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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3/29 21:58
아 불쏘시게...
저희 집에도 하나 있습니다. 불쏘시게. --; 내용에 신뢰를 전혀 줄 수없는 글투에 기겁했다죠. 추천을 받고 골랐어야하는데 말이죠.
11/03/29 22:11
근본적으로 당시 조정의 전쟁 대비 분위기는 '왜구의 대규모 침략'을 막자는 주의가 강했습니다. 일본이 침략하는건 거의 기정사실이었지만 문제는 그게 그동안 상상하기 힘든 미증유의 규모였다는 것이지요. 10만 이상단위로 외국 정벌을 나서는 것은 중국급 대국으로서도 나라의 명운을 건 모험입니다. 실재로 이짓하다가 많이 망했죠? 보급체계라는 문제 때문에 내전 10만 과는 그 차원이 다릅니다. 그런데 일본은 그 짓을 한겁니다. 당연히 조선 조정으로서는 상상도 못했고, 당시 방비도 남해안 지역에 치중되어 있었지요. 제 추측이지만 아마 많아야 몇만 단위로 일시적인 침략이라고 생각했지 진짜 나라 전체를 먹으러 온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겠죠. 당장 선조때 니탕개의 난도 만단위에 오고가는 것이었고 그것 만으로도 충분히 대 사건이었으니까요. 그런데 15만에 추가병력까지 30만이라니. 생산력이 조선의 두배에 달했던 당시 일본에서 조차 전국시대 직후라는 특이한 사항 덕분에 가능했던 규모지요. 오랜 평화후 메이지 유신 내전에서는 기껏해야 몇천단위로 투닥투닥하는걸 생각하면 일본으로서도 스스로도 자체 능력을 넘어선 침략규모였지요.
참고로 충무공은 임란을 대비해서 품계를 몇계단 뛰면서 초고속 승진을 한 경우인데 이런 상식을 깨는 초고속 승진에 대신들과 사간헌에서 극렬하게 반대했습니다. 이걸 커버해 준 백그라운가 바로 선조 자신이었습니다. 임란때 활약했던 인물들의 면면을 보면 선소의 인재 고르는 능력은 탁월했던게 아닌가 싶습니다. 아쉬운건 왕위>>>>>>>>>>>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국가 라는 가치관이었지요. 호란때 발리는 인조와는 달리 성격이 문제가 있어서 그렇지 왕으로서의 선조의 능력은 대단히 뛰어났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정략 부분은 거의 본좌급이랄까. 아래 신하들 쥐고 흔드는 능력은 거의 S급이었죠.
11/03/29 23:12
뭐... 선조는 어떤 면으론 정말 뛰어난 임금이었죠.
다만 그것이 엉뚱한 방향에서 나왔다는 것이 불만인 것이죠. 미친듯한 진격속도를 보인 일본군이 한양을 점령한 것까지는 자신들의 계획으로 됐지만 그 이후에 선조가 몽진에 몽진을 거듭하면서 북으로북으로 튀어버렸으니 크크
11/03/29 23:12
아... 이게 뭔가요. 전 그 동안 선조가 조선 역사상 일등을 앞다투는 무능력의 왕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무능력이 아니라 왕위 집착으로 인한 실기였단 말인가요.. 그동안 읽은 책들은 뭐였지 ㅜ.ㅜ 아니야.. 믿을 수 없어... ㅠ.ㅠ
11/03/29 23:36
1. 성종 이후로, 아니 정확히 말하면 세조 이후로 국방력에 대한 투자를 줄인것은 결정적으로 이시애의 난 때문으로 꼽고 있는것 같습니다.
세조가 이시애의 난때 자신이 동원할수 있는 거의 모든 병력을 쏟아부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최신식 화기로 무장하고있던 이시애의 군대를 겨우겨우 격파한 뒤로 철저히 군벌세력화를 견제했기 때문으로 알고있습니다. 2. 그리고 불사채용에 원모씨도 들어가있는걸로 알고있었는데 아닌가요? 3. 병력동원면에서도 제대로 이루어져 있었다고 보기에는 의문점이 남더군요. 더 정확히 말하면 잘 훈련된 정규병이 제대로 집결했는지요. 일단 조선 정규군은 세조 이후로 국가에서 아예 공인해버린 방군수포제로 인해 제대로 훈련 등에 동원되지도 않았고, 이로인해 군대의 막장화는 이미 수차례 왜변으로 입증된 바가 있었죠. 심지어 명종조에는 각지에서 발생한 초적때를 토벌하는데에도 어려움을 겪을 정도로 막장이라.... 4. 여기에 박홍이 도주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임란기에 참전한 사실과 연계하여 추측했을떄... 장수들은 자신들이 지휘하게 될 병력을 보고 '이게 뭐야, 이런병력으로 어떻게 싸워 (....)' 하면서 도망간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물론 공상입니다.
11/03/29 23:43
좀 다른 이야기지만, 도도 다카도라를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가 무려 NHK 대하드라마로 나온다니, 결정된다면 내후년 대하드라마는 안보는 걸로 결정이군요.
11/03/29 23:45
항상 좋은글 감사합니다. 역시 이런글이 안구정화가 되는 글이죠 +.+
눈시BB님께 항상 감사하단 말 드리고 싶고 앞으로도 재미난글 기대하겠습니다 ^^ 선조, 전쟁 개시전엔 꽤 괜찮은 왕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전쟁 돌입과 더불어 하는 행동들은 이해 불가죠 ^^;; 류성룡을 한성 방어하라고 남겨 놓으려다 신하들이 "류성룡은 꼭 필요함!" 이라고 하는바람에 데려갓고 한강방어선과 임진강 방어선을 담당하던 김명원이 삽질로 말아먹고 돌아왔지만 "승패는 병가지 상사라는 말이 있잖아" 라며 관대함을 보인모습, 칠천량해전으로 해상권을 한큐에 말아먹은 원균을 신하들이 "잡아 족쳐야합니다!" 라고 하지만 옹호하다 훗날 1등 공신에 올리는 위엄도 보여주죠. 그리고 광해군을 대신 자기자리에 대리로 앉히고 자신은 명나라로 도망가면 어떻겠느냐고 신하들에게 말하는 장면은 압권입니다. 또한 나중에 명나라 경리 양호와 충돌을 빚은 정응태가 정응태 무고사건을 일으켜 조선에 대해 모함을 하자 세자가 알아서 처리해 난 온천에 휴양갈테니 하는 무책임해 보이는 모습도 보여 류성룡이 극구 말려서 결국 자신이 처리하긴 합니다만... 여담이지만 선조의 자식교육도 아주 개판이었죠. 오죽하면 임해군과 순화군이 함경도에서 깽판을 치고 다니자 백성들(국경인과 국세필)이 자기손으로 가토에게 왕자를 잡아 바치는 상황이 벌어졌을까요. 물론 국경인과 국세필은 가토에게 직함까지 받고 앞잡이 노릇하다 정문부가 이끄는 의병에 제일 첫 손님으로 사망하지만요.
11/03/30 00:12
신라본기 첫 기사가 박혁거세가 왕이 됐다. 그리고 일식이 일어났다. 그리고 알영이랑 결혼했다
네번째 기사가 일본놈이 쳐들어왔다죠. 때문에 일본과 치고박고 싸우는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었고 그 동안은 이렇게 싸우면서 비교적 무난히 이기고 그랬는데 임란같이 대규모 장기적으로 쳐들어온 적은 처음이라 기존과는 다른 양상의 전투가 나왔다고 봅니다. 임란에 대한 준비는 더 올라가면 14c말부터 착실하게 준비했다고 생각합니다. 수군의 경우는 다음에 설명이 나올 것이고 기존의 주적을 북방오랑캐에서 일본으로 바꾸고 방어거점도 변화시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냥 둘다 막으면 좋겠지만, 그럴 여력이 없을 땐 일본을 막고 북방오랑캐는 명의 협조를 구하는 식으로 가게됐고 이를 사대라 부르게 되죠 사대는 굴욕의 개념이라기 보다는 동아시아의 국제관계를 명확히 파악하고 나온 상당히 합리적인 개념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임란 동안 조선은 그 특유의 세련된 정밀기계같은 모습을 보여서 임란을 이겨내는데 큰 도움을 주죠
11/03/30 00:16
선조가 임란만 없었어도 명군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선조의 정치 중 그나마 괜찮았던 정치였다는 사림의 등용은 자기의 컴플렉스를 만회하기 위한 요소 밖에 되질 않았습니다. 자기는 조선왕조 최초로 적손이 아닌 자로 임금이 되었기 때문에 그 컴플렉스가 상당했죠. 적손이 아닌 자로 임금이 된 케이스는 고려시대로 가봐도 상당히 드물고 이전 왕조로 가봐도 거의 마찬가지로 드뭅니다. 그런 상황에서 임금에 올랐으니 얼마나 컴플렉스가 심했겠습니까? 그 컴플렉스를 만회하기 위해서는 정치적으로 깨끗하다 인정받고 있던 사림들을 대거 등용하는 것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야 선정을 펼친 임금이란 소리를 들으면서 서손의 이미지를 깔끔히 없앨 수 있는 것이겠죠. 하지만 선조는 그 자체의 능력은 정말 없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이이의 탄핵을 막아주지 못한 점입니다. 이이가 선조의 신임을 받고 병조판서 등으로 복직되었을 때 삼사를 장악한 동인은 이이를 서인으로 몰아 공격합니다. 결국 이에 견디지 못한 이이가 사직하고 마는데요. 여기서 선조의 능력이 드러난다는 것이죠. 이이와 같은 뛰어난 신하가 반대당에 의해 몰리는데도 전혀 구해줄 능력이 없었다는 것이죠. 그 이후에는 더 가관입니다. 이이 사후 서인은 몰락했고 동인의 세상이 되었으나 정여립의 모반사건이 터지게 되면서 상황은 급반전됩니다. 여기에 선조는 정철을 등용하게 되는데요. 정철은 낭만적인 문학가였으나 냉혹한 정치가였죠. 그는 여기서 그를 공격했던 동인의 상당수를 이 때 숙청시켜 버리죠. 선조는 그저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1591년 임진왜란이 터지기 불과 1년 전 세자건저문제로 선조가 변덕을 부려서 정철을 비롯한 서인을 다시 숙청합니다. 만약 선조가 적어도 조선임금 중 평균 정도의 정치력만 가지고 있었어도 이 꼴은 나지 않았다고 봅니다. 동서인의 분당은 솔직히 임금이 너무 방치한 감이 커요. 스스로 학자군주를 자처했다고는 하지만 문제는 군주는 학자가 아니라 정치가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죠. 붕당에 있어서는 강하게 대처했어야 했습니다. 선조가 정치력이 뛰어났다는 것으로 동서인의 분열을 잘 이용했다고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예로 들자면 가장 극심한 분열을 일으켰던 숙종대를 보면 아실 수 있는데 숙종은 환국정치를 통해서 여러번 정치세력을 바꿔치기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세력이 노론인데 웃기게도 노론의 수장은 숙종이 사약을 내렸던 송시열이었습니다. 즉 노론은 자신의 수장을 죽였던 숙종의 편을 숙종 말년에 섰다는 겁니다. 이것만으로도 숙종의 능력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그러한 강한 왕권은 이후 영조-정조 시대를 이끄는 힘이 되었습니다.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왕조국가시절에는 왕권이 강해야지만 그 나라가 부강하고 여러가지 모든게 발전됩니다. 조선에 있어서는 태종과 세조, 숙종이 그러한 역할을 한 임금들이었죠. 그런 면에서 보면 선조는 너무나 무능력했다고 봅니다.
11/03/30 01:02
이제 시작인데 어마어마한 떡밥이 쏟아져 나오네요.
본글도 재미있게 읽었고 리플도 너무 재미있네요. 앞으로도 좀 더 많은 리플이 달리고 좀 더 많은 논쟁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크크 그리고 선조에 대한 평가는 저 역시 예전엔 상당히 부정적이었는데, 단편적인 행동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고 긍정적으로 보기 힘들지만 인물 그 자체를 두고 봤을 때는 오히려 유능하면 유능했지 무능력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그게 무엇이지 뭐라고 정의 내리기가 힘들었는데 한 단어로 정리해주시네요. 재능낭비-_-;;
11/03/30 09:57
선조가 아예 절대무능으로 평가받는 기존의 사관, 상식은 갈아 엎을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능'의 경지에까지 이르지는 못한다고 봅니다. 만약 선조가 유능했다면 왜란 당시에 그런 뻘짓의 콤보를 작렬시킬 리가 없지요. 진짜 선조가 유능한 임금이었다면 왜란의 대처에서도 똑소리 나는 모습들을 보여주어야만 했습니다. 평소에는 그럭저럭 왕의 역할을 수행하지만, 비상시에는 그저 우왕좌왕 할 뿐인 평범한 수준의 왕이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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