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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1/09/30 12:07:09
Name 눈시BB
Subject [일반]  그 때 그 날 - 미래 (완) 정조

모든 건 단정하는 식으로 하겠습니다. 솔직히 얼마나 정확할 지 자신할 수 없습니다만... 나름 이제까지 정리했던 것과, 복잡한 글을 지금까지 봐 주신 분들에 대해 확실히 답을 드리는 게 나을 것 같네요. 시작하겠습니다.

1. 사도세자 죽음의 책임
과거편에서 다루긴 했지만 다시.

홍씨인가? - 홍봉한은 분명히 사도세자를 최대한 보호했다. 하지만 영조의 결정 이후 가장 앞장 섰다. 그런 죄는 있겠지만 그 자신은 할 만큼 했다고 할 수 있다. 애초에 권세가 높았던 그는 덕분에 최고의 권력을 누렸다.

김씨인가? - 김씨는 그 때까지 제대로 된 힘이 없었고, 힘이 있었다 해도 홍씨를 누르기 힘들었다. 거기다 영조의 마음은 그 전에 정해져 있었다. 나경언이 그들과 관련 있다는 것은 혜경궁과 시파의 단정일 뿐이다.

김상로는? 문성국은? 다른 노론 대신들은? - 이들 역시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 확신할 수 없다. 김상로와 문성국은 이미 죽은 사람으로 주도한 죄를 죽은 이에게 돌리는 건 조선 시대에 흔했다. 영조가 김상로 등에게 죄를 돌린 거고, 정조가 그에 맞춰 시범 격으로 벌한 것이다. 문녀는 홍인한 등과 함께 욕심을 부렸겠지만 직접적인 세자 죽음의 원인으로 볼 수 없다. 차라리 세손을 방해하는 데 함께 했다면 모를까.

그렇다며 누구인가? - 설령 그들이 이간질을 했다 하더라도 그건 이간질로 볼 수가 없다. 세자의 위치를 약화시킨 건 영조였고 그럼 당연히 그 위치를 노리는 세력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거기다 그 이간질이란 게 있기나 했을까? 말을 지어낼 것도 없이 세자의 비행을 일러바치기만 해도 충분히 효과가 있는데 그건 한참 후에나 들어갔다. 왕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세자를 욕 할 수 없는 노릇이고, 홍봉한의 위세는 막강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자가 그렇게 죽지만 않았다면, 그걸 왕에게 말하는 건 오히려 충신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이 세자를 욕 했다 하더라도 세자 자신보단 홍봉한의 견제를 위했을 것이고, 효과가 있더라도 칼 쥔 놈에게 "파이팅"이라고 격려 해 준 수준밖에 없다.

2. 세손의 대리 청정 방해
홍봉한 - 그가 정조를 협박한 것은 사실이다. 정조는 결국 자기 말을 취소하지 않았다. 하지만 혜경궁이 억울해 하듯 사도세자를 추숭하려 했다는 것 등은 정조가 지어낸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영조 48년에 이미 정조는 홍봉한을 적대했고, 정순왕후와 손을 잡았다.

홍인한 - 어느 정도 과장이 있을 순 있겠지만, 그가 대리 청정을 방해한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정조 때 홍씨의 정조 암살 시도를 생각하면 정조가 왕에 오르는 걸 막으려 한 것일 수도 있다. 확실한 건 이 때 홍인한은 정조의 적이었다.

김귀주 - 따지고 보면 그는 피해자다. 자기의 목표이기도 했지만, 그가 홍봉한을 공격한 건 정조의 지원 사격 덕분이었다. 그는 실각했다가 다시 올라온 후에도 정조의 뜻을 따랐다. 그런 면에서 이건 정조의 배신이라고 봐야 된다. 외척을 공격했다 하나 그도 결국 외척이었고, 어쨌든 너무 강경하긴 했다.

정후겸 - 정조의 말대로 그가 김귀주와 연합했다가 홍인한에게 간 거라면 그는 배신의 아이콘이다. 그가 원한 건 권력이었을 거다. 어쨌든 의외로 피라미라서 숙청

이 사건 전반에 관해 - 결국 이들의 죄를 사도세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건 부당하다. 영조가 깎아내렸다 하나 세자의 지위는 굳건했고, 영조는 늙었다. 하지만 세자가 죽은 후는 다르다. 세손은 죄인의 아들이고, 뭐든지 한 번 하면 그 다음에는 쉬운 법이다. 사도세자를 죽인 것으로 거론되는 사람들은 다 따지고보면 세자가 아닌 세손의 지위를 방해했다고 봐야 된다. 그 때 정조의 위치는 불안정했으니까.

3. 정조의 숙청
외척 - 결국 정조의 목적은 외척이었다. 어쨌든 신하들은 모두 그걸 방관했고, 정조는 거기에 대한 복수하는 감정을 가지고 이성적으로 외척을 제거해 나간 것이다. 김귀주가 숙청된 건 그가 외척이었기 때문이다.

벽파 - 그런 과정에서 벽파는 큰 활약을 했다. 즉, 벽파는 외척 숙청 과정에서 정조의 친위대나 다름 없었다. 특히 김종수는 홍인한-김귀주-홍국영까지 가며 외척들만 골라 공격했다. 하지만 그들은 정조와 생각이 달랐다. 추숭까지 이어가려 한 정조와 달리 그들은 사도세자에 대해서는 그대로 두려 했다. 김귀주가 사도세자의 기록에 대해서 정조의 요청을 거절했던 것은 그것과 관련해서 생각해야 한다.

홍봉한을 살려준 이유 - 정조가 말을 바꿔 홍봉한을 살려준 건 김귀주와 대비해 보면 쉽다. 막 힘을 얻어가는 외척 김귀주와 달리 홍봉한은 이제 힘을 잃을대로 잃은 늙은이일 뿐이다. 하지만 이용가치가 있다. 어찌됐든 그는 사도세자의 장인, 반면 정순왕후의 집안은 영조의 처가이다. 사도세자 추숭을 이루려면 이들을 아예 죽이면 안 된다. 혜경궁이 멀쩡히 살아 있던 것도 컸겠지만. 그리고 홍봉한은 대리 청정 문제에서 큰 활약을 하지 않기도 했으니까.

결론 - 이 문제 역시 사도세자 문제로까지 소급하면 안 된다. 정조가 그렇게 말 했고 그게 통설이기도 했지만, 모든 일은 정조 자신의 문제와 관련해서 생각해야 한다. 자신을 제거하려 한 외척을 벽파와 함께 내쳤고, 역시 위협될 만한 김귀주를 내쳤으며, 힘을 잃은 홍씨를 다시 우대했다. 그 죄를 크게 하기 위해 덧붙인 것이 사도세자 문제이다.

4. 시파와 벽파
다시 벽파 - 결국 벽파는 사도세자 추숭을 거부했다. 이게 노론의 의지라고 하지만 정작 김조순 등의 명문 노론은 시파였다. 정조가 벽파를 살려둔 건 그 자신의 의지였고, 뒤에서 조종을 하며 자신의 정책에 반대하게 시켰다. 그가 벽파를 키운 것이다.

남인 - 반면 남인은 벽파의 반대편에 섰고, 그들 역시 정조가 키웠다. 하지만 시파와 다른 점이 있다. 그들은 정말 열성적으로 사도세자 추숭을 외친 것이다.

시파 - 그런 반면에 시파는 색이 부족하다. 남인처럼 추숭에 동조하긴 했지만 소극적이었다. 그저 왕의 뜻에 따른다는 것. 그리고 김조순에서 볼 수 있듯 뭔가를 적극적으로 외치는 게 아니라 현실주의적인 면이 강했다. 이들 역시 필요했다.

5. 정조의 본뜻
(1) 신임 의리
노론 - 정조는 노론에 시달렸다고 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영조의 신임 의리를 더 확고히 했다. 영조가 한 게 양 쪽 다 잘못이 있다는 거라면, 정조는 노론이 충이고 소론이 역이었다는 것을 확실히 한 것이다. 이런 점만 본다면 그는 노론 임금이다.

유교 - 그는 당대에 비교할 수 없는 학식을 가졌고, 스스로를 군사, 임금이자 유교의 스승이라고 자청했다. 그럴 실력도 충분했다. 그런 점에서 신임 의리를 잇는다는 것은 그로서는 당연한 것이었다. 오히려 그걸 강화한 것 역시 할아버지의 이름을 걸고가 아니라 영조의 뜻을 이어받으려 했기 때문이다.

(2) 사도세자 추숭
효성 - 하지만 할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으면 아버지를 신원할 수 없다. 여기서 그가 동원한 것은 유교의 다른 기본인 효성. 그리고 영조가 남긴 말을 최대한 이용했다. 사도세자에게 죄가 없다는 걸 몇 번이고 확인하면서 근거를 만들었고, 자식으로서의 효성을 평생 동안 강조했다. 시파와 남인이 그것을 도왔고, 벽파도 시간이 가면서 동조할 수밖에 없었다. 즉위 초에 이미 장헌세자, 경모궁으로 높였고, 계속 존호를 올리면서 명분을 확보했다. 나중에는 벽파의 맹장 김종수가 사도세자의 존호를 올리고 그를 찬양했고, 심환지는 뒤에서 정조의 지령을 받아서 그걸 돕고 있었다.

시간의 힘 - 하지만 할아버지의 유지를 버릴 순 없었다. 그래서 자기 대에서는 최대한 그것을 부정했다. 그러면서 남인들을 최대한 부추겨서 그 얘기를 계속 꺼내게 했다. 한편으로 세자의 무덤 옆에 수원 화성을 만들었고, 순조에게 왕위를 물려준 후 상왕이 되려 했다. 이전의 죄인들은 시간이 흐르면 신원되고, 그 역시 이 시간의 힘을 이용하려 한 것이다. 그래서 얘기를 계속 꺼내게 했고, 수 차례 강조했다. 할아버지의 뜻을 어기지 않으면서 자신의 뜻을 자식이 이어 받게 하는 것, 어차피 시간의 힘이 해결해 줄 것이고 그는 이 시간을 최대한 증폭시키려 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벽파에서도 사도세자의 존호를 올리는 등 성공 직전까지 갔다.

김조순 - 문제는 그 자신이 너무 빨리 늙어간다는 것이다. 할아버지와 비교해 보면 더 암담했을 것이다. 여기서 무리수가 나온 것이 김조순을 순조의 후견인으로 둔 것이다. 영춘옥음기에서는 그가 계속 아들을 부탁한 것이 나온다. 채제공의 뒤를 이어 이것을 마무리할 사람으로 선택한 것이 김조순이었다. 그 자신의 철학을 어긴 것이지만, 김조순의 인품을 믿었을 것이다.

(3) 당파
복원 - 영조의 탕평은 탕평당이라는, 왕의 말만 따르는 외척 홍봉한을 중심으로 한 거대한 당을 낳았다. 하지마 정조의 탕평은 방식이 달랐다. 벽파에게 계속 자신에 반대하라는 지령을 내리고 그들을 키운 것, 남인을 계속 키운 것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다. 그가 바란 것은 당파 정치의 복원이었다. 그렇게 그는 신하들에게 당파 싸움을 시켰다. 뒤로는 어찰을 보내 그가 지지한다는 것을 알렸고, 그러면서도 상대 당파를 아낄 것을 몇 차례고 얘기했다.

6. 오회연교
그런 점에서 본다면 오회연교에서 공격한 것은 양 쪽 다이다. 일단 문제를 일으킨 것은 안동 김씨, 정조는 김조순을 외척으로 앉혔지만 죽기 전에 그에 대한 견제 역시 같이 한 것이다. 한편으로 자기가 의리를 확실히 지켰다는 것을 몇 차례고 다짐하면서 벽파에 대해서 역시 경고했다. 그런 한편으로 어찰을 보내 벽파를 공격한 게 아니라면서 걱정하지 말라고 했고, 김조순에게도 비밀로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안심시켰다.
빨리 자수하라면서 대노한 그였고, 이것은 자기의 죽음에 대한 초조함 때문이라고 평가받는다. 하지만, 그런 겉과는 달리 말 그대로 당파 싸움을 하지 말라는 엄포였을 (정확히는 서로를 아예 없애지 말라는 것) 뿐, 그는 양 쪽을 다 공격하면서 양 쪽 어디도 처벌할 생각이 없었다.

다시 말하면, 그는 마지막까지도 그 다웠다. 그리고, 벽파와 시파 모두 그걸 이해 못 했고, 정조 사후 서로를 없애 버렸다.

7. 정순왕후의 수렴 청정
정순왕후 - 임진왜란만큼 조선에 큰 피해를 끼친 게 그녀라고 하지만, 사실 그녀가 한 건 다 명분에 맞는 것이었다. 대단한 정치력과 판단력, 정보력을 가져서 큰 활약을 했지만 그건 모두 명분에 맞는 것. 정조의 계획을 뒤집은 것 역시 정조가 생전에 남긴 말을 이용한 것이었다. 그녀는 영조의 아내, 사도세자에게는 정조 때 할 만큼 했으니 그를 왕으로 추숭한다는 것은 그녀가 거부하는 건 당연한 것이었다. 거기다 김귀주의 생각도 그리 다르진 않았을 것이다. 시파와 남인에게 복수했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선을 지켰다. 정조가 김귀주와 자신을 배신한 것에 대한 사적인 감정도 없진 않았을 것이다.

그녀의 힘 - 그런 면에서 볼 수 있는 게 그녀가 얼마나 힘이 있을까이다. 영조 때도 한 차례 몰락했고, 정조 때는 "과부와 고아밖에 없는 집"으로 전략했다. 그녀는 힘이 없었고, 수렴 청정에서 물러나자마자 말 한 마디도 못 하는 존재로 전락했다. 그녀가 힘 있어 보였던 것은 오로지 그녀의 능력, 명분을 손에 쥐었던 것 때문이었다. 그것을 잃자 그녀는 죽어가는 할머니였을 뿐이다. 어쨌든 정조의 생각을 뒤집었으니 악역으로 모자람은 없지만, 현재 그녀가 받는 평가는 부당하다.

벽파 - 마찬가지로 벽파 역시 프리메이슨이 될 수 없다. 그들은 정조가 키운 자들이었고, 정조가 죽었어도 뒤집은 건 사도세자 문제 뿐이었다. 어차피 존호까지 올린 상태, 왕으로 올리는 걸 거부한다는 건 그들 입장에서는 당연했다. 정순왕후와 함께 순조 친정 이후 바로 몰락했다는 건 그들의 힘이 얼마나 약했는지 알 수 있다. 애초에 생긴 지 얼마 되지도 않고 자기 의리만을 외치는 자들이 얼마나 큰 힘이 있었겠는가.

8. 순조 친정
순조 - 그는 왕위에 오르자마자 시파와 함께 벽파를 몰살시킨다. 여기서 보여 준 정치력은 그리 나쁘지 않다. 그가 안동 김씨의 세도 정치를 묵인한 것은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의지가 없어서였다. 그리고 그는 결국 아버지의 뜻을 따르지 않았다.

김조순 - 그건 김조순도 마찬가지다. 벽파를 몰아내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건 안동 김씨였다. 하지만 그들은 정권을 잡은 후 사도세자 추숭을 하지 않았다.

이들은 물론 안동 김씨들도 크게 잘못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 이제까지 했던 대로 자기 세력을 늘린 정도였으니까. 그런 면에서 보면 김조순은 정말 깨끗하고 훌륭했다. 문제는... 시스템이었다. 그리고 그걸 알고 있었던 사람은 정조 하나 뿐이었다.

9. 정조

르네상스 - 정조가 원했던 것은 당파의 복원이었다. 그가 원했던 것은 조선 전기,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는 시스템의 부활이었다. 노론의 의리를 중시했지만 남인을 받아들인 것은 결국 이것 때문이었다. 정약용을 대표로 한 실학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성리학 일변도로 간 후기에나 그렇지 세종대왕 때만 해도 이런 일은 쉽게 볼 수 있다. 그가 한 개혁은 조선 전기로 돌아가는 개혁이었다. 영정조기가 르네상스라고 하는 건 그런 의미에서 하는 건 아니겠지만, 그의 시절은 확실히 르네상스라고 불러야 될 것이다.

한계 - 하지만 그건 아무도 이해하지 못 했다. 애초에 당쟁은 과열될만큼 과열됐고, 그 한계치에 도달했다. 숙종은 왕권 강화를 위해 서로의 반목을 더 부추겼고, 경영조 때에는 극한 상황으로 갔다. 영조가 그걸 막기 위해 탕평을 외쳤지만, 결국 당파가 완전히 망가지고 척신 정치가 시작되었다. 정조는 척신을 제거하고 양쪽을 살려 당파 정치를 부활시켰지만... 그걸 이해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환지도, 채제공도, 정순왕후도, 김조순도 이해 못 했을 것이다. 그들이 한 것은 정조가 시킨 대로 열심히 당파 싸움한 죄밖에 없겠지만, 정조가 기껏 살려 놓은 당파는 그렇게 없어졌다. 시파와 벽파의 싸움은 마치 옛날 당파 싸움을 보는 것 같지만, 사실은 당파가 소멸되는 과정이었다. 결국 남은 것은 당색이 없는 시파, 그리고 외척이었다. 김조순이 보여 준 모습 역시 외척의 최종진화형이었다. 정말 훌륭한 외척, 하지만 그건 외척의 집권이 가지는 부작용을 막지 못 했다.

영웅 - 근대화가 밀어닥치는 가운데에서 정조의 개혁이 얼마나 효과가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정조는 자신의 의지로 정말 많은 일을 했다. 그의 능력과 열성은 세종대왕과 비교해도 우열을 가리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시대는 이미 한 명의 영웅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는 시대의 문제점을 확실히 짚었고, 훌륭한 처방을 했다. 하지만 그가 죽은 후 보이듯 그가 복원해 놓은 건 한 순간에 무너졌다. 조선이 죽기 전에 좋은 약을 처방하긴 했지만, 그건 그만이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근대라는 외적인 변화를 빼더라도 내적으로 조선은 상처를 복원할 힘을 완전히 잃었다. 그리고 김조순을 외척으로 둔 이상 그 역시 이 책임을 피할 수 없다.

10. 마지막으로... 사도세자와 정조
이런 면에서 정조가 사도세자 얘기를 계속 꺼낸 것은, 벽파와 남인의 대립을 확실히 하기 위해, 성리학 질서를 복원하고 그가 그 중심에 앉기 위한 계산이었을 수도 있다. 그렇게 보면 뭔가 무서워지지만, 감정과 이성을 굳이 나눌 필요 없다. 아버지를 신원하고 싶다는 감정과 그것을 통해 당쟁을 시킨다는 계산, 그 두 개가 정조에게 있었던 것이다.

+) 실제 이것을 통해 신임 의리를 자기가 중심이 되는 의리 (임오 의리) 로 대체하기 위해서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정순왕후는 사도세자 추숭을 너무도 쉽게 막았고, 시파와 순조는 결국 하지 못 했다. 그들이 현실주의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그만큼 한두대만에 선왕의 말을 뒤집는 건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그 이전의 죄인으로 분류된 왕족들은 짧아도 2~3대, 길면 백 년 이상을 기다려야 했고, 사도세자 역시 추숭한다 한들 마찬가지였다. 그런 면에서 정조는 정말 시간을 빨리 돌렸고 눈 앞으로 다가왔지만, 거기까지가 한계였던 것이다. 정조 시대에 그는 할 만큼 다 했다. 미완으로 남은 건 사도세자 추숭 뿐이었다. 그만큼 힘들었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벽파는 "당연한 것을 방해하는 악의 축"이 아니다. 입장이 다를 뿐 당연히 반대해야 하는, 자기들이 할 일을 했을 뿐이다.

그는 너무 천재였다. 그는 모든 걸 다 떠 안고 가기 위해 가장 힘든 선택을 한 것이다. 그건 아버지에 대해서도 다르지 않았다. 비참하게 죽은 사도세자였지만, 그가 남긴 것은 조선시대의 찬란한 불꽃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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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해답이 됐을까요?
처음에는 정조가 너무 사도세자 추숭에만 매달렸다고 비판하려고 했습니다. 결국 따지고보면 집안 싸움일 뿐이었다는 거죠. 지금도 그런 생각을 아예 지운 건 아닙니다만... 정조는 그것조차도 자기의 이상에 포함시켰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그런 걸 생각해 본다면 정말 대단한 왕이었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입니다. 그 역시 전근대의 왕이었을 뿐입니다. 개혁도 조선 초로 돌아가는 개혁일 뿐이었죠. 그가 가진 문제의식과 해결법,그건 정말 훌륭했습니다. 그리고 거기까지였죠.

강력했던 선왕, 형이 폐세자 되고 왕이 된 동생과 아버지가 폐세자 되고 왕이 된 손자. 비슷한 점이 많은 게 세종대왕과 정조입니다. 그 업적에 비해 작았던 실책이 후대에 큰 타격이 됐던 것도 마찬가지였죠. 하지만... 세종대왕은 성공했고 정조는 실패했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건 결국 뒷사람들이 어땠는지를 봐야 됩니다. 세조 때도 훈구파가 만들어지고 외척이 성행했지만 사림들은 그것을 이겨내고 새로운 지배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정조 때는 그걸 대신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토론을 중시했던 세종대왕에 비해 정조가 과거를 직접 주관해 사람을 뽑는 식으로 독단적인 모습을 보여 준 모습 역시 이것과 같이 생각해야 될 겁니다. 인재풀이 완전히 말라버려서 직접 나서야 했다는 거죠. (뭐 이런 모습을 보여 준 것도 독단적이라는 비판 가능합니다) 나라가 한창 성장할 때와 망해갈 때의 차이겠죠. 그리고 모든 걸 깨끗하게 물려 준 태종과 참 더럽게 물려 준 영조의 차이일 겁니다. 사도세자의 문제는 그가 나아가는 원동력이기도 했겠지만, 너무나도 무거운 짐이기도 했습니다.

숙종은 환국을 너무 자주 하면서 당파가 각자 다른 왕을 미는 상황까지 만들었습니다. 영조가 이걸 고치려고 노력했지만 역시 외척의 진출만 앞당겼죠. 개개인으로 보면 큰 잘못은 없지만, 이 모순들은 그대로 정조 대로 이어집니다. 정조는 정말 천재적인 실력과 노력으로 이걸 봉합하지만... 정조가 죽자마자 터져 버립니다. 한 명의 영웅이 일시적으로 부작용을 없앨 순 있지만, 낡은 시스템은 더 이상 그걸 이어갈 수 없었습니다.

결국 정조의 시대는 조선이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다 보여주는 시절이었습니다. 그 찬란함이 끝난 후에 급속히 몰락해 간 거죠. 임진왜란, 병자호란 때도 버틴 조선은 이후 더 이상 버티지 못 합니다. 조선이 남긴 마지막 천재가 정조였고, 조선이라는 나라의 완성형이 정조 시대였습니다. 그리고... 전근대일 때도 힘들었는데 그 때는 근대였습니다. 뭐... 정조도 억울할 겁니다. 우리는 조선 후기의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책임을 묻습니다. 조선 전기였다면, 한 숙종 때까지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겠죠. 하지만 그 뒤의 역사를 우리가 아는 이상 어쩔 수 없네요.

역시 이글루스에서 찾아 낸, 정조에 대한 평을 끝으로 미래편을 마치겠습니다. 이 분 글 잘 쓰시네요.

"이것이 정조의 한계이자 위대한 군왕 통치의 한계다. 아무리 뛰어난 개인적 자질도 사회를 주도하려면 해당 사회의 시스템에 자신을 맞춰야 한다. 헌데 거기에 자신을 맞추는 순간 개인의 능력은 (제아무리 불세출의 역량이라 해도)결국 그 시스템에 종속되고 그 한계를 결코 벗어날 수 없게 된다."

"그는 조선왕조가 꿈꾸었던 바로 그 이상적인 군주였다. 단지 그 꿈 자체가 이미 유효기간이 한참 지나 있었다."

===============
이제 그 때 그 날로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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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9/30 12:15
수정 아이콘
이렇게 또 한편을 끝내셨네요. 연재를 기다리는 건 너무 현기증나서 일부러 기다리고 있었는데, 오늘부터 봐야겠습니다 크크
다음편도 기대하겠습니다~~
절름발이이리
11/09/30 12:36
수정 아이콘
수고하셨습니다.
11/09/30 12:40
수정 아이콘
학교에서 국사공부를 이런식으로 하면 레알 재밌을텐데-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네요.(현실은 암기+기출분석) 여튼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제 그 때 그 날로!
wkdsog_kr
11/09/30 12:49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정조가 정말 천재였네요.
양정인
11/09/30 13:51
수정 아이콘
이제 현재로...

눈시BB 님의 글들을 읽고나면...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아... 눈시BB 님이 쓰신 대체역사물은 어떨까? 라고 말이죠.
왠지 정말 잘 쓰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릴리러쉬^^
11/09/30 14:02
수정 아이콘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댓글 다 달지 못하지만 항상 감사합니다.
살라딘
11/09/30 14:04
수정 아이콘
훌륭한 글 감사합니다. 진로를 위해 국사를 공부하는 입장에서 공부하면 할수록 참 재밌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과여서 거의 문외한이었던 터라... 결국 국사를 보면 나라가 오랫동안 올바로 굴러가려면 그럴 수 있는 시스템이 중요한걸 깨닫습니다. 또한 그 시대의 틀을 벗어나는 사고를 한다는게 참 쉽지않은 것 같네요. 특히 조선같은 나라에서는.
11/09/30 16:14
수정 아이콘
결국은 왕인 이상 조선이라는 나라와 체제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었겠죠. 잘 읽었습니다 :)

이런 표현은 역사 공부하시는 분께는 실례가 될 지도 모르지만,
뭔가 잘 짜여진 추리물의 결말 부분을 읽는다는 느낌까지 들 정도로 재밌었네요
허삼전
11/09/30 17:00
수정 아이콘
항상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웬만한 역사책 보다 훨씬 나은듯 합니다.
염치없는 부탁일지 모르는데 시간이 나실 때 고구려말 연개소문에 관한 얘기 한번 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 시절 역사 이야기가 궁금해서요.
Je ne sais quoi
11/09/30 22:12
수정 아이콘
아 정말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전부터 가지고 있던 의문들이 많이 풀리는군요. 결국 정조는 이상적인 유교 시스템의 복원을 꿈꾸면서 동시에 자신의 개인적인 목표도 이루려 했지만 그가 죽자마자 둘 다 실패한 왕이네요. 유교라는 이미 시대에 뒤쳐진 시스템에 얽매이는 한, 그게 어려웠다는 것 까지는 알 수 없던 천재였나봅니다. 하긴 그런게 가능했다면 세종대왕을 넘어서 한국 역사 전체에서 첫 손에 꼽을만한 진짜 위인이 됐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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