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가가 지는 해라면 노동자는 뜨는 해, 노무현
그런데, 다음에 등장할 사람은 의외의 인물이다. 어쩌면 이 소설 같지 않은 소설에서 가장 행복해야 하는 사람이다.
그도 한때는 이런 한진중공업 노동자들과 함께 했다. ‘자본가가 지는 해라면 노동자는 뜨는 해다’라고 해맑게 말하던 이다. 그래서 전태일 열사 기일 때는 함께 향을 피우기도 했던 이다. 김진숙과는 노동자도 이론이 있어야 세상을 바꾼다며 소모임도 함께 했던 이다. 최루탄 가루가 싸락눈처럼 내린 범냇골 국민운동본부 옥상에서 막걸리를 나눠먹으며 신나 하기도 했던 이다.
그런데, 그가 누구냐고?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김진숙과 김주익의 한때 동지였고, 고문변호사이기도 했던 이다. 짧은 인연이었지만 그도 이들과 함께 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김주익이 85호 크레인에 오르고, 곽재규가 도크 지하로 몸을 던질 때, 공교롭게도 그는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되어 있었다. 김진숙의 말을 빌리자면 오히려 ‘그의 시대에 가장 많은 노동자가 잘렸고, 가장 많은 노동자가 구속됐고, 가장 많은 노동자가 비정규직이 됐고, 그리고 가장 많은 노동자가 죽었다. 군사독재 시절엔 대드는 노동자만 잘렸으나 그의 시대엔 남녀노소가 잘렸다. 서민의 벗이었던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으나 부자와 빈자의 간극은 훨씬 더 까마득해졌다.’ 핵폐기장 건설에 반대하는 부안 주민들도 얻어 터졌고, 제국주의 석유전쟁인 이라크 파병에 반대하는 시민들도 얻어 터졌다. 새만금 개발에 반대해 생태개발을 외치던 주민들도 터졌고, 농수산물 시장개방에 반대하는 농민들도 얻어 터졌고, 평택미군기지 이전확장에 반대하는 대추리 주민들도 얻어 터졌다. 한미FTA에 반대하는 국민들도 얻어 터졌다. 김주익과 곽재규 외 배달호, 김동윤, 최복남, 전용철, 홍덕표, 이용석, 이해남, 이현중, 정해진, 하중근, 박수일, 허세욱 등 수많은 노동자농민빈민들이 죽어 갔지만, 무엇 하나 바뀌지 않았다. 살 길 막힌 수많은 이들이 죽어가며 ‘자살공화국’ 되었고, 부동산 투기공화국이 되었고, 비정규직은 800만을 넘어 섰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약속하며 노동자민중을 멀리하고, 한나라당과 대연정을 제안하기도 했다. 87년 6월 항쟁과 7,8,9노동자 대투쟁을 통해 열린 절차적 민주주의가 일터와 삶터의 실질적 민주주의로 이행해 나가야 할 역사적 과도기에 그는 수많은 하소연에도 불구하고, 초국적 자본의 이해에 부응하는 일명 ‘좌파 신자유주의자’로서의 노선을 충실하게 밟아갔다.
하지만 그렇게 박창수와 김주익과 곽재규와 김진숙의 곁을 떠났던 그의 생도 행복하지 않았다. 2009년 5월 23일, 그는 역사의 패배자가 되어 혼자 외로이 봉하마을의 부엉이 바위를 망루 삼아 올라야 했다. 그의 죽음은 기실 출구를 잃은 1987년 6월 체제의 죽음이었다. 어디로도 갈 길을 잃고 무상함에 빠져 역사의 미아가 된 그의 유서에는 김주익이 죽음을 통해서라도 지키려 했던 어떤 ‘투쟁의 광장’도, 어떤 사회적 역사적 미련도 남아 있지 않았다. 슬픈 일이었다.
그렇게 한 뿌리에서 시작했던 네 사람의 운명은 길은 달랐지만 끝은 같았다. 무자비한 자본의 질서에 의한 사회적 타살들이라는 점이 같았다. 초국적 자본의 시대에 한 마리 파리 목숨들일 수밖에 없는 역사적 서자들의 운명이 닮았다. 이런 참혹한 자본의 시대를 견딜 수 없었다는 점에서 닮았다. 다만 가해자의 편에 섰었는가, 저항하는 사람들의 편에 섰는가가 달랐을 뿐이다. 먼저 가버린 이들에게 따질 바는 아니겠지만 나는 그래서 노무현이 한 나라의 대통령까지 한 위대한 이였다 하더라도, 그 삶의 가치에서는 김주익과 곽재규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많은 세월이 흘러야겠지만, 조선왕조 시대 어느 왕의 이름보다 민란을 이끈 전봉준과 김개남이 역사에 길이 남는 까닭일 것이다.
해고는 살인이다
그렇다면 이 모든 죽음들을 통과하고 승리한 자는 누구인가.
한진중공업. 그렇다. 삼성그룹. 그렇다. 현대자동차. 그렇다. 쌍용자동차. 그렇다. 대우자판. 그렇다. 콜트콜텍. 그렇다. 발레오공조. 그렇다. 재능교육. 그렇다. 전주버스. 그렇다. 이명박. 그렇다.
현상적으로 본다면 그렇다. 박창수와 김주익과 곽재규의 목숨을 집어 삼킨 한진중공업은 올해에도 마지막 남은 공장 인원의 1/3인 400명을 정리해고 하겠다고 나섰다. 십여 년 사이 수만 명에 달하던 노동자들이 800여명밖에 남지 않고 모두 잘려나갔다. 대부분은 비정규직이 되었다. 이 틈에 공장은 이미 수 조원을 들여 필리핀 수빅으로 이전해 두었다. 2010년에만 비정규직 포함 3000여명이 잘렸고, 300명이 강제휴직을 당했고, 울산공장이 폐쇄됐다. 경영이 위기에 처했냐고. 천만의 말씀. 2011년 올해 270여명을 다시 희망퇴직으로 정리하고, 나머지 170여명을 정리해고 통보한 다음날, 대를 이은 조남호 사주 일가와 주주들은 174억의 고배당을 챙겨갔다.
한진중공업만 그러냐고? ‘이병철 회장의 아들이 이건희 회장으로 부자 1위가 되고, 또 그 아들 이재용 상무가 부자 2위가 되는 나라. 정주영 회장의 아들이 정몽구 회장이 되고, 또 그 아들 정의선 부회장이 재계순위 4위가 되는’ 나라다. 이미 900만에 이르는 노동자서민들이 비정규직의 나락으로 떨어졌지만 거기에 그치지 않고, 오늘도 ‘사회적 살인’에 다름 아닌 정리해고와 비정규직화, 공공부문 사유화 등 자본의 위기를 노동자민중의 위기로 전가하는 구조조정은 끊이지 않고 있다.
다시 85호 크레인, 김진숙
그리곤 2011년 1월 6일. 새벽 3시. 한 여성노동자가 혼자 김주익의 영혼이 아직 내려오지 못하고 있는 85호 크레인의 차가운 난간을 붙잡고 올랐다. 사측이 정리해고 명단을 발표하기 전날이었다. 8년전 김주익과 곽재규가 죽음으로서 지킨 민주노조와 조합원들의 생존권이 모두 산산조각 나고 있는 때였다. 마지막 살아남은 자. 김진숙이었다.
그는 지난 8년 동안 방에 불을 때지 않고 살았다. 85호 크레인에서 혼자 추위와 외로움에 떨다 죽어간 김주익 때문이었다. 그런 그가 웬일인지 지난 1월 5일 저녁, 함께 살던 후배 황이라에게 굳이 밥을 같이 먹자하고, 8년여 동안 가지 않던 목욕탕을 다녀오더라 한다. 이틀 전엔 비로소 8년 동안 불을 때지 않던 방에 보일러를 켰었다고 한다. 그렇게 목욕재개를 하고 밤늦게 나간 그가 새벽에 문자를 보내왔다. ‘놀라지 말고 책상 위 편지를 봐라’라는 문자였다.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 생각했는데’, ‘평범치 못한 삶을 살아오면서 수많은 결단의 순간들이 있었’지만 ‘85호 크레인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기에’, ‘이번 결단을 앞두고 가장 번민했’다고 한다. 도대체 그 번민이 어떤 의미일까. 나는 눈물이 왈칵 쏟아져 생각할 수도 없다.
그는 그 의미를 알기 때문에 자신만은 ‘주익 씨가 못해 봤던 일, 너무나 하고 싶었으나 끝내 못했던, 내 발로 크레인을 내려가는 일을 꼭 할 겁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이 85호 크레인이 더 이상 죽음이 아니라, 더 이상 눈물이 아니라, 더 이상 한과 애끓는 슬픔이 아니라 승리와 부활’의 자리가 되도록 ‘아직도 85호 크레인 주위를 맴돌고 있을 주익 씨의 영혼을 안고 반드시 살아서 내려가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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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5호 크레인 위의 김진숙 지도위원 [출처: 금속노조 부양지부] |
사람들이 염려하지 않게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던 크레인 위에서 오히려 ‘공기 좋고, 전망 직이고, 젤 좋은 게 뭔지 아십니까? 사람들이 다 알루 보입니다. 방이 좀 작아서 그렇지 발코니도 널찍해요. 봄이 오면 텃밭을 가꿔서 가을에 걷어 먹을 생각’이라고 눙을 친다. ‘아직 수맥 찾는 법을 몰라’, ‘양치질은 짝수 날만’ 하고, ‘세수는 윤석범 동지 장가가는 날은 꼭 한다’라고 한다. ‘35m 크레인 위에서 군고구마 먹어 본 사람’ 있냐고 골린다. 징역살 땐 하루에 4,520원 밖에 안쳐주더니, 오늘부터는 하루 손배 100만원짜리 인간이 되었다고, 이제야 제 가치를 인정받는 것 같다고 신나 한다.
올라와 보니 ‘동지들이 많이 모인 날은 삶 쪽으로, 동지들이 안 모이는 날은 죽음 쪽으로 위태롭게 기우뚱거리며’ 129일을 버티던 김주익의 마음이 이해된다고, 김주익을 죽인 건, 어쩌면 나였다고 쓰기도 한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처럼 모두가 개별화되어 서럽게 죽지는 말자고 한다. ‘산 자와 죽은 자는 저들이 갈라놓은 이간질일 뿐’이라고 한다. ‘우린 어제도 하나였고, 오늘도 하나’라고, ‘우리 단결이라는 방탄조끼’를 입고 끝까지 단결해서 꼭 승리하자고 한다.
한진중공업엔 우리들만 다닌 게 아니라고 한다. ‘평생을 새벽밥하며 남편 출근하는 동안에도 한시도 맘놓지 못했던 아내들도 다녔고, 아빠 돌아올 시간만 목 빠지게 기다리다 아빠 얼굴 그리며 잠들던 우리 아이들도 다녔고, 노심초사 아들내미 사위 걱정에 한시도 편할 날 없던 우리 부모님들도’ 다녔던 공장이라고 한다. 도대체 수십 년간 ‘일요일 날에도 특근 나가던’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냐고, 우리가 어떻게 경영을 어렵게 했냐고 한다. ‘지 마누라, 지 새끼 옆에 있는 시간보다 회사에 있는 시간이 훨씬 길었던 저 사람이 도대체 어떻게 회사를 어렵게 만들었’냐고 한다. 자신은 ‘예준이가 두 돌이 되는 것도 이 공장에서 보고, 민석이가 세 돌이 되는 것도 이 공장에서 보고, 유주가 학교에 들어가는 것도, 다림이가 중학생이 되는 것도, 현서가 건강하게 잘 자라는 것도 이 공장에서’ 지켜볼 거라며 우리 모두 함께 싸우자고 한다.
이 모든 것은 사람의 말이 아니다. 나는 이렇게 처참하면서도 아름다운 문학을 본 적이 없다.
‘1970년에 죽은 전태일의 유서와 세기를 건너 뛴 2003년 김주익의 유서가 같은 나라. 세기를 넘어, 지역을 넘어, 업종을 넘어, 자자손손 대물림하는 자본의 연대는 이렇게 강고한데, 우린 얼마나 연대하고 있습니까? 우리들의 연대는 얼마나 강고합니까? 비정규직을, 장애인을, 농민을, 여성을 외면한 채 우린 자본을 이길 수 없습니다. 아무리 소름 끼치고, 아무리 치가 떨려도 우린 단 하루도 그들을 이길 수 없습니다. 저들이 옳아서 이기는 게 아니라 우리가 연대하지 않음으로 깨지는 겁니다. 맨날 우리만 죽고, 맨날 우리만 패배하는 겁니다. 아무리 통곡을 하고 몸부림을 쳐도 그들의 손아귀에서 한시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이 억장 무너지는 분노를,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이 억울함을 언젠가는 갚아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버이날 요구르트 병에 카네이션을 꽂아놓고 아빠를 기다린 용찬이. 아빠 얼굴을 그려보며 일자리 구해줄테니 사랑하는 아빠 빨리 오라던 혜민이. 그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좀 달라져야 하지 않겠습니까?’라는 시대의 절규를 나는 들어 본 적이 없다. 이렇게 아름답고 존엄한 인간의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그는 지금 한진중공업 동료 노동자들과 그 가족만을 위해 싸우고 있지 않다. 이 서러운 이야기는 우리 시대 평범한 모든 이들이 함께 살아 온 한 시대에 대한 이야기다. 지금 여기서 살아가고 있는 모두의 운명과 관련된 이야기다.
난 여기에서 굳이 그런 김진숙을 ‘소영웅주의’네, ‘절차와 지침’을 따르지 않고 조직을 와해시키는 비조직적 행동이네 하며 깠다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할 까닭은 못 느낀다. 자발적으로 조합원들이 친 천막을 철거하고, ‘사측의 협조를 얻어 회사 CCTV를 분석해’ 누가 김진숙이 오르는 것을 도왔는지를 조사하며, 촛불문화제의 음향 제공까지를 거부하며 크레인 농성 초기 김진숙을 비난했다는 한진중공업 노조 지도부를 이야기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 후 단결해 지금 다시 47m 높이의 제2안벽 크레인 위로 올라간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장 문철상과 한진중공업 지회장 채길용을 생각하고, 근처 거제도에서 다시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며 15KW의 전류가 흐르는 송전탑엘 ‘신나’를 들고 올랐다는 김진숙의 또 다른 벗 강병재에 대해서만 얘기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14명의 동료를 잃고 오늘도 거리를 헤매고 있는 쌍용자동차노동자들과, 그 추모제가 열리는 날 재능교육 본사 앞에서 삭발을 하고 단식을 선포했다는 재능교육비정규직 유명자와 그 동료들의 이야기도 뼈아프지만 굳이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대법원 판결에 따른 정규직화 요구를 하다 도리어 구속되고 해고되고 징계당하며 울산 현대차 공장 앞에서 오늘도 끌려가고 있다는 현대자동차사내하청 비정규직들의 얘기를 굳이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이대와 고대와 연대에서 농성 중인 청소용역 노동자들을, 프랑스 대사관 앞에서 벌써 몇 달째 노숙을 하고 있는 발레오공조코리아 노동자들을, 또 그렇게 몇 년째 싸우고 있는 국민체육진흥공단의 비정규직들을, 이제 다시 거리로 나앉게 된 대우자판 노동자들을, 다시 망루를 쌓고 올랐다는 전주버스 노동자들을, 5년째 위장폐업 한 공장을 지키며 뜨개질로 하루를 보내며, 기금 마련을 위한 CMS 신청서를 만들었다고, 한번 봐달라고 보낸 콜트-콜텍 기타 만들던 노동자들을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이럴 때 민주노총이 나서서, 금속산별이 나서서, 삼성에서, 쌍용자동차에서, 그리고 다시 어디에서 죽어가고 있는 노동자들에 대한 범국민적 저항에 나서야 한다고, 날마다 청와대와 전경련과 경총으로 진격하는 투쟁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이 이야기의 한 주인공이기도 했던 노무현의 계승자들이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박창수, 곽재규, 김주익의 벗인 김진숙이 다시 ‘85호 크레인’에 오르듯, 신자유주의라는 야만의 행진을 멈추게 할 부엉이 바위에 결단코 오르는 일이라는 것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립서비스가 아니라 진정한 민주대연합을 바란다면 이제 다시는 김주익과 곽재규를 등떠밀지 않고, 시대에 참회하며, 지금 당장 구원이 필요한 그들에게 달려가 ‘이기지 못하면 살아 돌아가지 않겠다’던 김주익의 결의만한 진정성을 보여주는 일이라고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우리 시대 모두의 운명과 관계된 이야기다. 저 아래쪽 바닷가에서 일어나는 일이기에 멀어 보이는 일이 아니다. 언제 당신과 내가 다시 이 소설의 주인공이 될지 모른다. 함께 나서 저 여린 소금꽃나무 김진숙이 김주익의 슬픈 영혼을 고이 안고 저 85호 크레인에서 내려올 수 있도록 하자. 우리 시대가 고통받는 모든 이웃들을 함께 껴안고 조금은 더 안전하고, 평화롭고, 평등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자.
그러기 위해 한 발짝만 더 우리 자신의 미래를 위해, 지금 힘이 필요한 그들에게 함께 달려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