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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편
위- 로베르 니벨- 니벨 대공세를 이끈 프랑스 장군
아래- 니벨 대공세 당시 전선 표시 지도
연합군의 힌덴부르크 선 공략을 알기 위해서는 다시 시간을 돌려 니벨의 대공세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거기에서 파생된 아라스 전투(2차 대전의 같은 곳에서 전차전이 있었죠.) 그리고 메신 능선, 파스상달 전투를 설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917년 독일군은 당시 사실상 독일의 지배자 였던 루덴도르프 장군(실재직위로는 힌덴부르크 참모총장 밑에 있었던 차장이나 사실상 힌덴부르크가 바지 사장이라 보니 이쪽이 실세죠. 카이저(바지사장의 바지사장)-> 힌덴부르크(바지사장)-> 루덴도르프(실제 사장))의 망설임- 안전한 곳으로 후퇴하면 병사들의 정신력이 나태해질 것이다...-에도 불구하고 결국 바이에른 왕세자의 설득 끝에 3월 독일군은 후방에 구축해 두었던 힌덴부르크 선으로 후퇴 합니다. 이걸 알베리히 계획이라고 하는데 니벨룽겐의 반지에 나오는 난쟁이 이름을 따왔습니다.
12만명의 프랑스 인을 노역을 위해 잡아가고 나머지 인프라를 초토화 시켜 연합군의 진격을 막는게 골자 였던 이계획은
연합군이 나중 공세를 위해 추격을 포기하면서 성공적으로 끝나게 됩니다.
사실 연합군 내부에서도 독일군의 이런 후퇴를 추격하여 전선을 붕괴시키자는 주장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신임 프랑스 육군 사령관 로베르
니벨은 이를 무시하고 정면에서 힌덴부르크 선을 깨부실 생각이었습니다.
사관학교 출신이 아니라 에콜 폴리테크니크(프랑스 이공과대학) 출신 장군은 왕성한 공격력과 포병 운용을 자신했고 이를 통해 승리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베르덩 전투 말 페텡 대신 지휘를 맡아 독일군이 초반 차지한 모든 점령지를 수복함으로써 증명하는
'듯' 보였죠. 사실 엄청난 사상자를 낸 성과였다는게 문제였지만요. 이에 당시 사람만 갈아 넣고 실적은 없었던 전임 총사령관 조프레(이사람도 에콜 폴리테크니크 출신) 대신 총사령관직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의 사령관직 임명은 연합군 정계에 큰영향을 주었습니다. 일단 영국의 새로운 수상 로이드 조지는 전임 총리 에스퀴스가 신임한 영국 참모총장 로버트슨과 영국군 서부 전선 사령관 헤이그를 싫어했습니다. 그는 동부전선에 전쟁을 끝장내야 한다는 주의였고(처칠도 바로 이파) 로버트슨과 헤이그는 서부전에서 전쟁의 승리를 달성해야 한다는 주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둘의 영향을 감소시키기 위해서 니벨을
밀어주기로 결정합니다.
만약 니벨이 성공하면 성공한데로 니벨을 추켜세워 두 사람의 힘을 약화시킬 생각이었고 실패하면 실패한데로 이를 통해 두 사람을 자를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 정계에서 그의 입지는 계속 나빠지는데 그의 잘못도 있지만 그를 사령관으로 만들어준 프랑스 총리의 정적들이 점차 강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당시 프랑스 총리 아리스티드 브리앙은 니벨이
[이겨야] 정권을 유지할 위치에 있었습니다.
결국 두 지지자, 군부의 힘을 제어하고 싶어하는 영국의 신임 총리와 정권을 지켜야 하는 프랑스 총리의 지지가 이 힌덴부르크 선을
공격하는 주된 이유가 된 것이죠.
이 기대에 니벨은 자신에게는 감추던
[승리의 비법]이 있으니 승리할 것이라고 답합니다.
그 승리의 비법이란 바로
[이동탄막사격]. 이 전술 자체는 RTS 게임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1, 영국 진형에서 포병 독트린 타면 나오는 전술
인데 게임은 해보신 분들은 대략 개념을 아실 겁니다.
대규모 포를 집중적으로 운영하여 일정 지역에 탄막을 형성하고, 이 포탄의 비가 적 전선을 향해 느리게 전진하며 그 포탄의 비 뒤에서 따라
오는 아군의 전진을 보호한다는 개념이었습니다.
그의 생각에 의하면 이론대로 된다면 이 포탄의 비만 따라가면 적 참호선에 가볍게 닿을 수 있을 터였습니다.
전략적으로 니벨의 구상은 이랬습니다.
[영국이 맡은 프랑스 서부 지역인 아라스-우아즈 강에서 독일군을 잡아둔다. 그럼 약화된
독일군 프랑스 중부 지역 전선을 프랑스 군으로 뚫은 후 준비해두었던 프랑스군 27개 사단을 이 구멍 밀어 넣어 결정적인
승리를 얻는다. ]
그렇기 위해서 독일군 후퇴를 놔두고 전력을 집결 시켜야 한다라는게 니벨의 생각이었던 겁니다.
이 전략에 따라 영국군은 아라스를 공격해야 했습니다. 당시 영국군의 전력은 독일군을 압도하고 있었는데 서부전선
영국군 수만 204만, 포는 2200문, 전차 120대. 반면 독일군은 베르덩과 솜므에서 잃은 병력을 거의 충원하지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이를 알고 있었던 영국군 수뇌부는 단지 조공 뿐만 아니라 직접 독일군의 전선에 구멍을 뚫어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헤이그는 이 공격을 영국 제 3군 사령관 에드먼드 알렌비 대장에게 맡겼고 그는 꽤 유능한 평을 듣는 장군이었기 나쁘지 않은
인선이었습니다.
압도적인 전력과 약화된 적에 비교적 가벼운 조공이라는 임무까지 이 전투는 승리할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하지만 몇가지
불안감은 존재 했는데 독일군이 후퇴하면서 모든 도로를 다 파괴해서 포를 이동시키기 힘들었다는 것과 생각보다 독일군이
방어해야 하는 방어선의 길이 짧았다는 것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두가지 약점은 이 전투에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하게 됩니다.
1917년 4월 시작된 니벨 대공세의 일부로 시작했지만 니벨 대공세만큼 큰 전투가 된 아라스 전투의 시작이었습니다.
참 짧게 힌덴부르크 선에 대해 쓸 생각이었는데 거의 17~18년 2년간 1차 대전 서부전선 이야기를 다써야할 분량이 되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