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1/03/17 21:21:38
Name 눈시BB
Subject [일반] 후삼국 이야기 - 완. 놈놈놈, 열정의 시대
황산벌-평양성으로 본 삼국시대 말기 3부작
1. 평양성, 연개소문 https://pgr21.co.kr/?b=8&n=27216
2. 황산벌, 백제의 멸망 https://pgr21.co.kr/?b=8&n=27251
3. 매소성, 신라의 승리 https://pgr21.co.kr/?b=8&n=27377

후삼국 이야기
0. 후삼국, 삼국의 잔상 https://pgr21.co.kr/?b=8&n=27429
1. 굵직한 사건들 https://pgr21.co.kr/?b=8&n=27527
2. 후삼국의 명장들 https://pgr21.co.kr/?b=8&n=27607
3. 장보고의 후예 https://pgr21.co.kr/?b=8&n=27682
4. 미륵의 시대 https://pgr21.co.kr/?b=8&n=27711
5. 용 사냥꾼 https://pgr21.co.kr/?b=8&n=27735
6. 최후의 승자 https://pgr21.co.kr/?b=8&n=27778
7. 일리천, 호족시대의 끝 https://pgr21.co.kr/?b=8&n=27799

1. 놈놈놈
미국의 학자 허스트 3세는 The Good, The Bad, The Ugly라는 논문을 쓴 적이 있습니다. 후삼국시대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 논문인데요. 여기서 그는 이 세 영웅 중 그 누구도 기록에서 나온 것처럼 성스럽거나 추악하지 않았으며, 역사서가 쓰일 바로 그 시점에서 필요한 배역을 맡았다고 했죠. 에 그러니까 놈놈놈입니다. 그냥 출생만비교해 볼까요?
왕건 - 조상 중에 중국, 신라, 용왕-_-;까지 연결돼 있고 태어나기 전부터 도선대사의 예언대로 왕이 될 운명이었습니다. 궁예가 포악해도 충성을 바친, 유비와 비교할 만한 인의의 화신이죠. The Good, 선인, 좋은 놈의 역할입니다.
견훤 - 호랑이의 젖을 먹었다느니 지렁이의 자식이니 하면서 나름 영웅적인 전설을 가지고 있죠. 능력은 있었을지 모르되 신라를 핍박한 나쁜 놈, The Bad, 악인의 역할입니다. 그래도 왕건이 능력 없는 놈 이긴다고 하면 그렇잖아요.
궁예 - 태어나면서부터 죽여야 될 저주 받은 운명, 거기다 애꾸죠. 사이비 종교의 교주로 충신을 핍박하고 처자식을 죽인, 능력도 뭣도 없는 그냥 미친 놈, The Ugly, 추인의 역할입니다.

그럼 지금까지 분석해 본 세 영웅의 모습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2. 궁예
단기간에 명주를 장악하고 몇 배의 병력을 가진 김순식이 귀부한 모습, 이후의 쾌진격을 보면 그에게 큰 비전이 있었음을 말해 줍니다. 단순히 군사적인 역량만으로 삼한의 2/3를 차지할 수 없다는 건 견훤을 통해서도 알 수 있죠. 그만큼의 비전과 능력이 있었다는 겁니다. 왕건의 공이 크다 하나 인재를 잘 활용하는 것 역시 군주의 능력이구요. 사실 그가 사치를 부렸다는 것부터가 의문입니다. 자신을 부처라 일컬은 게 그 혼자가 아니고, 자식들을 불교식으로 이름 지은 것도 그가 처음이 아닙니다. 견훤이 사상적으로 이용했다는 진표 율사의 경우 행차시에 궁예보다 더 거대하게 움직였다고 합니다. 불교가 국교이던 시절이었습니다.
기록이 적어서 그의 개혁이 어땠는지를 당최 알 수 없죠. 그저 추측만 할 뿐입니다. 왕건은 그가 세금을 많이 물려서 세금을 낮췄고, 제도를 마음대로 뜯어고쳤다 해서 신라의 제도로 돌아갔습니다. 이 점에서 그가 급히 개혁을 추진했다는 것을 추측해 볼 수 있죠. 국호를 고려에서 마진, 태봉으로 바꾸는 부분에서 그가 얼마나 급히, 강력하게 정책을 추진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결국 그의 실패 원인은 이런 급한 개혁으로 적을 너무 만들었다는 것일 겁니다. 분명 새 시대로 나아가는 비전이었겠지만 그건 그 때 사람들, 특히 실세인 호족이 받아들이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불교를 이용한 왕권 강화는 당시 호족과 극상이었겠죠. 이런 과정에서 불교계까지 등을 돌려 버렸습니다. 그리고 통일된 지 이백년, 아무리 신라에 등을 돌렸다 하나 궁예가 신라에 대해 보여 준 적의 역시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거구요.
가장 결정적인 건 패서 호족과의 대립이죠. 궁예 정권은 사실상 패서 호족과의 동맹, 연합 정권이었고 그들과의 대립은 커다란 도박이었습니다. 견제를 위해 끌어들인 청주 세력은 자기들끼리 반목했고, 기반이었던 명주는 너무나도 멀었습니다. 914년에 왕건을 관심법으로 협박한 것, 915년에 처자식을 죽인 것은 그게 절정에 이르렀다는 거겠죠. 왕건이 강씨와 정혼자였다는 전설(태조 왕건에서 썼죠), 강씨가 구미호에게 먹혀서 궁예를 희롱했다는 전설, 궁예가 왕건과 강씨 사이를 의심했다는 것... 실제 왕건 가문과 강씨 가문은 친척 관계였다고 합니다. 이 모든 것을 왕건을 중심으로 한 패서의 반발이라고 봐야 된다는 거죠. 쿠테타에서 공신에 오른 장수는 단 11명, 결국 궁예에게 확실히 등을 돌린 세력은 이렇게 소수였습니다. 문제는 이 소수가 실세였다는 거죠.
현 철원과 포천 일대에는 아직도 궁예에 대한 전설이 많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특히 포천 명성산 일대에는 궁예가 숨었다는 궁예왕굴, 왕건과 싸웠다는 야전골, 왕건이 항서를 받았다는 항서받골, 궁예가 패해 도망갔다는 가는 골(패주골)이 있다고 합니다. 궁예가 한탄하였다는 한탄강까지, 궁예는 전설로 아직 살아 있는 겁니다. 이는 사서에 기록되지 않은 무언가를 알려주죠.
또한 쿠테타 후 왕건이 궁예의 흔적을 아예 없애버렸을까도 의문입니다. 그의 후손들이 살아 있기 때문이죠. 바로 지금도요. 현 순천 김씨의 시조 김총, 태조 왕건에서는 견훤의 거병 멤버로 나오죠. 족보에서 그는 청광의 아들, 궁예의 손자로 나옵니다. 그런데 견훤에게서 벼슬을 얻었다고 하네요. 이게 뭘까요? 인가별감은 왕의 가마를 맡는 직책으로 결코 높다고 할 만한 직책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의 이름이 역사에 나온다는 건... 무언가가 있다는 거겠죠? 마찬가지로 광산 이씨의 시조 김경은 궁예의 손자, 신광의 아들로 940년 광산으로 가서 이씨와 결혼, 광산 이씨의 시조를 낳았다고 합니다.
길공구님은 이에 대해 궁예는 나라를 세우자마자 결혼했고, 왕족이 적은만큼 아들들이 어린 나이에 가정을 꾸리게 했을 것이며, 그렇게 해서 손자가 태어나자 후계에 대한 걱정 없이 아들 둘을 죽일 수 있었을 거라고 추측하셨습니다. 왕비 강씨와 친척관계이며 그 정과, 쿠테타의 명분인 궁예가 처자식을 죽인 것 때문에 손자들을 보호했을 거라는 거죠. 이 과정에서 어린 김총은 백제로 탈출하였고, 궁예의 핏줄이라는 명분 덕에 견훤도 보호했을 것이며, 커서 벼슬자리를 주었다는 거죠. 그리고 김경은 왕건의 보호 하에 있다가 940년 내려간 거구요.

순천김씨의 경우 파마다 다르지만, 광산 이씨는 자신의 조상이 궁예라고 확실히 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광산이씨소고에는 궁예가 평강 땅에서 죽었지만 꼿꼿하게 선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고 하며, 이 때문에 부득이하게 그 상태로 묘를 만들었고, 왕후의 예로 장사지내고 연 1회 향사를 올렸다고 적혀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죽음과는 너무도 다르죠.

어느 쪽이 진실일까는 알 수 없습니다. 확실한 건, 이들이 궁예의 손자를 자칭한 것이든 실제였든 당시 궁예의 이름은 결코 죽지 않았으며, 견훤의 후손이 진에서 견으로 바꿔야 될 정도로 탄압받았던 데 반해 크게 탄압을 받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궁예가 지금의 이미지가 된 것은 비교적 후대의 일로 삼국사기를 편찬할 때쯤엔 불교, 유교의 집중 포화로 확실히 추인의 이미지를 확고하게 했을 것입니다.
재미있는 점은 삼국사기보다 궁예가 더 추악하게 그려지는 고려사, 그 고려사를 편찬한 김종서는 순천 김씨이고 판서 이선제는 광산 이씨라고 합니다. 과연 이들의 기분이 어땠을까요? :)

다만 그의 과격한 모습이 단지 꾸며진 것일까는 의문입니다. 기록을 완전히 무시할 순 없고, 정치적으로 고립된 상태에서 그걸 깨뜨리는 과정에서 지나친 모습을 보여주는 군주가 결코 적지 않죠. 혁신과 과격은 종이 한 장 차이겠지만... 적어도 그가 정적들에게 확실한 틈을 준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아무리 정적이라 해도 왕비와 자식들까지 죽이는 모습은 옹호만 해 주기는 어렵죠. 특히 어떻게든 자기 편으로 끌어들여야 할 불교 세력과 결국 멀어진 모습에서는요. 아무튼 비극적인 출생과 그 후에 보여 준 입체적인 모습들은 그를 후삼국시대에 가장 매력 있는 인물로밖에 볼 수 없게 만들어 주죠. 괜히 태조 궁예가 아닌 겁니다. :)

이 점에서 저는 궁예를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었지만 당시 호족 시대에 세세한 부분을 맞추는 데는 역부족이었던 인물로 평가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세상을 바꾸려 했지만 세상의 한계에 덤비다 무너진 인물이라는 거죠.

3. 견훤
아마 제 글에서 가장 이미지가 바뀐 인물이 견훤일 겁니다.
견훤이 백제 출신이라는 생각은 전혀 안 듭니다. 아자개부터가 신라 왕족 출신이라는 떡밥을 내걸었으니까요. -_-; 제 글들 속에서 나온 견훤의 모습을 정리해 볼까요?
일단 그의 거병은 아버지 아자개의 거병에 의한 압박 때문에 급히 한 것으로 봤습니다. 야망과 능력은 있었지만 그런 한계로 자신의 기반이어야 할 나주 지방의 반발을 받았고, 그것 때문에 백제 부활이라는 명분을 강력히 내건 것이겠죠. 제대로 나오지 않지만 궁예와는 달리 10년에 가까운 철저한 준비 기간을 거쳐 왕위에 올랐고, 때문에 궁예와는 달리 전주, 무주 지역에서 확실한 지지기반을 만든 것으로 보입니다. 완산주에 입성하며 왕을 칭할 때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올랐다는 기록을 보면요. 삼한통일을 목표로 한 궁예와는 달리 후백제 내부에서의 왕권 강화에 힘 썼고, 그건 당시를 생각하면 꽤나 세련된 방법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무작정 영토를 늘리기보단 신라를 압박하며 내부를 안정시키는데 주력한 거죠.
하지만 반신라를 외칠 수밖에 없는 백제 계승 명분상 미륵 사상으로 삼한 전체를 이끌려고 한 궁예나 친호족, 친신라를 표방한 왕건에 전략적으로 밀릴 수밖에 없었죠. 그런 가운데에서도 왕건과의 대결에서 보여 준 군사적인 능력은 엄청납니다. 국지전에서 대부분 이겼으며, 유검필 없었다면 왕건이 전쟁에서 이길 수나 있었을지 궁금합니다. 바깥으로는 강력한 야전사령관, 속으로는 전쟁보다 안정에 힘 쓰는 군주의 모습이죠. 진표 율사를 추종하며 불교 세력과의 연계를 꾀했고, 최승우 등 신진 유학자들을 대접하는 데도 힘 썼습니다. 그 때문에 반신라라는 커다란 핸디캡에도 왕건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었던 거죠. 항우와 원소의 모습이 같이 대입되네요.
금강을 후계로 내세운 것은 결국 결론을 내리기 어렵네요. 정말 신검의 무능력, 장자 계승을 무시할 수밖에 없었던 급박한 상황 등으로밖에 볼 수 없겠네요. 왕건이 죽은 후 고려의 왕권 다툼을 보면, 어떤 것이든 정답은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그럼에도 이반한 지역은 애초부터 고려 땅이던 나주밖에 없고 고려에 귀부한 이도 박영규 하나라는 점에서 왕권 강화 자체는 성공하지 않았나 싶네요.
그리고 어쩌면, 정말 그는 고려에 항복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금산사에 유폐된 후 유검필의 나주 탈환 및 견훤의 탈출이 신속하게 이루어진 것을 보면 고려를 그렇게 적대한 것도 아닌 것 같구요. 자기가 할 만큼 했고 한계에 부닥쳤으니 더 이상 백성들 괴롭히지 말고 항복하자... 어쩌면 군인 출신으로서 쿨한 모습을 가지고 있던 건 아닐까요?

이도학씨의 "진훤이라 불러다오"에서는 그가 애초에 진씨였다고 주장합니다. 지렁이 설화 역시 진훤을 경상도 식으로 읽으면 나오는 진훠이와 비교할 수 있다는 거죠. 실제 동사강목에서 그를 진씨라고 했고 그 아들 역시 진신검, 진양검 등으로 나타냈고 결정적으로 완산 견씨 족보에서부터 탄압을 받아서 진에서 견으로 바꿨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의 원래 이름은 진훤이 맞을 듯 합니다. 다만, 지금 그 후손이 견씨로 살아 있는 상황에서 바꾸기는 좀 그렇네요 ^^;

아무튼, 자기 지역에서 확실한 왕권 강화를 했지만 애초에 왕권 강화라는 게 그 시대에 어려웠기에 그 이상을 나갈 수 없었고, 반신라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던 점을 보면 그는 궁예와는 달리 그림의 작은 부분을 그리는 데는 능숙했지만 완성할 수 있는 그릇까지는 되지 못 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4. 왕건
그리고 우리의 주인공 왕건. 그의 가장 큰 힘은 호족 출신이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신라 왕족 출신을 내세운 궁예, 신라의 장수였던 견훤과는 달리 딱히 신라와 연관되지도 않았죠. 때문에 호족들이 원하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그에 맞는 대접을 해 주었습니다. 신라 역시 마찬가지였구요. 때문에 국지전에서 밀려도 전체적으로 우세를 잃지 않았던 거죠. 쿠테타 후 많은 반란이 있었지만 그걸 대신해 많은 호족들이 왕건 편을 들었습니다. 또한 나주, 강주의 해상 세력 및 불교 세력을 최대한 이용하고, 그러면서도 최치원, 최언위 등 유학을 받아들이는 것도 소홀히 하지 않았던 인물입니다. 옛 세력과 새로운 세력을 조화롭게 이용한 거죠. 궁예처럼 큰 비전도, 견훤처럼 꾸준한 왕권 강화도 없었지만 결국 그 시대에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알았던 거죠.

이런 점에서 저는 왕건을 다른 두 인물과 비교해서, 당시 사람들의 취향을 잘 이해했고, 그림을 완성시킬 능력이 있는 인물로 평가하고 싶습니다. 이상보다는 현실, 그림을 완성시키는 게 우선이었던 시대라는 거죠. 다만 그 때문에 시대의 한계를 깨뜨리고 새 그림을 그리는 건 후대로 넘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왕건이 한 것은 우선 그림을 완성시킨 것 뿐이었죠. 하지만 당시 어지럽던 시대, 그 한계 때문에 그 공을 폄하할 순 없습니다.

5. 열정의 시대
전국시대는 따지고 보면 비극의 역사입니다. 같은 민족끼리 싸우고 백성들은 힘들죠. 힘 있는 놈들은 그런 백성들을 이용만 할 뿐입니다. 중국의 삼국시대가 얼마나 힘든 시대였는지는 당시 밝혀진 인구수로 알 수 있고 일본의 전국시대 역시 백성들에게는 힘든 시대였습니다. 그냥 막장이죠.
그럼에도 그 시대들이 인기가 있는 건, 그런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그 어느 시대보다 자신의 꿈을 위해 뛸 수 있었다는 점 때문일 겁니다. 못 생긴 환관의 손자라도, 귀만 큰 돗자리 장수라도 야망을 가질 수 있었고, 바늘이나 팔던 원숭이 한 마리가 천하를 차지하기도 합니다. 물론 그러면서도 천하의 주인은 사마씨에게로 돌아가고, 에도 시대가 전국시대보다 더 폐쇄적이 된 것처럼 현실의 한계를 알 수밖에 없는 시대기도 하죠.

후삼국시대도 그렇지 않을까 합니다. 일개 장수가 왕을 외치고, 신라 왕족이라고 자칭하는 애꾸가 삼한의 주인이 될 뻔 했습니다. 결국 당시 한계에 부닥쳐서 망하긴 했지만, 이렇게 자신의 열정을 펼칠 수 있는 시대이기에 우리가 지금도 기억하고 추억하는 게 아닐까요? 정통성을 위해 선인, 악인, 추인의 역할을 뒤집어 씌우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런 인물들 하나하나에 애정을 가지고 볼 수 있는 거죠.

-------------------------------------------------------------------------------------------

이상 후삼국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 욕심만 많다 보니 글이 갈수록 길어지네요. 쓰다 보니 너무 큰 사건이 벌어져서 계속 써야 되나 싶었는데... 일단 마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나름 속도를 올려보았습니다. 지금까지 재밌게 봐 주신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이렇게 인터넷에서 길게 글을 써 본 적은 처음이네요.
쓰면서 생각한 게, 역사가 승자의 것이라는 건 틀리다는 겁니다. 분명히 승자의 논리로 쓰였겠지만 그 이면을 철저히 탐구하는 게 역사입니다. 분명 기록의 한계로 100% 그 때를 되살릴 순 없지만 그걸 위해 노력하는 게 역사죠.

임진왜란을 쓰려고 했는데... 지금 상황에서 일본과의 이야기를 다루기가 좀 꺼려지네요. 다른 주제를 찾든가 상황이 다 끝난 후에 시도해 봐야 될 듯 합니다. 그럼, 다음 글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TheWeaVer
11/03/17 21:26
수정 아이콘
선 리플 후감상이요 크크크
지금까지 재미있는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김재진
11/03/17 21:29
수정 아이콘
후삼국 이야기가 끝이 났군요..
다음에도 재미있는 글 부탁드립니다.
아우구스투스
11/03/17 21:32
수정 아이콘
정말 잘 봤습니다. 항상 잘 읽고 있고 다시 한번 후삼국 시대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태조 왕건도 다시 보고 싶지만 압박이 심하긴 하군요.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다음 작품도 기대하겠습니다.
11/03/17 21:33
수정 아이콘
잘 봤습니다! 덕분에 왕건도 다시 잘봤어요 흐흐 다음 글 기대하고 있습니다!
장님버드나무
11/03/17 21:55
수정 아이콘
개인적으로 궁예에 대해서는 꽤 비판적인 입장인데요, 영리하고 순발력이 있으나 그릇 자체가 작았던 인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왕건처럼 명문가에서 태어나 제대로 교육받았다면 '교주'같은 것이 아닌 좀더 그럴하게 변신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Je ne sais quoi
11/03/17 22:39
수정 아이콘
수고하셨습니다~ 임진왜란 이야기 기대하고 있으니 곧 시작해주세요~ ^^
저는 왕건이 시대에 순응을 잘 한 인물이었지만 그것 때문에 고려는 시작부터 한계가 너무 명확했던 게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물론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는다는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왕조의 개척자들이 그래도 전 시대의 문제점을 어느 정도는 깨뜨리면서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야 하는데 왕건은 그냥 혼란만 수습했던 것 같네요. 특히 훈요십조를 보면 더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갑자기 든 생각인데 그럼 견미리씨는 견훤의 후손인가요? ^^;;;
루크레티아
11/03/18 00:20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드디어 대망의 '호족시대'가 막을 내리는군요.
저는 개인적으로 눈시BB님의 글을 읽으면서 오히려 예전에 제가 말씀드린대로 궁예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를 가졌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후삼국에 대해서 깊이 있는 글을 읽으며 생각을 오래도록 해본 적도 처음이군요. 견훤이야 뒤로 놓고 보더라도 가까운 일본사에서 흔히 말하듯 전국시대에서 노부나가가 쌀을 빻고 히데요시가 반죽하여 떡을 만들어서 이에야스가 먹었다는 이야기에 대입을 해보자면 궁예가 열심히 쌀을 빻았다면 왕건은 반죽해서 먹은 것까지 한 번에 처리했다고나 할까요?

결론은 상대적으로 저평가 받았던 궁예지만, 노부나가 수준으로 신라의 땅을 해체하고 재정립시킨 공은 있다고 봅니다. 물론 결론적으로 보자면 히데요시와 이에야스의 능력을 모두 갖춘 왕건의 승리지만 말이죠.

다음 주제가 어떻게 될런지는 모르겠지만, 기대하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무한낙천
11/03/18 16:45
수정 아이콘
그동안 정말 재밌게 잘봤습니다~
후삼국시대를 소재로한 드라마나 영화 또는 소설
재밌게 하나 나왔으면 좋겠네요~
담배피는씨
11/03/21 15:14
수정 아이콘
재미있게 잘봤습니다..
드라마로 볼 때와는 다른 느낌이더라구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27860 [일반] 원전사고초기 미국제안을 거절한 일본정부 결정이 나름 최선이었단 생각도 드네요 [93] muesli9791 11/03/18 9791 0
27859 [일반] MBC <스타 오디션 위대한 탄생> 16화 중계 불판 [중계 종료] [131] 케빈제이6587 11/03/18 6587 0
27858 [일반] 사형... 집행해야 할까요? [35] sisipipi5266 11/03/18 5266 0
27857 [일반] 한국시리즈 우승당시 해태 타이거즈의 타선은 어떠했을까? [19] 페가수스5659 11/03/18 5659 0
27856 [일반] 챔스 8강 대진 확정 ! 앞으로를 예상해봅시다 [41] 반니스텔루이5833 11/03/18 5833 0
27855 [일반] [야구] 올시즌 SK 전력이 그렇게 까지 떨어졌을까? [26] 옹겜엠겜5131 11/03/18 5131 0
27854 [일반] 이제 몇시간후면 시작합니다 [134] cs11273 11/03/18 11273 0
27853 [일반] 조재진선수 은퇴 [7] 삭제됨7085 11/03/18 7085 0
27852 [일반] [기사] 자살을 종용받았던 미네르바, 박대성씨 [107] 블레이드10831 11/03/18 10831 0
27851 [일반] 뇌가 짐승인 아이들 [36] 국제공무원9109 11/03/18 9109 0
27850 [일반] 가슴 설레이는 어린시절 추억 Best 50 [41] 김치찌개7658 11/03/18 7658 0
27849 [일반] [AFC챔스] 조별리그 2라운드 K리그팀 스윕 - 동영상 재중. [8] LowTemplar3743 11/03/18 3743 1
27848 [일반] [챔피언스리그] 8강 진출팀들의 우승 배당률!! [13] 신밧드5219 11/03/18 5219 0
27847 [일반] 제 2의 카를로스가 아닌, 제1의 마르셀로 [11] 라울리스타5635 11/03/18 5635 0
27846 [일반] [Fm] 개초보의 FM이야기 - 12부 리그 [24] 잠잘까10680 11/03/18 10680 1
27844 [일반] 해를 보면 재채기가 난다. [23] 츄츄호랑이6894 11/03/17 6894 1
27843 [일반] [역사]고고학이 죽었습니다. [40] 나이트해머6884 11/03/17 6884 1
27842 [일반] 걸그룹 걸스데이의 신곡 '반짝반짝'의 뮤직비디오가 나왔네요^^ [8] 세뚜아4214 11/03/17 4214 1
27839 [일반] [야구] 올 시즌 프로야구 순위 간단 예상 [95] 독수리의습격7559 11/03/17 7559 0
27838 [일반] 후삼국 이야기 - 완. 놈놈놈, 열정의 시대 [20] 눈시BB7805 11/03/17 7805 4
27837 [일반] 도대체 어디를 위한 정부인가요? [41] 아우구스투스6566 11/03/17 6566 0
27836 [일반] [호들갑] 인천공항 방사선 검출 [48] kurt7817 11/03/17 7817 0
27835 [일반] [음악계층]Justice의 신보 Civilization. [7] Observer_3814 11/03/17 3814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