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과인데 손으로 쓴 편지 한 통 못 받아본 게 한이라니 ㅡ.ㅡ 너 쫓아다닌 놈들한테 많이 받은 거 아니었었나... 뭐 난 군대에서 받아보긴 해서 몰랐네. 좀 늦긴 했지만 한 번 써보지 뭐.
정작 쓰려니 무슨 얘기를 해야 될 지 모르겠다. 옛날 얘기나 할까. 어차피 앞으로는 힘들다 힘들다 얘기밖에 안 할 것 같으니까 말이야. 생각해보면 옛날에도 딱히 좋다 좋다 한 건 없는 것 같은데 말이지. 추억의 힘이겠지 뭐. 뭘 쓰든 이 추억이라는 놈은 열심히 뜯어먹을 거고 말이야. 내 얘기 좀 많이 해도 괜찮겠지? 전화할 때 니 얘기 많이 들어줬잖아.
서울에 오니까 이런 놈도 보게 돼서 신기했다... 그런 말을 했었지. 그랬을 것 같아. 뭔가 참 열정적인, 돈 따윈 신경 안 쓰는 꿈을 얘기하는 놈 말이야. 난 나 같은 놈이 많을 줄 알았어. 근데 딱히 그런 건 아니더구만. 그저 사람이 많으니까 지방 살 때보다 보기가 더 쉬웠던 거겠지.
그렇게 8년이 지났다. 강산이 한 4/5쯤 바뀔만큼 사람들도 많이 바뀌었지. 과에서 안 건드린 여자가 없을 정도의 바람둥이가 한 여자만을 바라보게 될 정도의 시간이었어. 나도 그만큼 바뀐 것 같아. 뭐 다르게 생각하면 내가 바뀌었다기보단 내가 원래 어떤 놈이었는가를 알아차린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말이야. 내려올 땐 그렇게 힘들게 결정 내렸는데 정작 내려오니까 다시는 여길 뜨기 싫네. 이렇게 생각이 바뀐 게 겨우 한 달이야. 그 동안 더 배운 게 얼마나 있겠고, 깨달아봐야 얼마나 더 알았겠어. 내가 그렇게 중요하다 생각했던 건... 그렇게 가벼웠던건가 봐.
말이 꿈이었지, 말로는 내세웠던 거였지 그렇게 미쳐살았던 건 또 아니었지. 미칠거면 제대로 미쳤어야 했는데 말이야. 내 주변 상황이 어떻게 되든 난 그 길을 가겠다고. 정작 내가 갔던 길은 조금이라도 덜 미치는 길이었지. 그럴수록 허세는 더 늘어갔고. 주변에 진짜 미친 사람들이 늘어갈수록 느꼈어. 난 별 거 아니었다고. 하지만 그들을 따라가야겠다는 용기는 더더욱 줄어가더구만.
내려오면서 확실히 알겠더라. 그렇게 방구석에 틀어박혀서 뭔가를 알아내려고 시도했었는데, 그냥 밖에서 애들이랑 노는 시간이 더 좋더라. 무슨 세상의 진리를 깨달았다는 듯이 잘난척 하는 것보단 친구들이랑 울고불고 술쳐먹는 게 더 좋더라. 애들도 참 멀고 먼 길을 돌아온 놈을 참 반가이도 반겨주더라. 그러니까 느껴지더라구. 난 역시 스케일 작은 놈이었다는 걸.
그렇게 술을 먹든 게임을 하든 수다를 떨든, 그런 게 참 좋더라. 그리고 거기에 필요한 건 결국 돈이더라. 큰 건 아니잖아. 그냥 내가 놀고, 내가 즐길 수 있을 정도의 돈... 그런데 나한텐 그런 것도 없더라구. 더 놀고 즐기고 더 얘기하고 싶은데 내가 더 뭘 할 수 없다는 그런 거, 겨우 그 정도도 할 수 없다는 그런 기분 말이지. 그런 건 나한테 필요없다 생각하고 열심히 달린 것 같았는데, 난 그런 걸 정말 좋아하는 놈이더라구. 파트리크 쥐스킨트? 난 그렇게 미칠 수 있는 놈이 아니었으니까. 뭐 그 양반도 친구들이랑 놀 때는 잘 논다고 하더만.
그리고 그렇게 스케일 작은 것도 참 크게 다가왔는데... 거기서 말하는 돈이 내가 번 돈도 아니라는 건 어떻겠어. 위에서도 몰랐던 건 아닐 거야. 그냥 무시했을 뿐이지. 아직은 여유 있을 거라는 변명으로 말이야. 그게 어디 내 여유였던가. 대체 그 변명 하나로 얼마를 허비했던 걸까.
다들 그래. 더 가지 그랬냐고. 십오년만에 만나든, 심심하면 만났든간에 다들 그런 얘길 하더라. 그런 걸 보면 내가 참 일관적인 삶을 살았던 것 같긴 해. 초등학교 졸업할 때 친구들끼리 쓴 롤링페이퍼를 찾았는데 말이야. 거기서도 비슷한 말이 있더라. 그런 걸 많이 아는게 대단했는데 그런 얘기밖에 안 해서 좀 그랬다고. 어릴 때부터 참 신기하게 살긴 했나봐. 뭐 덕분에 인간관계라는 건 아직도 힘들다. 그래도 8년 전 폐급이었을 때보다 좀 낫긴 한가.
며칠 전에 꿈을 꿨는데 한 십 년 전으로 돌아갔나봐. 그것도 지금의 상황을 다 기억한 상태로 말이야. 그러면 보통 더 잘 살려고 노력하지 않나? 근데 꿈 속의 난 딱 살아왔던 그대로를 고집했어. 이유는 하나, 다른 삶을 살면 원래 만났을 사람들을 못 만난다는 거. 그 말을 하면 사람들은 '겨우 나 만나려고 그런 거였나'라는 말을 했지. 꿈 속의 나는 계속 고개만 끄덕였고 말이야. 웃긴 거 아닌가. 하긴 난 스포일러 다 듣고 영화 보는 놈이고 공략집 그대로 게임 공략하는 놈이긴 하지만 말이야. 역시 원래 그런 놈이었던 건가. 하긴 8년 전에 나를 찾아가봐야 내 말 안 듣겠지. -_-; 이 편지는 오히려 그 놈한테 더 어울리는 것 같은데, 보자마자 불태워 버릴 거 같은데 말이야.
아무튼... 깨고 생각하니까 난 진짜 그런 선택 할 거 같아. 꿈이야 시간이 얼마나 흐르든, 방식이 달라지든 쫓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내 사람을 놓치는 건 정말 악몽일 거니까. 그 사람들 사이에 내가 있을 자리가 없다는 건 정말 싫고. 이노무 성격 때문에 잃은 사람들 생각하면 더더욱 말이야.
뭐 그렇더라. 절대 혼자 살 수 있는 놈이 아닌데 그렇게 살다가 사람들은 떨어져 나가고, 남은 사람들한테도 난 뜯어먹기만 할 뿐 뭘 해 줄 수 없다는 거. 남들은 신경쓰지도 않는 꿈만 쫓다가 남들은 당연히 다 하는 것도 하지 못 하고 있는 지금... 알게 된 이상 빨리 내려놓고 쫓아가야지. 최소한 남들만큼 살 수 있을 정도로 말이야.
뭐 포기한 건 아니야. 그거밖에 몰랐던 놈이 그거 없이 어떻게 살겠어. 잠깐 내려놓을려구. 그거 말고도 내가 짊어져야 될 건 너무 많았고, 그 놈 때문에 무시하고 있었으니. 다시 그걸 내 어깨 위에 올릴 때는 모든 걸 다 이고도 버틸 수 있을 때가 되겠지. 그 정도가 되면 내 이름 석자에 좀 더 당당해질 수 있겠지. 뭐 최소한 내가 하고 싶은 건 내가 번 돈으로 해야 하지 않겠어.
늘 너한테 행복이라는 말을 꺼냈는데 사실 그게 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뭐 죽기 전에는 알게 되지 않을까. 너한테 행복하라는 요구는 많이 했으니, 이제 내 차례겠지. 최대한 행복하려고 해 볼게. 언제 어디서든 다시 만났을 때 웃으면서 인사할 수 있게. 그러기 위해 다시 달리련다. 많이 늦은 것 같긴 하지만, 너무 늦지는 않았기를 빌면서.
2절이랑 브릿지를 참 질질 끄는 것 같다. 빨리 3절 시작하고 싶네. 그 때는 좀 더 당당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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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이런 내용을 보낼 순 없었습니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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