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격포의 등장
어물전 에씨 아저씨..가 아니라 돌격포의 아버지이자 독소전 최고의 독일 명장 중 한명인 에리히 폰 만슈타인 원수입니다.
1935년, 당시 독일국방군 대령이었던 에리히 폰 만슈타인은 독립적인 기갑사단의 편성으로 인해 비게 될 최전방 보병 지원 임무를 대신 수행할 근접지원 차량의 개발을 제안합니다.
이 제안은 곧 받아들여져 새로운 차량의 개발이 시작되었지만, 초창기의 근접지원 차량의 개발은 순조롭지 못했습니다. 제대로 된 전차수준의 방어력을 가진 차체를 독자 개발하는 데에는 예산과 시간의 문제가 따랐고, 급조한 장갑차 형태의 차량으론 최전방 임무수행에 많은 애로사항이 따랐습니다. 결국 기존의 차량을 개조하는 방안이 선택되었고, 차체는 3호전차의 것을, 무장은 4호전차의 75mm 단신포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프로토타입이었던 O형은 상부가 개방된 무포탑 자주포의 형태를 가졌지만, 곧 유탄과 수류탄, 소화기 방어를 상정하여 차체에 주포를 직접 탑재하는 형태로 결정되었습니다.
첫번째 돌격포, 3호 돌격포
이렇게 3호전차의 차체에 75mm StuK 37 L/24 돌격포를 탑재한 차량은 3호 돌격포라는 이름을 부여받아 1940년 1월부터 5월까지 총 30량의 3호 돌격포 A형이 알케트 사에서 생산되었습니다.
이 돌격포들은 포병대 소속으로 각 부대에 배속되고, 그중 6량은 LSSAH 소속으로 배속되어 미하일 비트만이 이를 몰기도 했습니다. 이후 두번째 생산된 3호 돌격포 B형은 엔진의 교체와 배기 머플러의 장착이 특징이며, 돌격포가 그 가치를 인정받으면서 총 320량이 생산되어 프랑스 전선에 투입되었습니다.
전선에서 돌격포는 독일국방군의 생각보다 훨씬 뛰어난 성능을 발휘했고, 이에 고무된 국방군은 돌격포의 생산에 더욱 박차를 가합니다.
이어서 생산된 C형과 D형은 전투실 외관의 개선과 포수 시계의 현격한 증가가 특징이며, E형에서는 돌격포에도 3호전차와 같이 통신 시스템이 장착되면서 양 측면에 장착되었던 9mm 장갑판이 제거되었고 대신 추가 탄약과 무전기를 탑재하기 위해 장갑상자가 부착되었습니다.
그리고 부무장으로 MG34 혹은 MG42 기관총이 돌격포 상부에 장착되었지만, 방호용 장갑판이 없었기 때문에 기관총 사수는 위험에 노출되어야 했습니다.
3호 돌격포 A형, E형과는 다르게 전투실 양면의 장갑판이 두드러집니다.
3호 돌격포 E형. 초기 주문량은 500여 량에 달했지만 이미 주포였던 75mm StuK 37 L/24 돌격포로는 소련군의 전차전에는 무리였기 때문에 주문량의 반을 겨우 넘은 272량만이 생산되고 만 비운의 돌격포입니다.
독소전을 겪으며 다른 전차들이 변해 갔듯이 3호 돌격포 또한 주포를 대전차용의 75mm StuK 40 L/43 돌격포로 교체하게 되는데, 이는 4호전차의 전차포로 탑재된 75mm Kwk 40 L/43과 동일한 모델이었습니다.
이렇게 무장을 장포신으로 교체한 3호 돌격포 F형부터 돌격포는 그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고, 기존의 보병 지원 임무에서 점점 대전차 전투 임무로 그 목적이 변해가게 됩니다.
전차보다 훨씬 염가로 빠르게 생산이 가능한데다가 낮은 차체와 강력한 전면 방호력 덕에 대전차전에서도 그 효율이 입증된 것입니다. 실제로 돌격포만으로도 높은 전공을 세운 포병대 에이스들이 출현하면서 돌격포는 국방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로 변해갔습니다.
1942년 9월, 3호 돌격포 F형의 생산이 종료되고 더 강력한 주포로 교체하던 4호전차 H형에 발맞춰 돌격포에서도 75mm StuK 40 L/48 돌격포를 탑재한 F/8형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기존에 존재하던 구형 돌격포도 화력 증강을 위해 75mm Stuk 37 L/24 돌격포의 구경장을 약간 증가시긴 L/33 형으로 주포를 교체하는 개조를 수행합니다.
3호 돌격포 F/8형. 동부전선에서 4호전차 못지 않게 중요한 전력으로 사용되었습니다.
1942년 12월부터 4호 돌격포에도 장착된 돼지코형 포방패와 헷쳐와 같은 원격조작식 MG34를 장전수 앞쪽 해치에 장착한 3호 돌격포 G형이 생산되기 시작합니다.
3호 돌격포 G형은 가장 많이 생산된 돌격포로, 그 생산량이 7893량(173량은 개수된 차량)에 달했습니다. 보병 지원용으로나 계획되었던 돌격포가 어느새 독일 기갑사단의 준 주력이 되어버린 겁니다.
이에 하인츠 구데리안 상급대장이 3호 돌격포를 아예 전차로 통합해 집중 생산하자고 주장하지만, 돌격포 상실시 부대에 끼칠 악영향을 우려한 포병사단 측의 반대로 무산됩니다.
하지만 1944년에 와서는 전차의 부족으로 인해 돌격포가 전차 대신 기갑사단에 우선 배속되기 시작되며 이때부터 사실상 3호 돌격포는 독일 기갑사단의 주력전차 역할을 맡으며 남은 전투를 치르게 됩니다.
핀란드의 3호 돌격포 G형, 총 59량의 핀란드 육군 소속 돌격포들은 소련의 전차들을 무지막지하게 때려부수며 전장에서 맹활약했습니다.
3호 돌격포의 마지막 또한 4호전차와 유사합니다. 시리아는 스페인에게서 30량의 3호 돌격포를 구입했고, 이미 무포탑전차의 전성기가 지난 상황에서 이 돌격포들 또한 3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 기갑군에게 그 삶을 마감하고 맙니다.
3호 돌격포 G형, 쉬르첸과 돼지코형 포방패가 특징입니다. 여전히 병과는 포병에 속했지만,1944년 후로는 정작 포병들이 돌격포를 볼 기회는 매우 적어져 버렸습니다(...)
3호 돌격포의 '땜빵', 4호 돌격포
1943년 이후 연합군이 제공권을 장악하면서 알케트 사의 3호 돌격포 공장에도 무시무시한 폭격이 가해지고, 결국 3호 돌격포의 생산이 중단되는 상황에까지 이르고 맙니다.
당시 돌격포의 필요가 점점 증가하던 상황에서 이런 생산 중단은 독일국방군에게는 치명타였고, 이를 메우기 위해 독일은 1943년 12월부터 4호전차 H형의 차체에 3호 돌격포의 전투실을 탑재하며 4호 돌격포의 생산을 시작합니다.
4호 돌격포, 3호 돌격포의 날렵함과 포스에 비하면 좀 투박한 맛이 있지만, 3호 돌격포의 7분의 1이 생산되어 나름대로 활약했습니다. 스펙은 4호전차 H형의 차체에 3호 돌격포 G형 정도의 전투실 정도로 보면 무방합니다.
4호 돌격포는 3호 돌격포의 생산이 재개되기 전까지 그 자리를 훌륭하게 메꾸었지만, 이후 3호 돌격포의 생산이 재개되고 4호 구축전차가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생산량이 감소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생산은 조금이나마 계속되어 1945년 4월까지 총 1111량이 생산되었고, 아르덴 공세에도 위력을 발휘합니다. 4호 돌격포 화력의 증강을 위해 4호 구축전차 L/70 랑(LANG)의 것과 같은 70구경 75mm 포를 탑재할 계획이 있었지만, 실행되지는 않았습니다.
또다른 돌격포들, 33형 돌격포와 42형 돌격유탄포
3호 돌격포의 변형으로는 초기형 돌격포에 150mm sIG 33 L/11.4 중보병포를 장착한 33형 돌격포(Stug 33)와 초/후기형 돌격포에 105mm StuH 42 L/28 돌격유탄포를 장착한 42형 돌격유탄포(StuH 42)가 존재합니다.
이들은 흔히 알려진 설인 '기존 돌격포가 대전차 무장을 장착하면서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만들어진 변형이다.' 와는 상관없는 별도의 화력강화형으로, 3, 4호 돌격포에 비하면 비중도 작고 생산량도 적은 편이지만 화력 하나는 믿을 만 했습니다.
33형 돌격포. 개중에는 돌격전차로 분류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어차피 돌격포 종류에 포괄되는 개념이고, 제 자료출처에서도 돌격포로 다루기에 제 글에서도 돌격포로 취급합니다.
42형 돌격유탄포. 당시 독일국방군의 이상적인 돌격포 배치비율은 일반 돌격포 7량에 42형 돌격유탄포 3량이었다고 합니다.
3호 돌격포 스펙(Ausf.A,G)
모델: Ausf. A (Ausf. G)
중량: 19600kg(23900kg)
승무원: 4명(동일합니다)
엔진: Maybach HL 120 TR / 12실린더 / 300마력(동일합니다)
속도: 40km/h (동일합니다)
항속 거리: 도로: 160km(도로: 155km)
전장: 5.38m (6.77m)
전폭: 2.92m (2.95m)
전고: 1.95m (2.16m)
무장: 75mm StuK 37 L/24 돌격포 (75mm StuK 40 L/48 돌격포, 2 x 7.92mm MG 34 or MG42)
탄약: 75mm - 44발 (75mm - 54발, 7.92mm - 600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