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거북선 이야기를 보고 철갑선에 대해 아는 내용을 적어 봅니다.
뭐 거북선 이야기는 아니구, 정말 서양 철갑선 이야기 입니다.
0, 배와 철
배와 철은 고대로 부터 가까우면서 먼 사이었습니다. 가까운 이유는 당연히 주재료은 목재를 연결하기 위해 못이 필요했고
못은 철로 만드는 것이었기 때문이죠. 뭐 이음 부분도 철을 사용했구요. 좀더 나아가면 배를 돌진시켜 상대배에 구멍을 뚫는
충각에 철을 덧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주 선체로써 쇠는 좋지 못한 재료 였습니다. 일단 두가지 이유가 컸습니다. 바닷물에 너무 잘 녹쓸었습니다. 이 때문에 유지비가
너무 컸습니다. 심지어 우리 조상님들은 쇠못도 사용하지 않고 나무 못으로 대체할 정도 였습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아주 단순하면서 중요한 이유인데 바로 나침반 때문이었습니다. 배의 철 때문에 나침반이 교란되어 방향을 잃어 버리기
때문이었습니다.
고로 철은 압도적인 방어력에 비해서 도저히 배에 쓰기 적합하지 못한 재료 였던 거죠.
하지만 산업혁명 덕분에 강철의 가격이 떨어지게 되고 또한 이젠 더이상 나무는 쓰지 못하는 상황이 일어나자 어쩔 수 없이 철을 배에 써야
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1, 작열탄의 등장- 전열함의 끝.
19세기 대영 제국의 시대. 바다는 영국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유지 시켰던 우리가 흔히 영화나 게임에서 보는
전열함이라는 함종이었습니다.
겔리온에서 변화하여 2층이나 3층의 포갑판을 가진 이배는 최대 100문의 대포로 무장한 함종이었습니다.
그 크기는 엄청나 목재선인데도 배수량 1000톤에 이른 발미 같은 전함이 존재 했죠.
하지만 과학이 발전하고 무기 역시 발전하자 수백년간 세상을 지배했던 전열함의 시대도 끝나게 됩니다.
그리고 선두가 된게 바로 작열탄이었습니다. 그전까지 포는 라운드 샷이라는 쇗덩이를 쏘는게 보통이었습니다.
그런데 작열탄은 속에 화약이 충전되어 있고, 이게 배에 맞으면 순식간에 화염을 일으켰습니다.
이런 특성 때문에 영국을 비롯한 여러 강대국은 목재 선박에는 치명적일 것이라는 추측만 하고 있었고, 실제 위력은
모르고 있었죠.
그러다 실재 이 위력을 확인하는 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바로 그 사건은 시노프 해전. 터키와 러시아가 크림전쟁의
전초전을 벌인 이 전투에서 터키군 전열함은 러시아의 작열탄을 쏴되는 함대에 일방적으로 패배. 러시아는 한척의
배도 잃지 않았고 터키군은 1척만 콘스탄티노플로 후퇴할 수 있을 정도로 대패해 버립니다.
이 위력을 본 영국과 프랑스 함대는 크림 전쟁 내내 실재 전열함을 전쟁이 일어나는 근해에 배치하기 보다는 무동력
철재 장갑 포함, 즉 부유 포대을 배치시켜 전투를 진행시킵니다. 철로 된 선체는 불에 타지 않는다는 속성을 이용한 것이죠.
그리고 그 시도는 비록 불완전한 것이었지만 작열탄의 공포를 줄일 수 있었습니다.
2, 증기기관과 배
증기기관이 발명되자 당연히 배에 접목하려는 시도가 일어 났습니다. 그리고 이를 처음 시도한 사람은 미국의 발명가
풀턴이었습니다.
당연히 배에 증기기관이 적용되자 군함에도 증기기관이 적용되었습니다. 엠파이어 토탈워나 나폴레옹 토탈워를 해 보신 분들
은 아시겠지만 해군 최종 테크 중 하나가 바로 증기선 프리깃이입니다. 바로 이시기에 이런 선박이 사용되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죠.
증기선은 당연히 강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람이나 해류에 영향을 덜 받을 수 있는 동력을 갖춘다는 것이죠. 즉 자연에 더
이상 굴복하지 않고 배를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약점은 있었는데 이 때문에 영국 해군은 큰 배(즉 전열함 급에) 증기기관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이당시 낮은 출력과 불안정한 기계적 신뢰도 있었지만 추진 방식이 문제 였습니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라는 애니를 떠올시면 생각나는 미시시피 강을 오르내리는 배. 그 배 옆에 양쪽에 수차가 기억 나실 겁니다.
바로 그 수차가 문제 였습니다. 이 수차는 군함의 운동성을 떨어 뜨릴 뿐더러 배의 함포 수를 줄여 버렸습니다.(옛날 배들은
배 측면에 포를 놓는데 수차가 설치되면 당연히 포 수가 줄겠죠.) 그리고 전투 중 수차에 포가 맞으면 애로사항이 꽃핀다는
단점 역시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풀턴의 성공 이후 반세기가 지나서야 주력함선에 영국해군은 적극적으로 증기기관을 설치합니다. 바로 스크류식 추진방식
의 발견에 힘입어서 말이죠.
3 그럼 함 증기 기관과 부유포대를 결합시켜 보는 건 어떨까?
바로 이생각을 실험적으로 해본 곳이 미국이었습니다. 당시 남군은 압도적인 북군의 해양 봉쇄를 뚫을 비장의 대책으로
북군이 노포크에 남기고 떠난 프리깃 USS 메리맥에 돛을 제거하고 철로된 장갑을 덕지덕지 붙여 CSS 버지니아를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이 배 한척을 가지고 당시 노포크를 봉쇄하고 있던 북군 해군과 결전을 벌입니다.
이게 햄프턴 로드 해전이라는 전투였는 그 전투 결과는 경이로웠습니다. 이 한척 가지고 북군 프리깃 2척 슬루프선 1척과 붙어
프리깃 1척과 슬루프 1척을 격침시키고 프리깃 1척을 대파 시켜 버립니다.
철갑선과의 전투에서 목재선은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전투였습니다.
이에 충격을 받은 북군은 급히 순수 철재로 만든 철갑선 모니터를 파견합니다. 보통 철갑선하면 이배를 떠올릴 정도로
특이하게 생긴 이 모니터는 회전식 포탑, 그리고 해수면과 만날 정도로 낮은 갑판을 가진 증기기관으로 움직이는 배였습니다.
또한 이배는 역사적으로 가장 처음 나타난 근대식 철갑선이었습니다.
그리고 운명적으로 버지니아와 모니터는 다시 햄프턴 로드에서 만나 전투를 합니다.
이전투의 특징은 웃기는 게도 당시 무기로는 철갑선을 격침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쌍방 모두 수발의 명중탄을 냈는데 다 튕겨 내 버렸고, 결국 전투는 운발이 없었던 버지니아의 패배로 끝났습니다.
두배 모두 결말이 좋지 못했는데 특히 모니터는 파도에 침몰해버렸습니다. 그것도 대양이 아닌 육지 근처 천해에서 말이죠.
한마디로 당시 철갑선은 전투력은 극히 좋았지만 항해성이 제로 였다는 커다란 숙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4, 햄프턴 로드 해전의 확대전- 리사 해전
남북전쟁에서 시작된 철갑선 끼리의 대결은 일본과 전세계로 확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대결에서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명제. 도대체 철갑선은 뭘로 잡을 것인가가 주된 문제였죠.
1866년 프로이센이 오스트리아를 통일에서 배제하기 위해 일으킨 전쟁에서 이탈리아는 오스트리아령 베네치아를 얻기 위해
프로이센의 편을 듭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리사를 근해에서 오스트리아 군 철갑선 함대와 결전을 벌이게 되죠.
결과는 모니터와 버지니아의 햄프턴 로드 해전과 같았습니다. 당시 포로 암만 맞춰 봤자 상대를 해치울 수 없는 것입니다.
이에 열받은 오스트리아 군은 자신의 전함 에체르초크 페르디난드 막스로 이탈리아의 철갑선 로드 디 이탈리아를 냅다 박아
버립니다.
그 결과 로드 디 이탈리아는 격침되고 압도적이었던 이탈리아 해군은 패주해버리고 말죠.
이전투에서 세계는 잘못된 교훈을 얻게 되는 철갑선 끼리의 대결은 그냥 박아 버리면 된다 였습니다.
이 덕에 중세 해전 이후 폐지된 충각이 다시 배에 설치 되죠.
하지만 상대 철갑선을 격침하는 문제는 포와 신무기의 발견으로 해결됩니다.
결과적으로 세계 해군은 철갑선을 주력으로 사용하기 위해 몇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했습니다.
1, 나침반 문제 해결- 이는 결국 기술적으로 해결하니 당대에 중요했지만 저 같은 호사가에게는 중요하지 않는 내용.
2, 어떻게 철갑선을 잡을 것인가?
3, 그리고 지랄 맞은 항해성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였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의 해결은 다음에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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