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정리
칠천량 해전을 옹호하는 데 있어 가장 큰 것이 "권율이 무모한 작전을 강요했다"는 것입니다. 애초에 역사에 나오는 패전 중에 장수 자신의 능력보다는 상부에서 정한 제한에 묶여 패전한 것이 많기는 합니다. 이것도 좋은 예 중 하나긴 하겠죠. 여기서 많은 압박이 가해지긴 했습니다. 선조는 김식을, 이원익은 남이공을, 권율은 최영길을 보내 압박했고, 직접 두 번 곤장을 치죠.
하지만 원균이 행한 작전들을 보면 이런 일반화에 같이 묶어야 할 지 정말 의문입니다. 거기다 권율에게만 죄를 주기는 뭐 한 게 선조는 그렇게 옹호하던 원균에게 태도를 싹 바꿔서 법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 했고, 그걸 6년동안 강요받은 이순신은 부산포에서 잘만 싸우기만 했다는 거죠. 일본이 조선 수군을 두려워 해서 전면 철수까지 고려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것은 일반적인 "무리한 작전"이 아니라는 겁니다. 결정적인 것은 이것을 자처한 건 그 누구도 아닌 원균이었습니다. 이순신은 부산포 진공을 반대하지 않았고, 하더라도 "가덕도를 쳐 달라"는 말도 안 되는 요청은 하지 않았습니다.
일본은 아다케후네 20척을 건조하는 등 각 수군을 크게 늘리고 다수의 육군을 수군으로 전환합니다. 하치스카군은 아예 수군이 되었고, 9일의 해전에서 앞장선 것은 시마즈, 쵸소카베 등 일본 육군이었습니다. 거기다 군감인 오타 가즈요시까지 해전에 참전하죠. 거기다 여기서 효과적인 야습을 시도하게 됩니다. 실제 김완의 유군 중 5척은 거제도로, 4척은 진해만으로 갔습니다. 단지 원균만 도망간 게 아니라 야습 자체의 효과로 수군들이 조선 육군들처럼 -_-; 겁 먹고 도망간 것은 분명히 있죠. 적의 병력도 임지년과는 크게 차이나는 수백척에서 천 척이 넘는 상황이었습니다.
+) 유군에 대한 설명이 빠졌네요. 김완은 조방장으로 삼도 수군에서 차출해서 유군 혹은 복병함대를 형성했습니다.
문제는 그렇게 겁 먹고 도망간 장수들 중에 원균이 끼어 있었다는 거겠죠. 그리고 김완이 휘하 유군이 흩어져서 도망간 게 아니라 이름까지 거론하면서 "수사를 따라서 후퇴"했다고 하는 것을 봐서 명령체계는 여전히 유효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명령은 수사 윗 단계, 즉 통제사 레벨에서 내려왔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오히려 명령 체계가 유지된 게 더 악운이었던 것이죠. 기습한 일본군은 김식의 말과는 달리 소규모였고, 견내량이 막혀서 춘원포에 상륙할 정도의 대군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경계의 중요성이 정말 강조된 해전이지만 더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죠. 원균이 "이순신의 부하들에게 둘러쌓여" 지휘권을 제대로 못 휘둘렀다고 하지만 이건 선수 탓 하는 모 감독 같은 방식일 뿐 이 전투에서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습니다.
칠천량 해전이라는 말이 공식 명칭이지만, 칠천량에서는 전투가 거의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기껏해야 김완과 적 선봉 2척의 전투 뿐이었죠. 나머지는 춘원포로 가서 도망갔거나 이억기처럼 싸우다 전사했습니다. 이런 면에서 명칭을 춘원포 해전이라고 하거나 아예 임진년에서 하던대로 원균의 2차 출동으로 봐야 될 것입니다. 7월 4일 출동 후 10일 넘는 기간 동안의 일들이었으니까요. 그리고 애초에 이것을 "해전"이라고 불러야 될지도 의문입니다. 조선 수군은 그냥 도망가기만 했으니까요. 일본조차도 그 엄청난 의미에 비해 해전 자체의 전과를 크게 보지 않을 정도면 말 다 했죠.
신나게 치고 들어온 임진년에 비해 정유년에는 가토 기요마사와 고니시 유키나가가 상륙한 후 6개월이 지난 상황에서도 일본은 본토에서 병력이 계속 바다를 건너 와도 딱히 진격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조선 수군이 전멸한 후 적은 단 두 달만에 경상우도와 전라도를 휩쓸고 충청도로 진입, 한양을 노리게 됩니다. 조선 수군이 별 탈이 없었다면 정유재란은 시도도 못 해 보고 일본의 전면 철수로 끝나거나 일어났더라도 경상도, 전라도 일부 지역에 국한되었겠죠. 하지만 조선 수군은 이렇게 전멸했고, 정유재란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사실상 이 전투 아닌 전투가 정유재란을 시작했다고 봐야 되겠습니다.
... 담배를 몇 대 핀 건지... 만약 하늘이 있었다면 조선을 멸망시키려고 일부러 한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런데 두 달 후의 일을 생각하면 딱히 그런 것 같지도 않군요. 사실 원균 같은 인물한테 이 정도로 자세한 조사가 이루어질 필요가 없습니다. -_-; 그런데 원균옹호론의 등장으로 원균에 대한 자세한 연구가 이루어지면서 이렇게 바닥까지 까도 부족할 결과가 나온 거죠. 대체 이런 인물을 왜 옹호하려고 하는 건지.... 춘원포의 정확한 위치가 어디냐는 논란거리 중 하나지만 여기에선 크게 다루지 않았습니다.
"내가 칠천량에서 패한 것은 조선수군이 명량에서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다!!"
... 유게처럼 한번 달아봤습니다.;;
눈시BB님의 임진왜란 - 정유재란 연재는 잘 보고 있는데 댓글은 처음이네요.
다름이 아니고... 원균이 너무 제 보스와 겹쳐 보여서 칠천량에서 몰살된 조선 수군 병사들에게 감정이입이 심하게 되어서 그렇습니다. 흑흑.
그럼, 좋은 글 써주셔서 새삼 감사드리고 마지막까지 건필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저도 끝까지 뒤에서 응원하겠습니다.
맹장이다 -> 지휘관이 맹장이어봤자 무슨필요냐. 나이 40~50먹고 앞에 나가서 무기 휘두를거냐.
권율의 압박으로 어쩔수 없었다. -> 물론 권율의 책임도 어느정도 있을수도 있다. 그리고 선공하려면 점진적인 진격밖에 없을텐데, 가덕도 내에 주둔하고 있는 일본군을 격퇴하기엔 힘들수 있다. 그래서 권율에게 요청했을수도 있다. 실어날라준다고 했을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적어도 적의 기지 한복판에 들어갔으면 경계 등 습격당할떄의 상황에 대비책이라도 세워야하는데 술쳐먹고 뻗어있다? 적진 한복판에서? 이게 지휘관이냐.
뭐 대충 이런느낌? 옹호를 최대한으로 해봐야 당시의 일반적인 장수들 수준이였다. 정도밖에 안되는 인물이 원균이죠. 물론 그 일반적인 장수들은 수도없이 도망간 그분들. 뭐 적어도 원균은 아주 소수일지언정 자신의 병력을 이끌고 이순신과 합류해서 전쟁을 수행하긴 했으니까 그들보다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칠전량해전으로 뭣도 없죠.
눈시bb님의 글을 보면서 원균이란 정말 대단한 사람이구나 를 느낍니다
우선 진짜 아무런 능력도 없는데 도대체 어떻게 통제사까지 간건가
통제사위치에서 그렇게 털리면 소위 쫄려서라도 방어만 할텐데
칠천량에서 제대로 파악도 못하고 전멸한거나
그렇게까지 털어먹엇는데도 왕한테 실드 받앗다는거
정말 대단한 듯 합니다
또한 예나 지금이나 머리가 멍청하면 몸이 죽어나는것도 어찌이리 똑같을수가..
원균은 수군이 워낙 강하니깐 자신이 맡아서 별일 하지 않아도 통제사의 위치를 유지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을 겁니다. 게다가 왜군은 조선수군만 보면 벌벌 떨며 도망가던 시기였으니까요. 그러면 자신은 강력한 조선 수군의 대장이라는 완장으로 폼잡으며 살 수 있었죠.
반면에 선조는 조선수군의 강력함 때문에 일본이 정유재란을 성공시키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을 겁니다. 어차피 전쟁을 길어지지 않을 것이니 유능한 이순신을 계속 그 위치에 두는 것 보다는 어떤 꼬투리를 잡아서라도 일단은 내려 놓고 그 자리에 자신에게 아부 잘하고 무능력한(결국 위협이 되지 않는)원균을 심는 것이 '자신에게' 안전하다고 생각했겠죠. 선조는 결코 원균이 유능하다고 생각해서 그 자리를 준게 아닐겁니다. 오히려 무능하니깐 손쉽다 생각했겠죠. 다만 '무능해도 이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것이 선조의 가장 큰 실수였던거죠.
결론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국가의 안위보다 자기 자리의 안전을 중요시 하는 지도자치고 나라살림 잘하는 놈을 못봤다는 것과, 완장 욕심 내는 놈 치고 유능한 놈 못봤다가 되겠습니다;;
이억기가 수군통제사에 올랐으면 칠천량에서의 붕괴를 막을 수 있었을까요?
왕가의 종친이었기에 수군통제사에 부임하는 건 불가능했겠지만,꽤 훌륭한 장수란 생각이 들어서요.
20세의 나이에 무과합격. 탄핵위기에 몰렸던 충무공을 끝까지 변호해줬고,
칠천향해전때도 원균의 지휘에 계속적으로 반론을 제기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도망치지 않고 결사항전한 몇안되는 조선군지휘관으로 알고 있는데..
이억기장군을 볼때면 저평가받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네요.
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이번 임진 및 정유재란 시리즈는 그렇게 푹 빠져 읽고있으면서도 처음 댓글을 남깁니다.
술 한잔 걸치면서 읽으니.... 그 감정이입이 장난이 아니네요...
칠천량 해전에서 원균의 삽질은 정말 헛웃음 밖에 안나오지만
이억기 전라우수사를 비롯한 너무 많은 수군의 목숨이 사라져갔다는 것에 참 가슴이 아픈 대목입니다...
이를 통해 조선백성 즉 우리의 선조(광해군 아버지 그 선조 아닙니다...)가
너무 많은 고통을 받았다는 것에 더욱 원균이 미워지는 순간이네요...
그런데.... 그런데.... 그 '두 달 후'에 그 분이 믿기지 않는 일은 만들어 내시니... 이거 참....
통상어른 '빠'로써 칠천량 에피소드는 너무나 드라마를 만들어서요...
눈시BB님께서 잘 설명해주시겠지만...
완전체의 장수→누명→악역이 처참히 말아먹음→아픈몸 이끌고 복권...그러나 암담한 상황→믿기지 않는 승리→최후의 전투에서 전사
이런 프로세스는 아무리 잘 포장한 어떤 극으로 만들어도
'뭐야 이런 현실성없는 영웅 스토리는??????'
딱 이렇게 욕먹을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