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를 함께 하는 일단의 무리들이 있다. 대학가에 출몰한 기괴한 밥터디란 모임이다. 오늘은 밥터디의 멤버 중 본인과 자신과, 스스로와 그리고 한 여학우만이 함께 하는 날이다. 별다른 기대를 가진 것은 아니지만 괜시리 거울을 한번 더 살펴보게 된다. 뭘 입을까. 고민하다가 평소 즐겨입던 셔츠를 입는다. 아직 젖은 것이 어제 세탁기에서 묵은 때를 지워내신 듯 하다. 어찌할까 잠시 고민한다.
드라이기로 말려볼까 생각하여 말려본다. 시간에 늦는 것 또한 예의가 아니기에 조급한 마음으로 말리는 중간 촉감을 느껴보지만, 물기에 열기까지 더해져서 뭔가 더 눅눅한 기분이다. 모르겠다. 그냥 입어버렸다.
1.
참 좋아하는 셔츠지만 눅눅한 느낌이 기분을 썩 좋게 하진 않는다. 그렇다고 이미 입고 출발해버린 마당에, 벗어던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착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셔츠에 기분이 묘하다.
여하튼 도착을 하고, 식사를 했다. 이런 모습이 있었구나. 참 매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느낀다. 말하는 모습도, 웃는 모습도 마음에 와닿는 사람이다. 이런 저런 시시콜콜한 얘기를 하고 간단히 디저트를 즐긴다. 흐뭇한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선남....은 없지만 선녀가 있으니 말이다. 열심히 공부하라며 손을 흔들고 헤어진다.
2.
뭘 먹었드라. 무슨 얘길 했드라. 잊어버린 건 아니지만. 몸에 붙은 셔츠 녀석의 기운이 더 또렷하다. 내가 무엇을 하는지 지켜보고, 무슨 말을 하는지 듣고 있다. 재미없는 농이라도 던질세면 핀잔을 주고, 재밌는 얘기를 하면 질투의 눈길을 준다.
집에 가는 길, 갑작스레 비가 내린다. 체온에 말라버린 녀석이 다시 젖어온다. 사그라들었다고 생각한 그 기분이 다시 엄습해온다.
모르겠다. 그냥 이대로 비를 맞아야 하는건지.
몸에 붙은 이 녀석이 떨어지질 않는다. 벗어낼려면 언제든 벗어낼 수 있을텐데. 벗어내고 싶지 않다.
3.
사실 난 알고 있다. 벗어내고 싶지 않다는 걸. 네가 사준 이 옷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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