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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2/06 01:55
재밌네요. 근데 손유는 야전장군의 느낌이라기 보다는 점령 후 점령지 행정관으로서의 역할이 탁월 해 입촉작전에 선임된 거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합비는 조위의 입장에서 굉장이 중요한 요충지라서 공명이 한중이 공들인 만큼 수비에 총력을 기울였던 곳 아닌가요?
11/02/06 01:59
천하를 얻으려던 군웅들이라지만..천인천색이죠. 천하를 원하는 사람도 있고, 지금의 자리에 만족하려는자가 있고..
자신의 손으로 하려는자가 있고. 다른이의 손으로 원하는 바를 얻으려는자가 있고 말입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모든일은 뜻대로만되지는 않구요.
11/02/06 02:01
소위 정치라는 것이죠. 노숙의 천하삼분지계에 어떤 의도가 있었을지는 잘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노숙은 오나라맨이었다는건 확실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책략가의 면모도 있지만 지방 유지로서의 면모도 있었던 노숙인 만큼 오나라를 위해선 뼈라도 깎을 사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나저나 노숙보다도 왠지 처음에 나오는 순욱이라는 이름에서 눈이 오래 머물렀네요... 언제한번 순욱의 죽음에 관해 얘기해보면 좋을것 같군요.
11/02/06 02:30
아후 손제리는 답이없네요
그나저나 노숙의 연의 이미지가 이모양인건 이게 다 영걸전 때문입니다. 어제먹은 밥이 맛있었다며 우는 유비를 보고 안타까워하는 노숙을 포현한 코에이는 각성하고 어서 삼국지 12를 만들어라 만들어라
11/02/06 08:05
전 유비에게 형주를 빌려주라는 한 노숙의 진언이 어쩌면 관우와 손권의 갈등과, 손권의 배신을 낳게 된 가장 근본적인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당시 사정상 형주 백성들의 민심과 인기를 한몸에 받은 유비였기 때문에 오나라로서는 어쩔 수 없던 일이었지만 말입니다. 유비는 유표의 빈객으로 있었을 때부터 (그리고 제갈량이 합류한 후부터) 이미 형주의 주인으로 점찍혔던 것이죠. 노주유의 죽음도 한몫했구요. 주유가 천하이분지계를 실행하려고 강릉에서 머물던 도중 급사하는 바람에 오나라의 형주 통치에 급제동이 걸렸고, 주유가 죽으면서 노숙을 자신의 후임으로 정했기 때문에 손권으로서는 노숙에게 의지하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노숙은 유비가 분명히 형주를 돌려줄 것이라고 철썩 같이 믿었겠죠. 사실 노숙은 전쟁터의 책략가로 보기도 힘들고, 정치에 있어서도 오나라에는 장소와 장굉이라는 투톱이 있었기 때문에 내정에 있어서도 비중이 큰 편은 아닙니다. 물론 나중에 지방의 수령으로서 능력도 보여주긴 하지만 오나라에 있어서 노숙은 손권의 자문관과 대외적으로 외교관으로서의 역할을 했습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유비와 동맹을 맺고, 유지하고, 조조에 대항한다' 라는 철칙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문제는 유비가 익주로 들어가고, 형주의 통치자가 관우로 바뀐 뒤였죠. 뭐 유비가 형주를 돌려주지 않는건 당연한 일이고, 거기다 자신의 후임으로 관우를 형주의 책임자로 임명한 뒤로는 거친 길의 연속이었습니다. 손권도 내심 노숙의 이런 평화적인 성향과, 유비와 관우에게 주도권을 뺏기는 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노숙이 죽고, 여몽을 그의 후임으로 결정하죠. 여몽은 결국 형주를 손에 넣구요. 이릉대전 때 손권의 행동을 보면 정말 까도 까도 끝이 없지만 저도 개인적으로 오나라 진영에서는 노숙을 가장 좋아합니다.
11/02/06 10:21
삼국 정립은 정말 손권이 만들었고 손권이 완성시켰다고 생각합니다.
관도대전 후 조조의 중국 통일이 눈앞이었던 현실을 적벽대전을 통해 저지시킨 것이 손권이고, 노숙이 잘 풀어나가던 균형을 형주 급습으로 망가트려 손유가 중국을 나눠갖는 형세를 망가트린 것도 손권이지요. 유비(촉)군은 정예이지만 오군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십만이 합비에서 몇번씩이나 깨졌는지. 심지어 형인 손책의 2만도 서주 습격하다가 진등의 수천에 깨지기도 했지요. 그런 빈약한 군사력이기에 유비를 밀어내고 형주를 먹었다간 탈만 납니다. 관우를 죽이는 순간 오의 득실을 생각하면 오랜 전란으로 피폐해진 형주, 그것도 절반만 먹기위해 (애시당초 유비가 3군 할양해준거 생각하면 1/4 더먹은거죠) 손유 동맹 무너지고, 전선 길어지고, 적벽대전 이후 힘겨워했던 위군이 부활하는 시간도 벌어줬습니다. 부가적으로 유비는 상장 관우에 형주로의 진출로를 잃고 이후 이릉대전을 통해 그동안 모아온 대군에 촉을 이끌 인재들 및 여타 숱하게 많은 장수들을 잃었지요. 아무리 생각해도 손권은 유비나 조조와 같은 반열에 올릴만한 재목이 아닙니다.
11/02/06 11:05
근데 형주공방 떡밥 나오면 손제리는 가루가 되도록 까여도 줘도 받아먹을 능력조차 없는 조비는 의외로 안까이더군요.
유비가 이릉에서 패하고 촉의 대군을 날려먹었을때 그대로 촉으로 진군했으면 익주땅의 험한 지리적 요건을 끼고 있다 치더라도 대군을 날려먹은데다 거듭되는 패배로 국력을 소모한데다 기세까지 꺾인 촉나라는 엄청난 위기를 맞았을겁니다. 근데 뜬금없이 이미 이릉대전의 승리로 기세가 오를대로 오른 동오로 뜬금없이 뒷치기했다가 패하고 비록 양국의 이해득실 관계로 인한 일시적인 화친이었다고는 하나 관우 토벌때부터 유지해오던 위-오 동맹만 보기좋게 말아먹었죠. 그리고 이때 오나라를 뒤통수를 때린걸로 인해 나중에 촉과 오가 다시 화합하게 되는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봅니다. 괜히 날로 먹으려다 망한 케이스죠. 어차피 오나라 역시 유비와 싸우면서 손실이 있었으므로 서천땅까지 들어가는건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뭐가 그렇게 조급해서 날로 먹으려고 했을까요.
11/02/06 15:52
노숙이 어떤 인물이었는지 쉽지만 상당히 잘 보여주는 글이네요.
저도 위촉오 인물을 하나씩 꼽으라면 순욱 제갈량 노숙을 꼽습니다. 가장 대국적으로 상황을 보려 노력했고 실제로 그렸던 그림을 현실화 시킨 인물들이기도 하거든요. 오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주유, 여몽, 육손을 보면 주유는 약간은 비현실적인 허상에 빠져 있는 느낌이 강하게 들고 여몽은 대국적 그림보다는 당장의 눈앞의 이득에 육손은 현상유지를 가장 중요시 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러나 노숙은 단기적 성과보다는 좀 더 미래를 보고 현재에 약간의 손해가 있더라도 장기적으로 보면 손오에 훨씬 더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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