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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4/24 17:40
눈시님 글 항상 재밌게 잘 읽고있습니다. 정유재란도 기대가 되네요.
우리 순신형은 그저 찬양할뿐...ㅠㅠ 그저 구국의 영웅이십니다.
11/04/24 17:50
통신이 원시적인 시대였으니 상부에 보고 할 땐 증거품인 수급 위주로 전공 부풀리고, 그게 뽀록 날때는 임금과 이순신장군과의 관계를 이용해 상대를 실각시키는 등, 전장의 무시무시한 왜군은 무서울 것이 없으나 내부의 모사꾼은 정말 무섭습니다. 차라리 심하게 강한 적에게 무너지면 억울한 마음은 좀 덜할텐데......
11/04/24 18:44
눈시BB님 의 글을 읽고 요즘 불멸의 이순신을 다시 보고 있습니다.
어찌 저리 내부의 압박이 심하고, 주변이 적인 상태에서도 멘탈을 유지하고 승리만을 한것인지... 작전에 있어서 꼼꼼함이 甲이신 장군께서 성격도 굉장히 꼼꼼하실 터이거늘... ps. 근데 이런생각도 합니다.. 사람은 능력만 있어서도 안되고, 자신을 지지해줄 조력자가 있어야 한다. 유성룡 아니었으면... ㅠ_ㅠ 장군께선 흰옷입고 누워계셨을 판이니..
11/04/24 21:29
잘 보았습니다. 다음편도 기대할게요.
그런데 정말 원균더러 원흉이라고 적혀있나요? 이번 편 분량에는 없는 것 같은데 나중에 나오려나;; 이순신 장군님께서 오죽했으면 그런 표현을 쓰셨을까 생각하면서 어디 나오는 지 눈여겨 보고 있었는데요 흐흐
11/04/24 21:44
이렇게 열심히 정리해놓은 글을 그냥 읽기만 하니 왠지 죄송스런 기분이군요...
정말 원균이란 작자는 답이 안나오네요. 예전에 배타고 거제 놀러갈때 칠천량을 지나는데 왠지 찝찝한 기분이 들었던게 생각나네요. 앞으로 나올 칠천량해전도 기대가 됩니다. 다음편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11/04/24 22:02
추천 한방 날립니다.
여기서 보면 임진왜란 때 원균은 거의 쓰레기 수준인데 어떻게 1등공신이 되었고 대한민국에선 원균명장론이 나도는지 이해가 안갑니다. ㅠ.ㅠ
11/04/24 22:14
서애 류성룡 선생이 좀 범생이 혹은 예스맨 경향이 있었다고 하죠. 일단 군주가 시키면 네 하고 따라가는 스타일...(신숙주도 비슷한 스타일이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서애 선생이 국가의 충신이자 시대의 명신이었음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임진왜란 그 힘든 시기(명나라 장수들은 까탈스럽고 임금은 찌질하고 신하들은 싸우고 아 놔-_-;)에 거의 조정을 온몸으로 떠받들다시피 한 거목이죠. 국가에 미친 공과면에서 공이 과를 압도하고도 남는 인물입니다.
항상 감사히 잘 보고 있습니다( ^o^)=b 이제 정유재란인데 기대되네요
11/04/24 23:59
이런 거 보면 참 인간의 본성이라는건 시간의 흐름에 관계없이 항상 그 상태에서 제자리 걸음하는 거 같기도 하고... 과거나 지금이나 무능력자들이 상층부를 차지하는 건 어째서인가 궁금하기도 합니다. 모략에 힘써야 올라갈 수 있기에 그쪽만 발달한 건지, 뛰어난 사람들은 아예 처음부터 저쪽에 관심을 가지지 않아 모자란 것들만 간 것인지... 그런 와중에도 이순신 장군같은 인물이 있다는게 읽을수록 참 놀라울 뿐이네요.
11/04/25 03:35
원균을 변호할 생각은 별로 없지만서도, 아직 제 지식이 짧아 대답할 수 없는 두부분이 있습니다.
원균이 진짜로 무능 그 자체인 장수였다면 어째서 임란 전 유능한 장수들을 남도에 배치할때 들어가 있었으며 선무공신에 올라갈 수 있는 공적이 있었는가 -> 실제로 이당시에 배치된 장수들은 어느정도 이름이 알려져 있던 장수들이였다. 그전에 한것이 없고, 능력없는 장수였다면 어쨰서 그시기에 가장 중요한 위치라 할 수 있는 경상우수영에 임용되었겠는가. 게다가, 선무공신은 나라 전체에서의 평판과 관료들의 토의에 따라 이름이 올려지는 자리인데 정말 무능하고 한것이 없다면 여기에 어떻게 이름이 올라가겠는가. 선조의 빽이 있었다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아무리 선조의 입김이 강하다 하더라도, 게다가 부풀린감이 많이 있긴 하지만 1등공신에 올라가는것은 아무런 근거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 두 부분입니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여기서 항상 막혔거든요.
11/04/25 06:00
악 마저 쓰다가 다 날렸네요 ㅠ 다시
선무 공신에 대해서는 의미 부여를 크게 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선조의 정치적인 부분이 크게 적용됐으니까요. 실록 기사 하나를 옮겨 보겠습니다. “윤허한다. 이번 왜란의 적을 평정한 것은 오로지 중국 군대의 힘이었고 우리 나라 장사(將士)는 중국 군대의 뒤를 따르거나 혹은 요행히 잔적(殘賊)의 머리를 얻었을 뿐으로 일찍이 제 힘으로는 한 명의 적병을 베거나 하나의 적진을 함락하지 못하였다. 그 중에서도 이순신과 원균 두 장수는 바다에서 적군을 섬멸하였고, 권율(權栗)은 행주(幸州)에서 승첩을 거두어 약간 나은 편이다. 그리고 중국 군대가 나오게 된 연유를 논하자면 모두가 호종한 여러 신하들이 어려운 길에 위험을 무릅쓰고 나를 따라 의주(義州)까지 가서 중국에 호소하였기 때문이며, 그리하여 왜적을 토벌하고 강토를 회복하게 된 것이다. 별도로 훈명(勳名)을 세우는 것에 대해서는 일찍이 생각해 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호종한 사람을 녹훈할 적에 아울러 녹훈하도록 말했었다. 그러나 이는 대신들이 의논하여 처리하는 데 달렸다.” 보기만 해도 혈압이 오르는 말이죠. 전쟁에서 이긴 건 중국 군대 때문 -> 중국군 부른 건 나를 따라 온 신하들 공 -> 그나마 이순신, 원균, 권율만 싸웠음. 이렇게 해서 호종 공신 > 선무 공신이 됩니다. 이것도 있네요. “우리 나라의 장사(將士)들이 왜적을 막는 것은 양(羊)을 몰아다가 호랑이와 싸우는 것과 같았다. 이순신과 원균의 해상전이 수공(首功)이고 그 이외에는 권율의 행주 싸움과 권응수의 영천 수복이 조금 사람들의 뜻에 차며 그 나머지는 듣지 못하였다. 간혹 그 가운데에 잘하였다고 하는 자도 겨우 한 성을 지킨 것에 불과할 뿐이다." 2등이었던 권응수, 이정암, 김시민은 이해가 가지만 3등은 정말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정문부, 곽재우 같은 의병장들의 이름은 당연히 보이지 않고 김응서 등 꽤 공을 세운 걸로 알려진 장수도 없으니까요. 결국 "공을 세우는"게 문제가 아닌 "선조가 공을 세웠다고 판단하는" 게 문제였던 거죠. 이렇게 호종 공신 86명, 선무 공신 18명이 정해집니다. 이런 상황에서 원균만 따로 얘기할 필요는 없을 듯 합니다. 오히려 원균이 선무공신이 제대로 안 됐다는 걸 증명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되겠죠. 결정적인 부분은 이렇게 공을 논하는 얘기가 나올 때마다 백이면 백 선조가 원균 얘기를 꺼냈다는 점입니다. 그나마 부끄러웠는지 이순신이랑 세트로 얘기하긴 하지만요. 이런 상황에서 선무공신에 내리는 건 힘들었죠. 그래서 선조 눈치 봐서 2등에 올리니 그마저도 거부하고 1등으로 올리라고 했구요. 물론 사관들은 원균 얘기가 나올 때마다 신랄하게 깝니다. (원균이 공이 있다고 하는 사관 론도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임진년의 공, 위에서 말한 공이겠죠) 마찬가지로 선무공신 얘기 나올 떄마다 "아니 왜 공신을 이렇게 정함?"이라고 까죠. 뭔가 역사적으로 남는 뒷다마인 것 같네요. 음... 결론을 말씀드리자면 공신 책정 자체가 선조의 의중에 따라 된 거고, 입김이 강한 정도를 넘어서 공신 얘기 나올 떄마다 원균 얘기를 했으니 도저히 뺄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가만 이거 완결내면서 써야 될 밑천인데 ㅠ;;
11/04/25 09:16
선조가 선무1등에 이순신장군과 원균을 함께 봉해주었다고 해도 둘은 이미 그 당시에 결코 동급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그 시대에서도 원균은 천하의 쓰레기 취급을 하죠. 전쟁후에 지어진 조선판 환타지 소설(?) 달천몽유록이란 고전소설이 있습니다.
이 소설에 보면 저자가 꿈에서 임진왜란때 싸웠던 신립을 비롯한 장수들과 의병장들과 대화를 하며 잔치를 하고 있는데 홀연 한 장군이 나타나자 나머지 장수들이 모두 존경하는 빛으로 맞이합니다. 그 장군이 바로 이순신장군이었죠. 그리곤 또 한무리의 귀신이 나오는데 이 귀신들이 손뼉을 치며 누군가를 조롱하고 있는데 가서 보니 원균이었습니다. 저자 또한 크게 웃으며 함께 조롱을 해주고요. 당시의 원균에 대한 인식과 이순신장군에 대한 인식이 바로 그러합니다. 이후 조선왕조 실록에 보면 원균은 뭐 거의 취급도 안됩니다. 반면 이순신장군의 조선의 기준이 되어버립니다. 임란 전에는 군에 대한 예를 들때 꼭 옛 중국의 명장들의 사례를 들곤 했는데 이 기준이 이순신장군으로 바뀌어 버리게 되는거죠. 예를 들면 과거에 이순신이 xx한 전례에 따라 시행하소서~ 왕이 누구누구에게 승첩을 시켜주자 당년에 이순신도 겨우 얼마만큼 승첩했을뿐인데 너무 과하다~ xx는 과거 이순신이 주둔했던 곳이니만큼 땅이 비옥하고 전투에서 유리한 지형이니 방치하지 말라~ 등등등 수없이 거론이 되죠.
11/04/25 09:35
원균, 이순신, 선조와 그 주변 관료들 이야기를 엮으니까
오늘날 관료들 하는 행태와 너무 똑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현장은 X무시하고 탁상머리에서 결정을 하는... 그러니까 충무공 탄핵, 원균따위가 1등공신 -_-;;; 당시 통신체계의 한계도 있겠지만, 통신체계의 한계도 많이 없어진 오늘날에도 삽질은 계속되는거 보니(가령 구제역이라던가 -_-;;;) 통신체계의 문제가 아니라 그 시스템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에게 문제가 있나 봅니다. 슈퍼컴퓨터를 돌려봐야 그 슈퍼컴퓨터에 명령을 내리는 건 인간이니까요.
11/04/25 15:10
드디어 해전사가 완결되었군요. 그동안 수고하셨어요.
정유재란도 기대하겠습니다. 그나저나 저 원흉이 원균의 성을 딴 뒤 凶을 붙여 원흉이라 한 것인지 아님 단어 원흉을 그대로 가져온 것인지 궁금하네요. 물론 알길이 없을 거 같긴 하지만요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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