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 효민이 나왔다. 티아라의 효민, 원래 관심도 없던 그룹이고 사람이다. 나는 항상 본진을 카라에 두고 확장을 브아걸에 둔다고 이야기했다. 사실 그 이외에 누가 있는지도 잘 모른다. 올해 서른세살이고 걸그룹을 좋아하기엔 가요에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게 카라와 브아걸의 그 누구도 내 꿈에 나온 적이 없는데 효민은 나왔다. 나도 어째서인지 모르겠다. 그것도 한 두번이 아니라 더 신기하다.
처음 등장한건 올해 8월 운전면허 기능시험 전날이다. 나는 장내기능교육을 받으면서 사상초유의 공포에 질려있었다. 일전에 면허 취득 관련 글에도 썼지만 '절벽에서 떨어진 적도 있고', '데모판에서 선봉대로 경찰 앞에서 쇠파이프 들고 서본' 경험도 있는 내가 그렇게 떨어보긴 처음이었다. 자동차라는 존재는 기묘하고도 무식한 생물이었고 나는 그저 끌려다니며 벌벌 떨어댔다. 그런데 장내 기능 시험 전날 꿈에 효민이 나왔다. 아무 이유도 없다. 그저 카라 구하라때문에 보게 된 '청춘불패'에서의 모습이 전부였는데 꿈에 나왔다. 잠에서 깨어나 나는 이상하게 마음이 안정되는걸 느꼈다. 전날 밤 길거리에 주저앉아 '아, 저 많은 사람들이 전부 아무렇지 않게 차를 몰아대는데 나는 왜 이럴까' 한탄하던 것이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꿈을 꾸며 그렇게 행복했던 것은 처음이다. 편안한 마음으로 면허시험장에 갔고 대기실에서 나온 '해피투게더'에서 효민이 나온 것을 본 순간 이것은 운명이 아닌가 싶었다. 그렇다. 그녀는 행운의 여신이 분명하다. 인간에게 '행운'이라는 단어가 어떤 의미로 쓰이는지는 보편적 의미 외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마음을 편히 가져본 것은 처음이었고 공포의 도로주행 시험 전날에 잠자리에 들면서 '제발 오늘 꿈에 효민이 나오길' 되뇌이면서 자기도 했다.
친구중 하나가 말하길 자기는 로또 당첨을 기원하기 위해 자신이 찍은 번호를 밤에 되뇌이면서 '당첨번호'라고 중얼거리며 잠든 적이 있다고 한다. 오오 나는 도로 주행 전날 효민의 꿈을 꾸길 기원했다. 불행히도 꿈에 나오진 않았지만 다음날 아침 학원 가기 전에 '롤리폴리' 동영상과 음악을 핸드폰에 저장해놓고 운전학원으로 가는 내내 보고 또 보기를 되풀이했다. 어찌 보면 굉장한 미신일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신'이 아니니 그저 내 마음속의 미신으로 자리잡은 것일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일생일대의 불안감을 앞에 두고 그런 것에라도 매달리고 싶었다. 그리고 정말로 나는 불안감을 대부분 해소할 수 있었다!!. 서른 셋에 찾아온 남들에게 알리기엔 멋쩍은 이 '사건'이 어찌 보면 굉장히 기묘하고 재미 있다. 실제로 동영상을 보다가 기가 막혀 웃은 적도 있다. 하지만 강사조차 '핸들감이 없다, 이런 경우는 나이 많은 여성 분 몇분을 본 것이 전부이다'라는 식으로 말했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당당히 도로 주행 시험에 합격을 했다. 물론 전문 학원이 가지는 메리트도 있었겠지만 나는 효민이 꿈에 나오고부터 뭔가 잘 풀린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다이어트에 '롤리폴리'댄스를 추가한다는 명목으로 나는 한동안 그 동영상을 보고 또 보고 또 보고 또 보았다. 지독한 몸치라 아직 안무를 다 외우진 못했지만 효민의 댄스를 보느라 투자한 시간이 카라의 동영상을 본 시간 전부보다 많다고 생각한다. 컴퓨터에서 재생하며 따라 춤질한 시간이 하루 헬스클럽에서 보낸 시간보다 많았다. 나는 투쟁판에서 뒹굴던 당시 '문선'이라 불리우는 몸짓패에게 배운 춤을 출때 항상 남보다 익히는 것이 서너배는 늦다고 질책받은 적 있다. 록음악 동호회 활동 당시 다녔던 클럽에서도 나는 그저 남 춤추는것 보기만 했고 앉아서 술이나 깨작깨작 마셔댔다. 그런 내가 그 동영상 따라한답시고 몸을 움직거린다니 가끔 헛웃음도 나왔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이성으로는 생각하기 어려운 '행운의 여신'으로 삼아버렸는데. 직장을 그만두면서 '과연 살을 뺄수 있을까' 고민하며 저주했던 시간에 활기를 불어넣을 유일한 길로 삼아버렸는데.
며칠전에 우연히 다시 효민의 꿈을 꾸었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맞은편에 선글라스를 쓴 그녀가 앉아 주위를 스윽 둘러본 꿈이었다. 그저 그게 다였다. 다음날 복권을 샀고 생전 처음으로 4등에 당첨되었다. 그 이전엔 5등도 당첨된 적이 없었다. 사실 나는 복권은 도박이라 생각해 잘 사지도 않는다. 가끔 술 마시고 흥이 돋을때나 한 게임 두 게임 구매할 뿐이고 당첨된 적도 없다. 알콜이 들어가지 않은채로 복권 산 것도 처음이고 5만원 받아본 것도 처음이다. 오 축복이 있으라, 가끔 웃고 싶을때 이렇게 나타나 웃게 해주니 행복할 따름이다. 인생이란 그렇다. 사실 그저 연예인이 꿈에 나타난 것 뿐이고 그건 수많은 꿈 중의 하나일 뿐인데 그것에 의미를 부여한 순간 나는 즐거워질 수 있는 계기가 생긴 셈이다. 어찌 되었든 아직 세상은 살만하다. 어렸을적 꿈꾸었던 일들 대부분이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아무려면 어떠랴, 행복은 만들기 나름이 아닌가. 손발이 오그라들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나름 즐겁다.
모두 건강하세요. 10킬로그람을 뺄때마다 술을 한번씩 마시는데 오늘이 그날이네요. 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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