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굳이 현재까지 은근히 남아있는 독일 공권력의 파시즘을 비난하려는 의도도 아니고, 유럽 여행의 위험에 대해서 이야기 할려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단지, 제가 여행을 하던 도중 특별한 경험을 했으며, 그것을 글로 옮기는게 어떨까 싶어서 여기 피지알에 '글쓰기'버튼을 누르게 되었군요. 단지 흥미롭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로 말할거같으면 토론토에 사는 이민자이며, 유럽 여행을 할 당시에는 만 22살이었습니다. 유럽에 가게된 계기는 제가 노르웨이에 아는 사람이 있어서였고, 여행을 시작한 도시는 런던이었습니다. 그런뒤 브루지(Brugges), 암스테르담(Amsterdam) 그리고 네번째로 여행하게 된 도시가 베를린이였죠.
베를린에 도착하자마자 저는 우연히 아일랜드 출신의 학생과 친분을 맺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서로를 만나게 된 곳은 베를린 기차역. 그도 베를린을 여행하던 참이였죠. 내가 우연히 길을 물어보는 계기로 우리는 이야기꽃을 피워나갔고, 결국에는 그가 묵는 호스텔의 위치까지도 알게되었습니다. 짧은 동안의 이야기였지만 우리는 서로에게서 깊은 유대감을 느낄 수 있었고, 저는 베를린을 떠나기 전에 꼭 그와 함께 술한잔이라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그리고 저는 베를린에서 정말 지루한 이틀을 보내게 됩니다. 날씨는 추운데다가(그때가 2월달이였죠), 제가 묵고 있는 호스텔에 일하는 사람들은 불친절하고, 같은 여행자들이랑 친해질려고 애를 써도 다른 도시에서 경험했던것과는 달리 일이 잘 안풀리더군요.
그래서 저는 베를린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에, 그 아일랜드 출신의 청년이 머무는 호스텔에 들어섰습니다. 호스텔 로비에는 바가 하나 있었고 거기에서 맥주를 하나 시킨 다음 바텐더랑 잠시 이야기를 하던 도중, 그가 제 어깨를 툭 치더니 반가운 얼굴로 저를 맞이 하더군요. 이때 그는 자기 이름을 키안(Kian)이라고 소개를 하였고 우리는 즉시 일사분란하게 술을 마시기 시작합니다.
아, 하필 그날 얘거마이스쳐(Jagermeister) 한샷이 1유로였다는게 아마도 우리가 상당히 술에 취할수 있었던 원인이였던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함께 여행온 학교 친구들을 제게 소개시켜줬습니다. 알고보니 키안은 미대생이였고, 베를린에는 자기 학과 사람들이 수행여행차 온 것이였습니다. 저는 급격히 키안의 학교친구들과 친해졌고 (다시 토론토에 돌아와서 사진앨범을 보니 모르는 여자들과 키스하는 사진도 몇장 있더군요... 이런건 좋습니다) 우리는 시내에서 술을 마시자는 의견에 따라 호스텔 로비를 벗어납니다. 그때 아마 우리는 10-15명이 아니였나 싶네요.
다른 학생들을 저랑 키안보다 더 앞서 나갔고 우리는 알딸딸한 기분속에 베를린의 밤공기를 마시며 걸었죠. 지난 이틀간의 지루함은 싹 사라지고 전 긴장과 흥분으로 차 있었습니다.
그러던 와중, 키안이 어디에선가 굵은 마커 펜을 가져오더니 주변에 있는 벽에다가 자기 이름을 명필로 적어내기 시작합니다. 역시, 미대생은 그런 와중에도 미학적인 감각이 남아있었던걸까요. 저는 담배를 한대 피며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아, 그리고 베를린에는 워낙에 그라피티가 많아서 키안이 마커로 남긴 흔적은 거의 표시도 안 날 정도였습니다.
그 이후에 일어난 일은 조금 흐릿하군요. 키안은 계속해서 베를린의 벽에다 자신의 예술적 감각을 남기고 있었고 어느 순간 고함이 들려왔습니다. 우리는 앞서 나간 일행들과 간격이 너무 벌어질 것을 우려해 고함을 무시하고 계속 앞으로 서둘러 걸어갔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우리는 10명 가까이 되는 인원이 우리를 둘러쌓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포위망을 지나가려는 우리를 붙잡았죠. 순간 우리가 느낀 것은 '젠장! 강도들이다!'하는 생각으로 우리는 저항을 하기 시작했죠. 저를 잡고 쓰러트리려는 놈들에게 주먹을 날렸지만, 제가 던진 주먹 하나에는 10배의 보복이 왔습니다. 결국 여러차례 맞다가 결국에는 누군가가 저를 쓰려트려서 이마가 바로 아스팔트에 부딫치게 됩니다. 그상황에서 일어나보려하니 오른쪽 눈은 피때문에 가려서 열지도 못하는 상황이었고 코피는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으며 입술도 다 터져있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제 두 손을 잡더니 수갑을 채우더군요.
수갑이 채워진 순간, 저는 이 상황이 이해가 되는 동시에 또한 상황이 정말 엉망이라는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떤 이상한 단체로부터 기습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에 다행하다고 생각을 했지만, 정부의 공권력에 대항하다 피투성이로 쓰러진 내자신을 생각하니 이것 역시 비참한 일이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피를 너무 쏟은 탓에 정신이 혼미해지는 가운데 앰뷸란스 소리가 들려오더군요. 그리도 곧이어 어떤 여자가 제 찢어진 이마를 잠시 관찰하더니, 독일어로 저를 붙잡고 있는 경찰에게 몇마디 나누더군요.
피때문에 눈도 못 뜰 지경인데 그들은 농담도 나눈 듯 했습니다. 잠시동안(네, 정말 잠시동안이었지만 저는 확실히 들었습니다) 농담을 나눈 둘은 제가 병원치료를 받을 필요까지는 없다는 결론을 내린듯, 저를 경찰차안으로 집어넣으려 했습니다.
그때마침 앞서 나간 키안의 친구들이 어느새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들은 일그러진 제 모습을 보고 비명을 질렀죠. 걔네들도 술한잔 했던 모양입니다. 경찰들에게 소리지르는게 제 귀를 아프게 할 정도였으니까요. 그중에 한 녀석은 제 얼굴을 보면서 욕을 해대기 시작했고 경찰들에게 그대로 덤빌 태세로 보였습니다.
정말 그때 화를 내주어준 애들에게는 고맙지만, 그때 제가 느낀 감정은 '경찰들이 원하는 대로 하는것이 최고의 방인이다'였습니다. 정말 제대로 터지도록 맞으니 더 이상 저항을 할 생각이 싸그라 없어지더군요.
사실, 저는 그게 무척이나 편안했습니다. 갑자기 형이상학적으로 이야기가 도는것 같지만, 사실 그때 베를린 시내의 도로판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 독일 경찰의 수갑에 채워져 눈 앞에는 콘크리트 바닥밖에 안보이는 그 상황이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더 이상 저항 할 수 없는 한없는 바닥. 네, 저는 그때 제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했습니다. 한점의 마찰도 일으킬수 없는 바닥의 존재였던거죠. 그 느낌이 아직 꽤 생생합니다. 네, 그리고 그건 사실 편하다고 볼 수 있는 안정감을 제게 가져다주었습니다.
한참이라고 느껴질만한 언쟁이 끝나고, 결국 키안과 저는 경찰차안에 실린 다음 경찰청으로 가게 됩니다. 그때 제가 옆에 있는 경찰과의 대화가 기억나는군요. 저는 물을 달라고 요청했고, 그녀는 경찰서에 가면 물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여경의 목소리에는 잠시나마(네, 정말 잠시나마였습니다) 동정어린 어조가 담겨있었죠. 그 이후 우리는 침묵을 유지 한 채로 베를린의 밤거리를 주행했죠.
경찰서에 도착 한다음 제가 맨 처음 해야했던 것은 옷을 벗는것이였습니다. 유리창 하나 없는 방 안에서 저는 두 경찰의 지시에 따라 옷을 벗었고, 그들은 제가 아무런 무기나 마약류(이때 제가 생각한게, 암스테르담에서 샀던 풀잎(?)들을 가지고 여기까지 왔더라면 얼마나 일이 더 커졌을까 하는 것이였습니다. 다행히 저는 마약을 가지고 국경을 넘는 짓을 하지 아니했고, 결과적으로는 그게 잘 한 짓이 였습니다)가 없다는 것을 확인 한 다음 다시 옷을 입도록 했습니다. 그런 다음 저는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 내었고 독방에 갇히게 됩니다.
경찰서에 도착하고 독방에 갇히게 될때 까지 저는 아무런 설명을 듣지 않았습니다. 이건 그들이 단순히 독일어를 못하는 외국인에 대한 귀찮음 일 수 도 있고 그들 특유의 고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저는 아무런 설명도 없이 독방에 갇히게 되는거죠. 그건, 정말로 공포스러운 일입니다.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이 절단 되고, 그 기한이 어느정도일지 모른다? 아, 정말 지금 생각만 해도 끔찍하군요. 그때 저는 당황하지 않기 위해서 부단한 노력을 했습니다. 우선은 제 감방을 둘러 보았죠. 외부와 연결된 불투명한 창문이 자그만하게 나 있었고 입구에는 역시 자그만한 창문이 달린 철문이 있었습니다. 그 창문으로 앞을보면 복도의 자그만한 부분이 보이는게 다였습니다. 그리고 제 방 안에는 나무로 된 긴 의자가 하나 있었죠. 거기에 누우려니 정말 불편해서 저는 방안을 걷기 시작합니다. 지금 기억하기로는 걸음마 5번할 정도의 공간이 있었던것 같습니다. 저는 아직 잠이 오지 않았기에 독방안을 유심히 관찰하는데만 기울렸죠.
그리고 한두시간이 흐른 뒤, 감방 문이 열리더니 간수가 치즈 한조각과 비스킷, 그리고 쵸콜렛을 가져다 주더군요. 이때 조금 안심할 수 있었던게, 워낙에 형편없는 음식을 가져다 주길래 아마 오래동안 이 감방에 있지 않겠다는 확신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음식을 제대로 차려줬다면 전 아마 불안함을 느꼈을 겁니다. 아무튼 그때 저는 심심했던지라 치즈와 비스킷을 억지로 먹다시피 했습니다. 그리고 쵸콜릿을 자세히 보니 Twix이더군요. 사실 전 그 쵸콜렛을 무척 좋아하는 편이였습니다. 하지만 요 근래에는 전혀 먹은 기억이 안나는군요.
음식을 먹고 나서 저는 잠을 취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새가 우는 소리에 잠이 깼죠. 감방에서 맞이하는 아침은 정말 특이합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가진 아침의 분위기와는 무척 다르죠. 제가 아무리 깨어있고 멀쩡하던 간에, 제 감방 밖에 있는 자와의 의사소통이 되지 않으면 아침이 시작했다고 볼 수 없죠. 그래서 저는 일단 제 방 밖에 일어나는 일들을 세심하게 관찰하기 시작합니다.
발자국소리나 열쇠가 찰랑거리는 소리가 날때 마다 저는 혹시나 싶어서 문가로 걸어갑니다. 제 좁은 시야에는 어느 간수가 또한번 제 방에 오지 않은 채 지나가고 맙니다. 그때 제가 느끼는 감정은 또한번의 좌절. 이때쯤 되니 정말 사람이랑 대화를 했으면 하는 마음이 절실합니다. 인간과의 접촉. 그건 한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고통스럽지만도 가장 만족을 주는 의사소통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여튼 전 그런 생각을 하면서 감방 한켠에 놓인 빨간색 버튼을 누릅니다. 화장실에 가고 싶었던 거였죠.
한 2분정도 지나니 어느 간수가 와서 거친 독일어로 용건을 묻습니다. 저는 영어로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답했고, 그는 말없이 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맨 정신인 상태로 경찰서의 복도를 걸었죠. 하지만 같이 붙잡힌 키안이 어디있나 찾아볼 여유같은건 없었습니다. 저는 황급히 화장실로 안내되었고 저는 오로지 용변을 보는데만 신경을 써야했습니다. 잠시동안 바라본 거울에는 인간접촉이 조금 결여된 젊은 청년이 저를 바라보더군요. 한숨을 내숨과 동시에 저는 다시 제 방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아마 이때 즈음이 아침 9시정도라고 짐작됩니다.
다시 방에 돌아온 후 조만간 제가 보게된것은 어느 간수와 함께 걷는 키안이였습니다. 그들이 간 방향은 분명히 바깥과 가까운 쪽이였죠. 저는 흥분이 되었습니다. 키안이 나가게 된다면 곧이어 저도 나가게 된다는 마음에 저는 앉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죠. 하지만 그들이 나가고 1시간이 지나서도 아무런 소식이 없자 저는 굉장히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혹시 그들이 키안만 내주고(그는 유럽 시민이었으므로) 저같은 이방인에게는 다른 취급을 할지, 저는 엄청 불안했습니다.
그때만큼 생각을 많이 한건 제 평생 없는것 같군요. 공포와 불안. 저는 어느새 몸이 떨린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여름철 집의 뒷뜰에서 친구들과 기타치고 맥주를 마시던 시절이 떠오르고 처음 여자친구와 키스를 한것까지 다 생각나더군요. 네, 저는 밖을 갈망했고 그것을 위해서라면 정말 많은 것을 포기할 각오도 되어있었습니다. 1분이 지나가는게 정말 한시간 같았죠. 몇번이나 방안을 왔다갔다하면서 불안에 떨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바깥에 새들이 우는 소리가 그토록 선명하게 들렸던 적이 없었던것 같습니다. 바깥공기를 정말 마시고 싶었고 호흡도 급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찰나, 끝내 제 방앞에 간수가 서더니 말없이 저를 빼내더군요. 그리고 우리는 취조실에 들어갔습니다.
취조실에는 컴퓨터 몇대와 사복을 입은 직원 몇명이 앉아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어느 중년 아주머니도 있었는데, 그분은 자신이 저와 상담을 할 통역자라고 자신을 소개하더군요. 푸근한 인상을 주는 분이였습니다. 한참 얼어있던 저에게 그분의 미소는 저에게 크나큰 위안을 주었습니다. 저를 데리고 온 간수는 온데간데 없고 저는 보다 인간적인 분위기에서 어젯밤의 소란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독일어로 질물을 받으면 그 통역자분께서 영어로 말씀해주셨고 저는 최대한 간략하게 대답했습니다. 곧이어 보고서 작성은 끝이났고 사진한방(흔히 그 유주얼 서스펙트에서 하는, 벽에대고 찍는 사진말입니다.)찍는 것을 마지막으로 해서 결국 풀려나오게 됩니다.
옷가지와 지갑을 챙긴후,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저는 경찰서 복도를 걷게 됩니다. 그리고 완전히 바깥에 나오기 직전, 저를 기다리고 있던 키안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강렬히 포옹을 했고 바깥으로 나와 너무나도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담배를 나눠 핍니다. 아, 그때의 기분은 정말 말로 형언할 수가 없군요. 담배를 끊은지 반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때 피웠던 담배를 생각하면 한가치 피고 싶다는 생각이 나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택시를 타고 시내로 가서 제대로된 아침식사를 같이 합니다. 팬케익과 독일 소세지가 가득 담긴 접시를 반쯤 죽여놓은 우리는 커피를 마시며 이별을 고합니다. 시도때도 없이 우리는 웃고, 우리가 감방을 함께한 cell mate라는 농담을 했던 기억이 나는군요. 저는 다시 호스텔로 돌아가서 다음 목적지를 향했고, 키안은 베를린에 좀 더 있다 아일랜드로 돌아갔습니다.
그후 한 2주 후에 제가 런던에서 토론토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던 와중에, 저는 키안에게 전화를 합니다. 그는 그때 이미 아일랜드에 돌아온 상황이였죠.
"안녕, 키안. 난 이 유럽여행을 마치고 이제 집으로 돌아 갈려고 해. 이번 여행은 특히나 기억이 될만한 여행이라고 생각하네. 언제한번 다음에 술한잔 하고 싶군. 경찰과의 충돌이 없는 건전한 밤 말이야. 하하하."
언제한번 베를린에 들릴 일이 있으면 제 사진 찾으려 가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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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경찰력은 유럽최고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만큼 치안도 확실한 편이죠. 결국 여행중엔 자신이 조심하는게 가장 좋은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도 작년에 옥토버훼스트에서 6000cc를 먹고 만취된 상태로 숙소에 들어간 적이 있는데 여권이랑 DSLR을 잃어버리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
왜 제목을 베틀넷 감방이라고 봤지 쿨럭-_-;; 재밌네요. 전 02년에 유럽 여행을 했었는데 뮌헨에서 술 한잔하고 숙소로 돌아가다가 지하철 화장실에 들렀는데 술이 좀 취해서 같이 간 후배에게 뭐라뭐라 소리를 질렀는데 왠 2m는 족히 넘어 보이는 2명이 me? me? 하면서 다가오길래 술이 확 깨면서 다급하게 no no no를 외쳤던 기억이 나는군요. 근데 그 때 그 후배 소변 보는 중이었는데 그 자세 그대로 멀어지더라는 크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