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에 계신분들중에 공부란걸 단 한번도 해보지 않으신 분들은 없을것이고
그러면 자연스레 공부의 가장 첫번째 방법인 '암기'라는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아보신 분들은 없을껍니다.
모든 학문의 기본은 암기에서 시작되죠. 이해하고 분석하려 할지라도 기본적인 사실에 대해 암기를 하지 않으면 안되니까요
우리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암기라는걸 직접적으로 접할때는 아마 '구구단'을 외울때가 아닐까 합니다.
물론 한글을 먼저 배우고 가나다라, 일이삼사를 외워야 하긴 하지만 이는 암기보다는 연상이나 이해에 더 가깝죠.
완전한 개념없이 무턱대고 암기를 하는건 구구단이 시작이 아닐까 합니다.
(초등학교 1학년이 6*7을 이해하고 있다고는 생각이 들질 않네요;;;) 머 암튼
저는 유치원때 구구단을 전부다 외웠었습니다.(시작은 재수없지만 자랑글로;;)
보통 2단만 맛뵈기로 외우라고 시킬때 난데없이 9단까지 외워서 선생님을 당황스럽게 했던 기억이 나네요
(반면 가위질 같은건 너무 못해서 선생님이 처음이 부진아로 착각하셨다고 합니다;;;)
그 이후로 초등학교 시절 암기가 어려워 공부를 못한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시험문제에 나오는 범위는 한정되어 있고, 그 한정되어있는 범위의 내용은 이미 학습자료에 전부 있으니까요.
나름 암기에 강하다고 생각했던 저의 생각이 무너진건 중2때 부터였습니다.
사춘기가 찾아오고, 자연스레 공부가 아닌 다른것들에 관심이 가기 시작하고, 저의 공부양은 평소에 비해 많이 떨어졌었습니다.
머리는 좋으니 문제집 열심히 풀면 성적은 얼추 나오겟지하는 마음에 열심히 교과서 들여다보기만 수차례
그런데 초등학교때는 읽기만 하면 외울 수 있는 양이었지만, 학년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눈으로 익히는 암기가 아닌 '단순암기'라는 능력이 필요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남들은 보고 읽고 쓰기를 반복하며 체득하는 단순암기의 효과를 전 전혀 느낄수가 없었습니다.
소위 '암기과목'이라 불리는 기술, 가정, 한문 등의 과목은 다른과목에 비해 성적이 떨어질 수 밖에 없었죠.
하지만 다행히 국영수과 주요과목은 성적이 좋아 저 네과목만 입시에 활용하는 특목고에 운좋게 진학하게 됩니다.
하지만 면접할때 부터 불길한 예감이 드는 한마디가 제 귀에 들어왔습니다.
면접관 : 영어 성적이 몇등인가?
저 : 네 (전교) 23등입니다.
면접관 : 흐음.. 영어 성적이 많이 안좋구만..
저 : (????????????????)
우리말은 보고 듣고 읽으면서 반복하면 아무리 생판 모르는 것이라도 어느정도 이해를 통한 암기가 가능한데
외국어는 우리의 사고속에 우리말로 이해하는 장치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단순암기가 제일 필요한 분야였던거죠. 그러한 점이 저의 성적에 나타났던 것이구요.
저와 평균적인 학습능력이 비슷한 아이들이 학교에 많이 있었지만 단순암기가 취약했던 저는
영어만큼은 완벽한 부진아였습니다;;; (첫시험에서 '가'를 맞고 꼴등을 한 이후로 상위 90%에 들어본 기억이 없네요;;)
게다가 이미 어느정도 선행학습이 되어있다는 가정하에 진행되던 수업이라 내용도 난해하기 그지없었죠.
그래도 좀 알고있는 단어나 문장에서 조금씩 난이도를 올리면서 학습했으면 조금이나마 이해하며 암기할 수 있었겠지만
처음부터 어려운 단어와 문장, 문법들을 퍼부어주는 통해 영어는 해도 안되는 과목의 벽으로 남게 됩니다.
하지만 사실 영어뿐만은 아니었습니다.
고등학교 학습과정이 되면 기초부터 천천히 밟지 않는이상 대부분은 단순암기의 공부영역이며
(사실 우리나라 고등학교 학습과정이 너무 많습니다. 이해하며 학습할 수 있는걸 굳이 암기시키고 있으니까요. 내용부터 문제까지)
그때문에 국어 문학 수학 화학 생물 지구과학 할거없이 등수는 바닥을 통통 찍고 있었습니다.
다만 그나마 이해의 영역이 넓은 물리와 다른 아이들보다 선행학습이 되어있던 컴퓨터 과목만 조금 나은 성적을 가지고 있었죠.
그렇게 영어는 저와 영원히 친해질 수 없는 사이로 남아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다시 영어와 친해지게 된 계기는 정말 뜻밖의 일이었습니다.
집에서 미드를 보다가(남자들은 거의 안본다는 '성과 도시'라는 미드입니다;;;) 문득 영어회화를 배우고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무 생각없이 집에서 제일 가까운 영어회화반을 가서 테스트를 보고 등록. 영어회화 공부 시작
그런데 한 처음 2주는 고생하더니 나중에는 내가 예상한것 보다 회화를 꽤나 잘하고 있더군요.
예전에 작문이나 말하기 수업을 할때 머릿속에 내가 생각하던 한글의 단어를 영어로 바꾸기 위해 버벅버벅거렸던것이
미드를 많이 봐서일지, 아님 그동안 영어의 사고가 나도모르게 적립되서 일지
아무리 어렵거나 난해한 내용이라도 스스로 이해할 수 있는 범위내에서 스스로 문장을 이어가고 있더군요.
아 언어란것이 이렇구나라는걸 그때 느꼈습니다. 암기하지 않아도 어느정도 소화가 가능하구나.
외국인앞에서 개념 설명을 돌려돌려하며 하면 알아서 제가 말하고자 하는 단어를 설명해주기도 하고.
문법도 시제만 제대로 사용하면 그 외에는 크게 개의치 않더군요. 사실 우리도 우리말을 할때 그러하니까요.
뭐 그때 회화 빤짝 배우고 다시 영어와 담을 쌓아서 지금은 도로아미타불이 되었지만
그래도 그때 벗게된 영어공포증덕분에 요새 토익공부를 나름 즐겁게(집중은 못하지만) 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글을 쓰게 된 이유가 토익 단어책을 암기하면서 떠오른 생각 때문입니다.
단어를 외울때 '생판 처음보는'단어의 경우는 봐도봐도 여전히 계속 까먹지만
'어디선가 봤던 형태의'단어의 경우는 외우지 않아도 그냥 머릿속에 남게 되더군요.
(예를 들면 benifit이라는 단어를 알고 있으니 benifitcal이라는 단어는 그냥 봐도 이해가 가는 것?)
제가 영어를 무서워 하고 암기를 무서워 했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저것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사실 언어도 사람이 만든것이고, 없던걸 누가 뚝딱뚝딱 만든것이 아니라 여러사람이 쓰면서 저절로 생기게 된 것일텐데
그러면 자연스레 그 과정에 있어서 이해와 연상이 있고 원리가 있을 것인데
그걸 모르고 맨땅에 헤딩식으로 영어공부를 했었으니 그렇게 싫었던 것이지요.
(특히나 저처럼 극단적으로 연상암기나 이해하는 능력보다 단순암기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의 경우는 더더욱 그러하죠)
그래서 그냥 단어들을 눈으로 보면서 안외워지는것은 언젠가는 외워지겠지 하며 넘어갑니다.
나중에 연상될 기회가 생기면 그때 외워야지 하는 마음으로요.
지금 이러한 암기법을 개인적으로 수학을 가르치고있는 학생에게 적용을 해서 많은 효과를 봤습니다.
수학의 기본적인 원리들을 암기가 아닌 이해와 반복으로 체득하게 한 후 문제풀이로 학습을 시키는 것이지요.
문제풀이도 문장 하나하나와 풀이 하나하나에 최대한 의미를 부여하여 암기하도록 시키고 있습니다.
효과는 아직 뚜렸하진 않지만 일단 수학공포증 하나는 완전히 없앤듯 하더라구요.
이해에 기반한 암기가 물론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더 미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외운 암기는 그 효과가 오래가고, 머릿속의 사고체계 확립에는 더더욱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나라 교육에서는 너무 단순암기만을 강조하고 있고 이때문에 소위 시험끝나면 까먹는다라는 일이 많이 일어나는거 같습니다.
이러한 교육은 사실 교육하는 사람이 그 과목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를 가져야만 할 수 있죠.
하지만 사회 구조나 분위기상 그런교육이 어려운것 같아 안타깝네요.
아직도 저는 남들에 비해 아는 영어단어도 한참 부족하며 문법적 지식도 매우 낮습니다.
하지만 시간은 조금 걸리더라도 이렇게 공부하는게 영어를 제것으로 만드는데는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오늘도 아주 성의없이;;;; 영어 단어책을 그냥 펴놓고 읽고 말하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암기를 해서 '정말로' 내것으로 만들고 싶다면 단순암기의 효율보다는
이해를 통한 암기, 연상을 통한 암기를 이용하는것이 더 좋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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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동감합니다... '이해'를 바탕으로 한 암기.. 뭐, 사실 공대생으로서, 전공과목 대부분을 저런식으로 공부하고 있긴 하지만요.
저 같은 경우는 유독, 외워야할 내용이 있는데, 그 내용의 핵심부, 즉 밑바탕이 되는 원리같은 것들이 이해가 안되면 정말 뻥질정도로 안외워집니다. 그리하여 지식의 함양같은 느낌의 문과보다는 원리를 공부하는 듯한 이과를 선택해서 공대를 왔건만.. 뭐 그냥 그렇다구요.. 껄껄껄;;
포인트는 좀 다를 수 있지만 간단하게 들 수 있는 예가 있죠.
지하철 1호선 역들을 외운다고 해 봐요
단순하게 역 30개를 무작정 외울려고 하면 분명히 빼먹는 역이 있겠지만
순서대로 외우면 순서정보가 추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더 외우기 쉬워집니다.
주기율표나 조선왕이름을 생각해도 순서를 맞춰서 외우는게 더 쉽죠.
앞뒤 문맥이 암기에 있어서 힌트가 되니까요.
단순 암기만 해도 이런데 밑바탕에 원리가 깔려있는 지식들이야 말할 것도 없죠.
이해가 따르지 않는 단순 암기는 비효율의 극치죠.
전에 유시민 장관이 고등학교시절에 수학공부했던 방법을 말하는 기사를 본적이 있던데요
생각나는건 수학을 잘 못해서(? 못하는데 서울대 경제학과에 가나?) 정석책을 아예 외어버렸다고 하던데요
전 그게 가능한지 좀 의아하더라고요.
개념이해 없이 달달외워서 그걸 시험에 써먹는다? 머리가 좋은건지........ 좀 부럽더라고요!
위에 글처럼 이해 안하고 외운다는건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