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1월 16일부로 중앙일보에서 중앙 Sunday 데스크에 있던 이정재씨를 경제부장으로 끌어올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약 한 달이 못 지난 어제, 중앙일보 1면 기사에 이정재 부장 작성으로 이헌재 전 부총리의 대담 기사가 올라왔습니다. 내용을 훑어보다 보면 재미있는 점이 몇 가지 발견되는데요
> 군사정권은 몰라도 DJ•노무현 정권까지 ‘박정희 흉내’를 냈단 말인가요.
“박정희 흉내 내기의 원조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야. 노태우 정권도 똑같이 하다가 북방 외교 하나 더했지. 김영삼 정권도 마찬가지. 개방이란 개념을 추가하긴 했지만 관리는 못했어요. DJ는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해 관심을 가졌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를 합리적•이념적 어젠다로 세팅하는 데 성공했지. 이념은 진보했지만, 방식은 박정희식 60년대 체제를 답습했어. 노무현은 서두르고 미숙했지. 그 바람에 주저앉은 거야. MB는 콘텐트와 방식까지 ‘박정희 따라하기’야.”
> MB 경제•금융 정책이 그렇게 잘못 처방됐나요.
“4대 강이 대표적이지. 올해부터 당장 수질관리 비용이 문제될 거요. 재정 적자도 해법이 없어 보이고. MB는 균형 재정 이루고 싶어하지만 대안이 잘 없어. 재정 잘 모르는 장관, 잘못된 인사를 바꾸지 못하고 그대로 가고 있거든. 이 정부의 전반적 무력함이 다 여기서 비롯됐어요.”
참고로 이 대담 제목이 “이제 박정희 흉내로는 나라경제 일굴 수 없다” 였습니다. 이쯤 되면 대놓고 현 정부 비판을 노렸다고 봐야 되겠죠.
정권 말기에 여기저기 언론에서 십자포화 얻어맞는 현상이야 문민정부 부터 국민의 정부, 참여 정부에 이르기까지 쭉 이어진 전통이다 보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습니다. 다만 막연히 가지고 있던 중앙일보 이미지와는 좀 다른 기사가 올라왔다는 데에 흥미가 생긴 김에 이정재 경제부장의 주간지 데스크, 기자시절의 기사를 찾아봤더니 꽤 재미있는 사람이더군요.
우선 중앙일보 경제파트 기자인 만큼 대기업에 우호적입니다. 이를테면 2009년에 중앙일보에 기고한 컬럼을 보면
> 백 투 더 노무현?
여당의 이른바 5대 중점 서민 대책은 노무현 정권의 ‘대기업 때리고 퍼주기식’ 서민•복지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쓸 돈은 한정돼 있고, 정책엔 우선 순위가 필요하다. 지금은 경제 위기 극복이 먼저다.
이것만 보면 역시 보수 언론의 부장 기자라는 생각이 드는데 대기업 관련 부분을 제외하고 보면 또 그런 것만도 아닙니다 부동산 관련된 방면에서는 전혀 의외의 모습이 나오는데요
> DTI를 계속 활약하게 하라
“DTI 규제 완화를 검토해보라는 정치권의 ‘언질’이 부쩍 잦아졌다”고 말했다. DTI의 손발을 묶으면 미분양은 좀 해소될지 모른다. 그러나 다른 득은 별로 없다. 대신 강남 아줌마들이 다시 활개치고, 소시민의 가계 빚은 더 늘어날 것이다. 사정 급하고 딱한 건 알겠지만 건설업체들은 정부•국회•언론에 대한 민원을 그만두라. DTI를 계속 활약하게 놔둬라.
> 집값 대책, 플랜C를 준비할 때다
두 우화의 결론은 같다. 집값이 오르면 더 죽어나는 건 서민이란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깊숙이 관여했던 전직 고위 관료는 “서민대책의 핵심은 주택”이라며 “주택정책에 실패한 정권은 결국 실패한 정권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미리미리 ‘플랜C’를 준비하는 것이다. 공급(플랜A)과 금융규제(플랜B)가 막히면 금리와 세금도 동원할 각오를 해야 한다. 집값 급등은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란 믿음을 주는 게 더 중요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어제 오늘간 다른 보수 신문에서 양도세 중과 제도 폐지를 놓고 “족쇄 풀린 강남 3구(투기과열지구 9년만에 해제)… 부동산 경기도 풀릴까” <조선일보> 라던가 “‘서울 강남-다주택자’ 봉인 해제… 시장 녹일까” <동아일보> 라던가 하는 기사 제목을 뽑아 낸 데 반해 중앙일보는 “통 큰 재건축 지원책에도 시장은 잠잠” “전셋값 2억 상승 보도자료 '거짓'” 이라는 기사를 내 놨습니다.
그리고 전공분야는 아니지만 북한 관련된 것들도 한 때 “GDP의 1%를 대북경제지원에 쓰자” 라는 얘기를 하던 중앙일보 기자인 만큼
> MB 실용외교 북한엔 왜 침묵하나
그 잘한다는 MB의 실용 외교도 북한 상대로는 작동 중지다.
남한 카드가 있어야 김정일도 대중국 협상력을 높일 수 있다. 화폐개혁 실패로 경제난에 몰린 김정일이 중국에 뭐든 헐값에 넘겨주면 어쩔건가. 그 책임을 김정일에게만 물을 건가.
이런식으로 북한에 대해 경제 지원을 멈추지 말자는 말을 에둘러 한다던가
> 서해 5도에 카지노를 짓자
카지노 건설은 다목적이다. 핵심은 중국 관광객 유치다. 카지노 손님의 절반 이상을 중국인으로 채워야 한다. 그런 뒤엔 만사형통이다. 제 아무리 김정일이라도 중국인들로 흥청대는 카지노에 대고 해안포를 쏘지는 못할 것이다.
와 같은 시쳇말로 골 때린다 (…) 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이런 칼럼도 쓰곤 합니다. 점점 흥미가 생겨 중앙일보를 계속 검색하다보니
> 국회부터 세종시로 가라
(전략) 부처 간 협의는 서로 사정을 봐주면 된다. 장관이 어려우면 차관이, 차관이 힘들면 1급이 대신 가면 된다. 국회는 다르다. 꼭 장관이 얼굴을 보여야 한다. 얼마 전 김태영 국방부 장관은 취임식과 겹쳐 국회 출석을 미루려다 곤욕을 치렀다. 좀 봐주면 될 일이지만 ‘장관 군기잡기’가 전공인 의원님들이 넘어갈 리 없었다. 이래서 생기는 비효율도 국회가 옮기면 시빗거리가 못 된다. 그때 가서 진짜 힘들면 남아 있던 부처들은 가지 말라 해도 국회를 쫓아 세종시로 옮겨갈 것이다. (중략)
여의도 국회 땅을 상업용지로 바꿔 팔면 약 5조원은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이 돈을 세종시에 보태면 꿩 먹고 알 먹고다. 빈 땅엔 초고층빌딩을 지어 세계의 금융회사들을 유치하면 좋을 것이다. (중략)
딱 하나 걸리는 게 있다. 충청주민의 반발이다. “청정지구를 만들어준다더니 속았다”며 거부할 수도 있다. 그건 어쩔 수 없다.
이걸 읽고 뒤집어져서 웃었습니다. 참고로 전문은 (
http://pdf.joinsmsn.com/article/pdf_article_prv.asp?id=DY01200911250097 ) 에서 볼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조선일보나 동아일보의 다른 부장기자들 처럼 대놓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모든 것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고
> 노무현의 ‘인사실험’ 폐기되나
2000년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 인사에 활용했다. 연공서열과 권위주의를 태생적으로 싫어한 그의 스타일에 딱 맞기도 했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당시 그는 심한 인사 청탁에 시달렸다고 한다. 들어주기는 싫고 안 들어주자니 껄끄러운 경우가 꽤 됐단다. 그래서 아예 청탁이 불가능한 쪽으로 인사의 틀을 바꿨다는 것이다. 결과는 대만족. 대통령이 된 그는 아예 다면평가 전도사가 됐다.
라는 식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反 재벌, 反 보수언론 부분을 제외한 부분에 대해서는 지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덤으로 적당히 읽는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다음과 같은 칼럼도 썼더군요.
> 한글로 먹고사는 세상
해마다 한글 주간이면 그때 일이 떠오르고 그때마다 꿈을 꾼다. ‘한글로 먹고사는 세상’이다. 세계인이 한글을 쓰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것, 그래서 한국 땅에 태어난 것, 한국어를 하는 것만으로 자부심을 느끼며 사는 세상 말이다.
“세종대왕님 고맙습니다. 한글 덕에 잘 먹고삽니다.” 그도 그럴 만하다. 일감이 늘고 있어서다. 특허청은 올해 심사관 69명을 새로 뽑았다. 감당이 안 될 정도로 외국 기업들의 조사 요청이 몰렸기 때문이다.
다국적 제약회사 A가 좋은 예다. 5년 전 A사는 신약 특허를 전 세계에 동시에 냈다. 그런데 한글로 된 논문 한 편 때문에 사단이 났다. 한국 K대학교 석사논문에 관련 특허가 이미 실려 있었던 것. A사는 특허 출원비 수십억원과 신약 개발비 수천억원을 날려야 했다. 그 후 다국적기업들은 아예 특허를 낼 때부터 한글 문헌을 뒤지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런 사람이 경제부장으로 올라간 만큼 경제 관련해서 대기업 싫어하시는 분들은 좀 읽기 껄끄러운 기사들이 이어질 테지만, 부동산이라던가 대북지원과 관련해서는 다른 보수지와는 궤를 달리하는 기사가 여럿 나오리라 봅니다. 한겨례 신문이나 경향신문에서 부동산 정책 비판하는 글을 읽어도 그러려니 싶은데 중앙일보에서 이런 모습을 보이니 재미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