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서/푸른꽃님 작성.
원문 링크
http://litale.co.kr/faeryrover/41846
일단 글을 쓰기에 앞서서 문제를 하나 내보겠습니다.
- 다음의 문장을 읽고, 어느 장르소설에서 나오는 용어인지를 구분해보시오.
※ 그녀는 비로소 그녀를 속박하던 마법에서 풀려났다.
과연 이 문장을 어느 장르소설의 문장이라고 추측하셨습니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문장만 가지고는 딱히 어느 장르의 소설이라고 확정지어 말하기 어렵습니다. 왜냐면 이 표현 자체가 거의 모든 장르의 소설에서 빈번하게 사용되는 관용적 표현과 겹쳐져 있기 때문입니다. 좀 더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1) 그녀는 비로소 그녀를 속박하던 마법에서 풀려났다. (판타지소설)
2) 그녀는 비로소 그녀를 속박하던 마법에서 풀려났다. (로맨스소설)
3) 그녀는 비로소 그녀를 속박하던 마법에서 풀려났다. (성장소설)
똑같은 문장이지만, 어떤 장르에 들어가느냐에 따라서 문맥의 의미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1)의 경우, 이 의미는 여자에게 걸려있던 마법이 디스펠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2)의 경우는 그녀가 안고 있던 연애의 장애요소가 제거되었다, 혹은 거부되었던 연인의 사랑을 받아들였다고 읽을 수 있으며, 3)의 경우 소녀에서 어른으로 성장했다고 읽을 수 있습니다.
똑같은 문장인데, 이렇게 다르게 읽힐 수 있는 이유는 언어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특성때문입니다. 언어의 의미는 기본적으로 ‘단어’와 ‘의미’가 1:1로 연결되는 관계가 아닙니다. 이것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동음이의어와 관용적 표현이죠. “손을 씻다”라는 표현이 일반적으로는 수돗가나 화장실에서 쓰이는 말이지만, 조폭영화에서는 전혀 다른 의미로 쓰일 수 있는 것입니다. 똑같은 문자, 문장이라고 하더라도 말하는 상황과 집단에 따라서 의미는 전혀 다르게 읽힐 수 있다는 거죠. 위의 문제는 대표적인 실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언어학에서는 ‘문맥적 의미론’ 혹은 ‘화용론’이라고 부릅니다.
한가지 더 예제를 들어보겠습니다.
- 다음 괄호안에 알맞은 어휘를 넣어보시오.
※ 그녀는 내게 ( )을 날렸다.
괄호에 다음과 같은 단어가 들어갈 경우 이 문장이 어떤 장르에 소속된 소설의 일부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1) 그녀는 내게 (미소)를 날렸다. (???)
2) 그녀는 내게 (파이어볼)을 날렸다. (판타지 소설)
3) 그녀는 내게 (사테라이트어택)을 날렸다. (스페이스오페라)
4) 그녀는 내게 (장갑)을 날렸다. (중세 로망스)
5) 그녀는 내게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렸다. (시트콤)
1)의 경우 이 문장만 보고는 당최 어떤 장르인지 알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2),3),4),5)는 이것이 어떤 장르인지 괄호안의 바로 그 단어 때문에 어느정도 유추가 가능합니다. 위의 첫 번째 문제와는 전혀 다른 상황입니다. 여기서 ‘괄호안의 어휘’는 장르의 특성과 연결된 ‘단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 단어 때문에 앞뒤문맥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대충 유추할 수 있겠죠. (예를들면 2)의 경우 ‘그녀’의 클래스가 마법사였다는 점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이런 특정 장르의 특성을 문맥적으로 모두 보여주는 이 어휘를 ‘클리셰’라고 합니다. 예, 이 용어는 아주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클리셰는 영화에도, 소설에도, 게임에도 쓰이는 범용적인 어휘이지만, 사실 클리셰의 정의를 정확하게 규정하면 ‘한 장르의 문법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고, 의미가 고정되어있는 관습적 표현’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로맨스 영화에는 ‘비가 내리고’, ‘손수건’을 건네주는 등의 장면들이 모두 로맨스의 고전적 클리셰입니다.
구조주의언어학과 화용론
자, 그러면 이제 좀 더 깊이 들어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지금부터 이야기하는 내용은 불가리아의 구조주의 언어학자인 츠베탕 토도로프가 그 유명한 <환상문학서설>에서 정리한 내용을 제가 장르소설의 실정에 맞게 재구성한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판타지소설 이론이나 평론에 밥먹듯이 등장하는
토도로프의 <환상문학서설>이지만, 정작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토도로프의 <환상문학서설>은 사실 소쉬르부터 시작된 프랑스 구조주의의 전통을
통째로 이해하고 있지 않으면 당최 어떤 이야기인지 이해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는 롤랑 바르트의 제자였고, 후기구조주의에서 화용론은 문학에 적극적으로 도입한 학자입니다.
‘화용론’이라는 것은 언어학에서 언어의 문법과 발화자 집단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이 화용론적, 맥락적 언어학은 랑그와 빠롤의 관계, 쉽게 말해서 언어와 의미 사이의 관계에 대해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가 사용되는 그 정황과 집단의 관습에 따라 언어의 의미가 어떻게 고정되는지를 연구합니다. 토도로프는 기본적으로 이런 구조주의 언어학에 출발하여 장르소설의 이론을 고찰한 학자입니다. 본 글의 1부에서 소설의 내적 형식이 하나의 ‘규격’이 형성됐다고 말한다면, 그 규격의 형식은 하나의 ‘문법과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가정합니다. 우리가 쓰는 문법에는 ‘주어’ / ‘서술어’ / ‘목적어’ / ‘보어’ 같은 의미가 있는 것 처럼 소설의 내러티브에도 똑같은 필연적 주술관계가 성립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1부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판타지소설에서 ‘모험’과 ‘퀘스트’가 수반되고 ‘현자의 조력자’가 등장하는 것은 판타지소설의 전체 ‘문법’에서 필요한 위치에 그 인물이 설정돼있고 이 위치는 고정된 위치라는 것이죠. 즉 <반지의 제왕>에서 간달프의 위치에 다른 인물이 설정되려 한다면 ‘대마법사’라는 인물의 특성이 반드시 반영돼야한다는 겁니다.
형식주의 비평과 구조주의 비평 모두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러시아 문예이론가 블라디미르 프롭의 민담형태론에 의하면,
신화, 민담에는 일정한 구조와 공식이 정해져있으며,
각 역할을 맡은 인물들은 반드시 그자리에 있어야합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위치해야하는 인물은 그 인물의 역할을 보여주는 특정한 '기믹'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설정 자체를 하나의 ‘문법론’이라고 상정할 수 있다는 것이 구조주의 문학론의 기본 골자입니다. 우리가 영문법을 배울때 3형식에서 주어+동사+목적어 로 굳어지듯이 문학에도 이런 것과 똑같은 규칙이 숨어있다는 거죠.
기존의 구조주의 이론은 이렇게 온전한 작품의 내적 형식을 하나의 문법론으로 사용하여 그 장르의 문법을 연구하는 데에 골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토도로프는 바로 위에서 말한 ‘문법 이외의 것’, 관용적 표현으로 볼 수 있는 문맥의 의미를 처음으로 끄집어낸 언어학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소위 말하는 본격 문학보다는 ‘장르소설’에서 훨씬 강력한 집단관계를 가지고 나타난다고 주장합니다.
장르소설의 ‘문법’
장르소설은 ‘문맥적’으로 아주 강한 문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컨대 동원되는 클리셰가 아주 고정적이라는 것입니다. 위에서 말씀드렸지만, 클리셰라는 것은 그 장르에만 사용되거나 통용되는 어휘이기 때문에, 의미가 굉장히 확정적입니다. 장르소설은 기본적으로 이들의 클리셰의 문법을 바탕으로 구축됩니다. 그래서 장르소설작가가 되려면 장르의 문법을 ‘공부해야’합니다. (여기서 공부가 꼭 암기와 학습의 의미만을 가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를테면 마법사가 가지고 있는 몇 가지 덕목과 중요한 특징들과 그 장르클리셰로 사용되는 마법의 서클, 클래스, 파트 종류들의 문법을 이해해야합니다. 이것은 작가도, 독자도 마찬가지로 학습해야하는 부분입니다. 대표적인 장르가 바로 판타지와 무협지겠지요. 이 맥락에서 보자면 뒤치닥의 ‘괴작’ <투명드래곤>은 이 굳어진 판타지소설의 문법을 컬트적으로 파괴하면서 익살을 연출한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사실 패러디 소설의 특징은 원작이 가진 클리셰의 파괴에서 출발합니다.<코스믹 반디토스>나 <멋진 징조들>도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죠.) 그만큼 장르소설의 문법은 매우 견고합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장르소설의 진입장벽이 타소설에 비해서 높다고 말할 수 있는 겁니다. 문법공부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정확하게 이 문장과 이 문단이 어떤 의미를 의도하고 작성되었는지 파악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클리셰는 바로 그 장르에서만 사용되는 단독적 ‘언어학’ 혹은 ‘문법’이기 때문이죠. 그러므로 장르소설은 독자에게 ‘문법’의 독해를 요구합니다.
저는 이 글에서 이 장르문법이 ‘읽히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할까 합니다. 이것은 ‘소설이 읽히는 방법’과는 조금 다릅니다. 소설이 읽히는 방법은 어떤 주제나 메시지를 찾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건 작품의 내적 형식을 분석하는 것이 되지만, 그 작품의 ‘문법’이 독자의 팬덤에게 어떻게 읽히는가를 바라보는 것은 작품의 의미론적 영역이 아니라 ‘화용론적’영역이기 때문입니다. ‘문법’이라는 것은 언어가 가지고 있는 완벽한 내적 규칙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를 사용하는 집단이 하나의 규칙으로 합의한 결과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문법은 역사적으로 조금씩 변화하죠. 장르클리셰도 마찬가지입니다. 즉, 정리해서 말하자면 작가는 하나의 장르클리셰와 문법을 바탕으로 소설을 창작을 하고 독자는 문법을 해독합니다. 그리고 이 문법론이 합의되는 과정에서 ‘문법을 이해하고 장르언어를 해독하는’ 언어사회가 팬덤이라는 규정이 가능합니다.
경소설의 팬덤
자, 맨 위에서 나온 예시를 다시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떤 팬덤이냐에 따라서, 앞 뒤에 어떤 문맥이 들어가느냐에 따라서 소설의 장르가 규정될 수 있음은 위에서 살펴보았습니다.
즉, 장르문법의 화용론적, 문맥적 의미를 규정하는 것은 단어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의미가 아니라, 어떤 그 문법을 공유하고 있는 특정 독자층, 즉 팬덤의 독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팬덤의 문법을 공고히 하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예를들면 판타지소설에서 나오는 ‘드래곤’이라는 단어 (이것은 용으로 번역하지 않죠), 혹은 SF소설에서의 ‘뇌집파’라든가 하는 단어들이 그런 것들이겠지요.
대표적인 하드SF 소설인 그렉 이건의 <쿼런틴>에서 양자역학의 확산과 수축, 관찰이라는 것이 가진 과학적 클리셰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이 작품은 사실상 과학서로 읽어야하는 책이 됩니다. 즉, 작가는 독자에게 장르문법의 이해를 가정하고 작품을 창작해나갑니다. 그리고 장르독자들은 그런 문법의 기대치를 가지고 작품을 해독합니다. 문법규약과 팬덤사이의 관계에 대한 것은 사실 여기서 말하기는 상당히 복잡합니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더 깊이 들어가면 좀 어려운 이야기가 되니깐, 여기서 끊겠습니다.
하드SF의 명작으로 꼽히는 <쿼런틴>은
양자역학과 나노공학이 외삽으로 멋지게 표현된 과학소설입니다.
작중에서 슈뢰딩거의 고양이 비유를 친절히 설명해주고 있지만,
양자역학의 기본이 되는 '관측'과 '확산,수렴'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면
이책은 양자역학 개론서가 될 정도로 난해한 진입장벽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자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과연 경소설에서도 ‘팬덤’의 규칙을 충족시키는 문법이 존재할까요? 앞서 보셔서 알겠지만 작품을 ‘문맥적’으로 읽는다는 것은 하나의 팬덤이 형성되어 있다는 것을 가정합니다. 하지만 경소설이라는 팬덤은 그렇게 고정된 ‘문법’이라는 것이 정해져 있지 않아 보입니다. 이 글의 1부에서 ‘캐릭터 소설’이라는 말을 쓰면서 경소설의 내적 형식에 대해서 이야기했지만, 분명 <어느 비공사에 대한 추억>이나 <바케모노가타리>같은 작품은 엄연히 경소설에 포함되지만 이런 캐릭터소설의 클리셰에서는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화용론적으로 클리셰가 형성되는 과정을 연구하려면 그 ‘문법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우리는 이제부터 경소설의 ‘독자층’에 대한 문화적 필드를 살펴볼 것입니다.
경소설의 팬덤은 ‘라이트노블’이라는 어휘가 생성되는 시점, 즉 1990년대를 전후에서 소설과 게임, 애니메이션과 만화가 서로 얽혀있는 관계를 찾아봐야합니다. 일본의 경소설과 애니메이션, 게임이 아주 강력하게 연계되던 시점 중 하나로 저는 1980년대 후반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때 카도카와 문고(角川文庫)에서 야심차게 출범시킨 SNE의 <소드월드>시리즈와 이 <소드월드 RPG> 패러렐 캠페인에 가장 큰 중심이 됐던 미즈노 료의 <알레크라스트 크로니클> (즉 <로도스도전기>)의 붐을 통해서 TRPG와 소설, 그리고 게임과 만화가 굉장히 긴밀한 관계를 가지면서 발전하기 시작합니다.(카도카와문고는 스니커매거진과 드래곤매거진을 내는 그곳입니다.) 이 이야기는 굉장히 복잡하고 논쟁거리가 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일단 이 글에서는 이정도에서 간략하게 기술하겠습니다.
1980년대 중반 D&D와 룬퀘스트 등 미국 TRPG의 붐이 일본으로 넘어오고,
TRPG캠페인 기반의 하이판타지가 일본에까지 많은 영향을 끼치는 와중에 발표된
<소드월드>는 후에 1990년대 경소설 씬에서 엄청나게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됩니다.
소설내적으로는 TRPG 리플레이가 소설화되면서 캐릭터소설이라는 형식을 만드는데 일조하며
바깥으로는 소설과 게임, 애니메이션을 하나로 묶는 커뮤니티 미디어의 역할을 하게됩니다.
그 창의 중심에 <로도스도전기>가 있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겠지요.
중요한 것은 이 시점을 전후로 하여 경소설의 독자층이 게임과 만화, 애니메이션을 모두 섭렵 / 포섭이 가능했다는 점입니다. 물론 게임의 붐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비주얼 콘텐츠’에 전반을 소비할 수 있는 독자층으로 경소설의 독자범위가 확대됐음을 알 수 있습니다.
독자가 문법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아는 문법을 제공하는 소설
‘라이트노블’이라는 말을 하면서 일반적으로 ‘만화적인 소설’, 혹은 ‘비주얼 경향이 강하고 서브컬쳐의 영향을 받은 틴에이저 위주의 소설’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정확하게 경소설의 방향을 가리키지는 않습니다. 저는 여기서 ‘만화적 소설’이나 ‘비주얼 경향’ 혹은 ‘서브컬쳐’등의 어휘를 토도로프의 이론을 바탕으로 하나로 묶어볼까 합니다.
여타의 팬덤의 장르소설은 위에서 제시한 ‘그 장르팬덤 집단이 규약한 문법론’ 즉 클리셰를 바탕으로 읽힙니다. 이것은 물론 현재의 몇몇 경소설에도 적용되는 부분이라서 ‘모에’라는 이름으로 그것을 분석할 수도 있습니다만, 어쨌든 장르소설은 바로 그것 때문에 문법의 공유권이 독자보다는 작가에게 더 많이 기울어져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SF 작가가 ‘SF소설’을 창작하면서 독자에게 원하는 것은 'SF의 클리셰를 통한 SF적인 에피스테메‘입니다. 따라서 SF소설 독자는 ’SF소설‘을 찾아서 읽습니다. 이것이 바로 팬덤의 특징입니다. 판타지소설도 마찬가지고, 특히 추리소설과 미스테리는 그것이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장르입니다.
하지만 경소설은 이와 역전된 현상이 일어납니다. 위에서 잠깐 말씀드렸지만, 그 까닭은 ‘라이트노블’이라는 어휘 자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이것이 작가나 독자 팬덤에 의해서 스스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문화유통과 출판업계에서 독자층들을 합의적으로 묶은 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경소설 독자는 ‘경소설의 클리셰에 맞는 소설’을 찾아읽는 (이와 관련해서는 1부를 참고하시길 바랍니다.)경우도 있지만, 또한 많은 경우에는 ‘각 서브컬쳐의 팬덤 독자들이 원하는 부분’들을 하나의 작품에서 찾아읽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경소설은 ‘서브컬처’라고 명명할 수 있는 다양한 클리셰 콘텐츠를 적절히 모아서 하나의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는 작품으로 만들어놓는 것입니다. 그래서 독자가 작품을 찾아 읽어야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독자가 원하는 콘텐츠를 적절히 배치해 구비해놓고 기다립니다.
경소설계의 소설상의 심사를 보면, 심사위원들이 가장 결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새로운 스타일과 새로운 유행, 콘텐츠도 하나의 덕목이지만, 여러 서브컬쳐의 팬덤 클리셰를 골고루 만족할 수 있는 가능성을 크게 가늠하는 것이죠.(라이트노블 응모에서 '기획서'라는 것은 바로 이부분을 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스즈미야 하루히>입니다. 이 작품은 다들 아시다시피 성역할의 역전으로 새로운 모에 스타일을 제시한 기념비적인 작품이기도 하지만, 일단 작품의 내러티브 자체가 ‘SF적인 에피스테메’를 기본 골격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 작품에서 ‘캐릭터소설’과 ‘SF’소설이 가지고 있는 내적 형식의 비율이 굉장히 강합니다. 위키재팬을 보면 <스즈미야 하루히>를 SF로 분류하고 있기도 하며, 나가토 유키를 통해서 보여주는 SF적인 에피스테메는 사실 일반인이 읽기는 상당히 하드한 면도 있습니다. (물론 하루히의 캐릭터 본질 자체가 그것을 많이 풀어주고 있기는 합니다.)
<스즈미야 하루히>가 하드SF로 보기에는 굉장히 라이트한 면이 있지만,
그럼에도 일반 독자들이 읽기에는 상당히 하드한 SF적 외삽이 담겨있습니다.
(물론 에피스테메의 엄정성은 차치하고서라도 말이죠.)
즉, 이 작품은 콘텐츠부터 캐릭터까지 완벽한 '경소설'의 범주에 들어갑니다.
좀 더 깊이 들어가자면, 휴고 건즈벡이 말한 '경계소설'의 범위와 맞닿은 부분도 있는데,
이 이야기는 추후에 칼럼에서 기회가 되면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즉 <스즈미야 하루히>는 내적형식으로는 캐릭터소설 독자들과 SF독자들의 팬덤을 동시에 만족시키면서도 만화와 게임에 기반한 ‘모에’캐릭터의 요소까지 모두 잡아내면서 최소한 세가지 이상의 클리셰를 중층적으로 만족시키는 것입니다. 이쯤에서 이 글의 첫 번째 문제를 떠올려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의 문장이 ‘어떤 문법을 쓰느냐’에 따라서 의미가 중충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바로 <스즈미야 하루히>같은 라이트노블은 이런 ‘클리셰의 중층성’이 가장 활성화된 상태의 소설로 창작된 것입니다.
<늑대와 향신료>는 역사소설에 대한 우화로, 또는 새로운 경제 판타지 소설로도, 연애소설로도, 그리고 ‘모에캐릭터 소설’로 모두 볼 수 있는 상당히 다양한 클리셰를 준비해두고 있습니다. 독자가 어떤 클리셰를 상정하고 그 장르의 작품을 찾아 읽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작품 안에서 내가 좋아하는 클리셰를 찾아 읽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1부에서 말씀드린 이야기도 마저 해보도록 하죠. <어느 비공사에 대한 추억>은 히어로와 히로인의, 어느 정도 ‘순정파 캐릭터’가 정형적으로 들어있습니다. 이건 로맨스의 특징입니다. 로맨스의 내적형식은 기본적으로 캐리커쳐를 배제합니다. 우리나라 드라마형식으로 말하자면 남자주인공은 그저 ‘멋진 재벌2세’면 되고, 여주인공은 ‘아리따운’ 남자주인공의 배다른 남매라는 위치만 있으면 되지, 그 캐릭터의 성격은 전혀 필요가 없습니다. 사실 장르 로맨스에서 남주인공과 여주인공의 외모와 특성은 크게 부각될 필요가 없지만, 이것이 ‘경소설’로 창작이 되면서 비주얼적인 콘텐츠가 극대화되면서 캐릭터에 매력이 가미됩니다. 그러면서 어느정도의 ‘모에코드’를 만족시킬만한 소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어느 비공사에 대한 추억>이 경소설 팬덤을 크게 어필한 것은 사실 이런 로맨스적인 요소가 아닙니다. 바로 ‘로맨스적인 연출’에 있습니다. 로맨스 클리셰는 캐릭터보다는 비현실적인 낭만적 연출에 크게 의지합니다. 그리고 그 연출은 ‘비극을 수반한 필연’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사랑의 묘약을 생각하시면 됩니다.)에 의해 생성됩니다. 문제는 <어느 비공사에 대한 추억>에서 이런 로맨스적 연출장면이 간결하고 색채위주의, 혹은 굉장히 호흡이 빠른 애니메이션적인 연출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장면의 컷이 빠르게 분할되고, 색채나 대사에 의존하는 이런 애니메이션적인 장면연출은 다른 경소설에서도 자주 드러나는 부분이지만, ‘연출이 생명’인 로맨스 클리셰에 이것이 투입되면서 극적 감정이 엄청나게 올라가고 몰입도가 ‘경소설스럽게’ 상승하는 장치로 기능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각 장르 클리셰를 두드러지게 사용하는 여러 작품을 동시에 내놓는 것도 가능한 방법입니다. 이 전통은 <엑셀 사가>나 <하레와 구우>같은 만화책에서도 자주 드러나던 방식이긴 하지만, 경소설에서는 각 작품별로 두드러지는 장르클리셰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므로써 그것을 표출합니다. 예를들면 <스크랩드 프린세스>의 경우 전형적인 장르판타지의 클리셰를 따라가고 있으며, <스트레이트 재킷>은 하드보일드풍의 활극을 쫓아갑니다. <트래스패서>는 라이트하긴 하지만 메카닉, 특히 거대로봇물의 클리셰가 가지고 있는 부분에 Boy meet girl을 접목한 경우이며, <초인동맹에 어서오세요>는 전대물의 특성이 강하게 부각되어 여러 서브컬처 장르의 독자들을 ‘경소설’이라는 하나의 장르로 끌어들입니다. (그 공통적인 속성은 또한 ‘캐릭터소설’이 가지고 있는 현대 모에의 특징과 캐릭터적 속성들을 활용한 것들이 많습니다.)
경소설, ‘라이트노블’이라는 말이 성립이 가능한 가장 큰 까닭은 이런 장르클리셰를 ‘뷔페식’으로 구비해놓기 때문에 그 깊이는 자연스럽게 낮아지고 무게가 가벼워질 수 밖에 없는 숙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단순히 여타소설과 비교하여 엔터테인먼트소설로서 쉽게 읽을 수 있다는 이유 외에도 각 서브컬쳐 클리셰의 무게를 대폭 낮추고 다양한 클리셰를 배치하므로써 여러 서브컬처의 독자들을 모두 끌어당기고 만족시킬만한 이야기를 구비하기때문이기도 한 것입니다. 총체적으로 말하자면 경소설의 클리셰는 ‘현재 유행하는 서브컬쳐 전반’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 전제가 깔린다면 경소설의 역사는 1980년대에서 1990년대 사이의 일본이 아니라 동아시아의 소설 역사 안에서 총괄적인 조망이 가능해집니다.왜냐면 이렇게 되면 “경소설은 ‘현재 유행하는’ 이라는 문화적 전제가 깔려야하는 보편장르용어”가 되버리기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내용은 다음 칼럼 <<경소설은 ‘노블’이 아니다>>에서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마치며 : 경소설이란 무엇인가?
경소설은 캐릭터소설의 형식을 어느정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현재 그 내적형식의 축인 캐릭터가 표현되는 방식은 ‘모에’로 압축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 사이의 경소설을 읽어보면 히로인의 일러스트레이션이나 그 캐릭터 상이 지금과는 달랐습니다. 왜냐면 1980년대 후반 일본 경소설계의 유행은 만화와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미국에서 엄청난 붐이 일었던 하이/하드보일드 판타지, 1970년대 막차로 일본에 건너와 어느정도의 층을 형성했던 소드 앤 머슬Sword & Muscle에서 요구되는 강인하고도 부드러운 히로인 이미지가 외모에 투영돼야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 당시 대표적인 여성 캐릭터로 <로도스도전기>의 디드리트와 <대항해시대2>의 카탈리나 에란초를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경소설은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경소설의 정의는 사회학적으로 팬덤의 장르문법의 수요가 어느방향으로 흐르느냐에 의해 결정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팬덤의 수요가 굳어지면 ‘캐릭터 소설’같은 하나의 내적형식이 생성됩니다. 지금의 경소설의 트렌드가 흐르는 방향은 ‘캐릭터’와 ‘모에’에 머무르고 있는 것 뿐, 경소설의 의미는 계속 변화해 나갈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경소설이라고 해서 문학적 수준이 낮다거나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동물화시키는 탈출구로만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장르 독자들의 클리셰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사회의 반응으로도 충분히 읽을 수 있다는 것이죠.
1편에서 많은 분들의 반론이 있었는데 이번편에서 얼마나 많은 답변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쓴 글은
아니지만 이런 식의 고찰도 필요하다고 보는 입장으로써 경소설과 이를 포함한 장르소설 전체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경소설의 소개를 위해서라면 이런 복잡한 글보단 유명한 라이트노벨 한권 뽑아 리뷰를 적는게 좋겠지
만, 그런 감상들이 대부분 소위 오덕이라 불리는 사람들만이 공감할 수 있는 코드로 점철될꺼 같더군요.
그리고 제 본진은 판타지 쪽이기도 하고...경소설뿐만 아니라 장르소설도 곁들인 위 글을 한번 소개해보고
싶었습니다. 다음에도 괜찮은 장르소설 관련 칼럼을 보게 되면 올려볼까 합니다.
ps.부제는 제가 한번 붙여봤습니다. 물론 위의 글만으론 장르소설이 무엇인지 논하기엔 부족하다고 생각
하지만 경소설만 얘기하는 글은 아닌거 같아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