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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1/12/08 01:41:55
Name PokerFace
Subject [일반] 한강의 기적 - 박정희와 경제발전
한강의 기적은1950년대 6.25 전쟁을 겪고 세계 최빈국중 하나로 떨어진 우리나라가 이렇게 초고속 성장을 하게 된것을 의미하는 말이죠.
6.25 전쟁 이전에도 그랬지만 특히 전후에는 대한민국에 그나마 남아있던 산업시설과 발전시설, 사회간접자본 등이 완벽하게 파괴되어 있었고 1953년의 대한민국 명목 GDP는 13억 달러. GNI는 겨우 67달러였습니다.
그러던 것이 2007년에 는 GDP가 1조달러를 돌파하고, 2010년 GNI는 20,265달러에 달했습니다. 수출 규모도 1948년 4,300만 달러에서
2008년 3,720억달러까지 16,000배 이상 폭증했다. 수출산업도 1950년대의 1차산업(농업)위주에서 2000년대에는 2/3차 첨단산업으로
완벽하게 바뀌어 버렸습니다.

성장에만 치중한걸로 보이지만 또 의외로 분배도 나쁘지않아 연도별 지니계수를 살펴보면 석유파동으로 경제가 어려웠던 70년대 중후반을
제외하면 이전보다 오히려 개선되거나 지속적으로 0.3대 중반대을 유지하였고 심해도 일반적인 개발도상국 수준인 0.4를 넘지 않는 양호한
수준이었습니다.  특히 1980년대 후반 들어서 지니계수가 급락하면서 1990년대 초반부터 IMF 외환위기 이전까지 0.2대 중반을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초고속 경제성장과 함께 분배까지 달성한 대단한 성과를 거두었죠

독일의 급격한 경제성장을 라인강의 기적이라고 일컫는데 독일은 그래도 1,2차세계대전을 일으킬만한 능력과 기술이 있었던 반면 한국은
아무것도없이 맨땅에서시작했죠. 그리고 한국은 개발원조위원회(DAC) 국가 중 유일하게 원조 수혜국에서 원조 공여국으로 전환한 유일한
국가가 되었죠.

이러한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될만한것들은 무엇이 있었을까요





1. 중화학공업으로의 전환

이런 드라마틱한 성장은 박정희 대통령 때부터 이루어졌는데  1960년 한국의 1인당 GDP는 71달러였는데, 필리핀의 1인당 GDP의 3분의 1에
불과했고, 아프리카에도 한국보다는 잘사는 국가가 수두록 했을 정도로 말 그대로 세계 최빈국이였지만 1977년에는 1인당 GDP 1,000달러를
돌파했고 1979년에는 1인당 GDP 1,600달러를 돌파하며 1인당 GDP는 박정희가 통치하던 18년 동안 엄청나게 증가했습니다.
수출도 1964년에 1억 달러대 였던 것이 1971년에는 10억 달러를 돌파했고 1977년에는 100억 달러를 돌파하며 엄청난 성장세를 기록했습니다.

박정희 정권의 초기5개년계획은 장면 정부때 있었지만 이 계획은 경공업위주의 발전이 주가 되었고 중화학공업으로의 전환은 패러다임의
전환이었죠. 중화학 공업으로 전환한다고 다 성공하는게 아닌게 북한의 예도 그렇고 동구권도 그렇지만 한국은 성공하였고 여기에는
한국의 중화학 공업화를 이끌었던 박정희, 오원철 등의 전략적 식견이 있었죠. 우리가 필요한 군수사업에 치중한 중화학공업 개발이 아닌
수출을 목적으로 전세계를 상대로 한 중화학 공업을 육성했고 산업 토대 건설 및 탄탄한 경제 기반 건설이라는 목표를 같이 달성했습니다.
이것이 한국이 2차대전 이후 독립국 중 유일하게 경제 강국 및 선진국이 된 주요 요인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2. 포항제철

산업화 초입에 들어선 입장에서 산업의 쌀이라고 불리는 철강의 자력생산은 필수불가결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제철소 건설을
성사시켜야 했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자금이 없었고 세계인들의 시선은 차가웠습니다.
세계은행은 생산성이 없다는 말을 했었고 외국의 어떤 기관들도 회의적인 시각을 보여줬죠.
박정희 대통령의 의지를 받든 박태준은 대일청구권 자금을 전용하여 간신히 제철소 건설을 시작할 수 있었으며, 결국 일본의 동의를 받아
내어 제철소에 자금을 투자할수 있었습니다.
그후 73년 첫쇳물을 쏫아낸 포항제철은 92년 광양제철소 공사까지 완공하며 조강생산 2080만 톤을 달성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포항제철을 건설할때의 박태준 회장의 일화들이 유명한데요 직원들을 모아두고 우리가 제철소를 짓는 이자금은 옛 선조들의 피눈물이
담겨져있는돈이다. 만약 제철소건설을 실패하면 모두 바다에 빠져 죽자라고 하며 독려한건 유명한 이야기구요.

포스코의 초대회장인 만큼, 포스코 건설 당시 수많은 청탁과 압력을 받았으나 모두 거절했고 이게 지나쳐서 당시 박정희 주변에서 떡고물을
받아먹던 측근들에게 밉보인 덕에 중앙정보부에선 허구한날 박태준의 집을 수색하고 꼬투리를 잡으려 하자 박태준은 이렇게는 못해먹겠다고
박정희를 찾아가서 손을 떼겠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박정희는 비서에게 종이 한 장을 가져오라고 해서 백지위임장을 써주고 아무도
박태준을 건드리지 못하게 했습니다. 박태준은 제철소 일이나 하도록 놔두라고 지시했구요

포철 창립 당시 세계은행의 원조 보고서에서 한국은 철강 생산을 해서는 투자금 다 날린다고 나오는 바람에 원조를 받지 못했습니다.
뒷날 박태준은 런던에서 당시 보고서를 작성했던던 자페와 만나 그 때 똑같이 보고서를 쓰겠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때 자페가 한 말은
"나는 그 때로 돌아가면 똑같이 쓸 거다. 철강 수요가 없는 나라가 백만톤짜리 제철소를 짓는 것이 말이 되는가? 내가 틀린 것이 아니라, 당신이 기적을 일으킨 거다."




3. 경부 고속도로

1968년 착공하여 1970년 7월 완공되었으며 한국에서 교통량이 가장많은 한국의 대동맥이라고 하는 고속도로입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이걸 짓겠다고는 했는데, 예산안을 내놓게 하자, 건설부가 650억원, 현대건설 380억원, 육군 공병감실 기권, 서울특별시 180억원으로, 최종안은 아무래도 해외 고속도로 공사 경험도 있는 현대건설 안에 가까운 430억원으로 결정되었습니다.

건설 당시 대다수의 국민들과 야당은 고속도로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상태 였고 당시로선 이런 어마어마한 금액으로 그깟 도로 하나만든다는
거부감에 엄청난 반대여론도 있었으나 결국 고속도로 건설은 박정희정권의 의지로 강행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왕복 4차선으로 만들어졌고 박정희 대통령이 지금은 야당의 반대로 양보하지만 미래에는 반드시 도로가 부족할것이니 왕복4차선
으로 하되 확장을 위해서 경부 고속도로 양옆으로 50m를 남겨두고 건물 신축을 하지 말라고 지시하죠. 그리고 지금은 대부분의 구간이
6~8차선화 되었습니다.

지나치게 공사를서두른 나머지 77명이 사망하고 비공식적으로는 수백명이 사망하는등 여러 고초가 있었지만 결국 이 경부고속도로는
물류에 일대 혁신을 일으키고 전국을 반나절 생활권으로 만드는데 큰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4. 새마을 운동

일종의 농촌계몽운동. 근면, 자조, 협동을 기본정신으로 하며 1970년 4월에 당시 대통령 박정희가 전국지방장관회의에서 새마을가꾸기운동
을 거론, 동년도 5~6월에 구체적인 방안이 마련되어 전개되었습니다.

박정희정권시절 새마을 운동은 다음과 같은 단계로 진행되었습니다.
기반조성단계(1971~73): 새마을운동 의식을 확산, 기반구축
자조발전단계(1974~76): 경제난 해결에 주력
자립완성단계(1977~80): 국력 신장, 농어촌의 복지 향상 사업

대한민국의 급속한 경제발전에도 영향을 주었지만, 농어촌 지역의 빈곤과 복지를 향상시킨 점에서 다양한 나라들이 새마을 운동을
벤치마킹해 가고 있습니다.
UN은 새마을 운동을 아프리카 빈곤퇴치 프로그램 중 하나로 선택하였으며,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아프리카의 유엔 산하기관에 한국의
새마을운동을 배울 것을 권고했습니다. 콩고,가나,케냐,남아프리카공화국등이 새마을운동을 수입해간 주요 국가이며 또한 중국의 일부
지역에도 전파되었습니다. 중국의 덩샤오핑은 중국어로 번역된 새마을운동 관련 서적을 당간부들에게 나눠주며 박정희를 배우라 지시했고
후진타오 주석도 새마을운동을 공부했으며, 이를 모방한 '신농촌운동'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5. 조선업의 발전

우리나라 조선업은 몇 년째 부동의 1위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한국 수출의 효자상품중 하나가 조선이고 세계적인 조선·해운 시황 분석기관인 영국의 클랙슨이 발표한 세계 조선소 순위에서 현대중공업을
비롯해 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현대미포조선·현대삼호중공업이 1위에서 5위까지 독식하고있습니다.

1968년에 박정희 대통령이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기간 동안에 제철·종합기계·석유화학·조선을 4대 국책 사업으로 설정하고
최대한 정부가 중점적으로 육성하겠다고 하였으며 이때 조선업의 파트너로 선정한게 정주영 이었습니다. 처음에 정주영은 한국에서 조선업
을 한다는데에 회의적이었고 일본과 미국에게 조선업을 하기위한 차관을 얻으러다니다가 거절당했습니다. 후진국이 무슨 조선업이라는
거였죠. 이에 정주영은 박정희대통령에게 조선업 못하겠다고 했었고 박정희 대통령은 여기에 '도망가지 마시오! 절대 해야 돼!’ 라고 하였고
결국 이에 승복한 정주영은 계속 일본의 조선소와 컨택하며 지원을 받고 기술을 얻게 됩니다.


정주영 회장의 인터뷰입니다.

“미쓰비시에 가야키 조선소가 있잖아요. 거기서 100만t 규모의 도크를 증설할 작정으로 덤비고 있었단 말이에요. 그래서 한번 해보자, 왜냐하면 일본도 그랬지만 우리 한국에 제철소가 만들어지면 반드시 경공업이 아니라 중공업으로 간다, 박 대통령이 어떤 양반이냐, 고속도로 만든다고 밀어붙일 때 봤지 않느냐, 이건 분명히 일본처럼 제철소 다음에는 중공업이다, 그렇다면 한국도 중공업 정책으로 갈 것이고, 대표적으로 추진할 게 조선소다, 그렇게 판단한 거지요. 미쓰비시 측과 접촉했어요. 그런데 반응이 신통치 않아요. 그러니 다시 가와사키중공업에 가서 하세가와 본부장하고 우메다 사장을 만나 똑같이 한국의 장래에 대해 설명하고 합작하자 했더니 좋다고 말이야, (손바닥을 탁 치며) 맞다, 그거야. 손바닥까지 때리면서 잘 봤다고 말이야, 하하하.”


어렵게 세워진 한국의 조선업은 200억 달러 수출 고지를 돌파하고 동시에 수주액도 400억 달러를 달성하는 등 한국의 대표사업으로
성장했습니다.




6. 전자산업의 발전

한국의 가장 최고의 수출 효자 상품은 반도체고 그 반도체의 기반이 된 전자산업의 발전은 60년대 후반에 있었죠.

처음 박정희는 전자산업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했었죠.  "사치품이나 만들면서..."라고 하며 못마땅해 했다고 하는데 이러한 생각을
전환시킨것이 초대 과학기술처 장관(1967년 4월∼1971년 6월)을 지낸 김기형입니다.
세라믹 공학 권위자로서 미국 뉴욕 에야리덕션 전자요업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있다가 한국 정부의 해외 두뇌 유치 케이스로 1966년 8월
하순에 귀국한 김기형씨는 박 대통령으 만났습니다.
김 박사는 1시간 가량의 대화 시간을 주로 전자 공업(전자 산업은 최근의 용어)과 세라믹 공업의 육성 필요성을 강조하는 데 할애했습니다.
'노동 집약적인 산업이어서 유휴 노동력이 많은 한국에 유리하다'는 요지였습니다.

대화가 끝날 무협 김 박사가 "선물로 가져왔다"며 손수 만든 인조 다이아몬드 목걸이 등 액세서리와 저항체 소자(素子) 한 세트를 불쑥 내밀
었습니다.

"게 뭡니까?"
"제가 개발한 겁니다. 여기(플라스틱)에 붙은 이것이 저항체 소자라는 건데 하나에 1달러짜리입니다. 주로 전자 제품을 만들 때 쓰이지요."
"아니, 그 손톱만한 걸 1달러나 받아요?"

그해 66년 12월 박 장관은 전자산업을 수출 전략 산업으로 발표하고 박정희는 이듬해 연두 교서에서 전자 산업 의 중점 육성을 선언하게
되고 전자산업이 그 나라의 '중점 육성 산업'이 되어버렸습니다. 여담으로 당시 전자산업에 큰 인상을 가진 박정희는 딸 박근혜도 서강대
전자공학과로 보내버리죠

1966년 처음으로 국산 TV를  금성사(현 LG전자)가 만들었고, 삼성도 1969년 1월 '삼성전자공업주식회사'를 설립해 경쟁체제에 들어갔
습니다. 1965년 180만달러였던 전자산업 수출액은 1976년 10억달러를 넘어섰으며, TV와 라디오, 집적회로, 콘덴서, 녹음기, 브라운관 등이
주요 품목으로 떠올랐다. 1974년에는 한국반도체주식회사가 설립돼 미래의 '국가적 텃밭'이 마련되기 시작되었습니다.

그뒤 1983년부터 반도체를 자체기술로 본격 개발하기 시작하여, 현재 세계 1위의 메모리 공급국으로 발돋움하였고 한국의 경제를
먹여살리는 큰 핵심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반도체산업은 세계적 위치를 살펴보면, 메모리분야는 세계시장을 지속적으로 선도하는 위치에 있으며 한국 수출 물품중 단일
품목으로 1위에 올라있습니다. .





7. 자동차 산업의 발전

역시 한국의 수출효자상품 중의 하나인 자동차입니다.

자동차산업의 시작은 1944년 기아자동차의 전신인 경성정공의 설립을 기원으로 합니다. 이후 1946년 현대자동차의 전신인 현대자동차
공업사, 1957년 대우자동차의 전신인 신진공업, 1962년 쌍용자동차의 전신인 하동환자동차공업이 설립되면서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의
구도가 갖춰집니다. 국내 자동차 산업의 보호를 위해 1962년 「자동차공업 보호법」이 제정 공포되면서 외산자동차 및 부품의 수입이
완전히 금지되었으며 1964년에 〈자동차공업 종합육성계획〉과 1969년 〈자동차공업육성기본계획〉이 발표되었고 이로써 자동차 및
주요부품의 국산화를 위한 노력이 시작되었습니다.

1969년 자동차공업육성기본계획을 통해 정부는 자동차(승용차) 국산화를 위해 1972년까지 국산화율 100%달성을 목표로 품질의 국제화,
생산성 향상 및 가격의 국제화를 위해 자동차 부품공업을 일원화한다는 기본계획을 발표하였습니다. 동시에 자동조립공장과 부품공장을
완전 분리하여 육성한다는 방침이 정해졌습니다. 1973년 자동차공업에 대한 대통령의 특별 지시가 있었는데 우선 자동차 공업은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중화학공업화의 선도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공업이므로 1980년대 고도성장의 주역을 담당해야 한다고 그 중요성을
강조하였고  이 지시에 맞춰〈장기자동차공업진흥계획〉이 확정되었고, 1973년부터 시작한 〈중화학공업 육성책〉에 포함되어
국가사업으로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1975년 현대의 '포니'는 한국을 세계 15번째 자동차생산국가로 부상시켰으며, 1976년에 포니 6대를 에콰도르에 첫 수출하였고
1986년 소형자동차 '포니엑셀'을 처음 미국에 수출했습니다.

1991년엔 대우자동차가 배기량 660㏄짜리 우리나라 첫 경승용차 '티코'를 생산 판매하였으며, 우리나라는 90년 대 중반까지 세계 5위의
자동차 생산대국으로 부상하였습니다.




8. 카이스트와 대덕연구단지


카이스트는 고급 과학기술 인재의 양성과, 국가적 중·장기 연구개발 및 국가 과학기술의 첨단화를 위하여 설립된 이공계 대학기관입니다.

1965년 미국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존슨은 박정희에게 월남 파병에 대한 보답으로 공과대학 설립이라는 선물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박정희는 존슨에게 대학보다는 공업기술 연구소를 하나 만들어 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했고, 이렇게 해서 세워진 연구소가 후일의
KAIST입니다.

1971년 2월 설립된 이공계 대학원인 한국과학원(KAIS)가 이때 세워진거고 1981년 1월 5일 한국과학원과 정부출연연구기관인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통합되어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되었고, , 2008년부터 공식 명칭을 영문명인 'KAIST(카이스트)'로
변경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대덕연구단지는 한국의 가장 큰 과학기술 연구단지로 단지 조성의 목적은 첫째 첨단과학기술의 효율적 개발을 통한 국가 과학기술 발전의
선도, 둘째 관련 연구기관의 집중배치·육성을 통한 시설의 공동활용과 인력 및 과학기술정보의 상호교류 증대를 통한 산·학·연 공동연구의
촉진, 셋째 국토의 중앙부에 조성하여 국토의 균형적 발전 도모 등입니다.

1973년 대덕연구단지 건설계획을 입안하여 1974년부터 7개년 계획으로 대덕연구학원도시로 건설할 계획이었으나, 1970년대 말의 유류파동
등으로 국가재정이 여의치 않아 본래의 계획대로 추진하지 못하다가 1984년부터 건설에 활기를 띠기 시작하였고 2000년 현재 생명과학분야
20개 기관, 정보산업분야 20개 기관, 신소재·고분자 분야 14개 기관, 정밀화학분야 14개 기관, 에너지·자원분야 10개 기관,
기계·해양·항공우주분야 8개 기관, 표준기초분야 4개 기관 등 총 90개 연구기관이 입주하여 한국 과학 기술 발전의 메카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위 내용들은 인터넷을 뒤지며 여러군데서 찾아서 짜집기해 작성한 내용들입니다.

박정희가 경제발전에 큰공이 있다는쪽도 박정희는 경제발전에 큰 공이 없고 국민들이 다 했다라는 쪽도 딱히 박정희가 경제발전을 위해
뭘했는지는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더군요. 고작 생각하는게 포항제철과 경부고속도로 지었지 정도?

그래서 항상 나오는 논쟁이 경제개발계획을 박정희가 짠거다 아니다 장면이 짠거 박정희가 그냥 따라한거뿐이다 라는 건데 참 의미없는
논쟁이라고 생각됩니다. 계획을 누가 세웠느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무엇을 했느냐가 중요한거겠죠.

옹호할건 옹호하고 깔땐 까더라도 박정희가 뭘 했는지는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한밤에 노가다좀 했습니다.




p.s 조사하다가 재미있게 본내용이 의료보험인데
한국의 의료보험은 박정희 전 대통령 집권기에 도입되었으며,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보험은 노태우 대통령 집권기에 도입되었습니다.
당시 박정희가 의료보험을 도입한 이유가 재밌는게  북조선 왕국에서 "지상락원의 로동자들은 전부 무료로 치료받을 수 있는데, 착취받는
남조선의 인민들은 병원에도 못 가서 병들어 죽어간다" 라고 하니 박정희가 발끈해서 만든게 의료보험이라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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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2/08 01:54
수정 아이콘
정치와 경제를 떼놓고 생각할 수는 없지만 경제의 측면에서만 봤을때는 확실히 대단한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정치 쪽으로는 가루가 될 때까지 까여도 모자르다고 봅니다.
잘한 것으로 잘못한 것을 덮을 수는 없는 일이겠죠.
김익호
11/12/08 01:55
수정 아이콘
정치적으로 많은 사람을 고문하고 죽였으며 국민에게는 검소함을 강조하고 자기는 딸만한 여대생 끼고 양주 쳐먹다가 죽은 자가 경제적인 발전마저 못 시켰으면 평가의 가치도 없었겠죠.

세계에서 수위를 다투는 낮은 문맹률, 높은 교육열로 인한 고등교육을 받은 다수의 인력 확보, 열대성기후가 아닌 지역이라 근면하고, 싱가폴이나 홍콩 처럼 도시국가의 수준이 아닌 어쨌든 한 나라를 구성할만한 규모의 국가를 갖춘 나라가 이 정도 위치에 이르지 못했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할 겁니다. 거기에 미국의 무한 원조도 있었고요.

박정희는 이런 호기를 맞아 경제적으로 실패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 점 하나만큼은 칭찬해 줄만한 대통령일 뿐, 영웅적인 영도력으로 우리나라를 무슨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천국의 계단으로 인도한 인물은 못됩니다
개미먹이
11/12/08 01:56
수정 아이콘
1972년 까지 지속되었던 미국의 원조를 빼놓으면 아무것도 논할 수 없겠죠.
자세한건 http://sonnet.egloos.com/3836641 소넷님 블로그에..
11/12/08 02:03
수정 아이콘
호불호를 떠나서, 저 시절이 능력 있고 배경 좋은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대항해시대스러운 시절이었을 것 같긴 합니다. 몇 몇 능력자의 기지와 투지로 국가의 큰 방향이 정해지고 점점 커 나가던 때니, 정치인들이나 고급 관료들에게 저 만큼 재미있는 시기는 다시는 없겠지요.
봄바람
11/12/08 02:07
수정 아이콘
현 시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역사적 평가는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봅니다.
깔끔하게 자료를 정리한 건 고맙지만 님의 코멘트에 계몽적인 부분이 있어서 조금 불편하네요.
Vantastic
11/12/08 02:11
수정 아이콘
뭐, 수백만을 몰살시킨 히틀러도 과학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건 부정하기 힘드니까요.
격수의여명
11/12/08 02:13
수정 아이콘
어차피 모든 사람들이 치열한 토론으로 역사적, 정치적 사건에 깊게 통찰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얕음'이 계몽의 조건이 아니라 현실적 조건이라는 것이지요. 이럴 때, 박정희는 "얕게 알아 부정적"으로 평가 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얕게 알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보다요.
박정희에 대한 전반적인 평은 "얕게 알아 부정적"인 쪽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것이 몹시 바람직한 현상이고, 바람직한 사람들의 의식구조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고 봅니다.
파르티타
11/12/08 02:13
수정 아이콘
포커페이스님의 본문에 덧붙여서,

포항제철의 건립 자금은 일본으로부터의 유/무상 원조로부터 나왔습니다.
굴욕적 외교의 대표사례로, 어마어마한 여론의 반대를 묵살하고 진행되었던 것이었고
그 대가로 산업화의 첫단추를 채울수 있었습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관해서도 김대중, 김영삼 전직 대통령들을 비롯한 야당은
지금의 4대강 사업 만큼이나 강력 반대했습니다.

정치적 발전도 이루었더라면 영웅으로 추앙받았겠으나
제갈량을 그 자리에 앉혀놔도 두가지를 모두 충족시키지는 못했을것 같습니다.

다만, 민주화된 필리핀과 1당독재하는 싱가포르 중에
어느 나라에서 살고 싶은가는 각자 가치관에 따라 달라지겠지요.
11/12/08 02:14
수정 아이콘
저는 더러 '박정희의 맨얼굴'이라는 책을 추천드립니다.
경제학자분들이 모여서 쓴 책이라 자료라던지 논리가 마음에 들더군요. [m]
카서스
11/12/08 02:17
수정 아이콘
세계적 추세도 한몫했죠.
중화학공업에서 금융 등 써드 웨이브에 치중할 떄였으니까요.
덕분에 필요한 각종 설비들을 일본에서 싸게 업어올수도 있었구요.
그리고 전두환이 정권 잡자마자 바로 차관 들여온거보면, 그렇게 재정적으로 튼실했다고도 보기도 어렵습니다.

박정희가 국민들을 짜내고 그외 수많은 행운이 존재했기떄문에 성공한거라 봅니다.
물론 그가 그당시 대통령이고 여러가지 계획을 수행한것은 사실입니다만, 그의 영도력? 지도력? 이런것 때문에 됬다고는 평가하기 어려울것 같네요.
김익호
11/12/08 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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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앞마당 먹고 8바락 1팩, 1스타포트 꾸준히 돌리는 정도라고 봅니다.
물론 어려운 일이겟지만 그 정도 하는 프로게이머 많잖아요?
머린이야기
11/12/08 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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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물론 수치상의 성장은 박정희 정권을 시작으로 급속도로 진행이 되었지만 그에 따른 반대급부적으로 지금의 우리나라가 안고있는 양극화 문제가 비로소 이때부터 시작된 것 같습니다. 박정희 정권은 중화학 공업을 육성하고 수출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인위적인 저금리 정책을 실시하였는데 그 저금리의 이용권을 기존의 수출가능 기업들에게만 제한시켰죠.. 물론 중화학 공업분야는 원체 자금이 많으 들고 도전하는 기업들도 몇몇 없었지만(대표적으로 정주영 회장이 도전을 했지요) 일반 중소규모의 기업들이 클 수 있는 기회를 주지 못했습니다.
이런 정책때문에 몇몇 기업은 급속도로 성장하여 오늘날과 같은 대기업이 되었지만 '몇몇'에 국한되어서 안타까운 점입니다.
11/12/08 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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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알기로는 박정희시대때 기업의 성장과 국가의 성장을 위해서 임금억제정책을 펼친걸로 알고 있는데...
분배가 잘 될 수가 있었나요?
살포시 묻어 질문을 드립니다. [m]
11/12/08 0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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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먹을 게 있어야 분배를 하지 않나요. 할아버지 말 들어봐도 감자도 제대로 못 챙겨먹던 시절인데 오죽하겠습니까.
경부고속도로도 그렇고 대기업 집중 정책도 그렇고 강대국을 상대하는데 고속도로위에 배깔고 드러누워서 선분배를 외치는건 공허한 외침이죠. 아무것도 없는 나라가 역량을 집중 하지 않고 중소기업에 투자해서 이기겠다는 전략 자체가 말이 안 되죠. 기반도 없고 체급차이도 나는데 어떻게 이깁니까.
박정희는 박정희의 시대가 요구한 문제제기를 그럭저럭 해결했다고 봅니다. 김대중이 imf를 대처하듯이.
대기업 집중 정책 완화, 중소기업 투자는 박정희 시대의 몫이 아니라 현재 인물들이 해결해야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불평불만만 하는건 박정희의 유산을 물려받고도 부정하는것처럼 우스운 일이죠
안드로메다
11/12/08 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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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전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이후 우리나라가 64년에 수출 규모 1억불을 달성하고 77년에 수출 규모 100억불을 달성하게 되었는데 그만큼 대통령이 국가발전에 대한 안목도 있었고 경제에 있어서 만큼은 놀라울 정도로 나라를 발전시켰다고 봅니다.
그때 잘만들어 놓은 기반으로 이제는 무역수지가 1조달러에 이르는 국가가 되었다고 봅니다.
한정적이고 부족한 재원으로 국가경제를 일으켜 세우는데는 국가가 몇몇 대기업 위주로 서포트하는게 불가피 했었다 생각합니다.
11/12/08 0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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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때는 박정희식 경제발전이 옳았습니다.
아무것도 없는나라에서 수출만이 먹고살길이였죠
뭐 정경유착 부정부패가 없었으면 더 좋았을것입니다.
박정희가 아니어도 누가 대통령을 해도 성공 했을것이다.
그렇지 않죠 이승만이 경제발전 이루었습니까?
이승만은 전후10년간 정권을 잡으면서 미국의 빠방한 경제원조 받으면서 아무것도 한것이 없습니다.(이래서 이승만 국부론 나오면 열받습니다.)
그러나 박정희는 다르죠 적어도 경제발전의지와 비전이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그건 60~70년대 방식입니다.
아직도 박정희의 경제발전 망령이 이사회를 지배하고 있죠
당장 대선주자1등이 누구인줄만 봐도 알수 있고 현대통령이 추구하는 경제발전 방향만 봐도 알수있습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도 한국은 수출주도형 경제발전 대기업중심 경제발전을 하고있습니다.
수출을 하기위해서는 가격경쟁력을 높혀야하고 대기업을 중심으로 완재품을 수출해야죠.
가격경쟁력을 갖추기위해서는 인건비를 줄어야하고 수출물량을 맞추기위해서는 근무시간을 늘려야합니다.
그렇게 수출해서 번돈이 국내에서 제대로 돌아간다면 좋겠지만 그렇지않죠
일부 수출하는 대기업들이 부를 독점히고 있고요 내수시장은 얼어붙을때로 붙어있죠
우리랑 경제구조가 비슷한 일본도 대외의존도가 20% 밖에 안되지만 한국은 80%가 넘고 있죠
이러한 문제점은 아직도 박정희식 경제구조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죠
격수의여명 님 말처럼 저도 "얕게 알아 부정적"으로 가는것이 옳다고 생각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박정희의 망령에서 벗어날수 없기때문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박정희의 망령에서 벋어나야만 발전할수 있습니다.
역사적인 평가는 박정희의 망령에서 벋어난후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그리고 박정희 경제발전 모델은 스탈린의 경제발전입니다.
보라도리
11/12/08 0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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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찬양글이네요..
한국의 경제적 성장의 축이 박정희의 저 정책 으로 발전 했네요 근데 현재 한국의 여러 성장을 방해하는 최악의 요소들도 다 박정희 시대의 잔해들이네요.. 거기다 한일협정,독재,노동탄압,자진 월남전 참전 경제적 성장은 인정 하겠지만 여전히 박정희는 깔게 많은 인물 이군요..

그리고 박정희가 이렇게 미화되고 여전히 시간이 지난 후에도 이미지가 좋은건 이런 경제적 성장 발전이 아니라 시기 적절한 타이밍에 암살 당했기 떄문이겠죠.. 그러니 그 밑에 여러 잔당들도 구국의 영웅으로 군림 하는거고 아마 계속 독재 하면서 살아 있었다면야..
11/12/08 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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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한것으로 잘못한것을 덮을수 없듯
잘한것은 잘했다고 생각할수 있는것 아니겠습니까?
그시대에 아무나 그렇게 할수있었다고는 생각치 않습니다.
대체 어떤조건이 좋았길래 아무나 할수있었다고 말할수있을까요?
전후에 폐허가되어 그 가난하던 나라.. 게다가 단지 전쟁이 끝나고 가난하기만 한것이 아니라
잠시 휴전중으로 뻑하면 도발에 간첩이 넘어오는 나라의 틀을 세워놓은것자체만으로도 높이 평가 받을수 있다고 봅니다.
물론 그당시에 했던것들때문에 분배적인 측면에서 힘이든다 말할수 있겠지만
당시와 비교했을때 어마어마하게 평균적인 삶의 수준이 높아졌다고 봅니다.
분배적인 것들은 이후에 차차 바꿔나가면 되는것이구요..
물론 이런것들로 독재 정치탄압등 잘못된것을 덮을수는 없겠지만,
저는 '이런측면은 잘했다'고 평가하고있습니다.
김익호
11/12/08 0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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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좋았는지 말씀 드리죠.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되긴 했지만 우리 나라는 조선시대 까지 상당한 문명 국가 였습니다.

그리고 근면하고 성실한 국민, 당장 보다 미래를 보는 교육열, 그리고 박정희는 이런 국민들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위치 였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화룡점정으로 공산화를 우려한 미국의 원조까지.

솔직히 이 정도면 당연히 경제 성장 합니다. 우리 나라만 한게 아니라 대만, 싱가포르 다 했어요.
11/12/08 0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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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 일수 있지만 조선시대보다 일본애도막부시대가 문화,경제,산업,인구,군사력으로 모든면에서 앞서있었습니다.
또한 그런 국민을 가지고 이승만은 하지못했죠
11/12/08 0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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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라서 묻는데 그렇게 문명국가고 통치체제만 일본보다 우월한 국가가 왜 일본이 근대화할동안 손가락빨고 있다가 먹혔나요?
몽키.D.루피
11/12/08 0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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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을 누가 세웠느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무엇을 했느냐가 중요한거겠죠."

그렇습니다. 계획은 노무현이 했는데 실행은 이명박이 한 한미FTA.. 이 문장이 왜이렇게 이중적으로 들리죠. 수구들의 논리가 다 이런식입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어차피 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 논리죠. 조선시대도 아니고 나라에 일어난 모든 일이 다 대통령 업적입니까. 반대로 나라에 일어난 모든 일이 다 대통령의 잘못은 아니죠. 그런데 노무현 때는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가 유행어였습니다.
웃긴건 말이죠, 박정희가 이렇게 칭송받을 수 있는 이유가 다 그 독재 때문이었습니다. 왜냐면 그 때는 박정희가 모든 것을 쥐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공과가 다 박정희 탓이었거든요. 마치 조선시대의 모든 공과가 다 왕 탓이었듯이.
제가 보는 이글은 박정희 시대에 있었던 경제 발전상을 쭉 나열한 뒤 그게 다 박정희 때문이야 그러니까 알아서 새겨 들어 라는 식의 논리로 밖에 안 보입니다. 노무현 시절의 높은 경제 성장률은 당시 경제 호황때문이고 이명박의 낮은 경제 지표는 단지 세계 경제 위기인데 왜 하필 박정희의 경제 개발은 오로지 박정희의 몫이 되어야 된단 말입니까.
당시 한국도 마찬가지였지만 전세계적으로 경이로운 경제 성장국가들이 있었습니다. 말씀하신 독일도 마찬가지고 일본, 이탈리아 등도 놀라울 정도로 경제 개발에 성공했죠.(본문에는 독일은 산업기반이 있었다고 했는데 물론 우리나라의 경제개발은 그에 비하면 상당히 기적적이긴 합니다. 결과적으로 지금 우리나라가 독일만큼 잘 사는 국가가 아니니까 어차피 똑같은 겁니다. 예를 들어 독일이 50에서 100이 됐다면 우리는 0에서 50이 된거죠.) 그런데 그 국가들은 한 사람의 영웅을 칭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영웅주의 시각으로 인물을 바라보는 건 굉장히 불쾌합니다. 그건 어느 대통령이나 재벌이나 마찬가지구요. 더군다나 그 영웅이 영웅 삼을 수 없을 정도의 과오를 범한 인물이기까지 합니다.
박정희가 어느정도 정책적 성과를 거둔 건 인정합니다. 그리고 박정희가 아니었더라도 경제 발전을 이뤘을 것이다라는 논의가 무의미하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역사에 만약은 없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식으로 박정희 시대의 모든 경제 발전상의 업적을 박정희가 다 싹쓸히 하는 건 반대합니다. 박정희 시대의 경제 발전은 당시 세계경제 상황, 국제관계, 독재 정권의 목표, 재벌과 정치권의 결탁, 일반 민중의 삶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된다고 봅니다.
체게바라행님
11/12/08 0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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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비판은 역사적인 의미에서 나름 합당한 면이 있습니다. 다시는 그런 독재자가 나오면 안되니깐요.

하지만 경제적 측면에서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과감한 시설투자, 미래핵심산업에 대한 안목과 적절한 보호주의, 수출지향적 정책, 국민에 대한 비전제시의 측면에서 박정희 정부당시의 경제정책은 최선이었습니다.

교육열이 높고 미국의 지원이 있었다고 해서 '한강의 기적'이 당연한건 아닙니다. 이런 요소들과 경제성장이 비례관계에 있다고 밝혀진 바도 없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정책이 당연한거라고 생각하는 건 자유입니다. 하지만 세계 역사상 그정도를 해냈던 독재자가 없습니다. 지금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간다고 해도 누구라도 그와 같은 정책을 실시해야 할겁니다.

정치적 측면, 인간적 측면에서 다시는 나와서는 안될 지도자이지만 경제정책면에서는 합당했습니다.
안드로메다
11/12/08 0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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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으로 완전히 피폐화 되었던 우리나라는 산업혁명 당시의 유럽처럼 자본이 축적되어 상공인 계층 등이 사회변화 주인공으로 대두될 수 있었던 상황도 아니엇고 그나마 국가가 이런 저런 원조 등을 통해서 마련한 한정적인 재원으로 어떻게 나라를 이끌고 나갈지 잘 생각하는게 중요한 상황이었다고 봅니다. 당시 박정희 정부의 경제발전 정책에 반대가 극심했던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자동차도 얼마 없는 나라에 고속도로를 세우고, 철강공장을 세우고, 조선소를 세우고 당시 상황에서 보면 말도 안되는 계획을 세우고 추진하여 결과적으로 국가경제발전에 큰 기여를 하게 되는 토대를 만든 것은 대단한 일이다라고 생각합니다
11/12/08 0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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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시험 공부때문에 바빠서 처음 문단만 보고 댓글 답니다.
처음 문단에 53년 gdp가 13억불이라고 하시고 1인당 소득도 언급하셨는데,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킨 1960년 한국의 GDP는 39억불이구요. 세계 29위입니다. 그리스, 이집트와 별 차이 없는 수준이며 아일랜드, 포르투갈 등의 유럽 국가들보다도 높습니다. 세계 최빈국이라는 표현은 명백히 잘못 되었구요. 이정도 경제 규모와 미국과 일본의 지원을 받았죠. 박정희 아니고 누가 대통령을 했어도 경제가 발전했을거라는 건 과장이다 치고 박정희처럼 국민들 학살하고 독재하면서 대통령 안해도 충분히 경제 발전 시킬 수 있었죠.
개미먹이
11/12/08 0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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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지 아쉬우면서도 다행스러운건(?)
박정희가 1979년 점점 막장으로 치닻고 있을 때 총살되었다는 거죠.

박정희가 막장으로 가고 있을 때 과연 한국 경제가 순양했을 것인지는 의문입니다.
만약 박정희가 막장의 정점일 때 그래서 경제적 위기에 봉착했을 때
부마 항쟁 광주 사태 등이 발생했다면 그에 대한 찬양도 이 정도는 아닐 겁니다.

어쨌거나 분명한건 대한민국이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면서 폭발적으로 성장한건 1980대 라는 것입니다.
그 정점은 1988년 서울 올림픽이었고요.

...이렇게 되면 찬양 받아야 될 건 전두환?!
LenaParkLove
11/12/08 0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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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집권한 과정만 살펴도 박정희는 가루가 되도록 까여도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첫 단추부터 단단히 잘못 끼우고 시작했으니까요. 쉽게 말해 아웃 of 안중이죠.

긍정적인 부분은 이런 과 부분을 충분히 따진 후에 살펴볼 문제죠.
문제는 과 부분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무리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부분일까요?

박정희가 미화되기 시작하고 실드를 두르기 시작하면, 전두환도 조금씩 그럴 여지가 늘어나겠죠.
이미 전제 자체가 잘못된 겁니다 이건.
11/12/08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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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개인적인 의견은 박정희가 정권 잡지 않고 민주정권으로 북한과 간첩들과 싸워가며 세계 20위권만 되도 잘했다고 생각했을겁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시간의 문제구요. 놓여진 역사 아래에선 박정희가 독재를 해서 이렇게 빠른 성장의 토대가 되었다고 봅니다. (국가사업전략구성을 박정희가 '선택을' 잘한부분도 있습니다.)
잘했다는건 아니구요
김익호
11/12/08 0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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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위와 같은 글이 너무나 불편합니다.
박정희가 아니었으면 우리 나라가 경제 성장이 불가능 했을까요?

북한은 70년대 초반까지 남한보다 경제적으로 우위에 있었습니다. 북한은 어떻게 해서 박정희도 없었는데 발전을 했을까요?
국제적인 호재가 작용하고, 훌륭한 자질을 가진 국민들이 존재하고, 북한과의 체제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미국의 지원이 존재하는 매우 적절한 조건을 모두 갖추고서도 박정희 라는 요소만 빠지면 안되는 것이었을까요?

박정희의 경제적 성과를 인정하는 것과 박정희 아니었으면 안되 이런 것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우리 나라는 박정희가 아니었으면 지금 인터넷도 못할 나라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11/12/08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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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주장엔 공감하는바가 있으나

북한의 예시는 적합치 않다고 봅니다.

북한은 우리보다 앞섰지만 결과적으로 압도적으로 뒤지게 된 예이니까요..

오히려 북한은 좋은 인재들과 더 좋은 자원환경을 갖추고도 체제와 독재정책이 잘못되면 발전에 한계를 맞이하는 예에 가깝죠.

사실 북한과의 비교가 박정희전대통령을 돋보이게 한면도 있죠.
천산검로
11/12/08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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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1960년대의 한국이 경제성장을 위한 밑바탕이 마련되어있었다고 봅니다. 선발주자인 일본부터, 후발주자인 중국까지 모두 빠르게
유럽, 북미 선진국들을 따라잡을 수 있던 이유는 유교문화권 하에서 고도로 축적된 인적자본과, 대기업구조가 발전하기 적합한 문화 사회적
배경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박정희 아니라 다른 인물이 집권하더라도, 혹은 우리가 바라던대로 민주화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느정도까지 경제성장을 이뤄낼 수 있었다고 봅니다.

또 마찬가지로 어떤 정부가 들어섰더라도 우리가 경제성장 과정에서 겪었던 문제들이나 진통들 역시 그대로 겪었다고 봅니다.
한국만의 특수성이아니라 세계경제의 보편성이라는 틀에서 본다면 한국경제는 결국 수출기조로 밖에 성장할 수없는 환경과 내부적 요인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하는데요. 잘했다 못했다를 떠나서 어느정도 필연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었다는거죠.

박정희가 투자자로서 일견 날카로운 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본문 글에는 수긍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지금 보면 꽤 선견지명이라고
생각할 만한 전략적 투자도 많죠. 실패도 많았지만.
11/12/08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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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혼자 경제발전 시킨 것은 아닌데 자기 자리에서 딱 경제에 대한 부분만큼은 역할을 잘 수행했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한쪽만 잘한다고 될 것도 아닌 것 같고요. 근데 딱 거기까지만 인정하고 그 다음은 까여야죠. 경제적인 부분은 어떻게 생각하든 결론은 까여야 된다는 부분은 모두가 한마음인 것 같네요. 크크크 [m]
11/12/08 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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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객관적인 외국인들의 숱한 평가만 봐도 박정희가 한국 경제에 이바지한 공이 어느 정도냐 하는 문제의 답은 간단하게 나오는 편이죠...

물론 경제적인 측면에서만요.
바알키리
11/12/08 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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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가 정말 대단한 업적을 이루어냈다고 저도 생각치 않습니다.
박정희가 아닌 국민의 선거로 다른 대통령을 뽑았더라도 박정희 만큼은 아니지만 어느정도 경제발전은 이루어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박정희라서 이만큼 발전했을수도 있었겠지만 박정희가 아닌 다른 누구였다면 과연 어떻게 됐을까요? 정치와 경제를 조화롭게 발전시켰다면 지금의 우리나라는 더욱더 발전되었을 수도 있었겠지요.
9th_Avenue
11/12/08 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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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경제지표만이 유신정권의 열매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어떻게 보면 국방쪽에서도 꽤나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기조를 취한게 박정희씨죠..
대한민국 스스로 무기생산으로 하려는 액션을 처음 보여줬고, 국방분야에 대미 예속성을 탈피하려고 한 점도 있었습니다.

다만, 도둑놈이 집에 들어와 밥 지어놓고, 청소해놨다고 해서 즐거워 할 집 주인은 없습니다.
만약 즐겁다면 그건 거지며 등신이죠.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그런 사람들이 제법 존재하더군요.

그래서 열받아서 박정희씨의 공은 안 말하려구요.
독재자의 딸이 대권후보가 되고 선거전의 여왕이 되며 아직도 그 망령을 이용해 먹고 사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사회에서는
아직 공을 평가할 시기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일단 잘못부터 제대로 따집시다.

범죄를 저질렀을 때 그 사람의 범죄행적을 파헤치는 것이 우선이지 그 사람이 과거에 했던 기부행위, 선한 행동을 찾는 것이
우선하다고 생각안합니다.

일단 전두환씨 박정희씨 노태우씨 이 세 사람은 전대통령 직함부터 떼어야 하는데...
세상이 돌고돌다보니.. 화해와 용서가 트렌드가 되어 인정해주는 게 참.. 뭣같네요.

현 대통령이 삽질을 하고 뒤로 뭘 빼먹어서 화가 날때마다 위에 분들 생각하면, 그래도 이 대통령은 양반이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정통성은 있으니까요.
레지엔
11/12/08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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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경부고속도로와 새마을 운동에 대해서는 꽤 이견이 있는 걸로 압니다. 일단 경부고속도로의 경우 결과적으로 쓸 수 있었고 도움이 되었으나, 타이밍이 너무 빨랐고 좀 더 뒤에 하는 것이 낫지 않았느냐는 의견이 꽤 있었죠. 공사가 너무 예전에 이뤄져서 정비 등에도 상당한 돈이 들어간 것으로 압니다. 새마을 운동의 경우 그 취지가 인정받은 부분이 있어서 벤치마킹도 오고 했습니다만, 결과적으로 이촌향도 현상의 심화를 막는데에도 실패했으며 역으로 지역별 문화권의 파괴로 이어졌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카이스트와 전자산업의 경우에도 이것이 '박정희'의 공인가, 다른 사람의 공인가에 대한 논란이 크고... 특히 반도체 부분의 경우에는 이병철의 용단을 논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의료보험의 경우는 사실 현재의 모습은 위 글에도 나온대로 노태우때에 만들어진 거고, 사실 박정희때의 그것은 지금의 모습을 찾기는 좀 어렵지 않나 생각합니다. 오히려 노태우때의 정책이 아니었다면 비 유럽 국가들처럼 하위계층 보조 강화의 형태로 갔을 가능성도 있고, 미국식에 가까운 행위별 수가제 모델로 갔을 수도 있습니다. 현재의 의료보험에 어떠한 공이 있다면 그건 박정희보다는 노태우를 이야기해야 맞을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이 문제를, '박정희때에 경제발전이 보였다'라는 전제에는 공감하나 박정희 '덕분에' 에 대해서는 꽤 회의적이지 않나.. 뭐 그렇게 생각해봅니다. 잘난 지도자 하나로 경제발전이 얻어지기도 어려울 뿐더러(못난 지도자 하나로 말아먹기는 참 쉬운 반면에), 예전에 다른 분의 블로그에서 본 겁니다만 결국 박정희 정권의 경제정책 역시 실패와 수정의 연속입니다(어디나 그러하듯). 누구는 성공하고 누구는 실패하는데에 있어서 우연의 요소라는 건 굉장히 중요한 것이고, 누군가가 잘나서 성공했다라는 관측은 많은 부분 위험하지 않을까 그런 우려를 해봅니다.
Manchester United
11/12/08 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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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우스개소리로 제가 하고 다니는 소리인데, 요새는 정말로 궁금해지는게 있네요. 박정희처럼 독재를 해도 경제만 살리면 된다는 분들은 카다피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분란의 의도가 아니라 정말 궁금해서 댓글 달아봅니다.) [m]
11/12/08 09:23
수정 아이콘
카다피는 초기의 이념을 완전히상실한지 오래였지요... 추악한 독재자의 이미지만 남은상태였구요
박정희씨가 끝까지 독재했다면 어떻게 변모했을지는모르지만 암살당하기전까지의 이상은 괜찮았습니다
개인적인비리는알수없으나 적어도 세습의 기미는없었고요
구밀복검
11/12/08 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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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렇다 저렇다 의견 표하고 싶진 않습니다만, 적어도 박통의 <공>과 <과>를 분리하자는 주장은 있을 수 없지요.
왜냐하면 둘은 전혀 별개의 것이 아니라 내적으로 단단히 연결되어 있었으니까요. 간단히 말해서, 쿠데타로 인한 정통성 결여를 커버하기 위한 것이 경제 발전이었고, 경제 발전을 수행하기 위해 행해진 것이 독재입니다. 독재가 경제 발전의 수단이며, 마찬가지로 경제발전이 독재의 수단이었지요.

따라서 둘을 별개로 판단한 다음에 +-가감법을 행하는 건 당대의 정부의 매커니즘에 대한 몰이해에 기인한 잘못된 접근 방식이고, 일단 기본적으로는 이를 시대적인 총체로서 파악하는 것이 맞겠지요.
결국, <경제 발전은 쿠데타와 독재를 정당화할 수 있는가>란 질문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그 외의 <괄호치기>, 즉 공 이야기할 땐 과 이야기 하지 말고, 과 이야기할 땐 공 이야기 하지 말자는 시도는 기만적이지요.
unluckyboy
11/12/08 0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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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발전은 쿠데타와 독재를 정당화 할수 있다라는 것에 대놓고 동의하라는 건 너무 잔인하군요.
전 대놓고 동의하시는 분과 이야기할 생각도 없겠지만요.
11/12/08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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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부터시작된 오공삽질을보니... 박정희씨가 경제만큼은 잘살린건이견이없는데 너무큰약점이있어 평가하기애매하고
더구나 대기업위주로 키울수밖에없었던 폐해가 아직도 크게다가온다는게... 그뒤 대통령들이 이걸잡았어야되는건데말이죠
마늘향기
11/12/08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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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큼 다양한 사업을 주도하고 이만큼 다 성공하는 것도 정말 힘듭니다.
당장 코앞을 바라보는 것도 아니고 몇십년을 바라보는 사업들인데 말이죠.
자원하나 없는 나라에서 이 정도로 해온 것은 분명 한강의 기적 맞습니다.
11/12/08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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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다 국민들이 원한 거죠. 개인의 자유와 인권 같은건 갖다버려도 좋으니 밥만 먹게 해달라.... 조선시대나, 박정희 시대나, 이명박 시대나 다를게 뭐가 있습니까???

한국민족이 인터넷에서 이렇게 열심히 부르짖을 정도로 자유와 개성을 사랑하는 민족이었다면 박정희는 애초에 민중에게 맞아죽었을
것입니다...
지도자가 조금 능력있어보이면 쓸개고 간이고 다빼주고 자신의 운명을 통째로 맡겨버리는 습성은 쉽게 없어지지 않습니다. 박정희는 한국인의 속성이 그대로 드러난 지도자였을 뿐입니다. 한국인들은 경제에 대해 비정상적으로 과열된 집착과 열정을 가지고 있지만, 이는 이면의 수많은 부작용과 폐단을 억지로 눈감고 꾸역꾸역 살아갈수있는 비정상적인 멍청함이 있기에 가능한 겁니다.
박정희의 한계는 외형만 키울줄 알았지 순수 우리만의 기술을 발전시키는데는 문외한인데다 관심도 없었다는 점이고, 이는 전반적인 한국인의 습성과 동일합니다. 당장 먹을 보리도 없는데 무슨 기술이냐??? 서양애들도 처음에는 먹을 감자도 없이 시작했던 건 똑같습니다.
하이브
11/12/08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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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른 경제성장을 이룬 개발도상국들은 대체로 권위주의적인 정부아래에서 밀어붙이기식 경제성장을 이룩한 사례가 많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대만역시 국민당 정부 아래에서 빠른 경제성장을 이뤘습니다.
저는 개발도상국이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과정에서 권위주의적인 정부를 일종의 '필요악'으로 보고 있습니다.

박정희의 경우를 보면, 만약 박정희 본인의 의지로 경부고속도로나 중화학공업 유치를 밀어붙이지 않았으면 한국이 세계10위권의 경제강국으로 발돋움할 일은 없었겠죠.
저는 '박정희의 방식이 21세기 한국에는 맞지 않다'는 점에는 동의해도, 박정희의 공로 자체를 부정하는 것에는 동의할수 없습니다.
민주인후아빠
11/12/08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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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발전에 일조하였다고 하여 치부가 가려지는것은 아닙니다.
11/12/08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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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러한 상황에서 박정성장, 분배, 인권,등등등 백마리토끼를 다 후려잡는다해도 깔사람은 까겠지요.

모 사이트에서는 박정희 전대통령님이 노환으로 죽게되었다면 세간의 평이 크게 달라졌을꺼라 얘기하던 사람도 많은데

어쩌란건지 잘..

박정희 전대통령님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피로링
11/12/08 12:00
수정 아이콘
박정희가 경제쪽에서 평타는 쳤습니다. 무슨말인고 하면 적어도 방해는 안했다(...)는 거죠. 위에도 잠깐 이야기도 나오지만 이승만 아... 이승만 이... 뭐 어쨌든. 그땐 주변 아시아 국가들도 그 정도 발전은 하던시절이었어요. 하물며 북한도 성장했었더랬죠.
그러나 저러나 적어도 기반을 만들었다는거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을겁니다만. 오히려 경제발전으로 치면 전두환 이... 전두환 개...전두환 씨....어쨌든 그때의 경제발전이 더 컷습니다.
11/12/08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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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제가 몰랐던 부분에 대해서도 자세히 기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나치게 공사를서두른 나머지 77명이 사망하고 비공식적으로는 수백명이 사망하는등 여러 고초가 있었지만 결국 이 경부고속도로는
물류에 일대 혁신을 일으키고 전국을 반나절 생활권으로 만드는데 큰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수백명이 사망하는등 여러 고초가 있었지만' 제가 박정희 대통령을 싫어하는 이유입니다. 나이 많으신분들과
의견대립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한강의 기적을 만들기 위해 수백명의 목숨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것 같아서요.

추진력과 리더쉽은 분명 좋은 평가가 되어야 봅니다.
진리는나의빛
11/12/08 13:23
수정 아이콘
왜 대한민국 현대사를 이렇게 비관적으로 보는지 모르겠습니다. 최빈국에서 민주화화 산업화를 모두 달성해서 10위권의 경제대국을 달성한 대한민국을 그렇게 부끄러워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대기업 위주의 정책 때문에 농민 노동자들이 억압받은건 사실이지만, 그 당시 대한민국의 상황에서는 불가피한 정책이였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이 받은 억압은 앞으로 우리들이 나은 지도자를 뽑음으로써 해결해 나가면 됩니다.

그리고 대기업 덕분에 한국인들의 평균 삶의 질이 나아진건 사실 아닙니까? 신문기사를 보니 삼성그룹이 대한민국 GDP에서 20%정도를 차지한다고 하덥니다. 대기업 종속이 매우 심한 문제라면 역시 이 문제를 해결할 지도자를 뽑으면 됩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그 당시 대한민국에서 가장 필요한 것을 알고 그대로 이룬 대통령 입니다. 비록 민주화를 늦추었지만, 산업화는 민주화보다 우선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필요악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이런 대통령은 한명으로 족합니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은 이미 괄목할만한 산업화를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대한민국 국민들이 해야 할 일은 저희 윗 세대가 '잘' 구운 파이를 '잘' 배분할 줄 아는 대통령을 뽑는것이라 생각합니다.
11/12/08 14:05
수정 아이콘
해결할 지도자를 뽑아도 국민들인식이 박정희식 경제발전이 정답이다고 생각하기때문이죠
아직도 경제발전이 우리사회 지상 최대 문제이고 다른 것은 다 차선이죠
님이 말한 문제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게 대통령하나만 잘 뽑는다고 되는 문제일까요?
그리고 그런 대통령을 뽑을수 있을까요? 왜 한나라당이 지지율이 제일 높을까요?
박정희때 박혀버린 인식이 아직도 뿌리깊게 남아 있기때문입니다.
이게 쉽게 지워질수 있는것이 아닙니다.
이런 박정희 망령들을 뿌리 뽑기 위해서도 어느정도 이상의 박정희에 대한 격하는 꼭 필요합니다.
11/12/08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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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죠.
세계 정세. 미국의 우호. 한국인종특. 등등을 대면서
옆집백수가 그시절 대통령해먹었어도 그정도는 했을거라면서.
PokerFace
11/12/08 13:55
수정 아이콘
뭐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차도 별로 없던 시절에 서울과 부산사이에 왕복8차선의 도로를 건설해야겠다고 생각했을테고 세계경제인들이 가망이없다고해도 아무것도 없는 영일만에 세계최고급의 제철소를 건설해야 한다고 생각했을것이며 난데없이 대규모 조선업을 육성하겠다고 생각했을테죠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수출지향주의로 갔을거고 경공업하다가 난데없이 중공업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했을것이며 전자공업 자동차공업을 국가중책사업으로 육성해야겠다고 생각했을테죠

세계 유수의 경제전문가들은 다 아니다 한국에선 중화학공업은 가망이없다라고 했지만 한국인은 누가 대통령이 되도 바보만 아니면 다 그렇게 생각했을테죠

당시 한국사정은 경제발전하기 워낙 좋은 상황이었고 한국인은 세계어떤민족보다 근면하고 성실한 민족이기때문에 누가 대통령되도 경제를 발전시켰겠죠 [m]
11/12/08 14:08
수정 아이콘
PokerFace 님// 대부분의 사람이 아니라 하면 일단은 아니라고 보는게 더 합리적입니다. 타국의 전문가들은, 애초에 자신들은 생각도 하지 않는 가혹한 인력 차출과 작업시간 확장을 박정희가 써먹으리라고는 생각할 수가 없었던 거죠. 즉, 그들은 그나마 최대한 한국의 상황을 "이성적"으로 판단해준 겁니다.

외형적인 성과 자체를 이룩해낸건 분명 박정희의 공도 많이 있습니다. 그는 나름 검증된 인사들인, 한국의 역대 대통령들이라는 인재풀 속에서 비교해도 개인적인 역량에서는 최고 수준입니다. 그 시절 이명박이나 전두환이 집권했다면, 경제 성장률은 좀더 낮았을 거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아닌건 아닌겁니다. 박정희는 분명 집권하지 말았어야할 지도자입니다.

그리고 덧붙여서, 경부고속도로로 인해 전국이 반나절 생활권이 되면, 가장 큰 이득을 보는 것은 국민이 아니라 대기업과 정부의 관료들입니다. 서울 사는 국민들이 개인적인 용무로 인해 부산 갈일이 얼마나 있을까요?
박정희가 시행한 정책들 중 이 논리에서 벗어나는 정책은 거의 없습니다. 그럼 대체 누굴 위한 정책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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