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글 쓸 때 200만 넘어가면 리뷰 올린댔는데 혹시나 해서 '200만 넘어가거나 극장에서 내려지면' 이라고 바꿨었던 기억이 나네요. 예. 200만 못 채웠습니다. 170만으로 멈추고 이준익 감독은 결국 트위터를 통해 은퇴선언을 했습니다.
평양성 개봉 직후 꼭 보라는 글을 올렸었는데, 그걸 생각하면 부끄럽네요. 하지만 그 때 생각이 바뀌진 않았습니다. :) 못 보신 분들 기회 되면 꼭 보세요. 일단 그 글에서 '영화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답글이 달렸었는데, 그 때부터 불안했었는데 역시나네요 ㅠ_-
그런 의미에서 영화를 분석하면서 왜 평양성이 성공 못 했을까 한 번 비판적으로 접근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평양성 보신 분만 봐 주세요. 아니면 스포일러 상관 없거나 안 봐도 상관 없다는 분은 보셔도 되겠네요. :)
1. 황산벌과의 차이
제가 내린 결론은 황산벌을 본 사람들이 오히려 더 실망한다는 거였습니다. 그 이유가 뭔고 하니...
일단 전투 부분. 황산벌에서의 전투는 블랙 코미디의 절정이었습니다. 초중반의 코믹한 전개와 응원전, 거시기에 대한 것 등으로 전쟁을 아주 애들 장난으로 만들어 버렸죠. 근데 갑자기 인간 장기, 화랑 출전 이후로 분위기를 급반전 시켜 버렸습니다. 장수들의 무쌍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고 병사들은 살기 위해 서로를 밀고, 때리고, 욕질을 하죠. 사다리를 지탱하는 병사의 힘겨운 모습, 울면서 마구 덤비다 쓰러지는 모습, 역시 울면서 상대가 죽을 때까지 마구 '때리는' 모습 등에서 전쟁의 비참한 모습을 여지 없이 보여줍니다. 초반에는 "전쟁은 애들 장난 아이가?" 라고 해놓고 후반 가면서 "봐라. 전쟁이 애들 장난이가?" 라고 하는 것 같았죠. 김유신은 화랑들을 죽으라고 보내고 선봉을 일부러 전멸시키고 김법민은 그걸 보며 전쟁의 냉혹함을 배웁니다.
평양성은? 여기서는 황산벌에 비해 전투의 비중이 극도로 높아졌습니다. 공격, 또 공격, 계속 공격이었죠. 신라군의 공성 방법과 (사다리 사이에 밧줄을 연결해서 올라가는 거나 널뛰기 등) 고구려군의 다양한 신무기에서 코믹함과 함께 다양한 전투의 모습을 보여주죠. 이준익 감독이 얘기한 ' 앞으로의 영화에 영향을 줄 전투 장면 ' 은 이런 걸 말할 겁니다. 보는 사람마다 느낌이 다를 겁니다. 그 유명한 몬티 파이튼의 '성배'의 오마쥬라 할 만한 가축 날리기(-_-)도 왜 돼지와 소가 살아서 돌아다니냐고 까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어차피 스케일이 커질 수밖에 없는 평양성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요, 황산벌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되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을 겁니다.
하지만 황산벌을 본 사람들에게는 황산벌의 전투에 담긴 메시지가 전부 빠져 버린 게 돼 버리죠. -_-; 그걸 대신해 감독이 과감히 투입한 게 거시기와 문디겠습니다만... 이건 따로 쓰겠습니다.
두 번째로 블랙 코미디 부분. 오프닝부터 현실을 풍자했던 황산벌에 비해 평양성은 많이 약합니다. 남생 남건이 주전파와 주화파로 나뉜 것, '쌀 공격' 등에서 남북 관계에 대한 은유는 나옵니다만 정작 영화가 말하고자 한 건 다른 거였죠. 근데 이걸 또 신라 + 고구려 VS 당나라 라는 훼이크로 광고해 버렸습니다. 나름 떡밥을 뿌려 본 것 같습니다만 호응은 적었던 것 같네요. (작중 신라 고구려 연합 작전이 말 나온 지 10분도 안 돼서 깨진 걸로 봐서는 훼이크로 보여집니다. 근데 광고에서는 이걸 주로 다루는 듯이 해 버렸죠) 주가 되는 현실 풍자는 김유신의 '정치는 어떻다'는 걸로 대표되는데 이 메시지를 전하는 방법이 좀 아쉬웠습니다. 남북관계 등을 완전히 '거세'해 버리고 황산벌에서의 블랙 코미디 역시 최대한 줄여서 한두개로 압축했는데 실패한 거죠. 아래의 요인들 때문으로 보입니다.
2. 거시기와 김유신
결국 이 두 캐릭터의 갭이 문제였던 거죠. 전작에서 병사들의 모습 하나하나로 보여줬던, 병사들은 장기말일 뿐이다는 걸 거시기라는 캐릭터 하나로 압축했습니다. 문디도 있긴 하지만요. 전투 장면에서 백제 출신 군사들이 몸 사리는 건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거시기의 존재감이 너무 컸죠. 포로가 돼서 '전쟁은 윗대가리들 배 채우는 거라고 울면서 말 하고, 전쟁 중에 왠 결혼식이냐고 개연성이 약하다는 비판이 나오게 하는 등...
평양성은 김유신과 김법민으로 대표되는 "약소국의 살아남기"와 거시기, 문디로 대표되는 '병사들의 살아남기'가 주제입니다만, 거시기가 이렇게 너무 튀어 버리고 너무 아나키스트 적으로 나가 버리면서 둘 사이가 잘 섞이지 않은 거죠. 일단 거시기가 울면서 하는 말에 김유신이 '와, 다 맞는 말 아이가?' 라고 하는 거나 문디가 거시기 말 듣고 생각 바꿔서 자기 몫 확실히 얻어내려고 하는 모습까지는 잘 섞인 것 같습니다만... 문제는 엔딩이죠.
3. 엔딩의 조급함
김유신은 자기 피해를 최대한 줄이면서 이기기 위해 온갖 꼼수를 씁니다. 본대의 진격을 최대한 늦추고 특공대를 파견해서 평양성 함락을 최대한 늦추며 성문이 열리자 고구려의 신병기를 깨기 위해 움직입니다. 황산벌에서 화랑과 선봉의 목숨을 내던졌다면, 평양성에서는 특공대와 자기 동생 김흠순, 더 나아가서 자기와 신라 선봉을 모두 버릴 각오까지 한 거죠. 결국 이건 성공하지만, 결국 당군에 의해 모두 몰살당할 위기에 처하고, 딱 그 순간에 신라 본대가 나타나죠. 그렇게 우와 김유신 짱 문무대왕 멋지다 신라가 이겼다 하는 순간!
거시기가 갑순이한테 전쟁 다 필요 없으니 자기랑 떠나자고 합니다. 이 때 타이밍이 너무 안 맞았죠. 뭔가 하나의 주제가 승리로 끝나려고 하는 마당에 갑자기 다른 얘기가 나온 거니까요.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고구려군은 그냥 공기가 돼 버립니다.
좀 요약하면
신라 작전 성공 -> 당군에게 포위당함 -> 신라 본군 등장 -> 신라의 승리!!!!! 라고 할랬는데 갑자기 거시기 눈물 공세 -> 분위기 다 깬 상태에서 김유신이 마무리
거기다 이 직전에 남건의 무쌍 후 장렬한 전사와 남생의 배신 당한 분노가 나와 버리고 '빼기' '개박살' 등으로 용맹한 모습을 보여 준 고구려 병사들은 모두 공기가 됩니다. -_-; 결국 이렇게 많은 상황들이 모두 한 장면에 나와 버린 게 문제인 겁니다. 고구려군이 잘 싸운 건 잘 싸운 것대로, 신라가 이긴 건 이긴 거대로, 거시기의 말은 거시기대로 결말을 냈어야 됐는데 이게 다 뭉쳐서 나왔으니... 거기다 거시기의 말은 앞의 둘을 모두 부정하는 말이었습니다.
4. 결론
결정적인 건 캐릭터가 너무 많다는 거겠죠? 계백 / 김유신으로 확 갈라지고 거기에 김춘추, 의자왕, 김인문 등은 조연의 역할일 뿐이었던 게 황산벌인데, 평양성에서는 김유신 / 남생 / 남건 / 거시기/ 문디의 역할이 모두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잘잘이 나눠 버렸으니 정작 모든 걸 정리하는 엔딩에서 고구려 쪽은 공기화 돼 버린 거죠. 2시간으로 나름 길었던 영화지만 이들 하나하나의 입장을 다 정리하기엔 무리였고, 아무래도 같이 얘기하긴 힘든 김유신과 거시기의 이야기가 같이 얘기가 돼 버렸습니다.
황산벌에서는 병사들이 직접 몸으로 보여주고 계백의 마누라가 한 장면을 통해 나온 것이 모두 거시기의 입을 통해 나와 버리게 됐구요.
결국 평양성에 대한 극단적인 호불호는 거시기의 역할이 잘 녹아 들어간 것으로 보느냐 아니냐에 따라 갈린다고 봅니다. 예산 부족이었을지 시간 부족이었을지 뭔가 아쉽네요. 조금만 더 시간을 늘려서 이 하나하나를 잘 정리했으면 괜찮았겠는데요. 이렇게 사극을 주로 도전하던 감독님 한 분이 가시는 게 아쉽습니다. 무협 종류 아니면 제대로 된 사극 영화가 안 나온 거 같은데요.
그리고 황산벌 때부터 생각한 거지만 왜 이런 영화를 그냥 웃긴 쪽으로만 홍보하는지 궁금하네요. 어떤 기사에 보니까 웃을려고 찾은 사람은 안 웃기다고 욕 하고, 정작 웃긴 것보단 생각할 게 많다는 쪽의 호평이 많다고 하더군요. 거 참...
아무튼 전투 장면에 대한 호불호라든가 다른 쪽의 문제도 있겠죠. 아무튼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 자 이제 다시 후삼국 이야기 쓰러 가야겠네요.
P.S : 예전에 삼국통일에 관한 글 쓰다가 황산벌 대본을 찾게 됐는데, 평양성에 나오는 '초대형 쇠뇌'나 '빼기'에 대한 게 있더군요. 황산벌에서는 분량 등의 문제로 빠진 모양입니다만 그게 평양성에서 다시 나온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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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남자를 좋게 본 이 준익 감독의 팬 입장에서는 왕남 이후 후속작들이 어찌 이리 퇴보할 수 있을까 라는 궁금증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아무리 좋게 봐주려고 마음먹고 영화를 보기 시작해도 과연 같은 감독이 만든 영화인가 라는 생각이 들게 되니
평양성은 안봤지만, 최근 영화 중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황정민, 차승원이 안쓰럽더라구요.
이젠 감독에 대한 기대를 접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