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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차 - 자유주제
전체
일반
정치
Date
2011/10/01 02:06:26
Name
눈시BB
Subject
[일반]
그 때 그 날 - 번외편. 폐세자와 죄인의아들
https://pgr21.co.kr/freedom/32057
삭게로!
엥 왜 그러세요? 0_0 저 분명 번외편 몇 번 더 있다고 했다구요.
-----------------------------
1. 폐세자
공주의 남자 아닙니다. 용의 눈물입니다.
"‘보통 사람은 반드시 배워야 입신 성명하지마는, 세자라면 어찌 꼭 배운 연후에야 입신하겠느냐? 또 과거에 급제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하는데, 이것은 매우 옳지 않소. 보통 사람은 비록 한 가지 재주만 능하여도 입신할 수 있지마는, 상위에 있으려면 배우지 않고는 정치를 할 수 없고, 정치를 하지 못하면 나라는 곧 망하는 것이오.”
하니, 세자가 아무 말도 없었다. 그 뒤에 임금이 세자로 하여금 읽은 글을 외게 한다고 하니, 세자가 이를 듣고 밤을 새워 글을 읽었다."
권근이 세자에게 한 말이었습니다. 저 말을 "어떤 사람"에게서 들은 거라고 하는데, 세자가 불만을 품고 했던 말을 그가 듣고 대답한 모양입니다.
조선 최초의 폐세자는 꽤나 빨리 탄생했습니다. (뭐 엄밀히 따지면 태종이 죽인 막내동생이 첫 폐세자겠지만요) 태종의 아들 양녕대군. 그는 처음부터 이렇게 공부를 싫어했습니다. -_-;
그의 비행도 제법 빨랐습니다. 그 나이 열일곱살 때였죠.
"세자가 몰래 기생 봉지련을 궁중에 불러 들였다.(중략) 임금이 듣고 소친시에게 곤장을 때리고 봉지련을 가두니, 세자가 마침내 근심 걱정하여 음식을 들지 않았다. 임금이 세자가 미치고 혹하여 병이 될까 염려해서 봉지련에게 비단을 주었다."
왕은 세자가 잘못을 저질렀는데도 단식으로 맞서자 봉지련에게 비단을 주었다고 합니다. -_-; 그 후에도 문제는 심심하면 보입니다.
"세자가 서연에 나갔다. 세자가 병을 핑계하니, 서연관이 재차 청하고, 중관 김문후가 눈물을 떨어뜨리며 강권하자 세자가 그때서야 나갔다."
"세자가 서연에서 학업을 게을리 한 것을 사간원에서 상소하다"
"내가 들으니, 세자가 매를 궁중에 두고 있다 하는데, 너희들은 이를 아느냐? 만약 알면서도 금하지 않았다면 보도하는 직임이 무엇이겠느냐?"
"근일에 풍악을 울리며 밤을 세우고, 또 매를 기른다는데 무슨 일이냐"
"세자의 응견 때문에 종친과 대신이 탄핵을 받고, 대간도 내침을 당하였으나, 세자는 징계하지를 않아서 이제 또 이와 같은가?"
... 세자는 심심하면 놀고, 병을 핑계로 공부 안 하고, 매를 궁 안에 길렀습니다. 이 때문에 세자 주변 사람들을 계속 처벌했는데, 계속 한 거죠. 이쯤 되면 막 가자는 겁니다. -_-; 세자가 있는 동궁을 임금 근처로 옮기자는 말도 있었고, 아예 대궐 가까이에 옮기자는 말도 있었습니다. 태종은 이 부분에서 거절합니다. 너무 곁에 두면 사이가 나빠지지 않겠냐는 거죠. 아내를 홀대하고 아내 가문을 박살냈던 태종입니다. 아니 자기 아버지를 그렇게 핍박했고, 동생들을 죽였던 게 태종이었죠. 그래도 그 역시 아버지였습니다.
"너는 어리지도 않은데 지금 어째서 부왕께 이와 같이 노염을 끼치느냐? 이제부터는 조심하여 효도를 드리고 또 밥을 들도록 하라"
역시 기생을 들였다는 것 때문에 그 기생들을 지방으로 내쫓으니 단식을 선언했던 세자, 이젠 어머니 원경왕후에게 욕 먹습니다. -_-;;;;;;;;
그리고...
이 때 세자에게 아첨하던 내시들이 있었는데, 기껏 내쫓으니 세자가 몰래 다시 데려왔다고 합니다. 그게 발각된 상황, 태종은 관리를 보내 데 잡아오게 합니다. 세자는 거부하죠. 그리고 그는 이 말을 꺼냅니다.
"내가 네 이름을 안다"
태종은 노하죠. 그래도 일단 주변 사람들만 처벌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세자의 스승들이 대거 몰려옵니다. 거기서 세자에 대해 얘기가 나오는데... 태종은 이런 말을 꺼냅니다.
"세자의 마음은 반드시 그 자리를 족히 믿고 있는 때문일 것이다. 만약 과연 뉘우치지 않는다면 종실에 어찌 적당한 사람이 없겠는가?"
아버지의 경고였습니다.
능력 있는 동생을 위해 일부러 미친 척을 한 세자와 그것을 따라 성군이 된 동생... 하지만 그 실상은 조금 다릅니다. 이 때부터 충녕대군의 모습이 돋보입니다.
"이날 세자가 성한 복장을 하고, 모시는 자를 돌아보며,
“간지 나지 아니한가?”
하니, 충녕 대군이,
“먼저 마음을 바로 잡은 뒤에 용모를 닦으시기 바랍니다.”
세자 역시 알고 있었나 봅니다.
밤이 깊도록 세자가 기생 초궁장을 끼고 공주의 대청으로 들어가서 즐기고 술을 마시다가, 공주에게 이르기를,
"충녕은 보통 사람이 아니다."
(충녕이 대답을 잘 하자) “세자가 따를 바가 아니다.”
하였는데, 세자가 일찍이 임금 앞에서 사람의 문무를 논하다가,
“충녕은 용맹하지 못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였다.
“비록 용맹하지 못한 듯하나, 큰 일에 임하여 대의를 결단하는 데에는 당세에 더불어 견줄 사람이 없다.”
(세자가 왕의 부마가 아끼던 기생을 데려 가자) “친척 중에서 서로 이같이 하는 것이 어찌 옳겠습니까?
하였다. 말을 재삼하니, 세자가 마음으로 노하였으나 애써 그 말을 따랐는데, 그 뒤로 세자는 대군과 도가 같지 아니하여 마음으로 매우 꺼려하였다.
하지만... 태종도 세자에 대한 사랑을 거둘 순 없었던 모양입니다. 계속 문제를 일으키던 세자의 말입니다.
"옛날부터 부모에게 불효하고, 선한 일을 한 자는 없다. 나도 또한 글을 읽었으니, 어찌 알지 못하겠는가? 내가 이제부터 불효를 하지 않고자 한다. 만일 불효를 한다면 성상께서는 비록 자식이라 하여 사랑하더라도 하늘이 어찌 아끼겠는가"
태종의 반응이죠.
"내게도 또한 허물을 뉘우치는 말을 하였다. 다만 이 말이 전에는 듣지 못하던 말이다. 내가 실로 기뻐한다. 경 등은 이로 인하여 말을 다하여 가르치는 것이 가하다. 지금이라도 허물을 고치면 늦지 않다"
이러면서 태종은 조금씩 세자에게 국정의 일을 맡깁니다. 그나마 좀 괜찮아질 것 같았는데... 문제는 또 터졌죠. 유명한 어리 사건입니다.
"세자가 소수를 거느리고 대궐 담을 넘어 도보로 이오방의 집에 가서 그와 함께 이승의 집에 이르렀다. 어리를 찾으니, 이승이 듣지 않으므로 그에게 강요한 뒤에야 만나게 되었다. 드디어 어리와 함께 이법화의 집에 가서 자고, 그를 궁중으로 납치한 다음, 세자가 활을 이승에게 보내고, 어리도 또한 비단을 이승의 처에게 보냈으나, 이승은 활만 받고 비단은 받지 아니하였다."
이후 마누라를 뺏긴 이승은 고발하려고 했는데, 세자가 협박해서 포기하죠. 이 전말이 밝혀진 겁니다. -_-; 당연히 어리를 내쫓고 세자에게 반성문을 받아냅니다. 이 반성문은 변계량이 대신 써 준 것이었는데, 태종은 모른 척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세자는 또 사건을 저지르죠. 어리를 몰래 불러서 같이 살았고, 아이까지 가진 겁니다. 황희는 이 때 세자를 옹호하다 파직당합니다.
이 때 세자는 한양에 있다가 태종이 있는 개성으로 갔는데, 이 때 충녕대군과 만납니다. 이 때의 대화입니다.
"어리의 일을 반드시 네가 아뢰었을 것이다."
하니, 충녕 대군이 대답하지 아니하였다.
이 밑의 사관론은 세자가 열 받아서 왕한테 대들려는 걸 충녕대군이 잘 설득해서 막았다고 하고 있습니다. -_-a 아무튼 세자는 혼 난 후 다시 한양으로 돌아가죠. 그런데 태종은 또 흔들려서 죄인처럼 보내는 게 아니라 예전처럼 격식을 갖춰 행차하게 호위를 보냅니다. 그 죄도 세자의 죄가 아니라 세자를 도와준 장인 김한로의 죄라고 했죠. 하지만... 세자는 돌아가는 길에 궁으로 가지 않고 어리가 있던 곳으로 갑니다. -_- 에휴... 태종이 또 화내자 어리가 아니라 같이 있던 숙빈을 만나러 간 거라고 변명했고, 태종은 또 들어줍니다. 이렇게 상황은 진정되는가 싶었는데...
"전하의 시녀는 다 궁중에 들이는데, 어찌 다 중하게 생각하여 이를 받아들입니까?
"지금에 이르도록 신의 여러 첩을 내보내어 곡소리가 사방에 이르고 원망이 나라 안에 가득차니, 어찌 도리어 여러 몸을 구하지 아니하겠습니까?"
"전하는 어찌 신이 끝내 크게 효도하리라는 것을 알지 못하십니까? 이 첩 하나를 금하다가 잃는 것이 많을 것이요, 얻는 것이 적을 것입니다."
뭐... 이건 결국 자기를 파멸로 몰고 가죠. 태종은 이것을 신하들에게 내보이며 자기의 심정을 말 하고, 신하들은 그를 폐세자 시킬 것을 주구장창 요청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 후계를 누구로 할 것인가에 대해서 묘한 말이 나오죠. 태종은 점을 쳐서 정하겠다는 식으로 -_-; 어이 없게 말을 돌렸지만요. 일단은 양녕의 아들 중에서 고르자는 얘기가 나오던 중이었습니다.
"어진 사람을 고르는 것이 마땅합니다"
이심전심이죠. 일은 정말 빠르게 진행됩니다.
"(효령은 성격은 좋은데 자질이 없고 술도 못 마신다) 충녕은 비록 술을 잘 마시지 못하나 적당히 마시고 그친다. 또 그 아들 가운데 장대한 놈이 있다. 효령 대군은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하니, 이것도 또한 불가하다. 충녕 대군이 대위를 맡을 만하니, 나는 충녕으로서 세자를 정하겠다."
"신 등이 이른바 어진 사람을 고르자는 것도 또한 충녕 대군을 가리킨 것입니다"
참 일사천리죠?
이렇게 폐세자 된 양녕대군. 이제 죽음만 있을 뿐입니다. 헌데... 태종은 서울 밖으로 내치는 것까진 허락했지만 경기도 광주로 보냅니다. 더 멀리 보내라는 걸 왕비 핑계를 대며 안 된다고 했죠. 이 때 태종은 처가 숙청을 완료한 상태로 아내와의 관계가 좋을 리야 좋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아내 핑계를 대면서도 가까이 두려 했던 겁니다.
뭐 이것만 보면... 양녕도 충분히 미쳤어요 -_-; 그 후에도 마찬가지였어요. 어느 날 그가 가출해서 종적을 감출 수 없자 그를 모시던 종들이 애꿎은 어리를 잡아서 두들겨 팹니다. 결국 그녀는 자살하죠. 그게 알려진 후 돌아온 양녕, 하지만 태종의 꾸지람을 듣고도 그는 조용히 기타 아니 비파를 연주했을 뿐입니다. 모든 걸 포기한 것처럼요.
일부러 그의 비행을 띄우고 충녕의 행동을 돋보이게 한 건 있겠지만... 이 정도면 폐세자의 명분으로 충분합니다. 그가 그렇게 한 이유가 뭐던 간에요. 하지만 태종과 세종대왕은 그를 계속 지켜주었습니다. 심심할 때마다 불렀고, 사냥할 때마다 불렀으며, 제사 때는 당연히 불렀고, 얼음이든 뭐든간에 시간 날 때마다 보내주면서 계속 살폈죠. 신하들은 계속 반대했지만, 나중엔 이렇게 말 합니다.
"이제부터는 양녕이 들어온 때에 이와 같은 봉장은 다 접수하지 말라. 또 이 봉장의 글은 도대체가 진부한 말뿐이다. 전일에 올린 것과 다름이 없으니, 목판에 새겨 두고 찍어서 들여오는 것이 아니냐."
복사 붙여넣기 하지 말라는 거죠. 나중에는 기어이 그를 궁궐로 부릅니다. 또 반대 상소가 잇따랐지만 받지도 않았죠. 폐세자. 당연히 역모에 연루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세종대왕은 끝까지 그를 지켰습니다.
결국 양녕이 살아남은 것은 태종과 세종대왕의 사랑 덕분이었습니다. 아무리 세자의 자격이 아니라 하더라도, 왕실에서도 이 정도 일은 가능하다는 거였죠.
물론 양녕이 그 후에 한 건 은혜를 저버린 배신, 혹은 복수나 다름 없는 거였지만요.
2. 죄인의 아들
역시 저한텐 왕남이 _-)b 감독님 팬이라서 그런 것일지도요.
"나도 폐하는 건 큰일이고 허물은 또한 고칠 수 있으리라고 여겨, 감히 결단하지 못하고 오늘에 이르렀는데, 뉘우쳐 고칠 마음은 가지지 아니하고, 실덕함이 더욱 심하여 일일이 열거하기가 어렵다. 그러니 결단코 위로는 종묘를 이어 받들고, 아래로는 국가에 모범이 될 수가 없으므로, 이에 성화 15년 6월 2일에 윤씨를 폐하여 서인으로 삼는다. 아아! 법에 칠거지악이 있는데, 어찌 감히 조금이라도 사사로움이 있겠는가? 일은 반드시 여러 번 생각하는 것이니, 만세를 위해 염려해야 되기 때문이다."
조선 최초의 중전 폐출. 그 명분으로 둔 것은 그녀가 미신에 빠져 자기 적들을 저주했다는 것, 남편 성종보다 나중에 일어났다는 것 (엥), 거짓으로 글을 만들어 상대를 모함했다는 것, 결정적인 거겠지만 독약으로 성종을 죽이려 했다는 것 등이 있습니다.
뭐 이에 대해서는 여러 얘기가 있습니다. 진짜 그랬다는 게 있겠고, 과장된 거라는 게 있겠죠. 과장된 거라면 역시 인수대비가 미워해서 그랬다는, 고부갈등이 최악으로 발전한 예라는 게 있겠고, 성종이 여자 문제에서 원래 이렇게 심했다는 게 있겠고 (낮에는 요순, 밤에는 걸주~), 그 연적들의 작전이 성공한 거라는 게 있겠죠. 뭐 어찌됐든 조선 초유의 일이었습니다. 태종이 한 번 시도나 하려고 했지만 실패하고, 아~무 권력도 없고 참견도 안 하던 정종이 나서서 "어이 동생 너 뭐하는 거임?" 하고 딴지 걸었으니까요.
뭐... 하면 길어지니까 그녀가 죽기까지의 기간은 모두 생략하겠습니다. 다만... 그 때마다 언급대는 그녀의 아들에 대한 부분을 보도록 하죠.
"이제 원자에게는 가련한 일이나, 주상의 근심과 괴로움은 곧 제거될 것이고, 우리들의 마음도 놓여질 것이다" (폐비 당시)
"이제 원자가 점차 장성하는데 사람들의 마음이 이처럼 안정되지 아니하니, 오늘날에 있어서는 비록 염려할 것이 없다고 하지만, 후일의 근심을 이루 다 말할 수 있겠는가?" (죽일 때)
"지금 세자의 정리를 생각하면 어찌 측은하지 않겠는가? 지금 특별히 일정한 제사를 드려 자식의 심정을 위로하여 영혼이 감응하게 하고자 한다. 그러나 내가 죽은 뒤에도 영원토록 고치지 말고 아비의 뜻을 지키도록 하라" (죽인 후)
자... 그 아들은 어떻게 했을까요?
“이는 실로 폐비 윤씨의 아버지인데, 윤씨가 왕비로 책봉되기 전에 죽었습니다.”
하였다. 왕이 비로소 윤씨가 죄로 폐위되어 죽은 줄을 알고, 수라를 들지 않았다. (1년 3월 16일)
이 날 왕은 밥을 먹지 않았다고 합니다. 일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죽은 어머니를 추숭하고 존호를 올릴 것을 요구합니다. 그 때 윤씨의 죽음을 막지 않았던 대신들은 소극적이라도 찬성했죠. 하지만... 그 때는 대간의 권력이 절정에 달하던 시기였습니다. 성종은 그것 때문에 사냥은커녕 궁궐에서 매도 제대로 못 길렀죠. 그야말로 미친듯이 일어나는 대간들. 연산 초는 이렇게 대간과 연산의 계속되는 힘겨루기로 점철돼 있습니다.
"성종의 음성이 아직도 귀에 남았는데, 제일 먼저 성종을 배반하여, 신주를 세워야 한다거니, 묘를 세워야 한다거나, 추숭하는 전례를 거행하여야 한다거니 하여, 전하로 하여금 성종의 뜻을 폐하고 성종의 정사를 고치도록 인도하여 대효에 결함이 있게 하니, 이는 성종께 득죄할 뿐만 아니라, 전하께 불충함이 큽니다."
뭐 이런 논리였죠. 이에 맞서는 아들의 논리입니다.
"다만 폐비가 선왕께 죄를 얻기는 하였지만 모자간의 정리에 무관심할 수 없으며"
"네 말은 지나치다. 성종의 유언을 준수하지 않는 것이라 하더라도, 아들이 어머니의 사당을 세우는 것이 무슨 허물이겠느냐"
뭐 처음엔 이렇게 나쁘지 않게 넘어갑니다. 어쨌든 대신들은 밀어붙였고 아들놈도 힘보다는 이렇게 설득으로 밀어붙였으니까요. 그 효라는 걸 완전히 무시할 순 없죠. 이런 가운데서도 대간들은 몇 차례고 공동으로 사직해서 맞서긴 했습니다. 그 때마다 다시 불러들였지만요.
그런 상황에서 첫 사화인 무오사화가 일어납니다. 그 이후 나름 잘 하기도 했지만 사치하는 부분이 심해졌죠. 사화로 큰 타격을 입은 사림은 크게 견제하지도 못 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만일 술을 마시지 못한다면 조금씩이 마실 일이지 엎지르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오" (9년 9월 16일)
사건의 주인공은 이세좌. 그 죄는... 임금이 술을 줬는데 다 못 마시고 엎질러서 곤룡포에 떨어졌다는 겁니다. -_-;
근데 이 양반이 누구냐 하면요... 바로 폐비 윤씨에게 사약을 갖다 준 사람이죠. 뭔가가 시작됐던 걸까요? 아직은 아니었습니다. 얼마 후 연산이 잘 대해주자 정승이었던 성준과 이극윤은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그게 그렇게 감동적이었을까요? 불안했던 게 해소됐던 거겠죠. 이세좌도 4개월 후 풀려 나옵니다. 허나...
경기관찰사 홍귀달은 딸을 간택하라는 명에 아프다고 둘러댑니다. 이게 정말 엄청나게 커지죠. 뜬금 없이 죄를 이세좌에게 물어 그를 귀양 보내고, 그가 유배가기 전 하직 인사 드리러 왔다고 말 한 승지를 "나를 탐문하려는 거냐"면서 국문하고, 이세좌가 돌아오자 그를 찾아 간 사람들을 조사하고, 자식들은 물론이요, 이세좌의 죄를 제대로 말 하지 않은 대신들, 비판하지 않은 대간들, 하아... -_-;;;; 이렇게 갑자년은 시작되었습니다. 그 날도 이세좌의 가족들을 어떻게 죄 줄까 결정하던 날이었습니다. 그는 한밤중에 동생들을 부릅니다.
"항과 봉은 정씨의 소생이다. 왕이, 모비 윤씨가 폐위되고 죽은 것이 엄씨·정씨의 참소 때문이라 하여, 밤에 엄씨·정씨를 대궐 뜰에 결박하여 놓고, 손수 마구 치고 짓밟다가, 항과 봉을 불러 엄씨와 정씨를 가리키며 ‘이 죄인을 치라.’ 하니 항은 어두워서 누군지 모르고 치고, 봉은 마음속에 어머니임을 알고 차마 장을 대지 못하니, 왕이 불쾌하게 여겨 사람을 시켜 마구 치되 갖은 참혹한 짓을 하여 마침내 죽였다.
왕이 손에 장검을 들고 자순 왕대비(정현왕후) 침전 밖에 서서 큰 소리로 연달아 외치되 ‘빨리 뜰 아래로 나오라.’ 하기를 매우 급박하게 하니, 시녀들이 모두 흩어져 달아났고, 대비는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왕비 신씨가 뒤쫓아가 힘껏 구원하여 위태롭지 않게 되었다.
왕이 항과 봉의 머리털을 움켜잡고 인수 대비 침전으로 가 방문을 열고 욕하기를 ‘이것은 대비의 사랑하는 손자가 드리는 술잔이니 한 번 맛보시오.’ 하며, 항을 독촉하여 잔을 드리게 하니, 대비가 부득이하여 허락하였다. 왕이 또 말하기를, ‘사랑하는 손자에게 하사하는 것이 없습니까?’ 하니, 대비가 놀라 창졸간에 베 2필을 가져다 주었다. 왕이 말하기를 ‘대비는 어찌하여 우리 어머니를 죽였습니까?’ 하며, 불손한 말이 많았다. 뒤에 내수사를 시켜 엄씨·정씨의 시신을 가져다 찢어 젓담그어 산과 들에 흩어버렸다. (10년 3월 20일)
"왜 우리 어머니를 죽였습니까?"
... 시작됐습니다. 몇 일 후, 폐비의 아들, 연산은 절대 하면 안 될 말을 합니다. 자기 어머니의 추숭 얘기를 다시 꺼내면서요.
"성종께서 명철한 임금이시지만, 어찌 잘못한 일이 없겠는가?" (3월 23일)
결국 밀어붙인 끝에 폐비 윤씨는 복원되고, 제헌왕후로 추존됩니다. 무덤도 회"묘"에서 회"릉"으로 올라가죠. 죽은 뒤라 하지만 이제 죄는 없어졌습니다. 이어 그는 본격적인 복수에 들어갑니다. 일단 주도면밀한 재조사, 그 때 누가 뭘 했으며 어떤 죄를 지었는지 정말 열심히 조사하죠. 그리고 결론을 내립니다.
"이에 명하여 능지하여 효수하고 그 가산을 적몰하고, 주멸이 그 자식에 미치고 족당을 분배하고 그 집을 저택하고 돌을 세워 죄악을 적게 하여 후세의 신하로서 불충한 자를 경계하노라"
이세좌. 폐비를 구하지 않고 오히려 "독약"을 들고 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이 국가의 처분을 마음대로 헤아려 감히 말을 내니, 그 간사하고 아첨하여 나라를 그르친 죄가 하늘에 찼도다. "
윤필상.
" 한명회·심회·정창손·정인지·김승경 등은 만일 종묘에 배향된 자가 있으면 내치라"
이미 죽은 이들에 대해서도 처벌이 이어졌습니다. 그걸 막지 않았다는 거죠.
이 때 이세좌, 윤필상, 이극균 등은 굳건하게 임금의 명을 따라 죽었다고 합니다. 이극균의 경우 "내가 뭔 죄를 저질렀는지 모르겠다"면서 나름 충격적인 유언을 남기기도 했죠. 이 때 자신을 반대하는 대신이고 대간이고 모조리 죽이고, 내쫓습니다.
뭐 그 이후의 역사에 대해서는 더 말 할 필요 없겠죠.
3. 반복되는 역사
양녕의 폐세자 과정은 사도세자와 그리 다를 바 없습니다. 오히려 양녕이 더 한 것 같네요.
경종이야 아무 일도 안 했지만, 연산군의 모습이 저랬으니 경종과 정조에게 했던 걱정은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선왕의 뜻은 바꾸지 않는 것이 도리였죠. 거기다 그 복수로 간다면 저렇게 큰 일이 벌어집니다. 그걸 힘써서 말리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공범이 되니까요.
그런 면에서 태종은 영조와 달리 정말 자식에게 사랑을 베풀었고, 부득이하게 바꾸긴 했지만 끝내 지켜주었습니다. 그 동생 역시 마찬가지였구요.
경종은 어머니의 복수라기보다는 자신을 핍박한 것에 대한 복수였겠지만 나름 대단하게 했죠.
정조의 복수는 그런 면에서 정말 세련됐습니다. 핀포인트로 피해를 최소화했고, 그 기준도 사도세자 자체보다는 자기를 위협한 자 (홍인한) , 그리고 위협하게 될 자 (김귀주) 였죠. 그러면서 선왕의 뜻을 절대 어기지 않겠다고 몇 번이나 다짐했습니다. 이러면서 벽파 중에서도 시파로 돌아서서 "이 정도는 해도 되지 않겠느냐"면서 정조 편을 드는 사람들도 생겼구요. 힘으로 미는 게 아니라 정말 지극한 효성을 보여 줘서 신하들이 저절로 따르게 하는 방법. 뭐 결국 실패했지만요.
그 개인에 대한 차이도 있습니다. 양녕과 연산, 그 둘은 꽤나 정치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양녕대군은 세자 시절 자기가 자랐던 곳이 외가였는데 외가를 숙청하는 것을 도왔습니다. 외삼촌들이 따지자 "죽을 죄 지었구만"이라면서 무시했죠. 폐세자 된 후에도 사소한 잘못은 계속 저질렀지만, 뭔가 큰 일을 꾸미거나 하진 않았습니다. 이후 왕족들의 처세술의 모범이 됐죠. 세종대왕의 우애 역시 있겠지만, 그 자신이 정말 조용히 있었다면? 그리 쉽게 살진 못 했을 겁니다. 그리고 세종대왕과 문종이 죽은 후의 모습이 정말 오랫동안 꿈 꿔 온 복수라면, 무섭죠.
연산의 경우 이 일 자체가 어머니의 복수가 아니라 계산된 행동이라는 설이 강력한 힘을 얻고 있습니다. 일단 그가 어머니의 죽음을 몰랐을 리 없고, 일부러 모른 척 했다는 건 확실해 보입니다. 그러다가 10년 가까이 지나서야 모든 준비를 갖춘 다음 터뜨린 거죠. 그가 폐비 윤씨에 대해서 효성이 얼마나 있었을 지도 알 수 없죠. 어머니의 기일에 그 짓을 했다고 하는데요 -_-; 그걸 이용해서 대간을 억누르고, 대신들을 숙청하고, 절대왕권을 이룩하는 것... 그게 연산군의 목표였다고 합니다.
뭐 본편에서 얘기했듯 감정과 이성을 동시에 갈 수 있는 거죠. 그 과정을 보면 절대 충동적으로 저지른 건 아닙니다. 정말 치밀한 계산 끝에 이루어진 거죠.
그렇게 본다면 사도세자는 정말 정치적이지 못 했습니다. 자기 세력을 쌓지도, 자기의 존재를 어필하지도 못 한 채 그냥 당하기만 하다가 미쳐서 죽어갔죠. 뭐 영조가 그만큼 총체적으로 압박했다고 봐도 되겠습니다만...
역사는 반복되는 것 같네요.
--------------------------
그럼 진짜, 그 때 그 날, 임오화변의 현장으로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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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oren
해시 아이콘
11/
10/01 02:07
수정 아이콘
끝난줄 알았는데 뭔가 당한기분 크크크
Je ne sais quoi
해시 아이콘
11/
10/01 02:42
수정 아이콘
양녕이야 뭐 그냥 딱 집요한 양아치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자리에 안 맞는 짓만 골라서 하고 쫓겨난 후 나중에 복수. 딱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전형적인 악당 캐릭터로밖에 생각이 안 드네요 -_-;;
지니쏠
해시 아이콘
11/
10/01 02:55
수정 아이콘
엉엉 나의 쿨가이 풍류남아 양녕이 사실 또라이라니...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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