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다가온 대학 1학년 겨울방학, 매년 그러듯이 계획은 야심찼지만
하루하루를 잉여롭게 보내는게 한심해 보였는지 누나가 학원에서 근무하던
친구에게 부탁해서 알바자리를 하나 만들어주었다. 빈둥빈둥 놀다가 소일거리라도
생겨서 내심 기뻤지만 수학에 잼병이었던 내가 수학학원에서 일하려니 여간 걱정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다행히도 내 역할은 가르치는 것이 아닌 시험지나 채점하고 문제지나 만드는 잡일에
그쳤기에 그럭저럭 잘 적응할 수 있었다.
한 달 정도 일했을 때 으레 사회생활에서 그러듯이 같이 일하는 선생님들과 어느정도 친분도
쌓게되고 쉬는시간에는 학부모들이 가져온 떡이나 케이크를 얻어먹으며 희희낙락 잡답을
나누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학원에서 알바생은 나 혼자였고, 대부분 정확한 나이는 모르지만
당연히 내가 제일 어렸기 때문에 호칭은 선생님으로 통일해 불렀다.
그 중에서 유난히 친하게 지내고 많이 이야기 하는 여자 선생님이 있었다.
항상 먹을 것이며 이것저것 잘 챙겨주던 그 선생님, 그 날도 쉬는시간에 과자를 먹으며 그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선생님의 남자친구 얘기와 시시껄렁한 농담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날은 설날 바로 다음날 근무였기
때문에 서로 새해 소망이나 목표같은 얘기를 나누었다.
"떡국은 많이 먹었니"
"아뇨 너무 배불러서 많이 못 먹었어요"
"그래 떡국 먹어봤자 나이 밖에 더 먹겠니"
"아아 근데 선생님은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저보다 누나인 거만 알아서"
"아 그래? 몇 살처럼 보이는데"
"음.. 저희 누나랑 비슷할 거 같아요"
"너희 누나가 몇 살인데?"
"올해 아마 스물 세 살 될걸요"
"어머 얘 나 올해 스물 아홉이야 얘는"
"어 정말요? 진짜 동안이시네요"
동안이라는 말에 그 선생님은 기분이 좋았는지 그날 만나는 다른 선생님들한테 나에게 스물 세살 소리를
들었다고 내내 자랑을 했고 왠일인지 저녁식사에 자기가 피자를 사겠다며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나는 내심 내가 피자값이라도 낸냥 뿌듯해하며, 부른 배를 부여잡고 퇴근길 버스에 올랐다.
집에가는 길 버스안 나는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그 선생님은 정말 우리 누나랑 비슷해 보인다.
우리 누나는 서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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