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링크.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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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다음 편에서 일상단편 하루 1편이 마무리 될 것 같습니다.
이번 편이 끝나고는 어린 아이가 주인공인 단편을 쓸 것 같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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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기다리던 익숙한 소리가 이어폰을 비집고 들어왔다.
- 이번 역은 하루, 하루 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
나는 귀에 대롱대롱 매달린 이어폰을 빼고, 크게 날숨을 쉬었다. 곧 이어 지하철이 멈추고, 사람들이 우르르 빠져나갔다. 역시 예상대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빠지는군. 문 너머로 쑥쑥 빠져나가는 사람들을 보니, 뭔가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내릴 사람이 다 내리고 난 뒤, 이제는 탈 사람들이 타기 시작했다. 다행히 내린 사람들보다는 훨씬 적은 수다. 나도 모르게 사람을 관찰하는 습관이 시작된다.
보따리를 들고 계신 할머니. 저 안에는 자식에게 전해 줄 밑반찬이라도 고이 싸여있을까? 아니면, 남몰래 모아두신 쌈짓돈을 넣어 두셨을까.
엄마 손을 놓칠세라, 조막만한 손으로 꼭 잡고 있는 아이. 어렸을 적에 나도 저랬던 적이 있었던 것 같다.
고달픈 퇴근길을 가고 있는 인산 좋은 아저씨. 아저씨가 들고 있는 커다란 007가방에는 회사 서류와 책임감과 애달픔이 모두 들어있을지 모른다.
휴가를 막 나온 것 같은 이등병. 왠지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나온다. 휴, 앞으로의 고생길이 안 봐도 보인다. 그래, 첫 휴가이니만큼 재밌게 놀다가라.
그리고, 착 달라붙은 청바지에 가을 재킷을 꼼꼼히 여민 예쁘장한 여자. 내 시선이 거기까지 미치자 나도 모르게 몸을 흠칫 떨었다. 그 여자의 모습이 마치 사진 속의 진아와 매우 닮았기 때문이다.
“어?”
다른 사람들에 비해 너무 오랫동안 그 여자를 뚫어지게 바라본 탓일까, 눈이 마주쳐 버렸다.
그 짧은 찰나의 순간만큼은 어떤 생각도 들지 않았다. 마치 뱀 앞의 개구리처럼, 딱 얼어버렸다.
할머니와, 엄마와 아이, 아저씨, 이등병은 나의 이런 당황스러움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하게 지하철로 들어왔다. 할머니가 이고 있던 보따리가 내 시야를 가린다. 잠시 멍하게 벙찐 사이에 지하철 문이 닫힌다.
문이 닫히고 나서야 제정신이 돌아왔다.
이런, 여자는 지하철을 타지 않고, 흔들리는 눈빛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이제야 깨달았다. 저 여자는 진아다! 저 여자가 진아다!
나도 모르게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어떻게든 지금 지하철에서 내려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정말 무심하게도 지하철은 천천히, 그리고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
나는 맥이 탁 풀려버렸다. 힘이 쭉 빠져버려서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고 싶어졌다. 정말 그리워했던 모습이었는데. 고작 몇 초 밖에 볼 수 없다니. 이건 너무 아쉽다.
다시 뭔가 그녀와 잘 되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이렇게 그냥 스쳐지나가듯이 아무런 인연도 아닌 것처럼 멀어지는 건, 너무 아쉽다.
거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어느새 나는 다음 역의 내릴 문 앞에 서있었다. 평소에는 빨리만 도착하던 다음 역이 엄청나게 멀게만 느껴졌다. 약간의 짜증마저 솟구친다.
도대체 왜 이리 먼 거야. 젠장.
- 이번 역은...
드디어 기다리던 안내 방송이 나왔다. 나는 눈을 꾹 감았다. 제발 그 자리에 그녀가 계속 서있길 바라면서.
치익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나는 재빨리 사람들 틈을 헤집으며, 달려 나갔다. 덜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반대편에서 하루 역 쪽으로 가는 지하철이 들어오고 있었다.
좋아.
지금 저 지하철은 나와 진아가 꼭 만나라고 누군가 보내준 지하철 같았다.
나는 껑충껑충 계단을 두세 칸씩 올랐다. 조금이라도 여유를 부리다간 지금 온 지하철을 놓치고 만다.
내려가는 계단은 올라갈 때보다 더욱 황급하다. 나도 어떻게 내려가고 있는지 모를 정도로 투닥투닥 뛰어내렸다. 밑에서 많은 사람들이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지하철이 벌써 도착해서 사람들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곧 문이 닫힌다라는 생각이 나를 더욱 급하게 만들었다.
거의 모든 계단을 다 내려왔을 때, 치익하고 문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속으로 ‘안 돼!’라는 절규를 지르며, 바로 코앞에서 닫혀가는 지하철 문을 바라보았다.
“헉, 헉.”
이렇게 숨이 가쁠 정도로 뛰었는데 타지 못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억울했다. 제발 다시 한 번만 진아를 만날 수 있게 해줘!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그 때 정말로 기적이 일어났다. 지하철문이 다시 열린 것이다. 나는 재빨리 지하철로 몸을 들이 밀었다.
“후.”
나는 밀려오는 안도감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혹시 진아가 다른 지하철을 타버리고 가버렸거나, 아예 지하철역을 벗어났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그렇다고 내가 지금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제발 거기에 그대로 진아가 있기를 바랄 뿐.
- 이번 역은 하루, 하루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지하철이 하루 역에 다다르자 나는 마치 콜로세움의 투사처럼 잔뜩 기합을 넣고, 지하철을 빠져나왔다. 내가 내리고 나자, 콜로세움 지하철은 다시 그 굳건한 문을 잠그고, 묵묵히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 와중에도 반대편을 꼼꼼히 살폈다.
“아..”
없다. 진아가 서 있던 자리에 진아는 더 이상 없었다.
“역시 있을 리가 없지.”
스스로 그런 말을 뱉고 나자 깊은 허탈감이 밀려왔다. 나는 뭘 기대했던 걸까. 최소한 십 분은 되는 그 시간 사이에 사람이라면 어디든지 가지 않을 리 없는 걸.
진한 아쉬움이 남기도 하고, 어차피 집에 가려면 반대편에서 다시 지하철을 타야하기에 터덜터덜 발걸음을 옮겼다. 계단을 오르는 발걸음은 모래주머니를 채운 것 같이 무거웠다.
고개를 푹 숙이고,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은 계단을 오른다. 계단 하나하나에 아쉬움도 버리고, 허탈감도 버린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계단을 오르니, 조금씩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현욱아..”
하하, 그래도 아직은 진짜 아쉽긴 한 것 같다. 익숙한 목소리의 환청이 내 이름을 부르는 것 같다.
“현욱아.”
응?
환청이 아닌가. 환청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생생한 소린데?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봤다.
“진아?”
그렇게 보고 싶었던 모습이 거기 있었다. 그 상황이 너무나 비현실적이어서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게 어쩌면 사막의 신기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얼떨떨하게 계단을 껑충 뛰어 그녀에게 다가갔다.
뭐라고 첫 마디를 꺼내야할까.
“왜 안가고 여기 서있어?”
아, 나란 놈은 정말 최악이다. 기껏 몇 년 만에 만나서 튀어나온 말이 고작 저 정도다. 마치 그냥 가지 왜 있냐는 말처럼 들릴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었다.
“아, 그러니까 나는 그냥..”
“너라면 다시 올 줄 알아서 기다리고 있었어.”
다행히 진아는 내 걱정과는 달리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아. 응.”
막상 진아를 만나고 나니 뭘 어떻게 뭘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내가 우물쭈물 서있자 진아가 나를 잡아끌었다.
“뭘 멀뚱히 서있어. 집에 가야지.”
나는 그렇게 나를 잡아끄는 진아의 뒷모습에 웃음 지었다. 정말 오랜만인데도 진아는 바뀐 게 하나도 없는 것 같다. 활기차고, 명랑하고, 밝
은 모습이 예전 그대로다. 얼어붙었던 어색함과 긴장감이 조금씩 녹아간다.
“너 근데 이렇게 나 기다릴 거면, 방금 전에 지하철은 왜 안 탄 거야?”
“응?”
내가 한 말을 못들은 걸까, 아니면 들었으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 걸까. 뭐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냐.”
“뭐야, 싱겁게.”
가늘게 눈초리를 보내는 진아의 모습이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쿡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조금이라도 오래 이 모습을 보고 싶다.
하지만, 같이 기다리는 지하철은 빠르게 우리를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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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