽고, 각 지역에서 참 생소한 일들을 겪었고, 항복한대놓고 37년 동안 항복하지 않은 고려도 그랬겠지만 -_-; 여기서의 일은 참 황당했겠습니다.
출처는 요기 :
http://hyukjunseo.egloos.com/3170319
5. 뭐 그래도 인구수도 적고, 오래 뿌리내릴 만한 문화력도 없는 상황에서 오랜 지배는 불가능했죠. 땅이 넓은만큼 자기들 사이의 내분을 조정하기는 더 힘들었구요. 100년을 끈 원 제국이었습니다만, 그 이상은 힘들었을 겁니다. 전 그래서 중국화 됐으면서도 자기네 문화도 잘 조화시킨 청을 더 높게 봅니다.
6. 다시 고려로 돌아가서, 참 어려워요. 강화도로 천도하고 버티기만 한 건 분명 문제지만, 그렇다고 마냥 공물 달라는 거 다 주고 왕 입조해서 항복하는 게 대안이 됐을 지, 어떻게 해야 막을 수 있었을 지, 이런 문제가 참 걸리죠. 어찌 보면 조선 말과도 참 닮았습니다. 군사력으로도, 외교로도 참 힘든 상황, 대체 어떻게 벗어나야 될 지 모르는 상황, 욕 할 건 욕 해야겠지만 대체 어떻게 했으면 고려가 더 나은 결과를 맞았을 지 알 수 없죠. 모든 결과를 다 알고 있음에도 훈수 두기가 참 힘듭니다. 어쨌건 고려가 나름 대접을 받은 건 죽어도 항복 안 한 것 때문도 크니까요. 원종이 참 줄을 잘 선 것도 크지만요. 욕은 해야겠는데 그렇다고 대안은 말 할 수 없고, 외환은 정말 최악이었고, 내우도 극에 달했고, 누가 어디까지 잘 했다 해야 될 지, 그렇다고 몽고에 몸도 마음도 바치라고 해야 되는 건지 -_-; 하아...
7. 올해 들어 슬슬 정치적 얘기를 꺼내고 있는데... 최씨정권, 나아가서 무신정권에 대한 얘기도 한 편쯤 할애해 얘기할 것 같습니다. 무인이 통치한다는 뭔가 다른 모습, 죽어도 항복하지 않는 자주성 그런 거 외에 현대에 대입할 수 있는 게 보이거든요. 분명 그들은 약자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집권한 후에는 오히려 더 막장이 됐죠. 약자가 기득권이 된다 한들 또 다른 강자가 되는 것일 뿐, 그리고 그들이 뭔가 다른 담론을 가지지 않고 안티에만 머무르는 집단인 이상 대안이 되지 못 한다... 이런 정도일까요? 하지만 절대 잊으면 안 되는 건, 그 안티가 생기고 커 가는 모순을 만든 건 기존의 기득권이라는 거겠죠.
뭐 역사는 기득권의 모순이 생기고 다른 세력이 그 모순을 고치면서 기득권이 되고 또 다른 모순을 낳는 반복이겠죠.
다만 최씨정권은 그 모순을 고칠 생각도 없어 보입니다. 그저 자기들 밥그릇만 챙겼죠. 몽고의 침략이라는 외적인 영향이 없다 해도 이들이 얼마나 갔을지, 나라 꼴이 좀 제대로 돌아갔을지는 의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고려 이후 최악의 기득권은 이들 무신정권이예요. -_-a
8. 그럼에도 그렇게 오래 버텼다는 사실을 무시할 순 없죠. 특이한 점은, 수많은 반란이 일어났음에도 몽고에 투항한 이들은 극히 적었다는 것입니다. 북쪽도 그렇고 경상, 전라, 충청 어느 도든 기존 정권을 대체한다는 명분으로 몽고의 힘을 빌렸으면 대몽항쟁은 전혀 다른 양상으로 갔을 겁니다. 고구려 부흥-_-;이니 백제 부흥이니 하는 이들이 일어났지만 이건 소수였죠. 대부분은 최씨정권도 싫지만 침략자 몽고도 싫다 이런 식이었습니다.
이 무렵에는 확실히 하나의 공동체라는, 한민족 의식이 상당히 정착된 것 같아요.
9. 한국사는 이제 어느 정도 알게 된 것 같은데, 세계사는 아직 까막눈이네요. '-'a 슬슬 세계사에 대해서도 얘기할 때가 된 것 같은데요. 뭐 그 전에 계획한 건 다 끝내야겠죠? @_@
그럼, 행복한 설 연휴 되시기 빕니다 ^_^) 내일도 모레도 글 쓸 테니 새해 인사는 나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