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가장 궁금해했던 사실, 엄마와 (외)할머니가 전화로 '대화'를 어떻게 나누는지 그 비밀은 대체 무엇인지. 나는 할머니랑 직접 얼굴을 맞대고 있어도 표현이 잘 안 돼 답답했는데, 이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표정과 손짓이 허락되지 않는 전화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가. 수화기 너머 할머니가 '아아' 하면 엄마는 '또 오빠가 새언니(외숙모)랑 싸웠어?'라고 하고, 할머니가 '아아아' 하면 엄마는 '그 내 사촌동생 딸이 이번에 대학 들어갔대?'라고 되물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할머니가 우리집에 오시고 이제 한 달이 좀 지났나, 나는 이제야 그 비밀을 알 것 같다.
생각해보면 말을 못하시는 할머니는 내가 한때 키웠던 강아지를 닮았다. 하나, 거실 창문을 통해 밖을 오래도록 본다는 것. 둘, 많이 잔다는 것. 그리고 셋, 의사소통이 나의 '인간어'와 상대방의 '웅얼거림'으로 어찌저찌 해결된다는 것. 나와 강아지의 '대화'가 그랬듯, 할머니와 대화를 하기 위해 필요한 건 '맥락'이었다. 나도 이제 할머니의 '아아'를 제법 독해해내곤 한다. 아까 식사를 하셨으니깐 이를 닦으려고 하실 텐데 치약이 없다는 손짓이겠지. 애매한 시간에 들어왔으니 밥은 챙겨 먹었냐는 뜻이겠지. 안방을 가리키곤 시계를 가리키시니깐 아빠는 언제 들어오냐는 물음이겠지.
사실 할머니와 내 강아지가 가장 닮은 건 이별의 방식일 것만 같다. 생각보다 강아지를 키우는 게 너무 힘들다고 한 엄마는 키운지 1년 만에 다른 사람에게 우리 강아지를 줬다. 나는 계속 반대했다, 내가 키울 거에요, 내가 다 멕이고 병원도 데려가고 다 할 거라고요. 하지만 엄마는 그 누구보다 현실을 잘 파악했다. 어차피 강아지를 키우는 건 엄마였고 결국 데려올 때처럼 헤어질 때도 우리 강아지는 엄마 품에 안겼다. 밖을 나가는 엄마가 그 순간에는 무척 미웠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서는 엉엉 우는 엄마를 보며 나는 '복잡한' 기분이란 걸 처음 느꼈던 것 같다.
생 내내 다양한 영역에서 실패를 거둔 외삼촌이 이번엔 드디어 '집안' 그 자체를 완전히 풍비박산 내버리자 할머니가 갈 곳은 우리집 밖에 없었다. 엄마는 담담하게 언젠가는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았다며 할머니 모실 채비를 하라고 말했다. 할머니가 오시기로 한 날, 엄마는 내게 의미심장한 말을 했는데 그건 "할머니 생신만 지나면, 요양원에 보내드릴 거야." 아빠는 엄마의 의견을 듣자마자 강하게 거부했다. 하지만 이 건은 그래도 엄마의 결정을 따를 운명이었다, 어차피 그녀의 어미이기 때문에. 아빠의 거부는 어쩌면 엄마에게 신뢰감을 안겨 주기 위한 연극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뭐, 사실 그게 또 중요한 거긴 하다.
바로 오늘 아침은 할머니의 생신이셨다. 원래는 몰랐다. 정확히 날짜를 아는 게 두려웠기 때문이었던 것도 같다. 다만 보통은 나를 굳이 깨우지 않는 엄마가 아침 일찍부터 방문을 열고는 일어나라고 했을 때, 어느새 맥락 파악하기의 달인이 되어버린 난, 금세 오늘이 할머니의 생신이리라 직감했다. 엄마가 언제 사왔는지 케익이 식탁에 놓여져있다. 졸린 눈을 비비며 초를 꺼냈다. 꼽아놓고 보니 일흔 여섯. 사실 요즘 시대엔 아직 '한창'이실 나이이다. 그러나 할머니는 너무 많이 늙으셨다. 심장병 때문에 서른 쯤에 갑자기 말을 잃으셨기 때문일까, 몇 년 전 할아버지의 죽음 때문일까, "망한" 망할 아들놈 때문일까.
생신 축하 노래를 부르면서 자꾸 울컥했다. 마지막인 줄 알면서 마지막이 아닌 것처럼 행동하는 게 버거웠다. 이제 가시는 건가. 할머니가 이 집에서 계속 살긴 애매하다는 거,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당장 나도 불편하고 모든 가족들이 다 불편하고 무엇보다 엄마가 힘드니까. 엄마는 할머니가 온 첫날 독하게 얘기했다고 한다, "엄마, 생일만 지나면 요양원 가자." 할머니는 싫다고 싫다고 고개를 세차게 흔드셨다고 한다. 하지만 엄마는 "엄마, 내가 엄마를 어떻게 평생 모실 수 있겠어." 하고는 펑펑 울었다고 한다. 할머니도 펑펑 울었다고 한다. 어쩌면 다행이다, 내가 그 장면을 보지 않은 건.
그 옛날 강아지를 다른 집에 주자고 엄마가 말할 때 나는 반대하고 반대했지만, 이번에는 어떤 것도 말하지 못한다. 엄마도 고민하고 있겠지. 요양원에 모신다 한들 그 마음의 짐이 어찌 없어지겠나.
오늘은 늦게 집에 들어왔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보고 싶지 않은 비겁한 마음에서는 아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할머니가 주무시고 계신다. 그래, 아직 할머니의 생신이 완전히 지나지는 않았으니까. 하지만 결국 내일은 할머니의 생신 '다음 날'이 될 것이며, 엄마가 할머니를 모시고 요양원에 가도 이상할 게 하나도 없는 날이 될 것이다. 내일은 아닐 수도 있겠다. 어쩌면 생각보다 그 날은 미뤄지고 미뤄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 결국 할머니는 요양원으로 가게 될 거다. 뭔가 씁쓸해 죽겠는데 잘 모르겠다. 모르겠다는 말밖에는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양초를 꼽은 자욱만 남아있는, 아무도 손대지 않은 케익이 말쑥한 표정으로 냉장고에 있는 것도, 뭔가 씁쓸해 죽겠는데 나는 이게 도대체 뭔지 잘 모르겠다. 어제가 할머니의 생신이었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