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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1/01 06:24
이건 진실을 거의 전혀 모르니 언급하기가 매우 조심스럽네요. 아래에서 능력자분들의 많은 댓글을 기대합니다 :)
다만 원글에서 말씀하신 근거들이 대부분 사실이라는 가정하에, 설령 베트남인들이 자국민끼리 학살을 했더라도, 외국인이 죽였다고 하면 조금 마음이 편할 수 있겠지요. 온갖 패륜 범죄가 벌어질 때 "그건 우리탓이 아니라 저쪽 애들 탓임"이라고 단순화하는 것은 꽤나 위험한 것이지만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 또한 사실이니 말이죠. 감정은 감정대로 사실은 사실대로 다루면 문제가 없겠지만, 세상일이 어디 그런가요. 우리나라 위안부 문제도, 그 위안부들 중에서 강제 징용이 아니었던 사람이 일부 있었고, 일본에서는 그 사실을 부풀려서 "저 할머니들 그때는 다 돈벌려고 온 사람들임" 이라고 아직도 우기는 것도 같은 맥락일 듯 합니다. 뭔가 횡설수설인 듯한 제 댓글!
12/01/01 07:57
베트남에 사과를 한건 김대중 대통령이고 노무현대통령은 묵념만했습니다.
그리고 베트남측에서 했다는 말은 한국 보수층이 주장한 말입니다
12/01/01 08:15
베트남과 한국의 이데올로기, 프로파간다가 얽히고 섥힌 문제인 것 같습니다.
파월 한국군의 용맹으로 국위를 선양하고, 그 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행위가 드러나고, 다시 그것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언젠가 사실이 드러나겠지요.
12/01/01 08:16
한국전쟁 당시에도 국인에 의한 민간인 학살은 엄청났습니다. 전선이 왔다 갔다라는 정신없는 와중에 간첩니다. 혹은 어떤 마을이 북한과 내통하고있다라는 제보만 있으면(빨치산과 엮어진다면 마을 하나 사라지는건...) 사실 확인하고 어떤 조치를 취하기보다 총구를 향하는게 더 빠르고 편한 방법이었죠. 이러한 학살이 북쪽에서도 행해지면서 전선의 이동에따라 북한군의 보복도 +@ 되면서 군인입장에선 혹은 개인적 사병조직에선 마을 하나 없애버리고 북한군이 죽였다!! 라고 하기 편한 세상이었습니다. - 물론 우리 군인쪽이 나쁘고 북한쪽에선 한점 의혹도 없다는건 아닙니다.-
베트남도 우리나라와 비슷한 처지속에서 일어난 학살들이 많이있었겟죠. 베트남 입장에선(우리나라도 마찬가지 입니다.) 학살들의 원인을 일일이 밝혀서 이쪽 마을은 한국군이 여긴 베트남군이 미군이... 일일이 따져봐야 남는게 없을테고 단지 외국에서 온 군인놈들이 학살 했다라고 생각하도록 두는게(진실은 모르겠지만...) 가장 편한일이겠죠. 잠오는 와중이라 리플이 요점 정리안되지만... 전쟁중엔 별일이 다있었다...라는게 요점이 되겠네요, 그 별일이 아군에 의한 학살이라는게 슬프지만 ㅠ
12/01/01 09:01
피의자의 입장에 의한 역사 다시쓰기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겠죠. 능력자 분 보다 당사자 분들의 이야기가 듣고 싶습니다. 정녕 우리의 아버지들은 훈장처럼 베트콩의 (혹은 베트남인들의) 귀를 걸고 다니셨을까요?
12/01/01 09:46
저희 큰아버지가 월남 파병되셨고, 당시 장교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총상으로 상이군인되어서 그후 국가유공자가 되셨죠.
하지만 단한번도 그런건 물어본 적도 없네요. 애초에 좀 사는거리가 멀어 자주 만나뵙는 분이 아닌데다가, 몸에 총상 입어 다리를 저는 그 외상 그이상의 내상이 분명 있을터인데, 만약 제가 친아버지처럼 친한 사이였다 해도 그걸 묻기는 쉽지 않을 거 같네요. 하지만 만약 묻는다면 분명 그렇게 대답하실걸요? 내가 책임지는 병사들이 죽어가고 있고 또 죽어갈지도 모르는 상황, 승리를 위한 명확한 목표따윈 존재하지도 않고 누가 베트남군이고 누가 민간인인지 구별도 안되는 그 아비규환의 지옥 속에서 인간으로서 차마 지우고 싶은 모든 경험을 했다. 라고요. 개인적 사견으로는 베트남 게릴라 전술 자체가 사람을 의심병의 극악으로 모는 전술이었다 생각합니다. 원죄 따지고 들어간다면야 애초에 남의 나라 왜 쳐들어갔냐부터 시작해서 한도 끝도 없겠지만, 서로 이기기 위한 최선의 방책을 선택한 순간 이미 그런 일을 야기한 원인은 양측 모두에게 있다는 겁니다. 그냥 전쟁이 낳은 비극이었다는 거죠. 그 민간인 학살들이 단순히 한국군인은 인성이 매몰되서 그런건 아니었을테죠. 잘못한게 아니었다라고 합리화 하는 말은 아닙니다. 멀리 갈것도 없잖아요. 지금 이순간이라도 김정은이 빡돌아서 미친척하고 단추 눌러서 서울 원자폭격 당한뒤, 생화학 무기 쫘악 뿌리고, 특수전 부대 우리나라 중후방에 침투시켜서 게릴라 전 한다 생각하면, 누가 간첩이래 이런 소리 들으면, 정말 간첩인지 꼼꼼하게 조사하고 평시처럼 재판까지 연다음에 처벌 여부 결정할 인내심이 얼마나 있을까요. 아마 내 가족이 죽고, 내 동료가 죽고 이런거에 자꾸 극한으로 몰리면 그런 간첩용의자는 그냥 즉결총살을 선호하는 사람 분명 있을게 뻔합니다. 전쟁 그 자체가 비극인 거지요. 인간은 극한의 상황에서는 상당히 모든 엽기적인 일에 대해서도 면역력이 생기니 그 당시엔 그걸 무감각하게 저지를 가능성도 크죠. 물론 그 후 정신적 외상이 평생가느냐는 별문제지만.. 여튼 어떻하겠습니까. 어쨌든 그런 학살 자체가 없었던 일이 아니니까 우리로서도 분명 고개숙여 마땅할 일이겠죠. 눈시비비님은 역사학도시니 당연히 말씀하신 대로 문제의식을 가지셔야 겠지만.. 저같은 실제 그런 친척을 둔 사람에겐, 별로 언급하고 싶지 않고 덮어두는게 제일일 듯한 느낌이 크네요. 특히 정치적인 개념으로 볼때는, 몇명인게 중요한게 아니고 잘못을 했다라는 점과 그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한다. 그게 가장 중요했을 거 같습니다. 실제 그렇게 하였고, 베트남은 그에 대해 쿨하게 용서하는 모양새를 취했죠. 현재의 수교를 위해서도 서로 윈윈하는 관계를 취한 것이죠. 뭐.. 역사에서 현실 정치적인 필요에 의해서 덮어두는 편이 더 좋아서 그렇게 역사에서 누락된 것이 어디 한두개일까요. :)
12/01/02 01:35
베트민(비엣민)이란 게 越南獨立同盟會를 줄여서 越盟 두 글자만 발음한 것이고, 프랑스와 싸울 때 이미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북베트남을 그 이름 그대로 월맹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았지요. 베트콩은 남베트남 쪽에서 나중에 따로 만들어진 조직이라서, 스스로 베트콩(越共)이라는 이름을 썼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베트민(越盟)이라는 명칭으로 활동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미군의 북폭 전에는 越盟이 (사실상 越共을 지원하기는 했지만) 교전당사자로 나서지는 않고 있었고, 남베트남 정부와 越共 사이의 문제는 어디까지나 내부문제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었으니까요.
12/01/01 10:47
사학과 수업에서 베트남전쟁때 한국군이 민간인학살한건 전쟁상황에서 어쩔수없는 일이었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결과론적으로만 보면 민간인학살을 한것이 맞다라는 교수님 말씀이 생각나네요
12/01/01 10:58
한국군이 학살을 자행한 곳에 세워진 위령비에서 참배도 해보고, 그곳에 있는 베트남 아이들도 만나고 와본 사람으로서 짤막하게 댓글을 달아야 할 것 같네요. 글을 잘 써주셔서 할 말이 별로 없긴 하지만요. 우선 중요한 것은 한국군에 의해서 양민학살이 자행된 것은 명백한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어느정도의 팩트의 가감이 있을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이미 밝혀진 부분에 대해서는 인정을 해야겠죠.
하지만 문제는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우리가 참전까지 했던 베트남 전쟁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도 못할 뿐더러 이렇다할 문제의식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위안부 문제에 관심 없는 대부분의 일본 국민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신다면 똑같이 한국 국민이 이런 태도를 용서하면 안되는게 맞지 않을까요. (물론 두 사안은 다른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뒤에가서 다루도록 할게요.) 그래서 일단, 위에서 그냥 묻어두는게 낫다는 입장은 전적으로 가해자 입장에서의 사고방식이라 저는 일단 반대입니다. 한홍구 교수도 이런 말을 하지 않습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미국이나 일본이 행한 노근리, 제암리 학살사건에 대해서는 그토록 분노하면서 우리들이 저지른 만보산 사건이나 베트남에서의 양민학살은 묵인하냐고. 분명 베트남에서의 양민 학살이 노근리나 제암리 학살 사건에 비해 규모로나 잔혹성으로나 뒤쳐지지 않거든요. 자신이 가한 행위에 대한 진실을 외면하면서 당한 것에 대해서 사과를 받아 내려는 태도는 모순인 것이죠. 하지만 또 중요하게 치고 들어오는게 현재 베트남 정부의 태도입니다. 위안부 문제와 다른 점이 여기서 발생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베트남 가서 전쟁 피해자들과 만나봤을 때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우리는 일제 시대때 자행된 만행들, 한국 전쟁 당시의 수 많은 양민학살 그리고 군부 독재때 희생된 사람들에 대해서 억울함을 느끼고 분개하는데 그들은 베트남 전쟁 때 받은 상처들을 이미 다 용서하고 지나가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한일협정 당시 반발을 생각해보면, 미국과의 꾸준한 무역을 하고 있는 베트남의 태도는 잘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것에도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개인적인 추론이고 꽤 복잡한 설명을 요하기 때문에 생략하겠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묻어버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시는 분들 입장도 이해가 갑니다. 그것은 단순히 우리의 악행을 알려봤자 뭐하냐 라는 의견 보다는 피해자 가해자 양쪽 다 아픈 역사이고 피해자 역시 과거에 문제에 대해서 관심 없기 때문에 들춰낼 필요가 없다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이 사건의 피해자 (베트남) - 가해자 (한국)의 단편적인 관계가 아니라 역사적 비극이라는 상황 속에서 우리나라와 같이 피해자가 될 수도 있고 가해자가 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의 모순을 말하고 싶습니다. 결국 베트남 전쟁에 대해서 저와 반대 입장을 표명하는 분들과 토론을 해보면 근본적으로 이런 생각의 차이가 있더라고요. (물론 어느 정도 역사적 사실을 알고 합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상대에 한해서) 아, 참고로 베트남 전쟁에 대해서 좀 알고 싶으신 분들은 한홍구 교수의 대한민국史 (2권 이던가요;? 잘 기억이...) 를 참고 하시길 바랍니다.
12/01/01 11:18
에헴.. 저는 능력자도 뭣도 아니지만, 저희 아버님이.. 위에 언급됐던 해병대 청룡부대원이셨고 190기쯤 되셨다고 했는데,, 그리고 통신병 병장으로 참전하셨습니다.
가끔 제게 전쟁상황당시 얘기를 해주셨어요. 베트콩..을 순화된 표현으로 뭘로 불러야 할지 잘 모르겠어서.. 적군으로 표현하도록하겠습니다. 일단, 미군보다는 한국군이 작전의 성과를 올리기가 더 쉬웠다고 하네요.. 미군은 무식하게 들이닥쳐서 니들이 우리편이냐 아니냐 이런거도 안묻고, 진격해서 점령하는 식으로들 진행했다고 하더군요. 일단 우리는 마을(밀림에 띄엄띄엄 존재하죠..)에 가서 제일 웃어른을 찾아뵙는다고 하네요. 가서 잘 해드리고, 머리도 깎고, 의무병있으면 간단한 진료약같은것도 나눠주고, 마을의 개보수 공사같은것도 해서 환심을 샀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노랑머리 서양인들보단 검은머리 우리나라 사람들이 외모에서 위화감이 덜드는데다가, 노인 공경문화라는 유사점이 있어서 그런 방법이 먹혔다고 하네요. 그래서 좀 친해지면, 넌지시 마을사람들에게 물어본답니다.(물론 마을자체가 중립적이라는 가정하에..) 이중에 '적군'이 누구냐고,, 어디에 숨어있냐고,, 경우에 따라서 효과를 보는 경우가 있었답니다. 마을 사람전체가 어떤 정치적 성향을 가진건 아닐테니까요. 그런데 가끔씩은, 그렇게 해서 안심하고, 마을을 지나 다음 마을로 지나가는 부대 뒤에서 총을 쏘는 경우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부대원들이 죽거나 다치고 하는 경우가 생겼다고 합니다. 장교의 성향에 따라 달랐지만, 강성인 경우 그대로 뒤돌아서 마을을 전멸시켰다고 합니다. 왜냐면, 이미 신뢰를 주고, 믿었는데, 총을 쏘았다는 사실은 마을 사람들을 믿을 수가 없게됐기 때문이죠. 게다가 앞에는 적군들이 훨씬 많을 것인데, 퇴로를 차단당하면, 부대 전체가 위험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겠죠. 물론 그게 마을 전체의 의견을 대표하는 건 아니지만, 이미 신뢰를 잃었기때문에, 누가 적군이고 누가 중립인지 알수가 없게됐다고 판단을 한것이죠. 총알이 날아오고, 폭탄이 터지는데, 그걸 일일히 가서 물어볼수도 없는 노릇이니까요. 적군이 마을주민중 하나였는지 그냥 마을과는 상관없는지 알수도 없다고 합니다. 그걸 구분하기 위해 드는 비용이 그냥 이쪽에서 정책을 정하고 밀어붙이는데 필요한 비용보다 커서 그런듯 합니다. 뭐 여기까지가 저희 아버님이 이야기 하신것이고요.. 제 개인적의견은... 전쟁상황은 지금의 잣대에서 이해하기 힘든 것들이 많은 것 같아요. 법과 정의를 위해 싸우지만, 실상 가장 무시되는 현장인듯 싶네요.
12/01/01 13:01
딴건 모르겠고
우리 친척 작은 할아버지 말씀이 탄알집 모아놓는 박스(이름 기억이 안나네)를 들고 다녀야되는데 날씨도 더워죽겠는데 너무 무겁고 짜증나서 어떤 과일나무에 총 갈겨서 나무 쓰러트려서 과일도 먹고 탄알집도 버리고 했었다는 기억이.. 라고 했던 기억이..
12/01/01 17:00
단, 증언이 엇갈리는 것에 대해서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 또한 실제와는 거리가 먼 경우일 수 있을 겁니다. 한국에서의 학살 사례만 보더라도, 그 주체에 따라 완전히 다른 증언을 하는 경우도 있고, 합리화의 정도에 따라 서로 다른 진실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죠. 게다가 같은 입장에서의 사람들도 각각이 지니고 있는 과거합리화, 혹은 심리적 위축의 정도에 따라 다른 증언을 합니다. 과장도 섞여 있고 왜곡도 섞여 있고... 게다가 가장 믿을 수 없는 것이 사람의 기억인 데다가, 공황 상태에서의 기억의 편린도 고려해야 할 요소죠. 당시 따끈따끈한 증언을 바로 기록했다고 해도 그대로 믿을 수가 없는 것일진대, 시일이 지난 이후의 증언이라면 더더욱 그러할 겁니다. 전반적인 사건 얼개에 대한 증언이라면 모르겠으되 세부의 신뢰도는 그리 높게 쳐줄 수 있는 게 아니죠.
저기에서 말하는 증언이, 얼마나 검증된 증언인지, 혹은 얼마나 많은 이의 증언을 종합한 것인지, 한두 사람의 증언을 토대로 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암튼 증언의 속성이라는 것은 그렇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사실관계에 의거한 문제제기를 한다면, 그 역시 확실한 사실관계에 의거해서 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12/01/01 17:03
암튼, 숫자놀음에만 치중하는 현 상황이라면, 그만큼 해당 연구가 정체상태라는 반증이 될 수도 있겠죠(그런 의미에서 추천을...).
부족하다면 부족할 수도 있을 것이고, 왜곡되었다면 왜곡되었을 수도 있을 것이고, 새로운 진실이 드러날 수도 있을 것이고... 한국전쟁의 수많은 학살 사례가 제대로 드러나거나 검증되지 않은 것처럼(한국만 해도, 최근 미국 기밀 문서가 공개되면서 새로운 학살 사례가 공개되기도 했죠)... 해당 지역에서는 어떤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지도 알아볼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12/01/01 21:27
'정치적인 이유로, 지나간 일이니까, 서로 좋을 것 없으니까' 묻고 지나가야 한다고 운운하는 덧글은 섬뜩하군요. 게다가 여긴 민간인 학살이라는 문제에 한해서는 엄연히 가해자의 입장이었던 나라 아닙니까. 미군의 민간인 학살범죄에 관해 미국측 민간인들이 '한미관계에 불편하니 없던 일로 덮자'라고 주장한다면 가히 공분을 일으키지 않겠습니까. 그런 식으로 자국이 저지른 행위에 대해 '현실적인 이유로' 적당히 퉁치고 모른척 하는 비겁함은 세계 각국의 정부차원에서 이미 이뤄지고 있는 관행(-_-...)인데, 민간 차원에서도 아무리 그 '가해행위' 당사자들과 같은 조국을 가진 사람들이라도 똑같은 태도를 가지는게 바람직할까요? 일본제국시절 무려 70여년 전의 종군 위안부 범죄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고 피해자들은 노구를 이끌고 '우리가 다 죽으면 잊혀질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라며 절규하고 있는데, 하물며 40여년전의 베트남에서 있었던 일들은 그 땅에서 살아갔고 또 살고 있는 베트남 사람들의 골수에 각인되어 있지 않겠냐구요.
12/01/01 21:47
잘못한 걸 잘못하지 않았다고 말하자는 의미도 아니요,
이미 다 밝혀진 부분에 대해서 뭘 새로 부정하자는 의미도 아닙니다. 제주장은 그런 의미 아니었던가요? 오히려 이미 확실하게 한국군이 민간인 학살 저지른게 맞는데 숫자에 초첨을 맞출 필요가 있냐는 것이죠. 그것도 저같은 일반인의 경우 말입니다. 위안부 문제 꺼내놓으시니 드리는 말인데, 위안부 할머니들이 아직까지도 그러시는 가장 큰이유는 무엇이죠? 일본정부가 공식적으로 그에 대해 생까기 때문이잖아요. + 이미 한일수교 때 돈 줬지 않느냐 (이 문제 때문에 박정희 문제 거론되지요) 가장 중요한 건 받아들이냐, 잘못 인정하느냐 이 부분입니다. 우리가 볼때 받아들일만한 성의 있는 잘못인정과 반성이 없으니까 그런 것이잖아요. 나 잘못했어요. 죄송합니다. 이게 있으면 된다는 거죠. 배상차원은 어찌된건지 저는 잘 모르지만, 그런것도 필요하면 해야겠지요. 애초에 그리고 우리 정부에서 사과한 자체가 베트남이 경제적 요구를 하면 받아들이겠다는 의미도 포함된것 아닐까요? 제가 한말은 그런 겁니다. 나의 경우는(나 개인 한사람의 입장에선) 우리가 잘못했다. 정도로 덮어두면 족하다라는 겁니다. 그 정확한 억울한 사상자가 몇명인지, 어떤 사건은 우리가 한 것이고, 어떤 사건은 미군이 한 것이고, 혹은 어떤건 베트남 본인들이 한것인지, 그런 거 명확히 밝혀내는 건 역사학도로선 바람직할만한 문제의식이다. 역사는 최대한 사실이어야 하니까. 반면 나는 그런쪽이 전공이 아닌, 일반인이고 뭐 이런 의견이다. 라는 것이죠. 이런 말을 내가하면 로맨스 니가하면 불륜으로 받아들이시면 곤란합니다. ;;
12/01/01 22:00
지나간 일이건 말건 베트남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패전국인 한국에서 왜 이렇게 하냐구 말이죠. 한국은 패전국이고 베트남은 승전국입니다. 패전국이 승전국인양 의기양양해서 우리가 학살했으니까 우리가 책임져야 된다는 것도 곤란하다고 한답니다. 즉 한국이 승전국이었다면야 승전에 대한 어느정도의 책임을 지는것은 마땅합니다만 패전국으로써의 책음을 더이상 지는것 또한 승전국에게 모욕적인 행위라고 이야기 합니다. 이건 일본이 한국에서 책임지는것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입니다.
12/01/01 22:51
단순히 패전국 승전국의 이분법에서 해석하면 일본 역시 패전국이기 때문에 난징 학살에 대해서 사과하지 않아도 되는 논리도 가능한가요? 미국 역시 베트남 전쟁의 승전국임에도 베트남 전쟁에 대해서 반성하고 참회하는 태도를 견지해왔습니다. 어쨌거나 베트남 전쟁은 베트남 국민들의 주권을 무시한 침략 전쟁의 성격이 강했고, 수많은 민간인 학살이 자행되었으니까요. 중요한 것은 베트남 사람들의 현재 생각이 성야무인Ver 0.00님 께서 말씀하신 부분과 같다는 것 때문인데 그것에 대해서는 제가 윗 댓글에서 말했듯이 약간의 관점의 차이가 이쓸 수 있으나 우리 역시 역사적 비극의 피해자였던 입장에서 가해자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입장에서는 우선 우리의 악행에 대해서는 반성해야 한다고 봅니다. 베트남 정부가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베트남 국민이 전부 그렇게 생각하진 않을테니까요. 물론 지배적인 국민 정서상의 차이는 약간 있겠지만 우리가 한일협정을 체결했다고 국민 모두가 일본을 용서한 것은 아니잖아요.
12/01/02 00:09
논리를 교묘하게 빗나가시면서 이야기 하시는군요. 난징학살과 베트남전의 학살에 대해서 같은선상에 놓일수 없습니다. 그게 어떻게 똑같은지 한번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난징에 대해서 정부에서 계속 공식적으로 부인한 일본과 베트남전의 학살에 대해서 몇번이나 의회에서 언급한 미국과 똑같나요??
또한 그런식의 한일협정이 경우 어떻게 보면 식민지 청산의 과정으로 볼수 있습니다만 이걸 식민지 청산이라고 일본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했나요?? 절대 아닙니다. 그리고 한국쪽에서의 배상을 할 이유는 없습니다. 이유는 한국의 베트남전에 대한 전비는 한국에서 부담한 것이 아니라 미국의 필요에 의해서 부담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한국의 용병의 개념으로 투입되었습니다. 그걸 한국에서 부담해야 되다는 자체가 이상한 것입니다. 베트남이 침략전쟁의 성격이 있었다 없었나의 통킹만의 사건만 본다면 북이나 남이나 분쟁상태를 확전 시키지 않을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베트남 10000일의 전쟁을 다시한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미국이 개전초기 당시 적극적으로 개입할 의사가 있었는지 아니었는지 말이죠. 지금 님이 주장하는 바는 에치슨라인에서 한국을 제외했다고 한국을 위해 북한이 침입하는게 정당하다고 하는 종북주의자하고 똑같습니다.
12/01/02 00:40
어... 제 글을 제대로 읽고 이렇게 댓글을 다시는지 아니면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이해가 많이 부족하신지 잘 모르겠네요.
우선 난징학살과 베트남에서의 민간인 학살이 동일선상에 있다고 말한적은 없는데요? 오히려 "일본의 우익들의 태도는 정말 욕나올 정도로 막장이니까 동일선상에 놓는다는 것은 어느정도 무리가 있다고 저 역시 생각합니다. 저 예시를 든 것은 승전국 패전국 이분법이 아니라 가해자 피해자 입장에서 봐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 뿐이었습니다." 라고 저 예시를 쓴 이유를 들었는데요; 한국이 용병일 뿐이다라는 논리는, 우선 우리나라가 일본이나 대만과 같이 소규모 부대만 파견했으면 문제가 없을텐데 몇 만명 단위로 꾸준하게 파병했다면 깃발만 꼽은 것이라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는 것죠. 그것도 브라운 각서 체결 당시 박정희의 발언들 살펴보면 정말 가관인 부분들 많습니다. 예를 들자면 "미국이 어려운 틈을 타서 우리가 타산적으로 나간다면 너무 야박하지 않은가?"라는 입장을 보였는데 정말 미국이 절실해서 '불가피하게' 강압적으로 우리나라 부대를 파견한 것입니까? 웃긴건 다른 국가들에 비해서 연 인원 30만 명의 대군을 파견하면서 미국과의 교섭에서 우리가 추가적으로 얻은 것 또한 모호한 표현으로 가득찬 그 잘난 "브라운 각서"하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주권이 없나요? 강대국의 필요로 인해, 혹은 적당한 액수의 돈만 챙겨주면 자국 국민을 전쟁터로 보내고 거기에서 발생하는 책임을 회피해도 되는 것일까요? 베트남 10000일의 전쟁은 상당히 정치적 색깔을 뺀 팩트 위주의 베트남 전쟁 개설서 입니다. 거의 모든 부분이 사실, 당시 연설 내용, 인터뷰 내용에 기초하고 있고요. 행간을 읽을 필요도 없고, 700쪽 정도 되는 분량을 쭈욱 그냥 읽어나가면 되기 때문에 오독의 여지는 많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통킹만 사건만 보고 베트남 전쟁을 침략전쟁으로 보진 않습니다. 오히려 통킹만 사건이 조작이냐 아니냐에 따라서 침략전쟁이냐 아니냐를 판별하는 것 자체가 문제있다고 생각하는 주의라서요. 그냥 베트남 전쟁이 자본주의 이념을 수호하려는 전쟁이 아니라 케네디 암살 이후 존슨 대통령 취임 당시 미국의 정치적 역학 관계에 의해서 발발한 전쟁이라고 보는 것이죠. 사실 통킹만 사건과 에치슨 라인 부분에서는 무얼 말하고 싶으신지 잘 이해가 안되네요. 좀 더 구체적인 설명을 달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어떻게 이게 종북주의랑 관련지어질 수 있는지 매우 궁금하네요. 미국이 도미노 현상(공산주의 국가들과 인접한 국가들이 차례로 공산화 되는 것)을 우려하여 베트남 개입을 시작했지만 케네디 시절만 해도 베트남에서 미국군인을 직접 투입해서 전쟁을 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아니 차라리 님께서 베트남 전쟁의 역사를 어떤 식으로 공부했으며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 듣고 싶네요. 아 한일협정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을 깜빡했네요. 한일협정을 근거로 개인에 대한 보상 청구를 모두 묵살하고 한일협정을 근거로 식민지배에 대한 보상은 다 했다고 주장하는 일본 사람들에 의하면 청산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죠. 물론 애초에 그 인간들 기본적인 생각 자체가 식민지배를 통해서 한국은 더욱 발전했기 때문에 보상할 필요가 없다라는 것 때문에 청산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인데 우리가 말하는 청산과 그들이 말하는 청산의 의미 자체가 다른거죠 이 경우는. 우리 입장에서 본다면 일본은 청산 안했다고 말하는 경우도 지들이 자의적으로 청산 한 것이고 한일협정으로 청산 되었다고 말하는 것도 결국 청산한 것입니다. 추가로, 논리를 교묘히 빗겨나간다고 하셨는데. 저는 님의 주장을 최대한 핵심만 찝어서 나름대로 열심히 반박했다고 생각하는데 어떤 부분이 "교묘"한지 설명해 주셨으면 감사하겠네요. 교묘하게 핵심을 피해서 돌려말하는 토론 방식 자체를 경멸하는 사람이라서 제가 실수한 부분이 있다면 고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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