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 C. 클라크의 소설 유년기의 끝을 보면 외계 문명인 오버로드가 지구인에게 부작용 0인 피임약을 만드는 기술을 전파해 준 덕분에 인류 복지가 혁신적으로 향상되었다는 묘사가 나옵니다. 피임이 그렇게 대단할까 싶기도 하지만, 자료를 좀 찾아보면 소설이 발표된 지 60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보더라도 탁월한 선견지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중절 수술의 경우 보통 미혼 상태에서 임신을 했기 때문에 낳을 수 없어 한다는 선입견이 생기기 쉬우나 보건복지부 통계
[1]를 참고하면 중절수술은 대부분(86.3%)이 기혼 여성을 상대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기혼 여성의 경우 정기적으로 성 관계를 갖는 대상이 있으며, 피임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덜 신경을 써도 된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결과겠지요.
우리나라의 인공임신중절 추정건수는 2010년 기준 16만8738건으로 가임기인 15~44세 여성 천 명 중 15.8명 꼴이라고 합니다. 17만건이라는 수에 대해서 좀 의외라고 놀라실 분이 계실 것 같은데 좀 더 충격적인 자료를 보여드리자면
불과 5년전까지만 해도 연간 34만건이 넘었었습니다.
우리보다 성적으로 훨씬 개방적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탈리아나 일본의 세 배, 미국의 1.6 배가 넘는 수치였었습니다. 좀 험하게 얘기하자면 나라 전체가 어떻게 되었던게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중절 수술을 했다는 것이죠.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작년 한 해 동안으로 한정짓지 말고, 일생동안 중절수술 경험을 한 사람의 비율을 따져보면 29.6%이 나옵니다. 가임기 여성 열 명 중 세 명은 중절 수술 경험이 있다는 소리죠. 2007년도 청소년 건강행태온라인조사 결과
[2]를 보면 성관계를 경험한 청소년은 5.2%이며, 성관계를 경험한 여학생 10명 중 1명이 임신한 적이 있었다고 되어있습니다. 즉, 가임기 중절 경험 여성 비율 중 10대는 낮은 수준
[3]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20대에서 40대 초반 여성 중 35% 에서 40% 정도는 이에 해당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런 쪽의 통계를 보신 적이 없는 분들께는 충격과 공포일 수 있겠네요.
다행이도 중절 건수는 꾸준히 줄고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보건복지부 측에서는
1. 가임기 여성 수, 임신능력 감소로 실질적 임신 가능 인구가 감소했기 때문
2. 계획 임신, 시술 위해성 인식 확산, 응급 피임약 보급 증가, 정부 예방정책 등 복합 작용
이라고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응급피임약 판매량이 06년에는 41만2천백
[4] 에서 10년에는 60만3천백으로 증가했다고 하지요. 그럴듯해 보입니다. 하지만 이보다는 좀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었으니
셋째아 이상을 낳을 때 딸이라고 중절수술 하는 인구가 대폭 줄어들었다는 겁니다. 자연상태의 성비가 105 정도 되니 103~107 정도까지는 정상 성비입니다. 즉, 첫째나 둘째를 낳을때는 딸이라고 중절하는 일이 없었으나, 셋째가 딸이면 정말 많이도 중절수술을 했었다는 거죠.
그 반증으로 미혼 여성의 중절 수술률이 전혀 줄어들지 않았는데, 기혼 여성쪽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습니다. 한참 인터넷에 글이 올라오던 90년대 말부터 2000년 즈음에 연간 중절수술 건수가 80만건이라는 괴담이 떠돌았는데 (참고로 2000년도 신생아 수는 64만 5천명이었습니다) 2000년 셋째 신생아 성비 144의 위엄 앞에서 괴담이라고만 우길 수 없어집니다.
<글을 맺으며 잔소리>
남아 선호 사상이 줄어들며 수술 건수도 같이 감소하고있으나 미혼 여성 수술 비율은 되려 늘어나고 있습니다. 연인과 동침하는 사이가 됐으면 부끄러워 하지 말고 제발 산부인과 가서 피임상담 받읍시다. 연간 응급피임약이 60만 백이 넘게 팔리는건 정말 문제가 있는겁니다.
또, 산부인과 피임상담과 별개로 고등학교에서 콘돔 씌우는걸 제대로 가르쳐야 됩니다. 콘돔은 부작용이 적으며, 값이 싸고, 제대로 착용만 할 경우 불량품이 아닌 이상 거의 완벽하게 비상 사태를 방지해 주는 물건입니다. 약국 뿐만 아니라 편의점 어디에서나 판다는 점도 큰 장점이죠. 제가 고교 양호 교사라면 사용방법 강의뿐만이 아니라 학생들에게 약국서 콘돔 사오기 과제를 내줄 겁니다.
마지막으로 전에도 했었던 얘기지만 정치인들은 빈부 격차 문제 못지않게 20대의 성비 불균형 복지를 염두에 둬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90년부터 05년 까지 음지에서 벌였던 여아에 대한 선택적 중절 수술에 대하여 정말 값비싼 대가를 치루게 될 겁니다.
[1] http://download.mw.go.kr/front/modules/download.jsp?BOARD_ID=140&CONT_SEQ=259118&FILE_SEQ=76218
[2] http://www.korea.kr/newsWeb/pages/brief/common/downloadFileForDepart.do?idKey=02ca745a9891cae15260f2cc5ea869f1
[3] 15~19세 여성 인원을 150만으로 잡고 5.2%의 10%를 계산할 경우 7,800명 정도가 나옵니다. 이것도 1년간 횟수가 아니라 누적 건수죠.
[4] 응급피임약의 리스크를 생각해보면 미*거 아니냐는 소리가 나올만한 수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