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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1/11/08 23:57:26
Name
눈시BBver.2
Subject
[일반] 왕자의 난 - (3) 떠오르는 왕자
"그러나 ‘누구나 처음은 있지만 종말은 있기 드물다.’고 하여, 옛날 사람이 경계한 바 있습니다. 무릇 우리들 일을 같이한 사람들은 각기 마땅히 임금을 성심으로 섬기고, 친구를 신의로 사귀고, 셔셔셔 하지 말 것이고 싸우지 말 것이고 어쩌고 저쩌고"
"우리의 자손에게 이르기까지 대대로 이 맹약을 지킬 것이니, 혹시 변함이 있으면 신(神)이 반드시 죄를 줄 것입니다."
태종 1년 9월 28일, 세자를 비롯 왕자들과 공신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맹약을 하게 됩니다. 뭐 이 땐 좋았죠. 서로의 속내와는 별개로요.
1. 조선은 듣거라!
개국 초, "조선"과 "화녕"이라는 이름 두 개를 명에 올려 선택해 달라고 한 건 유명한 이야깁니다.
+) 그런데 이 화녕이 무엇이냐 하니... 카라코룸이예요. (...) 원나라의 수도를 중국식으로 음차한 거죠. 명에서 설마 화령을 선택하겠어요.
문제는 명에서 조선을 인정한다는 고명과 인장을 내려주지 않았다는 거죠. 정식으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여기서 문제가 계속 되죠. 고려 말부터 시작된 주원장의 조선 흔들기가 절정에 달했던 시기입니다.
"이염이 들어가서 황제를 뵈오니, 황제가 그의 꿇어앉음이 바르지 못하다고 책망하고, 또 머리를 숙이게 하고 이염을 몽둥이로 쳐서 거의 죽게 되었었는데, 약을 마시고 살게 되었다." (2년 8월 15일)
참으로 굴욕이었죠. -_-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사신의 입국마저 막아버립니다. 이후에도 사신은 오면 행패부리고, 요동 도사는 조선인을 잡아가질 않나, 여진족이 귀순해 오니까 당장 돌려보내라고 하질 않나 -_-; 별 일이 다 벌어집니다. 이런 상황 끝에 왕자를 보내야 된다는 결론이 내려지죠. 헌데 누가 갈까요?
이 때 나선 아들이 있었으니... 정안군이죠.
"명나라 황제가 만일 묻는 일이 있다면 네가 아니면 대답할 사람이 없다"
"종묘와 사직의 크나큰 일을 위해서 어찌 감히 사양하겠습니까"
"너의 체질이 파리하고 허약해서 만리의 먼 길을 탈 없이 갔다가 올 수 있겠는가?"
뭐 이렇게 말 하면서도 보낼 수밖에 없었죠. 다섯째 아들, 이미 죽은 첫째나 무만 아는 둘째 방과보다야 강단도 있고 문무겸전이었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겁니다. 이방원도 이 때 목숨을 걸었겠죠. 신하들도 가기를 꺼려해서 남은의 형 남재만 따라가겠다고 나설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정말 쉽게 갔다 옵니다. 오히려 환대까지 받고 오죠. 이 시점에서 슬슬 조선의 상황도 요동 치기 시작했을 겁니다. 명이 이방원을 지지하고 있었다는 거니까요. 이 때 명에서는 그를 "조선 세자"로 대접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뭔가 두둥! 할 일이죠.
그러거나 말거나 협박은 계속됩니다. 에휴 -_-;
그나마 이방원이 갔다 온 후 긴장이 완화됐지만, 여전히 고명과 인장을 내려주지 않았죠. 이성계로서는 애가 타는 일이었습니다. 거기다 참 뜬금 없는 문제를 계속 걸고 넘어집니다. 이 때 조선은 고명과 인장을 받지 않은 상태라서 "조선국왕"이라는 말을 칭하지 못 하고 있었고, 권지국사, 임시로 국정을 맡는다는 말을 썼습니다. 주원장은 이걸 물고 늘어지죠. (...) 이방원이 중국에 갔던 것도 이 호칭 문제였구요.
태조 5년, 이 일들의 결정판, 그리고 명이 진정 노리고 있던 일이 벌어지니... 표전문 사건입니다.
2. 표전문 사건
"표·전문 속에 경박하게 희롱하고 모멸하는 문귀가 있어 또 한번 죄를 범했으니, 이것으로 군병을 거느리고 부정한 것을 다스릴 것이나, 만약에 언사가 모만하다고 해서 군사를 일으켜 죄를 묻는다면 옳지 못하니 무엇 때문일까?" (5년 2월 9일)
이 말을 들은 이성계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뭐 이때쯤이면 큰일났다는 것 보다는 "아 또야?" 정도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이 일은 계속 커지죠.
일단 이 때 사신으로 갔던 정총이 억류됩니다.
조선에서는 해명글을 올리며 표문을 지은 정탁, 전문을 지은 김약항을 보내죠. 하지만 정탁은 중풍이 걸려서 빠지고 김약항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는 자신을 하며 당당하게 갑니다.
... 또 잡히죠. 그리고 그에 대한 주원장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표문을 지은 정도전·정탁은 지금까지 보내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다시 우우 등을 본국으로 보내어 표문을 지은 사람을 보내기를 재촉하고, 와 있는 사신 유구 등의 가솔을 보내어 와서 완취하도록 하기를 재촉한다.’ 하였습니다"
뜬금 없는 이름, 정도전이 튀어나온 것이죠. 이성계는 정도전이 여기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뺐습니다. 그리고 딱히 관여한 것 같지도 않구요. 다만 국정을 도맡아하던 정도전이니 결제하거나 하긴 했겠죠.
이성계는 당연히 거부합니다. 억지이기도 했고, 다른 사람도 아닌 정도전이라니요 -_-a 대신 이들을 이끈 게 바로 하륜이었습니다. 여기에 권근, 정탁, 노인도가 따라갔죠. 정도전은 관계 없고 권근이 했다는 논리였습니다.
이 떄 좀 재밌는 게 있습니다. 사신을 보낼 당시에는 그냥 권근을 보냈다는 것만 나옵니다. 문제는 나중에 정도전이 다른 사람들을 "무고"했을 때, 갑자기 권근이 자청했고 정도전이 못마땅해 했다는 식의 말이 나오죠.
권근이 자청한 건지, 이성계가 정도전 대신 보낸 건지는 확실히 알 수 없고, 일단 통설은 후자를 따르고 있습니다. 어쨌든 기록은 돼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렇게 보면 정도전에게 정말 불리해지죠. 권근은 정도전을 위해 갔는데 정도전은 그걸 싫어했다 이런 식으로 진행되거든요.
뭐 이 문제는 나중에 또 드러납니다.
그리고 또 살펴볼 것이... 이들을 이끈 사람이 하륜이었다는 거죠.
거기다 흥미로운 문제가 또 생깁니다.
"먼저 온 4인의 수재 중에서 권근만 노성하고 진실하기에 놓아 돌려보낸다."
주원장은 권근을 매우 아꼈고, 친히 시를 주고 받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또 기존에 억류해 뒀던 사신들도 권근 때문에 돌려보낸다고 했죠. 후에 이 일이 얼마나 과장됐는지는 모르나, 그가 권근만을 돌려보낸 건 맞습니다.
이에 대해 다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기존에 억류된 정총과 김약항, 그리고 권근과 함께 간 노인도, 이 셋은 주원장을 만날 때 상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이 때 세자의 어미 신덕왕후가 죽었거든요. 반면 권근은 주원장이 준 옷을 입고 있었구요. 황제보다 자기 나라 일이 더 중요하냐는 건데... 나중에 큰 이유가 드러나죠.
"정도전이란 자는 왕에게 어떤 도움을 주는가? 왕이 만일 깨닫지 못하면 이 사람이 반드시 화의 근원일 것이다. 지금 정총·노인도·김약항이 만일 조선에 있다면 반드시 정도전의 우익이 되었을 것이니, 곧 이들로 인하여 이미 화를 불러 그 몸에 미쳤을 것이다. 왕은 살피지어다. 만일 정하게 살피지 않으면 나라의 화가 또 장차 발하여 남에게 손을 빌릴 것이다"
정도전의 편이니까 보내지 않는다. -_-a 황제의 목표가 여실히 드러난 겁니다. 이렇게 갈등은 계속 커지죠.
3. 이방원
이런 가운데서 이방원은 그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었습니다.
사실 그로서도 억울하긴 할 겁니다. 일단 왕자들은 공신 책봉에서 소외된 상황이었습니다. 문제는 다른 형제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이방원은 그럴 상황이 아니었죠. 정도전을 죽일 뻔하고 이성계를 위협하던 정몽주 문제를 한 방에 처리한 게 이방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주어진 건 전라도 절제사. 그리고 그가 한양을 떠난 사이 세자를 비롯한 모든 문제가 해결돼 있었습니다. 그를 일부러 뺸 정황이 나온 거죠.
그렇다고 이성계가 그를 완전히 무시했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정도전, 남은 등 이성계의 최측근이 천도를 반대하자 이성계는 이방원을 데리고 천도를 강행합니다. -_-; 이 과정에서 이방원은 남은에게 도움을 청하는데 제지당하죠. 이래놓고 이번엔 명에 가랍니다.
나중에 수양은 이걸 잘 베낍니다. 하지만 수양과는 달리 이 때 정안군 이방원이 명에 간 건 정말 목숨을 건 거였죠.
이런 상황에서도 홀대는 계속됩니다. 그도 계속 참아 오기는 했습니다. 어쨌든 아버지가 세운 나라니까요. 하지만 그도 나름 할 말은 있는 거죠. 여기에 그의 야심까지 더해진다면?
시간이 흘러가면서 여론도 달라집니다. 정도전과 조준에 집중된 권력에 대한 비판이 나오는 거죠. 이걸 앞장선 게 변중량인데, 이성계가 노하여 귀양 보냅니다. 뭐 이 양반은 왕자들의 군권도 빨리 회수해야 된다고 한 걸 보면 중립적인 위치인 것 같습니다만...
+) 이전에 얘기했듯 박시백 화백이 괜히 희화화 했다가 욕 먹은 케이스입니다 (...)
이성계의 신임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겠지만 어쨌든 몸을 사리는 모습을 보이게 된 정도전, 거기다 그에게 집중된 권력은 그의 반대파를 양산했죠. 이성계나 정도전부터가 딱히 정치적인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거든요. 그리고 그 반대파들이 간 곳은? 바로 이방원이었죠.
저번 편에 얘기했던 하륜, 조영무 등의 소외된 무신들 등이 이방원에게 모이기 시작합니다. 아마 명에 갔다온 후 그게 더 심해졌을 겁니다. 어느새 이방원은 반정도전 파의 구심점이 된 것이죠.
태조 6년 이후는 정도전에 대한 욕으로만 가득 차 있습니다. 정도전에 대한 재평가가 많이 나온 지금이지만, 이 부분을 어떻게 봐야 될 지는 참 애매하죠. 자... 다음 편부터 그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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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간 주원장 -_-; 도움 되는 게 하나도 없어요.
주원장에 대해 유명한 에피소드가 있죠. 손자가 사람을 그만 죽이라고 하니까 가시 달린 몽둥이를 보여준 다음에 "가시 있으면 손에 찔린다. 내가 죽기 전에 너를 위해 가시를 다 없애 주겠다"고 했다는 겁니다.
이렇게 자기 아들, 손자와 백성들에게는 인자한 황제였다는 주원장, 대신에 그는 수만명의 공신들을 숙청해 버립니다. (...) 그리고... 그 대상에는 조선도 포함돼 있었죠. 그는 죽을 때 꺾을 수 없는 나라로 조선을 첫번째로 들었습니다. 그 정도로 그가 조선에 대한 경계는 심했다는 거죠.
그런 경계는 이방원에게 정말 큰 힘을 줬구요.
왕자의 난은 슬슬 모습을 갖추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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