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김치찌개 님의 글도 있지만
문득 순두부찌개 이야기가 나오니 이 초대형 옵저버도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을 것 같아서
대세에 편승하고자 합니다.
예전 용인시청에서 근무할 때 길 건너편 삼가동 진우아파트엔
엄마네 순두부라는 가게가 있었죠, 뭐 점심때마다 도시락 배달해주고
상호는 순두부인데 돈까스도 하고 김치찌개도 하고 쫄면도 하는
기사식당처럼 다양한 메뉴를 취급하는 곳이었는데, 처음엔 이 곳의 입지조차 몰랐는데
하루이틀 지내다 보니 은근 사람들이 길 건너서 진우아파트 방면으로 사라지길래
뭐가 있나? 싶어서 탐방을 하다가 점심을 쏜다는 빌미로 가 본 곳입니다.
단가가 4500원이었는데 도저히 그 양도 그렇지만 연세가 한 일흔은 넘으신 어머니가
며느리 식구와 함께 직접 모든 것을 만드시고 계시더군요, 손맛의 포스라는 것이 그런건가 봅니다.
3500원짜리 오므라이스 하나에도 미리 부쳐놓은 게 아닌 주문시마다 바로 계란을 부쳐서
케챱으로 맛있게 드세요~ 라는 자막까지(...) 친절하게 새겨넣는 그 정성이란 도저히 많은
양을 소화할 수 있어야 하는 도시락집의 평범한 풍채가 아니기에 물어봤습니다.
"일일히 이렇게 신경쓰시면 안바쁘세요?"
어머니의 그 고집때문에 자신들은 하루에 딱 주문받을 수 있는 양만 받는다고 하시더라고요
그것도 아파트쪽이나 상가지역만 배달이 가능하다고 하시는... 그런데도 굳이 배달을 하시지
않아도 될 정도로 점심시간마다 인산인해입니다. 그럼에도 음식이 밀리는 적을 본 적이 적은
그래도 그 많은 맛깔나는 음식들 중의 top 이라면 역시 제목처럼 순두부찌개!
소감을 말하자면 음 일단 건더기로 가득차서 매콤한데다 농도가 엄청나게 진합니다.
워낙 인기상품인지라 순두부는 오전에 뜨거운 물에 한 번 데쳐서 준비했다가
주걱으로 푹~~ 한 가득 퍼서 찌개에 미련없이 탈탈 털어주시고, 바지락에 김치도
미련없이 넣어주시죠~ 생계란은 마지막에 위에 토핑해서 투하!!
맛이 꽤나 걸쭉한데다가 절로 밥을 말게 되는 그런 느낌 있잖습니까?
콩나물 국밥에 수란을 으깨서 넣고, 파채에 김가루와 밥까지 털어넣게 되는 뭐 그런 느낌?
한 그릇 얼큰하게 먹고나면 그냥 산해진미고 뭐고 따로 없죠, 이 맛을 외국인들도 알게 되었다니
왠지 다행(?)이라는 생각입니다.
처음부터 순두부찌개를 좋아했던건 아니었습니다. 예전 군복무 시절 워낙 실력없는
취사병 때문에 GP에서 곤욕을 치른 적이 있었는데 세상에 순두부찌개를 내왔다는게
물 엄청 넣고, 멸치 몇개 넣은 뒤 김치 넣고 순두부도 바로 넣고 그냥 저어버리는(...)
물 양도 너무 많아서 사망한 순두부의 파편이 사방에 널려 있는 멀건 김칫국을 들이기는
아주 기분나쁘고 불쾌한 그런 수준이었죠, 그 뒤로는 순두부찌개를 안먹게 되었습니다.
비지찌개도 마찬가지였는데 두부로 유명한 초당마을에서 비지찌개의 참 맛을 알고나서는
팬이 되어버렸는데 아쉽게도 그 텁텁하면서도 구수한 비지찌개를 먹을 수 있는 곳이 정말 드뭅니다.
흉내를 내는 곳은 몇 군데가 있었는데 그건 비지찌개가 아니었죠, 비지를 물에 희석해서 먹는
비참한 맛이었기 때문이죠
아무튼 순두부찌개 뿐만이 아니라 모든 음식이 맛있었습니다. 돈까쓰의 미덕인 '푸짐함'
쫄면의 미덕인 '알텐데....(...) + 식초의 약간 매콤하면서도 달디담', 된장찌개도
시골에서 주기적으로 가져오는 토장을 풀어서 해주시더군요... 반찬도 꽤 신경을 쓰신데다가
대충 김치 하나 던져주고 마는 식당과는 확실히 틀렸습니다.
어머님이 기분이 좋으신 날은 에그프라이도 하나씩 해주시고
돈까스나 생선까스 남은 것들도 아낌없이 튀겨주시고
김밥도 만들어서 서비스로 주시고는 했습니다.
요리를 무척이나 좋아하고 사랑하는 그 열정이 느껴진달까요?
뭐 메뉴는 일반적인 것들이지만 아무튼 똑같은 가격에 건더기 두어개 들어가 있고
맑은 물에 희석한 듯한 미소국을 제공하는 뭐시기 천국류의 음식품질과는 하늘과 땅 차이였습니다.
무엇보다 이 집은 방문하신 분들에겐 밥이 무한대로 제공되었다죠
그런데 어느날 출장으로 한 2주 정도 이 곳에서 밥을 안먹었더니
어느새 이 집이 사라져있더군요? 그 뒤로도 순두부찌개를 잘 한다는 (엄청비싼 한정식집)곳에 가서
무려 12000원짜리 순두부찌개를 먹어본 일도 있지만 개인적으론 정말 별로였습니다.
돼지뼈로 오래 국물을 내서 뭐 수십가지 재료를 넣고 끓였다곤 하지만 저에겐 그냥
멸칫국물에 김치, 고사리, 양파와 약간의 돈육만으로 얼큰하게 끓여낸 그 집의 4500원짜리
순두부찌개가 최고였습니다. 앞으로도 맛을 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죠
11월
마음이 스산해 지는 계절, 찌개로 쓸쓸함을 이겨내시길 바라며
한국인의 진정한 친구는 역시 찌개입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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