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오랫만이다. 생각보다 오랫만에 모였네, 일단 앉아라.
많이 기다렸냐고? 아니 별로, 아주그냥 오랫만에 비가 주룩주룩 오는거 구경한다고 시간가는줄도 몰랐다야.
일월에 무슨 비가 이렇게 내리냐, 완전 장맛비잖아.
헐, 뭐라고? 진짜? 걔가 벌써 결혼했다고? 이야, 내가 좋다고 쫓아다닌게 엊그제 같은데 결혼을 했단 말이지?
참내, 벌써 우리 동창들중에 결혼한 친구가 몇명이나 되는거지?
고등학교 졸업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거 같은데, 결혼한다고 이야기도 나오고. 거 참.
야 그러지마라, 한해 지나가면서 내 나이 먹은거 누구보다 잘 아는데 제일 가까이 있는 니놈이 나한테 그렇게 새겨줘야겠냐?
그래 안다, 내나이 스물여섯. 여자들이면 벌써 시집갈 생각 해야되는거 잘 압니다요.
근데 참, 벌써 한살한살 먹어간다는게 안와닿기 시작한다.
열아홉 스물 스물하나 먹어갈때는, 한해가 다르게 '나이가 먹어간다!' 라는걸 느끼게 해주더니
스물넷에는, 아직 스물다섯이 아니라 젊은거다
스물다섯에는, 이제 이십대 중반 꺽인거니 젊은거다
스물여섯되니, 아직은 이십대 중반이니 젊은거다
라면서 스스로 위로하는거 같다. 그렇지 않냐?
야, 솔직히 우리 나이 좀 든거 맞다 임마, 뭘 아직 젊어.
우리 고등학교때 생각해봐라, 동네 형 나이가 스물 여섯 이러면, '와, 어른이다.' 아니면 '와, 형 나이 엄청 많네.' 이 생각 안했었냐
그 나이가 이제 현실이 됐단말이다. 인정할건 인정해야지
근데 내가 이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아직 고등학교 일학년, 열일곱살때랑 뭐가 달라진지 전혀 모르겠단말이지.
야, 웃긴말이긴 하지만, 난 아직도 철이 안든거 같다.
생각하는 배경이 우리 고일때랑 도대체가 뭐가 달라졌는지 모르겠단 말이지.
뭐, 또 모르지, 약간의 우선순위는 달라졌다고 말하면 할 말없지만
그때랑 생각하는거는 똑같은거 같다.
솔직히 마찬가지야 너나나나, 자슥이 어디서 어른행세 하려 그래.
어른이 뭐냐? 어렸을땐 마냥 시간이 지나면 어른이 되 있을줄 알았는데, 안그러냐?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이쁜 마누라도 생기고
시간이 지나면 번듯하고 안정적인 직장도 생기고
시간이 지나면 집도 생기고 차도 생기고
거 참 근데 어른이 되어가는데 내 주변에 생기는건 하나도 없냐.
알어 임마 노력해야 생긴다는거,
한번이라도 아가씨한테 더 말걸어봐야 마누라 후보라도 생기는거고
한자라도 더봐야지 조금 더 당당한 일거리라도 생기는거고
한푼이라도 더모아야 월세든 중고차든 생긴다는거
다 알어 임마, 굳이 니가 그렇게 타박 안해도 안다 임마.
근데 힘든걸 어쩌냐,
하루는 스물네시간이고 일주일은 칠일인데,
해야할건 스물다섯시간어치고 일주일에 토일요일은 상식적으로 좀 쉬어줘야 안되겠냐.
거 참 신님도 바쁘게 사셨는가보다. 안그냐?
이 세상 모든걸 다 만드신다고 육일동안 빡세게 일하셨으면 좀 한 십일쯤 푹 쉬어주지
내가 신이었으면 그랬을꺼야. 그래서 적어도 달력에 반정도는 빨간색으로 색칠해 드려야지 이 바쁜 현대인들의 능률도 좀 높아질텐데.
그래그래 개소리 맞다.
내 별명이 진돗갠데 개소리좀 하면 어때.
그래, 이제 내 주변 사람들도 한명 두명 어른이 되어가는구나,
이런 개소리도 같이 받아쳐주지 못하고 뭐라하는걸 보면,
한잔 받어 임마, 우리도 언젠가는 '도대체가 정의 할 수 없는' 어른이 되 있지 않겠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