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들의 고교시절 이야기를 보며 울며 웃다보니 문득 나의 고교시절은 어땠나 생각에 잠기게 되네요. 그래봐야 15년쯤 전 얘기라 그리 멀지도 않은 얘기지만요.
영화의 주인공들은 7공주파니 뭐니 하며 쌈박질도 하고 술이나 담배같은 일탈도 하던 다이나믹한 아이들이었는데, 저는 영화에서는 엑스트라로 나오지도 않을 법한 소심한 모범생이었지요. 스스로를 범생이라고 하는 게 좀 웃기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 시절을 돌이켜 보면 달리 표현할 방법도 없네요. 그러다보니 딱히 많은 분들의 공감을 살 것 같진 않은데, 영화의 여운이 남은 김에 맥주 한 잔 하며 추억해 봅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라면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바라보던 서쪽 하늘입니다. 학교가 산 중턱에 있고 교실 창문이 서쪽을 바라보고 있어서 매일 저녁 해지는 광경을 볼 수 있었죠. 조용한 교실 안을 파고들던 가을 어느 저녁의 노란 햇살도, 이상한 느낌에 책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드니 교실 전체가 보라색 빛으로 가득하던 어느 여름 저녁의 하늘도, 잠을 깬다며 눈을 비비고 교실 뒤로 나갔다가 어느 새 창 밖에 보이는 휘황찬란던 도시 위로 까만 하늘에 작게 빛나던 오리온 자리도 갑자기 눈에 선하게 다가옵니다. 매일 해가 지던 그 서쪽 하늘을 좋아하는 것은 저뿐은 아니었나 봅니다. 영화 감독 지망생인 친구는 단편 영화의 한 장면에 창문을 모두 떼어내고 교실 안에서 바라본 그 하늘을 담아내기도 했습니다.
그런 하늘을 함께 바라보며 대학엔 왜 가야하는 건지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던 친구도 있었고, 자유를 찾아 오리온 자리 밑 불빛 중 하나였을 어딘가로 빠져나간 친구도 있었지요. 세상이 온통 보라빛이던 그 때에도 저에게 기를 전달해 주겠다며 한참 자기 손을 제 손의 10센티 위 정도에 놓고 정신을 집중하던 친구도 있었습니다.
그 친구들에게 저는 어떻게 기억되고 있을까요. 그리고 그 시절의 저는 삼십줄에 들어선 저를 어떤 눈길로 바라보고 있을까요. 써니의 주인공들처럼 미래의 자신들에게 영상 편지까지 남기진 않더라도 최소한 편지라도 한 통 써둘 걸 그랬나봐요.
추억이 깊어가는 밤이네요. 불현듯 생각나는 친구에게 오랜만에 카톡이나 날려야겠어요.
모두들 좋은 밤 되시길.
- From m.oolz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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