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다른 인터넷 공간에 올렸던 글인데 역시 스타크래프트를 소재로 한 글이니만큼 피지알에도 올려보고 싶었습니다.
1. 스타크래프트 좋아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직접 플레이하지는 않더라도 가끔 방송 경기는 보시는 경우가 있을 텐데요. 몇 년 전 방송 경기 중에 나온 사건이 뜨거운 감자가 됐던 적이 있었습니다. 한 선수가 몰수패를 당한 일입니다. 몰수패의 이유는 경기 중 채팅창에 ‘a'라는 메시지를 입력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래전에는 경기를 보았었지만 근 몇 년 간은 관심이 없었던 분들께서는 무슨 소린가 싶으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전에는 방송 경기 중에도 선수들끼리 자유롭게 채팅이 가능해서, 서로의 병력이 처음으로 조우할 때는 'hi'라고 인사를 건네기도 하고 경기가 기울어진 상황에서는 농담을 하기도 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선수들 간의 대화를 금지하는 규정이 만들어져, 앞서 말씀드린 대로 선수가 실수로 메시지를 입력했다고 해도 즉시 몰수패로 처리가 됩니다. 경기 중 문제가 생기는 특별한 상황이 아닌 이상, 선수가 입력할 수 있는 메시지는 ’GG'뿐입니다. 이도 결국 항복 선언인 만큼 E-Sports 경기 중 대화의 시도는 무조건 패배, 혹은 패배의 인정으로 이어진다고 봐도 무방하겠습니다.
2. 위와 같은 경우가 비단 E-Sports 경기 내에서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에 만연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너무 지나친 일반화일까요. 어떤 분들은 E-Sports의 특수성 때문이라고 주장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E-Sports 선수는 대단히 바쁩니다. 경기 내내 쉬지 않고 모니터를 주시하고 마우스와 키보드를 조작해야만 승리를 할 수 있습니다. 상대방에게 내 움직임을 읽히는 것은 바로 패배로 직결됩니다. 화기애애하게 얘기도 나눠가면서 경기를 한다고 해도 결국 누군가는 승자고 누군가는 패자가 되기 마련입니다. 때문에 어차피 서로 대화를 할 여력이 있는 경우가 드물고, 아예 원활한 경기 진행을 위해 협회 측에서 앞서 언급했던 규정을 정해놓았을 것입니다. 물론 특수한 상황이지요. 그러나 위에 있는, 한시도 쉴 수 없고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 수 없으며 결국에는 승리하는 것 외에 다른 답안은 없는 상황 자체는 절대 특수한 상황이 아닙니다. 지금 대학생이라는 신분으로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매일매일 마주치는 현실 아니던가요. 애초에 E-Sports가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면서 한 게임이 10년이 넘게 인기를 끌고 있는 것 자체가 이와 같은 사회 분위기의 반영에 힘입은 바가 클 것입니다. 즉 대화라는 행위가 이처럼 박한 대접을 받는 것은 특수하기보다는 일반적인 상황이라는 거지요. 만약 정해진 시간 외의 근무 시간이나 작업 시간에 효율성과 편리성의 제고를 위해 서로 간 일체의 대화를 금지하는 법안이 제정된다면 어떨까요. 혹은 특정 공간을 제외한 학교 내 전역에서 대화를 할 수 없게 된다면?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말도 안 되는 비약일 뿐일까요?
3. 언어분석철학자들은 명제와 문장을 구분합니다. 명제와 문장의 차이는 간단히 말해서 참과 거짓을 판별할 수 있는지의 유무입니다. 따라서 명제를 진리가담지자의 하나로 취급하는 것이 일반적이지요. 우리 시대의 대화란 단지 이 명제들의 전달에 지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누군가가 당신에게 대화를 시도할 경우, 우리는 가장 먼저 그가 하는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익숙해졌습니다. 그의 말이 거짓이라고 판단되면 그 대화는 더 이상 가치 없는 것이 되고 맙니다. 이런 세태가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단지 직관적인 인상 탓만은 아닙니다. 이에는 한 때 논리 실증주의자들이 주장한, 분석 진술이나 종합 진술 두 가지에 모두 해당되지 않는 것은 무의미한 소리에 불과하다는 이론을 연상시키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지요. 이런 이론을 바탕으로 그들은 신학과 윤리학, 미학 등이 모두 쓸모없는 학문이라고 단정 짓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들 논리 실증주의자들은 이후 강한 비판을 받게 됩니다. 인간의 삶에서 신과 윤리, 아름다움을 제외한다면 남는 것이 얼마나 있을까요? 우리 시대에서 이뤄지는 대화를 좌시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여기에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에서 더 활발히 이루어지는 대화 방식은 이를 더욱 가속화합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 정말 오랜만이다”라는 말을 어깨동무라도 하고 같은 길을 걸으며 하는 것과 등교 버스 안에서 대부업체 광고 다음으로 확인하는 문자 메시지로 보내고 받는 것은 아무래도 느낌이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서로 몸을 부딪혀가며 자웅을 겨루는 다른 스포츠 선수들이 ‘GG'라는 한 마디로 경기를 끝내지는 않듯이 말이지요.
4. 물론 눈빛만으로도 통하는 사이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보통의 경우 사람은 대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기 마련입니다. 우리 시대 대화의 위기는 여러 가지 정황이 얽혀 만들어 낸 총체적인 난국입니다. 더불어 작금의 사태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는 쉽지 않은 부분이지요. 아직 부족한 제게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가를 제대로 인식한다면, 개선의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선의 당위만 확실하다면 말입니다. 글을 마치며, 제가 좋아하는 책의 한 구절을 인용하고자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즐겨 읽는 포레스트 카터의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의 한부분입니다.
할아버지는 말의 뜻보다는 소리, 즉 말투를 더 마음에 새겨들으셨다. 할아버지는 언어가 서로 다른 민족이라도 음악을 들을 때는 같은 것을 느낀다고 주장하셨다... (중략)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사랑과 이해는 같은 것이었다. 할머니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사랑할 수 없고, 또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는 더더욱 없다, 신도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를 하시곤 했다.
추신. 글 내용 중 스타크래프트를 언급한 부분에서 사실과 다른 점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지적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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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잘 읽었습니다.
대화의 부재. 많이 공감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내가 말하고 있는 누군가의 그 말이 '참'이면 귀담아 듣고, '거짓'이면 들을가치가 없어진 이 시대를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해 정확한 시각인것 같습니다.
참으로 그러합니다. 누군가의 말이 그저 '공감과 이해'로서의 말이 아니라, '정보의 전달'로서의 말이 되었다는 것.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며,, 남자로서 여자사람을 대하면서 말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그 역할이 두사람 사이가 아니라 부모님과 가족과 친구와 동료들로 확장되어야 하는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