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 판타지 갤러리 - 매그니토
종횡가(縱橫家)는 춘추와 전국시대에 무수하게 쏟아져나온 제자백가 중에 한 부류입니다. 열국(列國)을 돌아다니며 독특한 변설로 책략을 도모하는 사람들로, 분명히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이긴 했지만 보통 종횡가들을 철학가라고 말하진 않습니다. 책략가는 말이 적절하겠죠. 거기엔 술(術)은 있어도 학문은 없었습니다. 대신에 모략만이 있었죠. 거의 예술에 가까운 수준으로 말입니다.
전국시대 종횡가는 하늘의 별 처럼 많았지만 그 많은 유세객 중 사람들에게 기억되는것은 소진과 장의 뿐입니다. 이 가운데 소진에 관해서는 논란이 있습니다. 사기와 전국책에 있는 그의 일화들은 매우 극적인데, 무언가 아귀가 맞지 않은 부분들도 있습니다. 사마천도 소진의 열전을 쓰고 평하기를,
"세상에서 소진의 행적을 논하는 자 들중에는 이(異)설이 많다. 다른 시대에서 일어난 일도 비슷하기만 하면 소진에게 가져다 붙혔다"
고 합니다. 소진의 일화는 상대적으로 붕 떠있고, 극단적으로는 소진의 존재 자체도 허구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지만 극소수입니다. 보통은 그 시기 합종(合縱)을 주장하던 수 많은 유세객들의 활약이 소진에 덧붙혀졌다, 라고 보는 듯 하기도 합니다.
지금 말하고자 하는 사람은 장의입니다. 장의의 행적은 비교적 뚜렷하게 나타나죠.
장의는 위(魏)나라 사람입니다. 사마천이 평하기를 법가나 어러 술책을 부리는 사람 중에 삼진(위-조-한) 출신이 많다고 평했는데, 실제로 상앙은 위나라 사람이고 신불해는 한나라, 오기는 위나라 사람이고 한비자는 한나라 사람으로 이른바 법술을 부리거나 묘한 책략을 부리는 사람 중에 삼진 출신이 많았죠.
사기에서는 소진과 장의는 귀곡자(鬼谷子)라는 선생에게 책략을 배웠다고 합니다. 이 귀곡자의 정체에 대해서는 여러가지로 불분명하고, 귀곡자의 사상을 담았다는 '귀곡자'라는 책이 있는데 이것을 귀곡자가 썻는지 한참 뒤에 쓰여진 위작인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귀곡자가 썻다, 소진이 썻다, 육조시대(남북조시대)에 다른 사람들이 소진의 이름을 팔아서 썻다, 말들이 많습니다. 다만 귀곡자가 실제로 썻다고 해도 후대에 내용이 어느정도 첨가된것은 분명합니다.
장의의 어린 시절은 이 외에는 전혀 기록을 찾을 수 없습니다. 재미있는것은 장의 열전을 보면, 소진이 스스로 자기가 장의보다 능력이 떨어졌다고 여겼다고 합니다. 여하간 배울만큼 배우고 하산한 장의는 이제 쓰일곳을 구하기 위해 여러곳을 떠돌아다녔지만, 무시 당하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다가 남방의 초강대국 초나라까지 흘러들어가게 됩니다.
장의는 이곳에서 초나라 재상과 술을 마시는등 가까이 지내게 되지만, 그곳에 머무르는 동안 초나라 재상의 귀한 보물인 옥구슬이 사라지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러자 대번에 장의가 그 의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장의는 가난한데다 행실이 좋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 자가 물건을 훔쳤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장의는 졸지에 붙잡혀 수백대를 얻어 맞았지만, 안 훔친것을 훔쳤다고 말 할수는 없는 일이죠. 그래서 결국 반병신이 되어서 풀려나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걸레짝이 되어서 돌아오자 부인은 걱정이 되면서도 헛웃음이 나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쓸데없이 책같은것을 보고, 유세 따위를 하러 다니지 않았다면 그렇게 얻어맞진 않았을것 아닌가요."
그런데 장의 이 사람, 파죽이 되어서도 혀를 낼름 거리면서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보다, 내 혀가 아직 붙어있는 지 봐주시오(視吾舌尙在不).”
부인은 어이가 없어서 웃었습니다.
"아직 붙어 있네요(舌在也).”
"그러면 되었소(足矣)!"
이 무렵 친구 소진은 절정의 시기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각국을 떠돌아다니며 유세에 성공했고, 연(燕)·제(齊)·초(楚)·한(韓)·위(魏)·조(趙)을 종적(縱的)으로 연결, 거대한 동맹 전선을 구축하고 무려 여섯 개 나라의 재상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소진의 합종책이었습니다.
연(燕)──┐
│
제(齊)──│
│
초(楚)──│
│ ─────진(秦)
한(韓)──│
│
위(魏)──│
│
조(趙)──┘
진나라를 대처하는데는 가장 좋은 방법이긴 하나, 6국은 동맹을 맺으면서도 서로 언제든지 칼을 겨눌 수 있는 상황이었고 만약 이러 한 때 진나라가 공격해온다면 합종이 이어질 수 있는지 확신이 없었기에 소진은 장의를 이용했습니다. 관직도 없고 비참한 지경인 장의에게 은밀히 사람을 보냈습니다. 소진의 수하는 장의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소진과 친구라구요?"
"그렇소만."
"지금 그 사람은 이미 성공해 정치를 맡고 있습니다. 가서 도움을 구해보시지요."
당시 소진은 조나라에 머물고 있어 장의는 소진에게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소진은 일부러 문을 열어주질 않았고, 며칠이나 있다가 간신히 만나주었습니다. 그리고 형편없는 음식만 주면서 면박을 했습니다.
"자네가 재주 꽤나 있다고 여겼는데, 이제 보니 별것도 아니로군. 내가 자네를 추천할수도 있겠지만, 자네 정도 인물을 추천했다가 곤란한 일이 생기면 어찌하겠나?"
장의는 격노해 그 자리를 뛰쳐나갔고, 서쪽의 진나라로 달려갔습니다. 진나라를 설득해 조나라를 공격하게 하기 위함이었는데, 이때 소진은 전에 보냈던 부하를 다시 불러서 말했습니다.
"나는 그 친구의 발끝에도 못 따라가네. 그저 운이 좋아서 지금 이러고 있을 뿐이야. 자네는 가서 그를 돌봐주게."
그 수하는 조나라의 재물을 끌고 가 장의를 힘껏 봐주었고, 장의는 그 덕으로 진나라의 혜문왕에게 등용되게 됩니다. 그떄서야 수하는 정체를 밝혔습니다.
"저는 선생을 모릅니다. 선생을 알아주는 분은 바로 소군(蘇君 : 소진)이십니다. 소군께서는 진나라가 조나라를 쳐서 합종의 맹약이 깨어질 것을 걱정하고, 선생이라면 진나라의 정권을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다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래서 선생을 몹시 화나게 만들고, 한편으로는 저를 시켜서 몰래 선생께 필요한 비용을 대주도록 한 것입니다. 이 모두가 소군의 계책입니다. 이제 선생께서 등용되셨으니, 저는 명령대로 돌아가겠습니다."
"내가 소진만 못했군. 나를 대신하여 소선생에게 '소군이 살아 있는 한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며, 소군이 있는 한 내가 감히 무엇을 할 수 있겠소'라고 전해 주시오."
여기까지가 장의가 진나라에 등용된 계기입니다. 제 아무리 사기라고 해도 너무 소설적인 일화인데, 믿고 말고는 이 정도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여하간 본격적인 장의의 일화는 이때부터 시작됩니다. 장의는 진나라의 재상이 되어 초나라의 재상, 즉 전에 자기를 두들겨 팼던 사람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나는 그대의 구슬 따위를 훔치지 않았건만 매질만 당했소. 이제 그대 나라의 성읍을 내가 훔칠 것이오."
그때, 뜻밖의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저(苴)와 촉(蜀)이 서로 전투를 벌이려고 하여, 진나라에 사신을 보낸 것이었습니다.
대락 5000년~3000년 전부터, 사천 지방에서는 삼성퇴(Sānxīngduī) 문화라는 독자적인 문명의 흐름이 있었습니다. 중원과는 매우 다른 이질적인 모습이었고, 은나라의 갑골문 중에 촉을 공격할것을 점쳐본 기록도 있어서 매우 오랜시기부터 중국과 관련을 가졌다는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기의 본기에는 이 기록이 없지만, 사기의 주석서인 사기색은(史記索隱)에서는 촉왕본기(蜀王本紀)라는것이 인용되어 있고, 이 촉왕본기는 전한 시대 사람이 쓴 책입니다. 거기서는 두우(杜宇)라는 왕이 있었는데 찬탈당했다고 합니다. 두우는 슬퍼서 울다가 두견새가 되고, 목이 찢어져라 울었는데 이때문에 두견새를 귀촉도(歸蜀途)라고 부르기도 했답니다. 예. 미당 서정주의 그 시에 영향을 준 설화죠.
사기의 초세가 에서는 bc 377년 촉이 초를 공격해서 초나라의 서쪽 변방을 뺏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말은, 만약 진나락 촉을 병합하면 가장 강력한 적인 초나라를 양쪽에서 후려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혜문왕은 즉시 이 기회에 촉을 정벌할것을 논의했고, 의견은 두 파로 갈렸습니다.
촉 따위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천하의 주인이 될법한 자는 그런 시골보다 중원을 공략해야 한다─ 이것은 장의의 의견이었고
국토는 좁고 백성들은 가난하다, 촉을 얻으면 국토는 넓어질 것이고, 척 재물을 손에 넣으면 백성들은 부유해지고, 무기를 완벽하게 갖출 수 있다─ 이것은 장군 사마착의 주장이었습니다. 여기에선 장의보단 사마착의 의견이 중시되어 진나라는 촉을 공격, 그 땅을 병합하고 진나라는 매우 강력해져 이 시점에서 전국 최강국의 되었습니다.
장의가 역사의 전면에서 제대로 활약하게 된것은 혜문왕 10년인 BC 327년부터였습니다. 진나라의 공자 화(華)와 더불어 위나라의 포양을 함락시켰는데, 혜문왕에게 뜻밖의 제안을 했습니다.
"포양을 위나라에 돌려주지요. 그리고 공자 요(繇)도 인질로 위나라에 보냅시다."
그리고 장의는 위나라에 달려갔습니다. 싸워서 이기고도 오히려 땅과 인질을 주는 태도에 위나라에선 당황해하고 있었는데, 장의는 태연하게 말했습니다.
"저희 군주께서 위왕에게 이리도 성의를 보이십니다. 그렇다면 답례를 해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하여 상군과 소양 땅을 받아와서는 1년 뒤에는 장군으로 출정하여 위나라의 섬 땅을 갈취하고, 다시 진나라의 재상을 그만두더니 위나라의 재상이 되는 도저히 영문을 알 수 없는 행동을 취했습니다.
장의의 목적은 바로 연횡(連衡)에 있었습니다.
연(燕)──진(秦)
제(齊)──진(秦)
초(楚)──진(秦)
한(韓)──진(秦)
위(魏)──진(秦)
조(趙)──진(秦)
여섯개의 나라와 횡으로 연결하여, 합종을 저지한다. 여러 나라가 서로 힘을 합치지 못하게 되면 전부 진나라의 상대가 될 수 없었습니다. 장의가 노리는것은 진나라와 위나라가 동맹을 맺는것이었는데, 위나라는 순순히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장의는 진나라의 군사를 몰고 왔고, 위나라의 왕 앞에서 대놓고 협박을 자행했습니다.
"진나라가 한나라를 제압하여 위나라를 공격하고, 한나라가 진나라를 겁내어서, 진나라와 한나라가 연합하면 위나라가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 형제 자매도 싸우는것이 섭리인데 그까짓 합종이 오래가겠습니까?"
이에 겁을 먹은 위나라는 진나라와 동맹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일이 순리대로 되자 진나라에서는 제나라를 공격하려 하였지만, 제나라는 초나라와 합종을 맺어버렸습니다.
초나라는 진나라라고 해도 절대로 가만히 보기 힘든 강대국이었습니다. 그리고 제나라는 문화적으로 따지자면 항상 앞서고 있는 나라였고, 이 시기에 이르러선 군사적으로도 굉장한 강대국이라 만약 초나라와 제나라가 손을 잡는다면 진나라도 함부로 어찌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일은 이 두나라의 사이를 멀어지게 하는 것이었죠.
굴원과 진진등의 대신들은 제나라와 손을 잡지 않으면 망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반대파도 있었는데, 근상등의 대신이었습니다. 장의는 이런 형세를 보고 혓바닥을 놀려대기 시작합니다.
"소인이 왕에게 큰 선물을 드리지요. 제나라와 합종만을 깨주신다면, 우리 진나라는 600리의 땅을 초나라에 양도할 것이며 진나라의 공주를 왕의 첩으로 들이겠습니다. 그렇다면 초나라는 땅을 얻고 북쪽으로는 제나라를 견제하고, 서쪽으로 진나라를 이롭게 하니 이보다 좋은 것이 어디있겠습니까?"
초 혜왕은 아주 좋아했는데, 진진만은 이를 불안하다고 여겼습니다.
"제나라와 교류를 끊으면 초나라는 고립되는데, 진나라가 고립된 나라에 600리의 땅을 바치겠습니까? 차라리 사람을 보내 장의가 땅을 내주면, 그때서 제나라와 협정을 끊어도 됩니다. 땅을 주지 않으면 그대로 제나라와 협정을 밀고 나가면 되는 일이구요."
"그대는 과인이 땅을 얻는것을 보기나 하라."
이렇게 초나라는 제나라와의 합종을 허무하게 끊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정작 장의는 진나라에 도착하자 수레를 타다 일부러 넘어지면서 죽는 소리를 했고, 3개월이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혜왕은 불안해서 생각하다가, 이것은 장의가 아직 초나라를 믿지 못해서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제나라와 관계를 확실하게 끊어야겠다."
그리고는 병사를 보내─기록에 따라 편지를 보내─ 제나라 왕을 실컷 욕하고 어그로를 끌었습니다. 당연히 제나라왕은 그 즉시 진나라와 손을 잡고 초나라를 적대합니다.
그런데 장의가 이때쯤 되자 나와서는 초나라의 사신에게 말했습니다.
"협정에 따라 6리의 땅을 주겠소."
600리의 땅을 준다고 해놓고, 6리의 땅을 준다고 갑자기 말을 바꾸었는데 이는 싸우자는 소리나 다름없었습니다. 농락당했다는 생각에 초 회왕은 대군을 동원했지만, 이미 진나라는 철저하게 준비를 하고 있었고 BC 312년 초나라 군 8만명을 대파하고 장군 굴개를 사로잡았습니다. 초 회왕은 격노해서 다시 군사를 모아 공격했지만, 진나라는 그것마저도 격파하고 한중을 점령합니다.
그때 초나라에 청천벽력같은 소리가 전해졌는데, 한나라와 위나라가 초나라를 공격해오자 어쩔수없이 성 두개를 진나라에 넘겨주고 물러갔습니다. 하지만 진나라는 여전히 초나라에 밀당을 시도하며 화친을 권했습니다. 빼앗은 한중의 절반을 넘겨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땅은 필요없소! 장의 그 놈을 넘겨 주시오!"
빼았긴 땅을 준다는데도 필요없다며 원한값기를 시도했으니, 초 혜왕도 격정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진 혜문왕은 난감한 지경에 처했지만 장의는 오히려 태연하게 죽을 자리인 초나라로 가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로서는 믿고 있는것이 있었는데, 이미 초나라에 친진파 대신들을 많이 만들어놓았기 때문입니다.
장의가 초나라에 가기가 무섭게 혜왕은 장의를 사로잡고 죽이려 했습니다. 그때 근상등을 비롯한 친진파는 전부 혜왕의 부인인 정수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진나라 왕은 장의를 몹시 아끼므로 틀림없이 그를 감옥에서 구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진나라에서는 지금 상용의 여섯 고을을 초나라에 뇌물로 주고, 초나라 왕에게 미인을 바치며, 궁중의 노래 잘하는 여인을 궁녀로 보내려고 합니다. 초나라 왕은 땅을 몹시 중시하고, 또 진나라를 존중하므로 진나라 여인을 귀하게 대우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게 되면 부인께서는 버림받기 십상입니다. 그러니 왕께 말씀을 드려서 장의를 풀어 주는 편이 낫습니다.”
그러자 정수는 혜왕을 설득했고, 사랑하는 여자의 말에 마음이 바뀐 혜왕은 장의를 풀어주었습니다. 죽으러 왔던 장의는 오히려 태연하게 혜왕과 협상하여 다시 초나라와 동맹을 맺고 돌아갔습니다. 이 모습을 본 굴원은 황당해서 따졌습니다.
"신은 왕께서 장의를 삶아죽일것이라 생각했는데, 왕께선 또 속으셨습니다. 장의를 죽이지는 못하더라도 그의 간사한 말은 듣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장의는 이미 떠나버렸고, 장의는 초나라에서 풀려난 그대로 혈혈단신으로 한나라로 떠났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당연하다는듯이 한나라의 대신들과 왕을 설득해 한나라를 진나라의 편으로 만들었습니다. 돌아온 장의를 본 진나라의 혜문왕은 이 종횡가의 괴물에게 다섯개의 고을과 무신군이라는 칭호를 내렸습니다.
그리고 장의는 또다시 홀로 제나라와 조나라로 떠났습니다. 제나라에서는 민왕의 앞에서 한나라와 위나라, 조나라가 진나라와 함께 쳐들어오면 막을 수 있냐는 말로 협박하여 동맹을 맺었고, 조나라에서는 제, 위, 한, 진 연합군이 공격해오면 막을 수 있겠느냐고 협박하여 동맹을 맺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연나라로 떠나, 조나라와 진나라가 공격해오면 막을 수 있겠느냐고 협박하며 동맹을 맺었습니다. 연나라는 다섯개의 성시까지 진나라에 바쳤습니다.
이렇게 단 한번에 모든 나라와 동맹을 맺고 돌아온 장의는, 그러나 자신을 전폭적으로 밀어주던 혜문왕이 죽은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일전의 상앙도 왕의 신임을 잃어 죽었고, 지금의 왕과 장의는 별로 사이가 좋지 못했습니다. 장의는 상황을 보더니 왕에게 말했습니다.
"소신을 위나라로 보내 주시지요. 제나라의 왕은 저를 미워합니다. 그러니 제가 있는곳으로 반드시 공격해오겠지요. 진나라는 강대국이라 쳐들어오지 못하지만, 위나라라면 다릅니다. 제나라와 위나라가 싸우는 틈에 주나라를 멸망시킬 수 있습니다. 동쪽에서 난리가 나면 진나라에겐 기회입니다. 제가 그 난리를 만들겠습니다."
듣자하니 그럴 듯 했기에 진나라의 왕은 장의를 위나라에 보냈습니다. 제나라의 민왕은 자존심이 강한 사람, 장의가 위나라에 있다는 말을 듣자 곧바로 공격해 들어왔습니다. 위나라에서는 벌벌 떨었지만 여기서도 장의는 태연하게 말했습니다.
"걱정하실 필요없습니다. 제나라군은 물러갈 겁니다."
그리고선 자신의 부하를 초나라의 사자로 위장시켜 제민왕에게 보냈습니다. 내용인즉 이러했죠.
"장의는 진나라 왕을 위해 동쪽에서 계책을 부리려고 위나라에 온것입니다. 망명이 아닙니다. 지금 왕께서 이러하시는것은 장의의 계략이 말려드는 일입니다."
결국 제민왕은 퇴각했습니다. 진나라왕에게 약속한 것처럼 제나라는 위나라를 공격했고, 위나라에 약속한 것처럼 제나라는 물러갔습니다. 1년뒤, 장의는 모략으로 가득찬 인생을 끝마쳤습니다. 초나라는 그 후로도 끊임없이 진나라에 대항하다가도 속아 넘어가며 진나라와 손을 잡고, 다시 당하고를 반복하며 터무니 없이 약해져 멸망해버렸습니다.
사마천은 그런 장의의 일생을 아주 짦게 평가했습니다.
"장의의 술수는 소진보다도 악랄한데가 많다. 요컨대 이 두 사람은 참으로 위험한 사(士)일 것이다."
잔인했던 오기에게는 "불쌍하다" 라고, 혹독하게 사람들을 몰아부쳤던 상앙에게는 "타고난것이 각박하다." 라고 했던 사마천이지만 이 두사람 만큼은 위험하다고 평가했던 것입니다. 어쩌면 이런 종횡가는 전국시대라는 수백년의 혼란기가 만들어낸 일종의 괴물일수도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