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매서운 첫펀치
-현재 이손초 강-
독일군의 이탈리아 2군 정면을 향한 정면 공세는 10월 24일 새벽으로 로 정해져 있습니다.
목적 자체는 헝가리쪽으로 나가는 알프스 산맥 길쪽에서 이손초 강쪽으로 공세를 가하면서 이를 방어하고 있던 이탈리아 2군의
전력을 약화시켜 이탈리아 2군의 남부에서 트리에스테를 노리던 이탈리아 3군의 움직임을 봉쇄한다는 계획이었습니다.
(이와중에 오스트리아군은 작년 솜므의 영국군 처럼 전전선 일제 공격을 주장했던거 봐서는 얼마나 이전선에서 오스트리아-이탈리아군
이 2군리그를 벌렸는지 알 수 있었죠.)
이 공세를 사실 이탈리아군은 심지어 날짜까지 알고 있었습니다. 막장이었던 오스트리아 제국군 중 이탈리아어권 병사들이
탈영하여 이 정보를 이탈리아 군에게 고스라니 넘겨 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2군 사령관 카펠로 장군은 방어를 더욱 지시한 상태였습니다.
- 2군 사령관 루이지 카펠로 장군-
문제는 이 지시는 거의 지켜지 않았고 그가 전투 전에 지병으로 자리를 떠나면서 더욱 상황이
악화 되었습니다.
그래도 만약 공격자가 오스트리아 군이었다면 이 전투에서 이탈리아군이 이겼을 지도 모릅니다.
단지 공격자가 영-프군과 러시아군과 혈투를 벌이며 온 최정예 독일군이라는게 문제였죠.
2시 경 독일군의 잘 계획되고 한정적인 부분에 대한 무차별 포격으로 전투는 시작됩니다. 교리대로
독일군은 연막탄, 화학탄, 고폭탄, 유산탄등 각종 탄을 수천문의 포에서 짧은 시간 동안 미칠듯이 발사했습니다.
이런 고밀도의 기습적인 집중적인 포격은 이탈리아군은 처음 겪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서부전선에서 이런 포격은 일반화 되었는데 말이죠.
이시기에 이탈리아군은 거의 패닉 상태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독일이 자랑하는 돌격대와 알프스 군단(산악병) 선봉대들이 전선에 투입되었습니다.
그들은 포병의 탄막사격의 엄호를 받으며 1차 목표인 이탈리아군의 두 요새- Mount Matajur와 Kolovrat Range-
를 공격했습니다. 이 두 요새는 전략상 중요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시설은 이탈리아군 4군단과 27군단 사이를 커버하고 있었는데
이곳을 점령되면 이탈리아 군 후방이 열린다는 뜻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두 요새는 일격에 함락되었는데 Mount Matajur 요새는 겨우 일개 중대에 의해 함락되는 추태까지 보였습니다.
즉 에르빈 롬멜 대위가 이끄는 산악병 1개 중대 100명이 요새를 지키는 7000명을 상대로 이 요새를 함락시킨 겁니다.
그는 이 공으로 비록 블루맥스(1차 대전 독일 최고의 훈장)을 받지 못하고 공을 뺏겼지만 뒤에 다른 전공으로
이 훈장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그 일약 독일군내 스타가 됩니다.
이젠 이탈리아 군 전선에 큰 구멍이 생겼습니다. 겨우 개전 몇시간 만에 이탈리아 2군은 붕괴직전에 몰린 것이었습니다.
2) 이탈리아 2군 붕괴
이탈리아군 4군단과 27군단 사이는 완전히 뚫려 독일 14군 전위부대들이 마구 파고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속도는 아주 경이적인지라 이탈리아 전방부대는 완전히 공포심에 모랄빵이 났고 원래라면 구멍을
매꾸었어야 할 증원부대들도 우왕좌왕 하다가 도착한 독일군 전위부대와 싸우다가 소모되어 갔습니다.
이탈리아 2군은 완전히 하루만에 붕괴직전가지 몰렸습니다. 이를 수습할 장군도 돌발상황도 없이 그대로
말이죠.
하루만에 이탈리아 2군은 완전히 전투 의지를 상실했습니다. 그리고 마구 패주하거나 독일군에게 항복하는
입장에 몰렸습니다.
독일군은 공세 첫날 하루동안 무려 25km를 진격해 들어 갔고 이 돌출부위는 이 전선에 배치되었던 이탈리아의 나머지
3개 야전군의 배후를 위협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아오스타 대공이 이끄는 해안가의 이탈리아 3군은 포위 섬멸당한 위기까지 빠졌습니다.
- 포로가 된 이탈리아군대-
이탈리아군이 이리 일격에 무너지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상대의 질이 아주 달랐다는 점이었습니다.
독일군과 거의 붙어보지 못한 이탈리아군의 입장에서 독일군의 한차원 높은 공격에 대응할 방법을
몰랐고 특히 독가스 공격에는 너무 취약했습니다.
한마디로 저티어 상대와 저티어로 놀다가 갑자기 고티어 상대가 난입하자 전혀 대응을 못했던것과
같은 이유였습니다.
아무튼 하루만에 이탈리아군의 고난이 끝난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하루는 단지 시작일 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