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는 고등학생 때 처음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 어린 나이에 벌써 남을 배려하는 습관이 몸에 밴 친구였습니다. 가능한 선에서 항상 남을 도우려 노력했고, 남에게 피해를 안 주려고 안간힘을 쓰던 친구였습니다. 더운 여름날 500원짜리 아이스크림을 한입 얻어먹으면서도 미안해하던 친구였습니다. 다른 친구들 사이에 다툼이 있을 때면, 어떻게든 말리고 중재하려던 친구였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저희는 예전처럼 가깝게 지내진 않았습니다. 1년에 한두 차례나 보았을까요. 각자 대학 생활을 하느라 바쁘기도 했고, 저는 지병이 있어 고등학교 친구들과 적극적으로 만나려 하진 않았습니다. 스물세 살의 어느 겨울날, 저는 저만의 동굴에 틀어박힌 채 생애 처음 받은 수술의 여파로부터 한참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있었습니다. 그때 친구가 제 앞에 나타났습니다. 핸드폰으로 연락이 닿지 않자, 다른 친한 친구 몇몇과 함께 고등학생 때 기억을 더듬어 우리 집 문 앞에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친구는 제가 아프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저는 특별히 누구에게도 아프다거나 수술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그렇게 저는 복대를 매고 수술 부위를 꽉 조인 다음에 몇 달 만에 처음으로 바깥 외출을 했습니다. 친구 좋다는 게 뭔지...참 오랜만에 웃었습니다.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저께까지 롤이 이어준 인연으로 똘똘 뭉친 열댓 명의 친구들이 모인 단톡방에서 농담을 섞어가며 얘기하던 친구였습니다. 어제 새벽 단톡방 몇 개에서 (알수없음) 님이 탈퇴했을 때, 처음에는 누가 방을 나갔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오후가 되어서야 이 친구가 탈퇴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그저 핸드폰을 바꾸었겠거니...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사실 내심 한편으로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느낌은 받았습니다. 친구는 오랫동안 취업고에 시달렸고, 어떻게든 근검절약하려고 노력해왔으니까요. 친구가 뜬금없이 핸드폰을 바꾼다는 건 그다지 있을 법하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근 5년간의 삶이 너무 고달팠던 걸까요. 친구의 눈가에는 점점 그늘이 깊어졌습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친구는 점점 외출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본래라면 친구들끼리 모여 치킨도 좀 뜯고, 롤도 몇 판 하자는 제의에 곧잘 응하던 친구였습니다만, 어느샌가 우리 무리에서 친구의 얼굴을 보는 건 하늘의 별 따기가 되었습니다. 친구는 몇 년 전부터 때때로 우울한 마음을 토로했습니다. 저와 다른 친구들은 친구를 염려했지만,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깨닫지는 못했습니다.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라고 했던가요. 적어도 저는 시간이 지나면 친구가 동굴에서 빠져나와 다시 제 눈앞에 나타날 줄 알았습니다. 사태의 심각성을 이해하기는커녕, 연락을 해도 받지 않고, 동네로 찾아가도 나오지 않는 친구에게 내심 섭섭한 마음이 들었지요. 때때로 저와 다른 친구들은 친구에게 우리는 너를 이렇게 생각하는데...너는 우리 얼굴 보기가 싫어서 나오지도 않는구나라며 농담 반 진담 반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제 와 생각하면 그런 말은 대체 왜 했는지 후회가 됩니다.
어제 새벽에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친구는 무슨 심정으로 핸드폰에서 친구 목록을 다 정리하고, 카톡을 탈퇴했을까요. 아직 채 24시간이 지나기도 전이네요. 어제 새벽에도 이 시간에 깨어있었는데...말이나 한번 붙여볼 걸 그랬습니다. 어제 저녁 찾아간 식장에서 울지 않으리라 마음먹었습니다. 저보다는 친구의 부모님이나 동생이 더 힘이 드실 테니까요. 그렇지만, 친구의 사진을 보자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사진 속 친구는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몇 년 더 젊은 모습이었습니다. 반삭발 머리를 한 채, 희미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왜인지 죄스런 마음에 친구의 얼굴을 똑바로 보기 어려웠습니다. 친구의 부모님께 위로의 말씀 한마디도 제대로 드리지 못했습니다.
친구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남자란 그런 것인지... 누구 한 사람 말로 슬픔을 표현하지 못했습니다. 한숨과 탄식, 서로의 등과 어깨를 두드리는 손짓만이 가득했지요. 이름만 아는 한 친구는 펑펑 눈물을 흘렸습니다. 친구를 위해 저렇게 울어 줄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조금이나마 위로받았습니다. 아마도 우리 중 다른 누군가가 죽었다면, 먼저 떠난 친구도 저렇게 울어줬겠지요. 이제 친구는 멀리 떠났습니다. 그리고 남은 우리는 결코 예전 같지 못하겠지요.
부디 친구가 더 좋은 곳으로 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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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초 자리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던 시절 세상을 떠났던 제 친구가 생각이 납니다. 제게 심적으로 많이 기댔던 친구였는데, 제가 집에 돌아오기 몇일 전 스스로... 그 충격으로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글쓴이에게 위로의 말씀 전하고 싶습니다. 기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