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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1/03/20 00:27:32
Name nickyo
Subject [일반] 어장 속 물고기는 울고 싶다.
강력한 황사가 주말동안 전국에 불 것입니다. 지진에 밀린 두어페이지 뒤의 뉴스를 무시하고는 마스크를 챙겨 밖으로 나갔다. 이것으로 하루에 세 번째 하는 운동이다. 누가 보면 마치 몸짱이라거나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누가봐도 운동같은건 안했을 것 같은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하루에 세 번 운동을 나간다는 것은 이상하다. 왜냐면 분명 얼마 안된 일일테니까. 그렇지 않다면, 저렇게 몸이 동글동글하지 않았겠지..



견딜 수 없었다. 가만히 있자니 화가 울컥울컥 올라오는데, 도무지 어디에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고작 며칠 연락이 안되는 걸로 그 사람에게 화를 내야 하는건지, 병신같은 나에게 화를 내야하는건지, 애꿎은 것들에 화를 내야 하는건지 그리고 그걸 몰라서 더 화가 나는 상태에 가만히 있는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었다. 이게 여러번 반복되는 것도, 그리고 그럴 때마다 타당한 이유를 말해준 것도 그 화를 더했다. 한번도 난 섭섭해 할 수 없었다. 심지어 아무렇지도 않게 신나는 목소리를 전화기 너머에서 듣고 나서야 화 옆에 쭈그리고 있었던 불안감-여자 혼자 살아서 무슨일이 일어난 건 아닐까 하는 멍청한-이 해소된다는 것은 더 싫었다. 힘의 관계로 따지자면 완전히 잡아먹혀 버렸다고 할 정도로 난 그 사람 앞에 무기력했다. 화 낼 권리 없는 화가 뱃속에서 계속 떠돌아서 거리로 나섰다. 그래도 몸을 움직이고 있으면 그나마 조금 나았다. 이럴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현대 과학에서 제일 유용하게 느껴진것도 핸드폰인데, 제일 엿같은 것도 핸드폰이다. 망할, 수번을 화면을 켰다 껐다 하면서 귀한 집 자식놈이 왜 이러고 사는지 모르겠다 싶다.



친구가 그랬다. 너 물고기야 임마. 어렴풋이 그렇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뭘 가져다 바치는 것도 아니고 그 사람이 내게 돈을 많이 써가며 만나고 연락하는데 내가 물고기의 입장인 것도 이상했다. 차라리 내게 이것 저것 사달라며, 계산하라며, 여기저기 여자를 욕하기 좋은 어장관리 톡에 나올법한, 그렇게 뻔뻔한 사람이었다면 금세 칼로 주욱 그어내어 마음속에서 던져버렸을 사람이다. 내가 돈을 안쓰니까 별 상관 없잖아, 라고 쿨하게 생각했다. 냉정하게, 이성적으로 생각해보자. 하며 술도 얻어먹고 밥도 얻어먹고 영화도 얻어보는데, 내가 어장관리를 당하는건가? 그 집이 부잣집도 아닌데? 자기가 벌어서 자기가 쓰느라 바쁜 연상의 여자가? 라고. 나야 좋은거 아닌가? 그냥 이런 데이트 메이트 같은, 친구도 아니고 동생도 아니고 애인도 아닌, 그런 관계도 나쁜거 아니잖아? 라고 말이다.



그러니까 사실은 별로 화 날 필요가 없다. 갑자기 연락이 끊어져도, 그게 며칠이 지나도, 그리고 그게 너무 신경쓰여서 잠을 제대로 못 자는 날이 생겨도,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나며 그것에 대해 언제나 침착한 이유를 설명했던 것에도, 게다가 그런것을 의무적으로 지켜야 할 사이도 아닌 우리에게, 그래서 그저 뭐하느라 그랬어요, 어디 갔다왔어요 정도의 말에 그 끓어오르던 화를 아무렇지 않게 숨기고는 그러느냐고 아무렇지 않은 척 하는 것은 정상이다. 생각은 이렇게 차분히 흘러간다. 그런데 자꾸 어디선가는 화가 끓어오른다. 뭐라고 하고 싶은 말이, 서운함을 이야기 할 단어들이 한 켠에 쌓인다. 그러다가 질리고, 때려치자고 내가 왜 이래야 하지 라고 반문하고, 그리고 진짜 하루도 안되서 다시 핸드폰을 든다. 이 문단까지 쓴 글을 다시 읽었는데,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그래, 나도 사실 지금 내가 뭐하자는 건지 모르겠다. 나는 그녀가 밉다. 미워 죽겠다.



거리에 나왔다. 사람이 없다. 엠피쓰리에서는 돈 주고 산 음원 수백개가 서로 앞다투어 튀어나온다. 머리카락 한 올 보이지 않는 가로등 불빛 아래 거리를 거닐며, 황사는 개나 주라며 악을 썼다. 노래를 부르고 또 부르고 또 부르고 하다보니 화가 울컥 하고 한 웅큼씩 쏟아져 나온다. 다 마셔버린 생수병을 있는 힘껏 바닥에 내리꽂았더니 얼굴까지 튀어올라서 팍-하고 맞았다. 승질이 뻗쳐서 발로 뻥 찼는데 헛발질이다. 때마침 윤도현 밴드가 귀에대고 아자자자자자자자자자자 라고 소리지른다. 나도 미친놈마냥 아자자자자자자자자자자아 아!! 나는지금 담배싸러 간드아아아아 으이으이으이으이 아! 하는데 자전거를 타고 누가 쌩 지나간다. 망할.



어느날은 그게 다 진실같고, 어느날은 그게 다 거짓같다. 천국과 지옥위에서 롤러코스터를 타고 지그재그 스탭으로 왔다리 갔다리. 진절머리가 나다가도 수시로 핸드폰을 쳐다보고, 감정으로 따지면 난 확실히 물고기인데 어장주인이 양심적이라 되려 울고 싶다. 대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맥주 한잔 마시고는 아무렇지 않게 나를 좋은 남친이네 라고 툭툭 던지는 말에, 아침까지 둘이서 마신 술잔 앞에서 참 좋다는 말에, 뭐든지 이야기하게 되는데 왜 그러는지는 모르겠다는 말에, 그리고 정말 오래간만에 느낀 새벽녘 체온에, 되려 울고싶다. 뭐가 뭔지 모르겠어서 울고 싶어 진다. 물고기 날아가네 햇살에 춤을 추네 꽃잎은 반짝이며 즐겁게 노래하네 자전거 따라가네 하고 노래가 나와서, 아 깬다. 망할 엠피쓰리는 주인의 기분을 알아주지 않는다. 다음엔 삼성꺼 말고 그 뭐시기 따스한 컨텐츠가 넘쳐난다는 사과네 꼬마팟을 써볼까.



지친다. 믿고 싶은 마음과, 속은 듯한 마음사이에 서운함과 좌절감이 쌓인다. 그 사람에게 난 고작 그 정도라는 정보가 얼핏얼핏 보일때마다 더. 그게 다 내 탓이려니, 내 매력이 없으려니, 그래 내가 여자여도 나랑은.. 이라고 죽어라 삭여보지만, 또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러 가 본다. 제기랄 내가 뭘 잘못한거냐! 하고. 난 왜이러냐, 나도 진짜 그냥 보통 여자좀 만나보고 싶다. 왜 내가 만난 사람들은 다 양심있고 흔히 말하는 인터넷에서 보여지는 개념찬 여자들의 행동을 보여주는데, 심지어 어디가서 문자나 행동한 걸 그대로 들려주면 다들 사귀는 거네, 넘어오겠네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데도, 아직도 우리 사이는 이런 사이인지, 그리고 이제는 그런 그 여자의 무신경함에 쉬이 삭혀지지 않을 만큼의 서운함이 쌓여버린건지, 그래서 물고기는 울고 싶다.  뭐가 뭔지 모르겠어서, 누가 좀 가르쳐 줬으면 좋겠다. 그 사람은 정말로 날 어떻게 생각하길래 이러는 걸까? 라고 물어서 대답을 들어도 믿지 못할 것 같아서 더 울고 싶다.



아마도 이 글의 리플은 5개 이하이려나.

나 지금 밖인데, 내가 나중에 전화 할께요!
라고 들은게 오늘 오후 네시였던가.

한 두번 있는 일도 아니지만,

그만 하고 싶다..
이젠 너무 피곤해.

나도 사람인데.
그 사람은 내가 무슨 4대 성인이라도 되는 줄 아나보다.

이걸 행여나 밀당같은거라고 생각하기라도 했다간 (본인은 남자를 만나본 경험이 거의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 했었으니)

정말 그래준다면
진짜 싫어져서 끝날 것 같은데.


P.S: 곰곰히 다시 생각해 봤더니, 그녀가 연락을 그렇게 종종 무관심에 영역에 두는 것과 그녀의 이제까지의 진술이 거짓이라는 연관관계는 논리적 근거가 없다는걸 알았다. 난 아무래도 그녀가 준 섭섭함에 그녀를 부정하고 싶은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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샨티엔아메이
11/03/20 00:44
수정 아이콘
딱 그러더군요. "미련하게 미련을 못버리는 미련곰탱이"

'~하기라도 하면은 ~할텐데' 이런거 다 자기위안밖에 안되더라고요.

추가. 꼭 무얼 바라고 사주는사람을 주렁주렁 다는것만 어장관리라고 하지 않아요.
그 언젠가 방송에서 한승연씨가 나와서 말한 어장관리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고만고만한 남자들 가끔 연락하면서 끈만 잡아놓고 계속 새로운사람 물색하면서
더 좋은사람이 또 생길지도 모르잖아?라는 생각으로 이리재고저리재면서 가늠질중인거죠.
평소에 자신한테 귀찮게 안할정도로 냉랭하게 대하다가 상대가 포기할기미가 보이면
살짝 떡밥좀 더 뿌려주고 (갑자기 생각났네요 "희망고문")
11/03/20 00:45
수정 아이콘
헉.. 제가 알고 있는 어떤 분과 비슷한 상황이네요. 다만 성별이 반대라는거..
지니쏠
11/03/20 00:53
수정 아이콘
저는 좀 어장속에라도 들어가고싶네요. 걔의 '오늘 너무 재밌었어. 나중에 또 만나서 놀자' 에서의 나중은 으레 반년짜리이고, 매주 만난다싶던 어느날은 '우린 한학기에 한두번 만나는게 적당한 사이인것 같아' 하고 선언해버리고선 이제 문자한통없은지 여덟달이네요. 스킨쉽하나없던, 우리 사이의 가장 로맨틱한 사건, 그 사건이 우리 추억의 마지막이라는게 잘 인정이 안돼요. 제가 우리가 다시만날 '적당한' 날을 찾을 때 까지 ni'c'kyo님이 종종 발리는 글을 적어준다면 많은 위로가 될 것 같아요. 니쿄님과 연상녀의 관계에 축복이 깃들길 슈퍼문을 보며 잠깐 기원해보지만 -진짜로 보면서 했어요!- 혹시 그 축복이 정말 니쿄님과 함께하게된다면 글로 옮기기전에 작은 쪽지한통만 보내주세요. 부디 제가 클릭하지 않도록... [m]
지니쏠
11/03/20 01:04
수정 아이콘
물조로 삼백플짜리 토론-싸움-글에 참여한적도 있어서 이런건아무것도 아니랍니다. 하하. 다 쓰고 나니 쓰리지 아이콘이 깜빡깜빡거려서 입력버튼을 다섯번쯤 누르면서 좀 울뻔했지만, 전 어장밖의 야생물고기라 강인해서 괜찮아요. 훗 [m]
발그레 아이네꼬
11/03/20 01:33
수정 아이콘
nickyo님 팬이에요 으흐흐흐(응??)
kof_mania
11/03/20 01:55
수정 아이콘
이왕 물고기가 되는거 제대로 되어보자고 마음먹는건 어떨런지요
전 지금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좋다고 은근히 표현하고 연락 안 되거나 다른사람이랑 더 친하게 지내도 괜찮은 척 다 하고
아 이 사람은 뭘 해도 날 안 떠나겠구나 라는 암시를 팍팍 심으려고 노력했죠

그러니까 좀 가까워지긴 해요 절 정말 믿어주는게 느껴지긴 했어요
다만 그게 애인이 되는건 아니더라고여..
무언가 한계가 있는 느낌이에요..

참 어렵네요 연애라는거
11/03/20 01:57
수정 아이콘
저도 물고기이던 시절에 그 괴로움을 어찌 하질 못해 괴로워 하던때들이 있었는데...왠지 그 느낌이 기억이 잘 안납니다 분명 고통이었지만 언제라도 그렇게 괴로워 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어요. 하하...
11/03/20 02:21
수정 아이콘
갑자기 옛날 일이 떠오르네요
저도 글쓴분과 비슷한 시절이 있었는데 그 때 아는분께서
'정말로 그여자를 사랑하는 것인지, 아니면 포기하지 못하고 한자리에 계속 머무는 너의모습 너의 배역 자체에 빠져버린 것인지
그걸 구분하지 못하면 불행해 진다'
라고 하셨는데 정말 맞는 말인것 같습니다
야밤에 뻘소리 해봤어요;자야지..
츄츄호랑이
11/03/20 02:53
수정 아이콘
울어도 돼요...
11/03/20 05:11
수정 아이콘
시간이 좀 지난 것 같은데도
아직까지 괴롭네요...

비 오는 새벽에 좋은 글 보고 갑니다.
네오유키
11/03/20 08:12
수정 아이콘
어깨 빌려드릴테니 저랑 같이 울어요ㅠ [m]
우유식빵
11/03/20 10:37
수정 아이콘
와, 한참 감정 이입해서 읽었네요. 성별만 바꾸면 제 상황과도 딱 일치하는군요^_ㅜ
생각해보면 딱히 어장도 아닌 듯하여 짝사랑이라 이름 붙이는 것조차 무의미해 보여요. 차라리 뭔가를 잔뜩 소모해 버리면 대단한 실연의 아픔이라도 겪은 후 미련을 털어버리겠는데... 이건 참, 미적지근한 상황이네요. 호감은 계속되는데 확신은 전혀 없고. 없는 파이팅이라도 발휘해 보고 싶지만, 상대방은 현재의 단계를 진전시킬 마음이 없는 게 눈에 보이니 그럴 용기가 나지 않네요.
연애가 원래 이렇게 어려운 것이었다는 걸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깨닫고 있네요... 그래도 힘내보아요! 좋은 인연이 있겠지요.^^
_ωφη_
11/03/20 16:36
수정 아이콘
외사랑이죠..
자기만 힘들어하는거죠 그쪽분은 힘들어 하지도 않고 신경도 안쓰고 친구들 만나 수다떨고 잼나게 노실겁니다.
일반적인 차이인거 같아요
남자는 정말 좋아하고 관심있는 여자들한테만 잘해주는반면
여자들은 다 잘해주는것 같아요.. 첨에 관심도 없었는데 그냥 자기들이 먼저 다가와놓고 잘해주고
어 얘나한테 관심있나? 하고 생각하고 마음이 그여자한테 끌리기시작하면
외면하죠. 너 나한테 왜이래? 우린친구자나? 이런식으로 나만 바보되는 순간이죠
근데 정확한건 그전에 그 여자가 나한테 했던행동은 우린 친구자나 수준이 아니였다는거죠
루크레티아
11/03/20 16:55
수정 아이콘
어장 속 물고기는 참 간사하고 나쁜 물고기입니다.
자신이 어장에 갇혀 있다는 것을 알고 항상 주인을 미워합니다. 난 이런 어장에나 갇혀 있을 존재가 아니라고 말이죠.
그러다가 어느 날 주인이 어장에서 꺼내주면 다시 주인을 그리워합니다. 주인이 주던 먹이는 너무 좋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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