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저는 친할아버지/할머니 댁에서 아침밥 먹고 늘어져 있다가, 방금 고속버스 타고 서울로 올라가는 길입니다.
옆에서 느릿느릿 움직이는 승용차들과는 달리 스피드를 내서 달리고 있는 걸 보면, 역시 버스전용차로가 좋긴 좋네요.^^
버스 안에서 노트북을 열어서 이번 추석 소감을 써봅니다. (확실히 테더링은 진리입니다. 크크)
1.
저희 부모님께서는 두 분 다 충남 분들이십니다.
아버지는 충남대, 어머니는 공주사대 나오셨는데, 두 분 다 두 대학에 공통으로 있는 동아리를 하셨다고 합니다.
그 동아리에서 같이 아는 분의 소개로 처음 만나셨다고 합니다. 결혼도 그 동아리 전국지부 건물에서 하셨대요.
(두 분 스토리가 꽤나 감동적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되게 멋있으셨어요. 나중에 써봐야겠네요.)
암튼, 양가가 별로 멀지 않아서(친가 : 천안, 외가 : 공주) 명절 때는 보통 외가 쪽을 미리 들렀다가 친가를 방문합니다.
제가 이번에는 사정상 가족이랑 따로 움직이게 되어서, 외가 쪽은 못 방문하고 나중에 직접 친가쪽으로 기차 타고 가게 되었습니다.
미리 예매를 못 했었는데, 다행히 당일 새마을호가 자리가 남았더라구요.^^ 덕분에 생전 처음으로 새마을호를 타봤습니다.
(주로 버스를 타고 다니고, 정말 급할 때 KTX만 몇 번 타봤거든요. :)
KTX보다는 느리긴 했지만, 공간도 널찍하고 뒤쪽에 오락기랑 매점도 있는 등 정겨운 느낌이 좋았습니다.
2.
저희 할아버지 댁은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수신면 백자리... 문자 그대로 '시골'입니다. 휴대폰도 잘 안 터져요.ㅠㅠ(물조도 간당간당)
할아버지께서는 몇 년 전까지도 논에서 쌀농사를 지으셨었고(덕분에 저희 집은 쌀 걱정이 없었죠. 크크),
요즘은 쌀농사는 다른 분께 맡기시고 콩이나 호박, 깻잎 등을 재배하십니다.
어릴 때는 추우면 아궁이 때고 고구마 구워 먹고 놀았는데, 요즘은 난방도 들어오고 손주들도 다 커 버려서 아궁이에 불 피워 본 지 오래 된 것 같네요.
글 쓰다 보니 갑자기 그 때가 살짝 그리워집니다.
3.
저희 아버지는 3형제 3자매 중 둘째 아들이십니다.
고모들은 주로 시댁에 가시기 때문에, 명절 때는 보통 큰아버지 가족, 저희 가족, 작은 아버지 가족이 할아버지 댁에 모이게 됩니다.
그런데 작은 아버지께서 싱가폴에 출장을 나가 계셔서, 이번 명절 때는 그 가족 중에서 작은 어머니만 오셨습니다.
그래서 할아버지+할머니, 큰아버지+큰어머니+사촌누나+사촌형, 저희 아버지+어머니+저, 그리고 작은어머니, 이렇게 10명이 모였습니다.
이번에 들어 보니, 완전 꼬맹이였던 사촌동생 녀석이 어느 새 고1에 키가 178cm이나 되었다고 하더라구요.
언제 그렇게 컸는지... 참 신기했습니다. 보고 싶네요.
4.
사촌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제게는 친가 쪽 사촌이 4명(큰아버지 쪽 누나+형, 작은아버지 쪽 남동생*2) 있습니다.
그런데 어제 밤에 사촌 형이 산책을 나갔다가 뭔가(아마도 뱀)에 물려서 돌아왔더라구요.
발목 쪽에 조그맣게 나 있는 이빨 자국이 뱀 이빨 같아서 일단 넥타이로 다리를 묶고 빨리 근처 병원으로 데리고 갔는데,
병원에서 혈액 검사를 해봐도 뭔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더라구요. (뱀인지 아닌지도 확실치 않다고...) 일단 응급처치를 하고 약 타서 돌아오긴 했는데,
오늘 새벽에 아무래도 몸 상태가 안 좋은 것 같아서 가족이 전부 집에 돌아가서 큰 병원에 입원했다고 합니다.(저는 자느라 몰랐네요.ㅠㅠ) 다행히 큰 이상이 있는 건 아니라서 2~3일 입원하며 경과를 보면 될 것 같다고 했다네요.
할아버지 댁 근처에 뱀이 안 나온 지 꽤 돼서 안심하고 다녔었는데, 어제 비가 와서 뱀이 높은 곳으로 올라온 것 같다고 합니다.
여러분도 시골에 가시면 혹시 모르니까 발 밑 조심하세요.^^;
5.
다행히도 큰 문제는 안 생겼지만, 온 가족이 많이 놀랐습니다.
큰아버지 가족이 먼저 집으로 돌아가서 아침 차례상도 여느 때보다 쓸쓸했구요.
제 동생도 지난 7월에 입대를 해서 손주도 저 하나 밖에 없었는데, 그래도 저라도 있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제가 이번에 시골에 가는 게 조금 무리였었어서 부모님은 안 와도 된다고 하셨었는데,
'할아버지 할머니 얼마나 더 사신다고...'라는 생각이 들어서, 살짝 무리해서 늦게나마 내려갔었거든요.
막상 추석 당일날 아침에 손주 중에서 저만 남게 되니, 좀 무리해서 늦게라도 내려가길 참 잘 한 것 같습니다.
6.
특히 할아버지께서 많이 놀라셨어요. 아침 먹으면서 '내가 괜히 너무 오래 살아서 그런 꼴을 다 보네...'라는 말씀을 두어 번 하시더라구요.
이번에 뵈니까 기력이 많이 쇠하셨던데, 몸이약해지니 마음도 약해지셨나봅니다. 다들 '무슨 소리세요. 더 건강하게 오래 사셔야죠.'라고 하니까
'내 몸은 내가 잘 아니 너희들은 걱정 말고 너희 건강이나 잘 챙겨라~' 라고 하십니다. 역시 어르신들은 그저 자식손주 걱정 뿐이신가봅니다.
떠나기 전에, 할아버지께서 5만원짜리를한 장 쥐어 주시면서 '이것 밖에 못 줘서 미안하다'라고 하시는 게 마음이 짠했습니다.
'이런 거 안 주셔도 괜찮으니까 그저 오래만 살아 주시면 충분해요'라고 말씀 드렸더니
'너희 이만큼 클 때까지 살았으면 충분히 복 누렸다. 지금 죽어도 행복하지~'라고 하시네요.
그래서, 더 오래 사셔서 꼭 증손주까지 보시라고 했습니다. 늦지 않게 결혼할 이유가 더 생겼네요.ㅠㅠ 열심히 살아야겠습니다.^^;
7.
차 타기 전에 할머니께서 깻잎 좀 뜯어 가라고 하셔서 온 가족이 열심히 뜯었습니다.
직접 재배하셔서 무농약인데다 어제 비도 와서 깨끗하다고, 안 씻고 먹어도 된다고 하시더라구요. 뜯다 보니 깻잎 향이 참 향긋하고 상쾌했습니다.
엄청나게 뜯었는데도, 차 떠나기 직전까지 계속 몇 장씩 뜯어서 쥐어 주시는 마음이 참 감사했습니다.
저도 나중에 자녀를 낳으면 참 많이 사랑해야겠습니다.
8.
저희 부모님은 저를 버스터미널에 내려 놓으시고, 입원한 사촌 형 보러 큰아버지댁으로 향하셨습니다.
저는 글 쓰다 보니 어느 새 서울에 도착했네요. (버스전용차로 만세!!!!!!!)
드물게 텅텅 빈 서울 지하철에서, 물조로 글을 마무리해서 올립니다. (물조 만세!!!!!!!)
여러분은 추석 잘들 보내셨나요? 남은 연휴동안 잘 쉬시고, 반도 안 남은 올해 열심히 살아 봅시다.^^
p.s 참. 추석 연휴동안 졸지에 (PGR 한정) 웹툰작가가 되어 버렸네요.
어제 저녁에 유게에 신규웹툰 소개글을 올렸는데 많은 분들이 재미 없다고, 혹시 작가 본인이나 지인 아니냐고 하시더라구요.ㅠㅠ
그래서 작가인 것처럼 리플 쓰면서 세로드립으로 '저 작가 아님요'라고 했는데,
당연히 알아볼 줄 알았던 세로드립은 아무도 못 알아보시고, 다들 '작가가 나타났다!'라고 하시더라구요. 크크 무리수였나봐요.ㅠㅠ
다시 한 번 말씀 드리지만 저 웹툰 작가 아닙니다. 그림은 제대로 그릴 줄도 모르는 공대생이에요.ㅠㅠ (어머니는 잘 그리시는데... 끄끄)
본의 아니게 낚이신 분들은 이제 빨간 약을 드시고 현실로 돌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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