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신라, 백제. 이 삼국시대가 재밌는 이유는 삼국삼색으로 각자의 재미가 있기 때문일 겁니다. 아무래도 고구려가 가장 인기 있을 수밖에 없지만 신라, 백제도 각기 팬이 있죠. 평화가 좋다지만 역사에서 인기 있을 때는 서로 갈라져서 투닥투닥할 시절. 싸우는 건 안 좋고 평화가 좋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도 오히려 이 때 강조되죠 (...) 그나마 평탄하게 간 우리 역사에서 이럴 때를 찾긴 정말 어려우니까요.
이 세 가지 느낌을 문명의 지도자 (...) 로 정리해 보자면...
백제는
[우호 이상의 도시 국가로부터 얻는 식량, 문화의 양이 50% 증가]
시암. 현재의 태국이죠. 종특은
[군신은 부자와 같다]. 태국의 세종대왕이라 할 만한 람캄행의 방식에서 딴 것입니다. 그는 힘으로 치기보다는 주변국과의 우호를 통해 영토를 늘려갔습니다. 이를 본 따 만든 종특입니다.
근초고왕 때의 강력한 확장이 마냥 거짓이 아니라면, 그리고 짧은 기간 동안 급작스런 성장을 보면 내릴 수 있는 결론은, 그가 주변국을 지배한 것은 완전 점령이 아닌 간접 지배, 말 그대로 영향력을 늘린 것으로 봐야 될 겁니다. 애초에 삼한에서 맹주 자리를 차지했던 마한, 그 마한의 맹주로 실질적인 삼한의 맹주 격인 위치에 있지 않았나 하는 거죠.
문제는 이런 정책의 가장 큰 약점, 백제의 힘 자체가 약해지면 모든 게 물 건너 간다는 게 있죠. 실제 람캄행 대왕이 죽은 후에 시암도 그런 길로 갔다는군요. -_-; 이런 점에서 광개토대왕의 등장은 백제에 있어 재앙이나 다름 없었을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고구려는...
Mongol Terror
[도시 국가 소속 유닛과 도시 국가에 대한 전투력 30%증가, 모든 기병 유닛의 이동력 +1]
역시 이 양반이겠죠. (...) 주변 소국은 물론 한의 군현까지도 치고 받았던 고구려. 그런 점에서 백제와 고구려의 스케일이 다르긴 했습니다. 문명 해 보시면 그 종특도 시암과 상극이죠.
무엇보다 백제와 고구려의 주 전장이었던 황해-평안도를 차지하기 위한 필요 자체가 두 나라가 달랐다고 봅니다. 이에 대해서는 밑에서 다시 얘기하겠습니다.
한편, 신라는... 참 정하기 그렇죠. -_-; 굳이 뽑자면...
[손자병법 - 위대한 장군 전투력 보너스 15% 증가, 출현 속도 50% 증가]
[고유 유닛: 연노병 - 석궁병의 대체 유닛. 원거리 전투력이 15에서 11로 감소되었으나, 원거리 공격을 행동력 만큼 할 수있다.] (신라활 짱)
여왕이 있었다는 점을 들어 요거로 하거나...
[바빌론 - 문자 개발시 위대한 과학자 탄생, 위대한 과학자 탄생 속도 50% 증가]
[고유 유닛 : 궁수 - Archer(궁사)에 비해 전투력 4->6, 원거리 전투력 6->8 (신라활 짱)]
[고유 건물 : 바빌론 성벽 - 성벽에 비해 방어 5->7.5, 생산비용 80->65 (방어 방어)]
위대한 과학자는 없었지만 기술자가 많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요게 맞겠죠.
백제의 특성을 간접 지배라 했지만, 사실 이건 고구려-신라도 크게 다를 게 없었습니다. 후삼국시대를 보면 알죠. 하지만 백제는 이 두나라보다 영 덜 했던 모양입니다. 신라도 리즈 시절을 맞기 전까진 그랬는데, 신라와 백제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죠.
둘 다 (혹은 고구려까지 셋 다) 수도가 심심하면 털렸는데, 백제는 크게 피해 입고 뒤로 밀려나기까지 한 반면, 신라는 참 억척같이 막아냈습니다. -_-; 초기 왜에게 신나게 뜯길 무렵, 장수왕의 한 방 러시를 막은 어마어마한 일을 저질렀던 것, 멸망 직전까지도 신나게 밀리고 있었던 등... 그런 가운데서도 신라는 참 악착같이 살아남았습니다. 거기다 외교도 정말 잘 했죠. 살아남아야 했거든요. 신라가 약해졌을 때 친 두 번의 치트키는 결국 두 나라의 운명을 갈랐습니다. 만약에 문명 간에 외교력에 특혜가 있는 문명이 있다면 그 쪽을 택하겠습니다만, 사람끼리도 붙어야 되는 문명에서 그런 건 없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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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땅이 얼마나 필요했겠는가, 혹은 지리적인 조건이 나라의 발전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대해서는 참 얘기하기가 힘듭니다. 지식도 지식이지만, 제국주의 시대 때 많이 우려먹었거든요. 아프리카 등은 갈등이 없어서 발전하지 못 했다느니 뭐 이런 식으로요. 그래도 무시할 수만은 없어 보입니다.
이런 얘기는 저 자신의 가설에 불과하니 (거기다 저 고대사 지식 부족하다는 걸 다시 얘기하면서) 아래의 그림을 봅시다.
1차 출처 : 아즈마 우시오의 "고대 동아시아의 철과 왜"
2차 출처 : 네이버 역개루 "안드로공작"님 글
예전에 말했던, 한반도와 만주의 철광 위치입니다.
이를 보면 근초고왕 때부터 왜 백제가 남쪽보다는 황해, 평안도 쪽을 노렸는지 알 만 합니다. 철기시대의 힘은 역시 철, 저 곳을 차지한다면 꽤나 우위를 차지할 수 있죠. 어차피 먹을 건 백제에 널려 있었습니다. 또한 낙랑군의 위치에서 볼 수 있듯 중국과의 무역에서 중요한, 한반도 내 최고의 땅은 당시 평양 인근이었을 겁니다.
고구려 역시 마찬가지였죠. 그래서 계속 붙을 수밖에 없었던 것인데... 이 땅을 필요로 하는 절박함은 달랐을 겁니다. 고구려가 시작된 곳은 압록강 중상류, 참 살기 힘든 곳이죠. -_-; 뻗어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광개토대왕 때부터 평양을 본격적으로 개발하기 시작해 장수왕 때 천도하기에 이릅니다. 고구려에게 이 지역은 국가의 중심이 될 지역, 하지만 백제에게는 적당히 영향력만 미치면 되는 곳이었죠.
문명으로 따지면 시작 지점은 참 좋아서 철 자원이 많은 곳을 골랐는데 하필 만난 적이 고구려 -_-; 뭐 그 이후에도 왜와 연합해 계속 힘을 발휘하고 신라와도 동맹을 맺어 고구려를 막긴 했습니다만, 백제가 부흥을 하게 된 때는 전남 지역을 확실히 차지하게 된 무령왕 시절에야 가능했죠.
한편 신라가 가야를 먹는 싸움에서 백제에 이긴 후 급속히 발전한 이유도 이거면 이해가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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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얘기들을 함에 있어, 아니 모든 얘기에 있어 가장 경계해야 될 것은 흑백논리겠죠. 백제가 간접지배를 많이 했다 하지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 마찬가지였습니다. 또한 신라와 백제 역시 그렇게 간접 지배만 한 게 아니라 주변을 직접 먹어가면서 성장했죠.
문제는 이게 언제이냐... 하는 거겠죠. :)
학계에서는 학계대로, 역덕계에는 그들대로 싸움이 일어납니다. 삼국사기의 초기 기록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 것이냐인 거죠. 특히 백제와 신라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너무 많습니다.
첫째, 왕들의 재위기간이 너무 깁니다.
신라의 경우 AD514년까지, 22대의 왕의 평균 재위 기간이 26년에 가깝습니다. 반면 중, 하대의 34명은 12.38년이죠. 일본서기와 비교하면 참 재밌는 부분이 나옵니다.
비미호, 왜의 여왕이었던 히미코는 중국과 수교한 시기가 238년으로 나옵니다. 일본서기에서는 그녀를 아예 없애고 진구황후와 동일시했는데, 중국의 기록까지 없앨 순 없었죠. (...) 이를 통해 2갑자, 120년이라는 기간을 끌어올렸다는 증거로 흔히 인용됩니다.
이 비미호와 신라가 수교했을 때는 아달라 이사금 때, 173년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의심하지 않을 수 없죠.
백제는 더 심합니다. 온조완 46년, 다루왕 49년, 기루왕 51년 등등... 너무 길죠.
고구려의 경우 그나마 낫지만, 태조왕의 어마어마한 재위기간을 생각하면 그 이전의 기록에 의문을 품게 되죠.
둘째, 신라와 백제가 너무 빨리 싸웁니다.
백제의 경우 2대 다루왕, 신라의 경우 그 유명한 4대 탈해 이사금 때부터 허구헌날 싸웁니다. (탈해가 4승 3패로 이깁니다 ( ..)) 근데 이게 너무 빠르다는 것이죠. 이게 성립하려면 우선 온조왕과 혁거세부터 시작된 주변국 복속이 시작되야 하는데, 고고학 발굴을 통해 그 지역들에 여전히 백제, 신라와는 다른 증거들이 나오면서 부정됐고, 이 역시도 부정되는 거죠.
특히 백제의 경우는 더 문제가 되는게, 초기 왕의 기록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정작 뒤로 갈수록 급속히 줄어들게 되죠. 김부식이 어디서 정보를 얻어 왔는지 모르겠지만, 무언가 많이 덧씌워졌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셋째, 고고학적인 발굴 문제, 그리고 고대 국가의 정의 문제가 또 걸립니다.
백제의 경우 기단식 적석총이 3세기에 돌연 등장합니다. 이게 고구려에서 쓰던 방식이죠. 여기서 백제의 확실한 정의가 필요합니다. 신라와 백제의 건국을 2~3세기로 잡는 것은 이런 이유가 크죠.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 백제의 확실한 정의가 무엇일까요? 역시 중요한 건 고구려계가 내려와서 지배하고 성장한 국가라는 거겠죠. 그렇다면 이들이 내려오기 전에 한강 유역에는 이만한 집단이 없었던 걸까요? 있었다면 이들 역시 백제로 볼 수 있을까요? 흔히 온조-비류 설화로 잘 알려진 백제 건국 설화도 세 개로 갈라져 있습니다. 이에 대한 얘기는 나중에...
신라의 경우 더 합니다. 사로국이 만들어진 게 확실히 언제인지, 정치의 주체가 똑같았는지, 이런 문제들이 걸려 버리죠.
그나마 고구려의 경우는 정말 낫습니다. -_-; 전한과 후한을 갈라버린 왕망이 고구려에 병력과 물자를 요구했다가 고구려의 반발을 얻기도 했고, 그 때문에 "하구려 추"라고 낮춰 부르기도 했거든요. 그 때는 주몽의 아들 유리왕의 시대, 고구려라는 정치 집단이 있었던 것은 확실합니다.
일본서기는 이렇게 건국 시기를 잡는 데에는 도움이 안 되죠. 이런저런 문제가 걸립니다. 일단 3세기에 만들어진 삼국지에 백제와 사로국이 등장하는 것으로 봐서 그런 이름을 가진 소국이 그 때는 있었다 정도죠.
문제는 있지만 건국 자체는 믿어야 된다는 삼국시대 초기 기록 신뢰파, 아예 싹 다 무시하고 태조왕-내물왕-근초고왕(혹은 고이왕) 때부터 보자는 시각, 이래저래 단서를 잘 잡아서 일본서기에서 하는 것처럼 여기저기 자르고 붙여서 만들어보자는 기년 수정파가 있습니다.
무조건 기원전에 세워졌음. 이 식민빠들아 vs 이게 말이 됨? 그냥 이전 거 다 짤라 ㅡㅡ
이 정도 수준이 아닌 이상에야 각자 어느 정도 접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맨날 싸우죠. 아마 대한민국 땅 자체를 뒤엎지 않는 이상 영원히 결론은 나오지 않을 겁니다. 그나마 국토 대비 가장 땅을 많이 판 나라가 한국이라고 하는데 이 모양이니 참 -_-a 두번째는 일본이라는군요. 일본은 야마토국 정도는 어느 정도 결론이 나고 있는 모양인데 다른 소국들은 위치 비정도 하기 힘든가 봅니다.
이런 점에서 삼국 사기 초기 기록을 부정한다고 식민빠라 욕 하는 게 참 싫죠. -_-; 일제가 삼국 건국 연대를 확 낮춘 게 아예 이유가 없는 게 아니고, 그 후에도 계속 연구되는 게 이를 부정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리고 완전히 결론이 나지 않는 상황에서 학생들에게 "상식" 혹은 "교양"으로 가르치기 위해서는 가장 보수적인 입장을 가르쳐야 되는 게 맞죠. 현재 교과서에서 나오는, 초기는 그랬다는 정도만 하고 초기 왕들의 재위 기간은 표시하지 않는 게 제일 맞아 보입니다.
대강 설명해도 이 정돈데, 그 쪽 전문가들은 얼마나 많은 키배를 벌이고 있을지 상상도 안 되는군요.
자... 이 정도 얘기만 해도 너무 많아져 버렸네요. ( ..)...
다음 편은 백제, 신라의 초기로 본격적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뭐 이번 편이랑 다름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