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그렇게 되물었다. 그것은 내가 들고 있는 책에서 주인공이 겪고 있는 상황이었다. 어린 나는 처음 보는 단어였다. 내가 그리 똘똘한 아이였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이 종이를 오리는 가위와는 다른 것이라고는 직감했다.
"음 그러니까 말이지."
어머니는 설거지를 하던 손을 멈추고 잠시 서성이다, 곧 고무장갑을 손에서 뺐다. 그리고 냉장고로가 오렌지 쥬스를 꺼내는 것이었다.
"설탕 넣어주세요."
"몸에 안 좋아. 그냥 마셔."
"너무 셔. 너무 셔!"
"안돼."
"조금만.."
그래도 설탕의 첨가 여부와는 상관없이, 나는 어머니와 테이블에 앉아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즐거웠다. 어머니는 내가 질문을 할 때 명쾌히 설명해주는 편은 아니었다. 오히려 횡설수설 할 때가 많았다. 그나마도, 오렌지 쥬스를 꺼내며 번 시간을 통해 간신히 생각한 거였다. 자랑은 아니지만 어머니는 저학력에, 명석한 여자도 아니었다. 그러니 미련없이 나와 자신을 버리고 도망갈 남자를 만났겠지. 그렇지만 한번도 '모른다'고 잘라 말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책을 읽다가, 모르는 단어가 나오는것이 난 곤란하지 않았다(어머니는 곤란했겠지만). 그건 내게 소중한 어머니와의 시간을 의미했다.
"아무튼.. 혹시 네가 가위 눌림을 당하면 말이야."
"응"
"발가락을.. 꼼지락 거리면 돼."
"뭐?"
"그게.. 가위에서 풀리는 법이야."
"에이.. 발가락이 무슨 소용이야."
"너 엄마 말 안 믿어? 책에 진짜 그렇게 써 있어!"
"에이.."
그렇게 말 했지만 나는 분명히 기억했다. 가위에 눌리면 발가락을 움직여라. 몸 끝을 움직여라. 그러면 풀린다. 그러면 풀린다. 어린 나는 분명히 기억했다. 아마도, 그때 정확히 기억했기 때문에 지금 곧 바로 기억이 나는 것일테다. 가위에 걸린 지금 이 순간에도. 내 몸은 차갑게 굳어있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는 내 배 밑에서 스멀거렸다. 발가락을 움직여야 한다는 사실이 기억난 것은 다행이었다.
하지만 뒤늦게야 기억한 것도 있다. 한달에 한번은 어머니가 일하지 않는 날이 있었다. 드문 일이었지만, 그래서 더욱 기다려지고 기쁜 날이었다. 그 때 주로 피크닉을 가곤 했다. 그런데 집주인의 히스테리가 심해졌던 여름 즈음에 몇번이나 그게 미뤄졌다. 그래서 더위가 가실 즈음에, 어머니가 말을 꺼내자 너무나 놀랐다. 어린 나는, 그 몇달간 너무나 절망해서 사실 포기했던 차였다. 그 아쉬움을 표하기 위해 나는 어머니에게 "기억이 안 날 정도였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지금부터 하는 얘기는, 정말 지금에야 기억난 것이다.
그날 나는 어머니와 조금 멀리 피크닉을 가기 위해 새로운 버스에 올랐다. 별 거 아닌 일이지만, 내게는 참 신나는 일이었다. 새 버스도, 새 여행도. 하지만 그 버스는 그리 멀리 움직이지도 않아 크게 흔들렸고.. 어머니와.. 내 발을 떠나 보냈다. 그렇다. 난 발이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발의 흔적은 남아 있다. 그래서 의족을 달아 놓았다. 그렇지만 그게 내 발은 아니지 않는가. 나를 돌봐준다고 그 여자가 내 어머니일 순 없듯이 말이다. 하물며 발가락이야. 이따금 바디 이미지(body image)에 의해 착각을 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건 뇌의 착각이다. 아니, 착각이라도 좋으니 꼼지락 거릴 수 있다면 좋겠다. 하지만 없다고 인식한 발을 꼼지락 거릴 만큼 넉살이 좋지는 않다.
그러면 발가락 대신 다른 걸 움직여 볼 순 없을까. 예를 들면 손가락. 원래 인류가 네발로 다니던 시절엔, 이 녀석도 발가락의 정체성을 갖고 있었을테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인간이 이족 보행을 하게 되면서, 앞다리는 손으로 승격했고, 손가락도 고상해졌다. 그리고 그 자식의 손가락도, 자식의 자식의 손가락도 계속 손이었지, 발가락인 적은 없었다. 불공평하다. 발가락도 맛있는 음식, 보석, 부드러운 옷깃을 만지작 거리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원히 그들은 땅바닥에 맨몸 박치기를 할 뿐이다. 운명의 장난 혹은 누군가의 필요에 의해서. 하지만 고대의, 아니 종 이전의 기억마저 불러서 혼을 담아 손가락도 발가락처럼 취급하면 내가 이 빌어먹을 가위눌림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나는 그리 명석하지 못했던 어머니를 닮았나 보다. 이제서야 내 손도 없다는 걸 기억해낸 걸 보면. 나는 다시금 사고의 순간을 기억했다. 버스가 멈추는 순간 나는 앞으로 크게 튕겨져 날라갔다. 몸은 도저히 움직일 수 없었지만 나는 엄마를 찾았다. 소리를 쳐 보려 했지만 개미가 지르는 비명만도 못했다. 그러다 눈 앞에 빛이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나중에 듣기로는 곧이어 불이 났다. 다행히 내가 그리 긴 시간 화재에 노출된 건 아니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구조의 속도를 높여야 할 이유가 되었고, 요령 없이 구겨진 차내에서 꺼내면서 몸에서 튀어나온 부분들이 상했다. 손과 다리가. 그렇다, 손도 못 쓰는 것이다. 죽음을 넘나드는 순간에서 손과 발은 공평했다. 흥미롭게도.
다만 내 배 밑에서 어느새 가슴까지 치고 올라온 무언가는, 여전히, 전혀 흥미롭지 않았다. 단지 희미하게 허여멀건한 정도였던 무언가는 어느새 가늘게 내뱉는 흐느낌을 머금은 채 치고 올라오고 있었다. 귀신일까? 죽음일까? 어머니일까. 아니다.. 어머니는 아닐거야. 그녀는 날 혼낸 적 조차 없다. 언제나 내편이었고, 언제나 날 사랑했다.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날 겁줄리 없다.
하지만 어쩌면 어머니일지도 모른다. 그녀나 내가 자신이 처한 한심한 상황에서 기어나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 요단강을 넘어서 찾아 오면, 아마 끔찍한 몰골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어머니는 보고 싶지 않다. 날 찾을 어머니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나는 해맑게 웃던 어머니면 충분하다. 그리고 이런 내 모습을 보여주기도 싫다. 그냥 저세상에서 내가 행복히 산다고 믿어 줬으면 좋겠다는게 솔직한 심정이다. 어머니도 이런 내 마음을 이해할 것이다.
그러니 아마도 내게 다가오는 무언가는 다른 녀석일 것이다. 그냥 귀신이거나, 죽음이거나 그런 것일 게다. 정중하게 둘다 사양이다. 꺼지라고 외치고 싶지만 입은 움직이지 않는다. 꺼져! 꺼져! 여전히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손도 발도 없는 몸뚱아리로 이렇게 벌벌 떨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이걸 풀 수 있을까.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가위눌림이 풀리면 뭐 어쨌단 거지? 가위에서 풀리면, 나는 잠이 깰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도, 손도, 발도 없는 몸뚱아리로 나는 살아가야 한다. 떠나 보낸 것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새로운 것도 찾아오지 않는다. 너무 비관적이라고 욕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그동안 그랬으니까. 확정되지 않은 미래에 기대를 걸어 보라고? 물론, 나도 조금의 기대는 걸고 있다. 하지만, 집나간 아버지 대신 생활 보조금으로, 눈물 범벅으로 굽신 거려야 겨우 유지되는 몇평짜리 공간 안의 행복도, 평생 본 적 없는 버스 운전자의 실수로 날아갈 수도 있는게 미래이다. 앞으로의 미래라고 그러지 말란 법 있을까? 더한 고통도 얼마든지 가능한게 미래다. 처음 겪는 이 가위눌림이 나는 몹시 불쾌하다. 코 밑에 까지 올라 왔다. 괴롭다. 너무나도 무섭다. 고통스럽다. 그렇지만, 그게 뭐 어쨌단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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