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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2/17 09:52
뭐 출사표만봐도 한실을 부흥해 구도로 돌아가겠다고 나오니까요 한나라 참 끈질겨요 만약 유비가 한번더 천통을 했다면 전한.중한.후한이었을까요? 크크
11/02/17 10:40
여러 부분에서 저와 생각이 비슷하시네요.
저도 촉은 촉이 아니라 촉한이라고 보기에 더 가깝다고 보거든요. 그리고 이것은 유비니까 가능한 일이었죠. 당시 유씨=한나라라는 당시로서는 고정관념에 가까웠던 백성들의 사상을 잘 이용했다고 봅니다. 조조나 손권이 한나라를 계승한다고 하면 한나라를 부정하고, 새로운 황실을 세우는 것이지만, 유비가 한나라를 계승하면 형식적으로든 실질적으로든 말은 되거든요. 유씨니까요. 중산정왕이 몰락한 세력이든, 유비가 촌부에서 놀던 건달 출신이든 유비에게 한나라 황실의 피가 흐르던 사실은 변함이 없었기 때문에 촉을 촉한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단지 조비가 헌제를 폐하고 위를 건국했기 때문에 촉을 촉한이 아닌 한이라고 부르기에 문제의 여지가 것이라 봅니다. 유비가 헌제로부터 직접 제위를 이어받은 것은 아니니까요. 2번은 굉장히 흥미롭네요. 실제로 저렇게 되었으면 저라면 촉에 힘을 들어줄 것 같습니다. 형주는 오랜 전쟁 때문에 자원이 고갈되었을 것이고, 그나마 예주와 서주, 청주를 기반으로 할 수 있지만, 촉의 사주와 연주, 기주에 더 힘이 들어갈 것처럼 보입니다. 조조가 기주를 완전히 차지한 후에는 어차피 기주는 안정된 기반으로 후방의 가장 중대한 보급창고로 쓰였던 것처럼 촉이 남하하는 패턴이라면, 기주의 곡창은 엄청난 매리트가 되리라 봅니다. 하지만 어차피 김치국... 3번은 뭐 어차피 형식적인 절차였죠. 유비도 한중왕이 되기 전에 익주목, 형주목은 자신의 땅이고 유기와 유장으로부터 빼앗은(?) 것이니까 그렇다고 쳐도, 조조로부터 임명받은 예주목과 좌장군까지 겸임하고 있었으니까요. 4번은 아마 제 기억으로 조조가 일찌감치 조충을 후계자로 삼았다고 한 것으로 압니다. 하지만 저 당시 조조는 승상이었지 위왕이 아니었죠. 조조가 위왕이 되어 후계자를 선택할 때면 조충이 살아있었어도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조충이 살아있을 때의 에피소드를 보면, 조조를 비롯하여 조조의 가족과 부하 장수들, 하위 관리들에게까지 사랑을 듬뿍 받았을 정도였다고 하니, 얼마나 신동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불의가 죽은 것은 조충이 죽었던 시기가 아니라, 조조가 죽기 전에 자신의 후계자인 조비가 왕이 되었을 경우의 방해물들을 하나둘씩 숙청했을 시기입니다. 조충과 합장된 사람은 다른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때에 조조의 의심병과 노망이 한창 물이 오를 때여서, 양수는 실제로 조비의 방해물이었으니 그렇다고 쳐도, 허유와 최염, 심지어 며느리인 조식의 아내까지 죽입니다. 사마의도 죽이려다가 실패하구요. 아무튼 주불의를 죽이게 된 형식적인 이유는, 조조가 주불의를 사위로 삼으려고 했는데 주불의가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조비가 주불의의 재주에 대해 아까워했고, 여기서 조조가 주불의를 죽이는 진짜 이유가 나오죠. 조비가 주불의를 컨트롤 할 수 없어서 나중에 재난이 될 것이라는 부분입니다.
11/02/17 14:02
흠..그런데 예전 생각하는 방향으로 보면 유비도 역적 아닌가요? 한나라 헌제가 조비에게 핍박을 받고 황제 자리를 뺐기고
바로 다음 해에 자기가 제위에 오르는데, 원래 정도를 따르려면 일단 위의 세력을 역적으로 선포하고 토벌하겠다는 선언을 하고 군사행위를 한다던지 그래야 되는데...헌제가 죽었던 살았던 그냥 낼름 황제가 되어버렸으니 결국 이놈이나 저놈이나 정도로 보면 다 역적아닌가요? 항상 삼국지 읽을때 이부분에서 다 똑같은 놈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11/02/17 16:42
손권이 관우 관평 주창등등을 살려서 촉으로 보냈다면 어땠을까요? 무력으로 점거하긴했지만 어쩄든 한중을 먹은 이후에 돌려받기로 한 땅 조금 피좀 흘려서 얻은거니까요. 그 후에 다시 동맹을 맺고 촉오가 북진을 했다면 조조로서는 오히려 그게 더 위험했을지도 모릅니다. 이릉전투가 없었다면 그 촉의 군세가 대대적으로 위로 향했을 것이고 나름 제갈량의 북진에 비해서 승산이 있었을거라고 봅니다. 그 관우 장비 모두 살아있는 상황에서 북진한다면요
11/02/17 21:23
저렇게 보면 촉이나 오의 세력이 엄청 커보이는데 실제로 2~3세기경 한족의 영역은 저기 지도에 표시된 영역의 절반도 안된다고 합니다. 서쪽은 험준한 산악지대고 남쪽의 교주나 양주의 아래쪽 역시 고지대였고 개발된 지역은 아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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