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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1/01/17 22:45:58
Name The xian
Subject [일반] [잡담] 집 잃은 강아지 같은 심정입니다.
* 본문 중에 동물 이름이 등장하지만 욕으로 사용하기 위한 것이 아니니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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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뒤에 따라 나온 자공이 길 가던 사람에게 공자의 생김새를 말하면서 이런 분이 가는 것을 보았느냐고 물었습니다.

“동문 밖에 한 사람이 수레를 타고 가는데, 이마는 요 임금의 그것 같고, 목은 옛날 재상 고요 같고, 어깨는 정나라 대신 자산 같고, 허리 아래로는 우 임금보다 세 치가 짧은 모습이었는데, 마치 집 잃은 개가 쩔쩔 매는 것 같더군요.”

자공은 급히 뒤따라가서 공자에게 그대로 전했습니다. 공자는 웃으면서

“내가 그렇게 생겼다고 한 말은 그럴듯한데, 집 잃은 개와 같다는 말은.................”

잠시 생각하던 공자는 말을 이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옳은 말이야.”

- 공자 전기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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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공자님의 말이 딱 지금의 제 심정을 나타내는 글귀 같습니다. 제가 공자님와 같은 성인과 비교 대상이 될 리는 없지만 말이죠. 그래도 굳이 일부분이라도 닮은 사람이 있다면 공자님의 성질 급한 제자 자로(子路)와 같다고 해야 할까요. 물론. 성격만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약 넉달 전인가 실업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전할 때까지만 해도 사실 취업과 관련된 생각을 아주 깊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아니, 생각을 깊게 하지 않았다는 말도 좀 어폐가 있겠군요. 생각은 여러 가지 하고 있었고 실천에도 옮기고 직장도 알아보고 했습니다. 실제로 와 달라는 데도 있고 해서 면접도 보고 여러 군데 불려 다니기도 했지요. 그런데 면접을 보든 아니면 사석에서 누구를 만나든지 해서 성사 일보직전까지 가는 분위기를 풍기고 사람들이 잘해 보자고 하는 상황까지 갔는데, 그 뒤에, 어느 순간 차일피일 미뤄지다가 올 스톱되고 이제 결국은 하나도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런 하소연을 하자 주위는 물론이고 제 동생까지도 그 상황을 믿기지 않아하며 "아무리 운이 나빠도 유분수지 그럴 리가 있느냐, 혹시 네가 뭐 지독하게 잘못한 것이나 원한 산 것이 있는지 생각해 봐라." 라고 말하더군요. 물론 저는 사적으로는 독설가 포지션이다보니 제 말이나 글로 인해 저를 껄끄러워하는 분들은 충분히 있을 법하다고 생각하고, 제가 지금껏 PGR을 비롯해 여러 곳에서 잘못 말하고 잘못 쓴 일도 분명히 있습니다만, 주위의 상황 등을 감정을 배제하고 판단하고 타인의 이야기도 충분히 들어 보면, 그것이 지금 제가 겪고 있는 곤경의 원인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결론이 나오더군요.  

별별 생각이 다 듭니다. 이제 30대 중반을 슬슬 넘어서기 시작하면 이 업계에서도 더 이상 안 불러주는 사람이 되는 것인지. 가뜩이나 셧다운제니 심의수수료 인상이니 뭐니 하면서 노스렌드처럼 얼어붙은 게임업계 상황에서, 한겨울에 얼어붙은 벌판에서 산나물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 된 제가 운이 정말 나쁜 것인지 말이죠. 정말 저 혼자 돈만 벌어 먹고 살겠다고 한다면 어떻게든, 그리고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렇게 하다가 지금까지 쌓아온 것마저 잊히고 기억나지 않게 되어 버리면 글줄 길게 쓰고 말 어렵게 하는 것 말고 내게 과연 뭐가 남을지 등등의 생각이 듭니다. 이미 한 번 쌓아올린 것이 모두 무너지고 난 다음 선택한 것이 게임이라서 더더욱 그러는 것도 있지요.

물론 '나는 완벽하게 준비되었는데 아무 데에서도 안 불러준다'는 투정을 부리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저 자신을 바라봐도 그런 식상한 허세를 부릴 만큼 저는 완벽하지 않습니다. 긴 경력 생활 동안 실무자로서 멀티플레이어나 스페셜리스트의 일은 많이 해 봤으나 관리자의 경험은 적고(관리자의 일은 했을지 모르지만 팀장 직책을 맡은 일이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성사 분위기까지 갔던 것들 이외에 다른 곳에서는 많이 고배를 마셨지요.) 나이도 많다면 많은 게 사실이고, 다른 사람들과의 인간관계가 좁고 실제로 인간관계를 넓히기 위해 사람들을 살갑게 대하는 편이 아니라는 점도 문제이고, 뭐 그 외에도 들자면 또 나오겠지요.

어쨌거나 하고자 하는 일은 안 되고 이 추운 날 떠돌아다니다 집 앞에 당도하니 왜 그리 슬프던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집 잃은 강아지 같은 심정이었습니다. 이제는 내가 있을 곳이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여러 모로 얼어붙고 황폐해지는 게임이라는 바닥에 아직도 일할 수 있는 한 남아 있으려고 하는 꿈을 꾸는 제가 어리석은 것일까요. 작년에 벌어졌던 승부조작이라든지 게임과몰입이라든지 하는 문제들이 제 속을 뒤흔들어 놓았다면 지금의 이 어려움은 저를 밖에서부터 두들겨대고 있습니다. 가뜩이나 다시 허리도 아픈데 이거 원......


- The xian -

P.S. 요즘같은 날씨에 허리라도 삐끗하시면, 저처럼 정형외과 출근도장 찍는 경우 생깁니다.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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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17 23:00
수정 아이콘
힘내세요!
Geradeaus
11/01/17 23:07
수정 아이콘
잘 되실 겁니다. 추운데 몸 조심 하세요.
몽키.D.루피
11/01/17 23:20
수정 아이콘
저 또한 시안님과 비견될만한 건 아니지만 요즘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습니다. 하루죙일 쳐박혀 드라마, 인터넷, 텔레비전의 무한반복이네요. 그래도 웹상에서 시안님 글 보니까 반갑네요. 시안님 글이 올라오니까 피지알 답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러고 보니 작년 말 피지알 상황과 시안님 상황이 묘하게 겹쳐 있네요. 새해에 피지알도 부활했으니 피지알 내에 방황하는 저를 포함한 모든 백수들도 자리잡고 부활했으면 좋겠습니다.
ridewitme
11/01/17 23:23
수정 아이콘
헉 허리 삐끗하셨나요. 전 다리가 망가져서 정형외과 출근... 조심합시다 히히
싸이유니
11/01/17 23:43
수정 아이콘
역시 pgr이 부활하니 좋은 글을 볼수있군요..

읽으면서 공감 많이 하고 갑니다..허리는 얼른 나으시구요..
11/01/18 00:04
수정 아이콘
10개월 후에 저도 시안님과 비슷한 상황이 될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예비 백수죠.흐흐.. 게다가 경력도 없고 /엉엉
곧!, 꼭! 시안님의 건강관련, 직장관련 좋은 소식이 올라오기를 바라겠습니다. 그때도 꼭 글올리셔서 우울한 저에게 응원 부탁드립니다.
개의 뿔
11/01/18 00:06
수정 아이콘
피지알이 살아나서도 왠지 남의 집에 온 것 같은 한산한 기분이어서 로그인을 안했는데 로그인하게되네요.
추운 날씨에 고생이 많으시네요. 힘내세요!! 새옹지마라는 말도 있잖습니까
타츠야
11/01/18 01:34
수정 아이콘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법입니다. 99년부터 회사를 다니기 시작해서 SI 3년 -> 모바일 8년 -> 자동차 4개월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모바일에서 자동차쪽으로 넘어올 때는 집에 아이가 둘이나 있으면서 뒤를 보지 않고 회사 그만뒀다가 2개월 동안 취직이 되지 않아 The xian님처럼 전전긍긍했습니다. 특히 부양가족이 3명이나 되니 들어가는 돈은 많고 통장의 잔고는 줄어가면서 고민이 많았죠.
나이가 들어 타의에 의해 쉬는 기간이 늘면 비관적인 생각이 들기 마련입니다. 이럴 때일 수록 몸과 마음을 단정히 가꾸시고(운동이나 헤어스타일을 바꾸시면서) 기분 좋은 생각들(취업할 회사에 대한 기대, 멋진 동료들, 즐겁게 일하는 자신의 모습 등)을 하시면서 취업할 곳을 알아보시는 게 좋으시리라 생각합니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어떤 면접이든 패기있게 보세요. 패기는 고등학교나 대학 졸업생들만이 갖는 전유물이 아닙니다.
사람은 자신이 마음 먹는데로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그리고 밤은 지성이 아니라 감성이 지배하는 시간입니다. 문학 작품처럼 글을 쓰실 때는 밤을 이용하시더라도 취업에 대한 생각은 푹 자고 아침에 하시면 훨씬 기분이 나아지실 것입니다.
몇 달 후에 회사에서 열정적으로 일하고 계실 The xian님을 기대해 봅니다.
아자 아자~
11/01/18 01:36
수정 아이콘
그런데 왜 망설이는가.
생각해 보면 인생의 커다란 전기는 두 가지 경우에 찾아오지.
하나는 뭔가를 얻었을 때.
또 하나 사람을 바꾸는 건 잃었을 때..
하지만 얻었을 때의 기쁨과 잃었을 때의 슬픔이라면,
잃었을 때가 역시 확실하게 사람을 바꾸지.
체~인지 하고 자기 입으로 기세 좋게 말할 수 있는 건 미국 대통령 뿐.
변화란 절체절명의 벼랑 끝에 몰려 더 이상 도망칠 수도 없을 때 어쩔 수 없이 선택하게 되는 거지.
그래서 피가 밸 만큼 고통스러워. 하지만 고통스러울 때는 확실하게 고통을 겪지 않고는 변할 수 없어.

-Bartender 17에서 발췌.

한 마음이 무너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면
내 인생도 무의미하진 않으리.
한 목숨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다면,
한 고통을 잠재울 수 있다면
어리고 약한 티티새 한 마리를 다시 둥지로 돌려보낼 수 있다면,
내 인생도 그리 무의미하진 않으리.

에밀리 디킨슨 가의 생쥐 Elizabeth Spires 저/ Claire A. Nivola 그림 에서 발췌


지금의 힘들고 차가운 고통이 현실을 바꾸는 힘으로 바뀌기를 바랍니다.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DuomoFirenze
11/01/18 02:27
수정 아이콘
저도 최근에 그토록 바래왔던 회사에 취업이 좌절되고 몇일 술마시다 이제 다시 정신차리고 힘내자. 하고 있습니다.
이직이 쉽지가 않군요..
훌훌 털어버리고 다시 힘내세요..
덩달아 저도 힘내서 다시 도전해볼라구요..
좋은 소식 기다릴게요~~ 좋은 밤 되세요.
켈로그김
11/01/18 09:16
수정 아이콘
저도 취업하기로 한 곳이 추위와 폭설로 공사가 지연되서 하염없는 백수생활중이라 동감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냥.. 사는게 탄산음료 속에 담긴 포도같은거라고 생각하고 있지요.
떠오를 때가 있다면, 가라앉을 때도 있는거라고..

이참에 한 번, 바닥까지 가라앉아보는 것도 그리 꺼릴만한 일은 아닌 듯 합니다.
저는 그래요..
11/01/18 12:36
수정 아이콘
나이도 있고 해서 은근히 걱정 되시겠네요. (근데 생각보다 나이가 많으시네요. 아직 20대인줄 알았습니다)
주제넘게 몇마디만 해 본다면,
30대 중반이면 회사에선 중간관리자를 구하는 입장입니다. 과장급이나 곧 과장이 될 사람이겠죠.
이런 사람들에겐 독특함, 분명함, 창의력 이런 것보다 안정감, 신뢰감, 친화력 같은 걸 더 기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거의 끝까지 가서 무산되었다면 혹시 이런 점이 걸렸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물론 Xian님의 글을 읽으면서 생긴 이미지만 갖고 판단한 것이지만
제게 Xian님은 뒤의 요소보다 앞의 요소가 더 드러나는 분 같이 느껴지거든요.
절름발이이리
11/01/18 15:43
수정 아이콘
늑대가 됩시다.
불멸의이순규
11/01/18 18:30
수정 아이콘
시안님 평소에 와우는 너무 하고 싶지만 상황항 하지 못하는데 글 너무 잘 보고 있습니다.
어서 좋은 조건의 취업에 성공 하셔서 또 가끔 편한 마음으로 올리는 와우글 볼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wish burn
11/01/18 21:35
수정 아이콘
개업한다고 5개월동안 반백수로 지나다가 임시로 2개월일했는데.. 다음주면 계약기간이 끝나는지라
어느정도 공감대를 느끼는 듯 싶습니다.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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