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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1/05 08:13
제목을 봤을 때는 당연히 실증사관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결국은 밸런스를 추구하며 협력관계가 되는 것이 맞겠네요. 사학계 전체적으로도 그렇고, 사학자 각자의 의식 안에서도 그렇고... [m]
12/01/05 08:25
눈시BB님 글 볼때마다 역사라는걸 아는것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다른사람들에게 이해할수있게 글로 쓰시는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역사에 관심이 많고 하지만 다른사람들한테 말하거나 글로 쓸때 제대로 안되는때가 많아서... 이기백씨 관련 부분에서 흥미로운 부분이 많네요 제가 역사에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것도 한사군의 위치가 실제로 우리가 국사책에서 배운 것과 달리 대륙에 있었다 라는 것을 박영규씨가 쓴 고구려본기였던가요.. 그책에서 보면서 였거든요 일단 역사가 완전한 사실을 말하는 것은 타임머신이 있지 않는한 불가능한 것이겠죠 하지만 학자의 사관때문에 명백한 사료로 입증된 사실을 왜곡하는 건 역사가 아니라고 생각되네요 한때 재야사학자들의 새로운 의견들이 아무래도 충격적이고 흥미롭다보니 관심을 많이 가진 적이 있었는데 그러한 것들 중에 확실한 근거가 있지도 않은데 주장하는 걸 보면서 과연 왜 그러는걸까... 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지요 언제나 이렇게 양질의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p.s 역사에 대한 관심때문에 교양강의로 역사강의를 자주 듣게 되는데 왜이리 학점은 안나올까요...
12/01/05 09:01
ㅠ_ㅠ);; 쓰고서도 어떻게 해야 되나 머리 아플 떄가 많은데요 뭐. 그래도 이해가 되신다니 정말 다행이네요. 감사합니다
뭐 아무래도 역사에 흥미를 가지는 시작은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그런 점에서도 민족주의를 아예 무시할 순 없죠. 하지만, 말씀하신대로 왜곡은 역사가 아니죠. 어려운 문제긴 합니다만, 재야사학자 분들께서 명백히 잘못된 사례를 만들어 주니 그래도 편하죠. 뭐 저도 학점은 ( ..);;; 선발로 뛸 수 있을 정도입니다.
12/01/05 08:42
민족사관이 엄밀하게 말하자면 구시대의 유물임에는 맞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역사를 통해서 민족혼을 불태울 시기는 아닙니다.
다만 우리나라의 역사는 식민지배와 친일파, 그에 이어지는 기득권이 얽히면서 더 이상 실증을 쫓기 힘들어졌습니다. 식민시대에 전체적 인구와 생산량이 늘어난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거기다 대고 '식민지 시절은 우리민족이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라고 말하는 무리들이 너무 많습니다. 일방적이고 국수적인 민족사관은 더 이상 필요치도 않고, 지양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실증의 탈을 쓰고 선빵을 날린 쪽이 있어서 환빠들 같은 정신나간 작자들까지 나온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만약 우리가 식민시대를 겪지 않았거나,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국가로 전락하지 않았다면 다른 양상이었을지도 모를 일이죠.
12/01/05 09:03
문제는 "실증의 탈을 쓴" "역사 왜곡"이지 그렇다고 실증을 무시할 거리는 못 되죠. 아니, 그렇기에 더욱 실증으로 가야 되구요.
왜곡이라 하면서 "실증"으로 그게 왜곡인 걸 밝혀내지 못 한다면 그건 역사 왜곡이 아니라, 감정으로 받아들이지 못 하는 진실이 될 뿐이죠. 식민지 문제 역시 마찬가지구요. 사실로 반박 못 하면 그냥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곡을 이긴다고 왜곡하면 같은 놈이 될 뿐이고, 사실로 이기지 못 하니까 안 되겠다 하면 포기하면 편해가 될 뿐입니다. 어느 쪽이든 이렇게 되면, 그게 "왜곡"이 아닌 "사실"이라는 걸 인정하는 거라는 점에서 똑같구요. 애초에 그런 식의 식민지 수혜론은 공업화 등에서는 사실을 가져올 지 몰라도 "우리 민족"이라는 점에서는 제대로 된 사실 검증 없이 그냥 뭉뜽그리고 있거든요. 어쩄든, 이 글의 결론은 민족사관과 실증사관이 아예 별개의 게 아니라는 겁니다. 민족사관도 검증에 있어 실증을 중시해야 되고, 아무런 목적 없는 (재미로 하는 것도 결국 목적이죠. 재미사관?) 실증 사관은 없다는 거죠.
12/01/05 09:27
문득 든 생각인데, 실증주의보다 민족주의를 중시하는 게 정당하다고 주장하려면 결국 일본의 다케시마론이라든지 중국의 동북공정론도 그 정당성을 인정해줘야겠죠. 그렇게 되면 혼돈의 카오스가 될 것 같습니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네요.ㅠㅠ
12/01/05 09:58
언제나 좋은글 감사합니다.
개인이 가지는 여러가지 인식중 가장 중요한 것이 "자존감"인데 그것은 민족이나 국가의 범위로 확대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민족사관은 그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를 존중하지 않으면 존재를 유지하지 못합니다. 여러가지 실증사료를 통해 입증되는 사실을 기반으로 하여 합리적으로 판단하는것은 당연히 기본으로 가져야할 소양입니다만 민족주의적인 태도 또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먼 미래가 되어 인종이 섞이고 국가의 존재가 희미해지면 민족주의적 태도도 필요없어지겠지만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몰라도 사실 역사에서는 사료를 통해 분명하게 입증되는 팩트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 때문에 인정된 사료를 바탕으로 합리적 추론을 해나가는 경로 또한 여러 갈래이며 이중에 어떤것을 택해야 할까의 문제에는 가치관과 당위의 문제가 개입될수밖에 없습니다. 잠시 묵상하면서 생각을 정리해보았습니다. 역사를 연구함에 있어 실증적 합리성을 추구해야하지만, 그것의 무수히 많은 여백들에는 여러가지 가치관이 적용될 여지가 많다. 실증적인 사료와 객관적인 시야를 중시하는 태도는 당연한 기본으로 하되, 민족의 자존감을 높여야한다는 당위에 전도되어 "무늬만 합리적인 추론"을 하는것만 경계한다면 역사을 대할때 민족주의적 태도를 가지는 것은 나쁘지 않은것 같다.
12/01/05 10:40
저는 최소한 뚜껑에 철갑은 두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였군요.
일단 철갑을 두를 필요가 없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일단 오바네요. 그런데 이렇게 된 이유가 우리의 과장보다 오히려 일본의 과장인게 아이러니하네요. 현재 국사 교과서에는 어떻게 나와있는지 궁금합니다.
12/01/05 10:51
무슨사관이든간에 실증주의 위에서 존재하는 것이죠. 바꿔말하면 실증주의를 토대로 한 범위 내에서는 어떤 사관이든 받아들여야한다고 볼 수 있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족사관은 최대한 거리를 둬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민족사관은 실증주의를 흔들 수 있거든요. 역사란 것은 확실한 것은 있을 수 없죠. 당장 1~20년 전의 '역사'도 공식적으로 알려진 것과 여러 야사들이 존재합니다. 예를들면, 위키리크스. 보다 더 과거의 일에 대해선 말 할 것도 없겠죠. 결국 실증이라는 것은 사실을 알아낸다기보다, 가장 사실일 것 같은 것을 추론하는 과정인데요.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료입니다. 사료의 많은 양, 사료의 좋은 신뢰성이 좀 더 많은 사람들을 납득시키게 합니다. 하지만 민족사관의 경우 그 가능성을 떨어뜨립니다. 최대한 가치중립적으로 생각한다고 하더라도 개인차는 발생하게 되고, 그러한 개인차를 고려해 가장 다수가 납득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어야하지만, 민족사관은 사료의 부족이나 사료가 의심되는 상황이 되더라도 다수로 하여금 그것을 선택하게 하는 힘이 있거든요. 결국 좀 더 많은 사료, 좀 더 신뢰성 높은 사료가 중요하다기 보다 국가간의 관계와 정치역학이 역사해석에 작용하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민족사관은 실증주의에 가장 반하는 사관이라 생각됩니다. 방향성면에서 다른 것 같아요.
12/01/05 11:00
눈시BB님 꼭 이런 글들 잘 정리해서.. 출판 해주세요!.. 저 미리 한권 예약합니다! 이덕일이 너무 싫어요.. 집에 이덕일 책만 5권인가 있는데, 어쩌면 하나같이 장삿속이 비치는지.. 쩝. (아부지가 팬이라서 만날 사모으시네요..)
12/01/05 11:30
랑케의 실증주의는 일반적인 개설서나 교과서에서는 전후맥락이 짤린 상태에서 소개되어 이해하기 힘듭니다. 랑케만한 천재가 객관적으로 글을 쓰는게 가능할거라 생각하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이양반 20대에 베를린 대학 교수해먹었습니다.)
실제로 그의 저서를 보면 그 역시 당시의 지식인들과 다름없이 신의 섭리, 운명 등을 믿고 있었습니다. 의외지요? 실증주의가 신의 섭리 등등을 운운한다... 물론 당시의 '근대성'에 비추어 보면 크게 이상한것은 아니지만 객관적인 사실이 아닌 '신'이라는 존재가 근거에 포함된 것 자체가 실증과는 거리가 멀죠. 다만 그가 객관성을 강조한것은, 당시에 수많은 사람들이 사료고증도 제대로 안된것을 기초로, 심지어 위작까지 해가면서 역사를 서술하는 행태를 비판하고 실증주의를 내세운 것이죠. 엄밀히 말하면 랑케 역시 객관성보다 주관성에 치우친 사람으로 분류됩니다. 물론 이사람에게서 부터 오늘날 말하는 문헌고증이 시작되었고, 근대적 의미의 역사가 시작된것은 맞습니다만. 민족주의와 실증주의. 애매합니다. 왜냐하면 본문에 나왔듯이 사람은 자신의 환경에 영향을 강하게 받습니다. 최대한 객관적으로 가더라도 '자기편'의 수렁에서 헤어나올 수가 없죠. 그리고 사료 역시 아무리 잘 기록해봐야 한계가 있구요. 그렇다고 민족주의사학자들이 민족의 이익을 위한 서술을 하느냐, 그것도 아닙니다. 민족주의는 실증주의자들 사이에서 등장한 사람들이지 그 역이 아니니까요. 그들의 서술 방식 역시 실증주의에 기초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티읃' 를 봤을때 알파벳 혹은 한글로 보는 사람이 있는것과 같다고 할까요? 그렇기 때문에 기존의 근대 역사학의 틀에서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민중사학이 등장하였고, 포스트 모더니즘이 등장한 것이겠죠. 그나저나, 복수전공을 하셨다고 알고있는데 정말 학부생 싸다구-_-를 날릴 정도로 지식도 풍부하시고 글도 잘쓰시는군요; 요즘은 눈시비비님 글을 읽으면서 반성하고 있습니다 (....)
12/01/05 12:17
눈시BB님 글에 댓글 달기 너무 힘드네요. 제 댓글중에 틀린 내용 있으면 지적해주세요.
실증사관도 어차피 "반대"의견으로 튀어나온것뿐이지요. 사관은 보는것이라 어떤 사람의 철학과 관련이 있어 자기의 생각을 표현한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봅니다. 인문학의 기초가 철학인것도 그래서라고 생각합니다. 헤겔의 변증법적 논리대로 랑케의 사관도 정반합의 사관의 역사로도 보여집니다. 랑케는 당시의 민중 주권에 대해 군주제를 옹호했으며, 그의 실증주의는 당시 독일 사학의 화려함에 대한 비판으로 나온것이라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도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의 실증만을 볼려고 하지는 않았으니까요. 유물을 가지고는 어차피 "해석"을 할 수 밖에 없고, 사료는 쓰는 사람의 주관이 들어갈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조선왕조실록이라는 사기적인 책이 당시부터의 전세계적 흐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게 가능했다면 랑케가 실증주의 애기는 꺼내지도 않았을겁니다. 인문학은 자기의 발밑, 주변상황을 반영할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사람이 사람에 대한 학문이고, 사람은 환경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다시 실증사학이 강조된다면 민족주의 사학으로 식민주의 사관이 극복이 되었고, 신민족주의 사학이 대세가 된 그 반동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인문학이 현실과 떨어진 학문의 영역을 벗어나 현실에서 사용되는 기술로서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역사관이 무엇이 올바르냐 보다는 무엇이 필요한가라는 측면의 고민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나라에 필요한 역사관이 더 적절한 역사관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합니다. 단순히 사실로서의 역사는 문자의 나열이라고 생각합니다.
12/01/05 12:57
실증, 객관성이란 것에 대한 작성자님의 의견을 듣고 싶네요.
예를 들어 저자가 명확하고 당대사료임이 확인된다면 그것은 객관적인 자료이고 실증적인 가치가 있는 것인가요? 혹은 랑케 식으로 공적문서들이 사적문서들에 비해 더 신뢰할 수 있는 사료이고, 이런 사료를 더 기반으로 하는 것이 실증적인 사고인가요? 민족주의에 대해서도 듣고 싶네요. 민족주의는 다른 여타의 이데올로기와 결합해야만 작동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에 가장 극단적인 주의이죠. (극단적인 파시즘에서 피지배민족해방운동에 이르기까지) 지금 현재 극단적으로 남한땅에는 반공이데올로기와 결합한 민족주의가 있고, 통일을 중시하는 민족주의가 있습니다. (보통 전자가 기득권의 논리이고, 후자가 피지배계급세력의 논리이기 때문에, 전자는 보수계층과 결합하고 후자가 진보세력과 결합하죠.) 그렇게 분류할 수 있을 때, 작성자님께선 전자, 혹은 후자 중 어느 쪽이 옳은지, 혹은 둘다 맞는지, 둘다 그른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글이 약간 단상식으로 나열되어 있어서 정리가 안되는데, 글쓴님께서는 역사(실증적인 면에 기초)와 정치(목적이 수단을 잠식한)가 구분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그게 진정 가능하시다고 생각하십니까? 다르게 돌려말하면 완전히 객관적이고 실증적인 역사연구가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예를 들어 글쓴 님께서 어느 논문을 발표하실때, 정말 무비판적으로 모든 사료를 객관적으로 인용하실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모든 사료를 살펴볼 수 있는 물리적 한계는 제외하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역사학에서 객관적인 역사탐구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이렇게 막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글쓴님이 쓰신 글에 대한 반감때문이 아니라, 저역시도 고민되는 부분이기도 하고, 무언가 글이 발산만 되어 있어서 제가 정리가 안되서 궁금해서 묻는 것입니다. 나중에 더 깊이 이야기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12/01/05 14:56
어디까지를 넘어야 하지 말아야 할 선인가... 라고 한다면, 그 해석이 사실관계를 왜곡하게 되는 그 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를 테면... 아니 뭐 굳이 예를 들지 않아도 그런 사례야 많으니 넘어가겠습니다. 또한 그런 태도를 가진 사람은... 어디까지나 사실관계에 대한 스스로의 해석이어야 할진대, 어떤 목적을 위해 실증을 취사선택하게 될 수도 있으니 스스로 주의할 일이지요. 그런데 오히려 최대한 겸손하게 이야기하는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은 그저 그런 대접을 받고, 신나게 자기 주장을 피력하는 이들이 인기가 많아지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도 듭니다. 환빠도 그런 부류 중 하나겠고... 암튼, 그 수준을 넘어서지 않는다면 여러가지 해석의 틀로 내버려두어도 상관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양한 생태계가 공존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거든요. 물론 과잉된 민족주의다, 대륙에 집착하지 마라, 친일적 사관이다... 등등의 충돌이 있기야 하겠습니다만... 다만, 교과서 등을 편집할 때는 모두의 합의 하에 공통된 의견을 도출할 수 있어야 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최근 뉴라이트의 입김이 강해진 몇몇 교과서 개정은 그런 과정을 배제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그리 탐탁치가 않습니다.
가장 훌륭한 방식은, 모든 입장을 한번에 소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모든 해석이 일정 범위내에서 가능하다면, 그 모든 해석에 대해 편견을 가지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균형을 맞춘답시고 스스로 한쪽으로 편향된 주장을 하는 것이라고 우기는 사람도 있던데, 그런 입장을 가장 싫어하는 편입니다(스켑티컬레프트 주인장이 그런 얘기를 하는 걸 듣고, 많이 실망했었죠). 결국 그럴 거면 세상엔 제대로 된 주장이 하나도 없겠죠. 모든 위치에서 스스로 가장 공정하게 정보를 제공할 수 있어야 가장 엄밀한 학자의 자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자신만의 주장을 하고 싶은 자의식이야 있겠습니다만, 그 자의식의 수준과 사실관계의 사이에서 적당한 균형잡기를 할 수도 있어야겠죠. ... 라고 역사 내공같은 건 땅바닥에 붙은 껌 같은 어떤 인간이 이야기하고 지나갑니다...
12/01/05 16:25
에릭 홉스봄은, <<역사론>>에서 지금까지 역사학을 발전시켜온 건 당파성이라고 까지 했지요. 역사학이 발전한 건 전적으로 좌파와 우파가 치고 박고 싸웠기 때문이라고.... 저도 이에 동의합니다. 여러 입장들을 포괄적으로 아울러야 한다-는 건 위 아 더 월드 식의 소박한 생각이고, 단일한 객관성이란 없고, 객관이란 이전투구 속에서 도출되는 거라고 봅니다. 결국 자기 당파성에 충실할수록, 역사학엔 도움이 된다-고 할 수 있겠죠.
12/01/05 16:35
말씀대로 토론의 상황에서는 서로의 입장차와 주장을 내세우는 것이 엄밀한 검증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것이겠습니다마는, 그러나 이를 공공에 발표하거나 드러낼 때에는 보다 겸손하고 신중한 자세가 필요한 것이 아닐지요? 물론 어디까지가 토론의 영역이고, 어디까지가 결론의 영역인지 구별하기에는 애매합니다만...
12/01/05 19:50
확실히 과거의 역사가들이나 전통적 저널리스트들은 미세한 사실의 끝없는 축적을 통해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믿었으나 1960년대 들어서 그 믿음은 깨졌죠. 외부의 객관적 사실은 서술되는 순간 서술자의 선입견에 의해 변형, 가공되며 필연적으로 특정 부분은 부각되고, 특정 부분은 은폐되기 마련입니다. 포스트 모더니즘 작가들이 "더이상 문학과 역사서의 구획화는 무의미하다. 다만 담화가 있을 뿐이다."라고 말한 것이나 문학적 저널리스트들이 "사실만을 알고자 하는 독자가 가장 필요없는 독자다"라고 한 것도 다 비슷한 이야기겠고요. 더미짱님의 '역사에는 하나의 답이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도 분명 일리있는 말입니다.
다만, 많은 분들이 지적하시는 대로 문학과 비문학(역사, 기사 등등)의 결정적인 차이는 허구성이 있는가 없는가, 그리고 의도적으로 독자를 속이려 드는가 아닌가, 독자와의 규칙에 충실한가 아닌가에 있다고 봅니다. 서술된 역사가 객관적 역사 그 자체는 아닐 지언정, 독자들은 거기에 소설과 같은 허구나 왜곡이 없기를 기대하고, 서술자는 그 기대에 부합해야 한다는 거죠. 아무리 근거를 서술자의 주관에 의해 선별할 수 있다고 해도, 그 근거는 민족사관이든 ,식민사관이든, 함석헌식 종교사관이든 촘촘한 그물망을 이루어서 누가봐도 추론까지 이어지는 개연성과 정당성이 있어야 하구요.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의 주장처럼 역사와 소설의 구획화가 무의미해서, 역사서에도 둘이 마구 혼용되어 쓰인다면 그것은 끔찍한 일이 될 것입니다. 독자들은 분명히 두 장르를 구분해서 읽고 있고, 두 장르를 읽을 때 상이한 기대와 기준을 적용하니까요. (소설은 허구일 것이다. 역사서는 좀 더 객관적 사실에 가까울 것이다 라든지..) 따라서 현대의 기사나 역사서는 단순히 사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인정하되, 공정하고 개방적인 마음으로 사실과 재현 사이의 괴리를 줄이려고 노력하면서 진리의 일부를 밝히는데 주력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민족사관이든, 식민사관이든, 종교사관이든 실증주의와 밸런스를 이뤄야겠고. 그 사관을 받아들이느냐 마냐는 독자의 문제로 남겨두어야 하겠죠. 독자도 잘 구분해서 읽어야겠고요. 길게 쓰긴 했는데 -_-; 결론은 객관적 사실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목격자에게 있어 객관은 없다. 다만 그 점은 인정하되, 역사가들은 공정하고 개방적인 마음으로 진리에 가장 가까운 답을 추론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한다. 문학과 역사의 경계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명확하게 구획화되는 것은 아니더라도 역사가는 자신의 사관 때문에 소설가들처럼 실증을 뛰어넘는 허구를 가미해서는 안된다. 쓰고 보니 눈시bb님의 말과 크게 다르지 않네요.
12/01/05 19:53
민족사관은 국민들을 통합하고, 그 통합된 국민들 위에 국가나 민족이 권위를 가지기 위한 수단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정치가들은 여전히 아이들에게 분명치 않은 것이나, 역사적 사실과 다른 내용도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주입시키죠. 결국 비논리적인 세뇌된 상태의 국민들을 양산하는 겁니다. 따라서 민족사관은 통치자 입장에서는 학문적 영역이라기 보단 정치적 영역이죠. 그리고 국민들에게 민족사관은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종교의 영역에 가깝습니다. 개인적으로 역사를 학문적으로 이롭게 배운다는 것은 실증사관을 연구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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